선생님 책꽂이

[8호] 도서관에 고양이 한 마리 키우실래요?

- 편집자

도서관에 고양이 한 마리 키우실래요?

나는 책을 무척 좋아하긴 하지만, 도서관을 그닥 즐겨찾지는 않는다. 물론 그동안은 학교에서 근무해 왔기 때문에 바빠서 도서관에 갈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학교 도서관조차도 일주일에 한 번 갈까말까였다. 이유인즉슨, 읽고 싶은 책이 있어도 도서관에 가서 빌려서 보는 것보다는 성격이 워낙 급하다 보니, 그리고 책에 대한 소유욕이 워낙 크다 보니 직접 사서 읽는 방법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장 읽고 싶어도 읽을 시간이 없어 어쩌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놓아도 연체되기가 일쑤여서 가급적이면 도서관보다는 서점에 가서 책을 사서 내 방 책꽂이에다 쟁여놓고 틈날 때 읽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도서관은 나와 각별한 인연을 맺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책과 독서에 관심이 많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도서관 이용을 별로 안 하면서도 도서관 관련 일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몇 년 전에 우리 학교 사서 선생님이 나에게 아주 어려운 부탁을 하러 오셨더랬다. 당신이 순회 교사(그 분은 교련 교과를 가르치는 분이었는데, 교과가 축소되면서 사서 자격을 따신 후 우리 학교 도서관에서 업무를 맡아 보셨었다)로 다른 학교에 일주일에 한 번 교련 수업을 가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정말 미안하지만 수요일 점심시간에 학생들 대출 업무를 좀 도와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나는 그 때부터 일 년 동안 일주일에 한번씩 학교 도서실에서 학생들에게 책을 반납받고 대출해 주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일을 하면서 나는 그 일이 내 적성에 딱 맞다는 느낌이 들었다.

학생들에게 책을 건네받고 건네주면서 그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 왜 그리도 즐겁고 보람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전공을 잘못 택한 건 아닌가 하고, 주변의 아는 사서 선생님들에게 사서 자격증을 따려면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기도 했다.(그때 사서 선생님들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한사코 말렸었고 나중에는 나도 사서가 되는 일이 무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그 일을 부탁한 사서 선생님은 항상 나를 볼 때마다 미안한 표정을 지으셨지만, 나는 매주 그 날이 기다려질 정도였으니, 내가 도서관과 인연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

게다가 내가 몇 년 동안 몸담고 있는 모임 이름이 ‘학교 도서관을 살리는 교사들 모임’이다. 나는 한 번도 학교도서관 담당 교사를 해 본 적이 없다. 운이 좋아서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는 항상 사서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에 도서관을 담당하는 행운(?)이 내게까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급기야는 재작년에 그 모임 선생님들과 함께 유럽의 도서관 기행을 다녀오기까지 했다. 생애 처음으로 거금을 들여 찾아간 유럽에서 그 하고 많은 유적지와 유물은 제대로 감상하지도 못하고,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의 국립 도서관과 공공 도서관, 학교 도서관을 부지런히 돌아다녔으니, 아무래도 도서관과 나의 인연은 각별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다. 어쩌면 전생에 내가 사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작년부터는 ‘권장도서목록 연구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데, 해마다 학생들이 읽을 만한 좋은 책 목록을 만들고 있다. 근데 그 목록 선정 기준이 ‘학교 도서관에 비치하면 좋은 책 목록’이니 원.

그러니, 얼마 전 이사를 하고 휴직까지 했으니 내가 우리 동네에서 제일 먼저 물색해 본 곳이 어디겠는가? 당연히 동네 지역 도서관이다. 안타깝게도 집 바로 근처에는 도서관이 없었고,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마을버스로 다섯 정거장 거리에 시립 도서관이 있었다. 남는 게 시간이니(?)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아침 일찍 아들과 딸을 각각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 놓고(육아 휴직을 했으니 엄마로서의 역할에 일단 충실해야 하므로) 나는 가방 하나 달랑 메고 도서관을 향해 걸었다. 내 걸음이 빠른 편이어서 도서관에 도착하는 데 채 20분이 걸리지 않았다.

3월 오전의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꽃망울을 달고 있는 개나리에게 눈인사를 하면서, 학교에 있을 때는 꿈조차 꿀 수 없을 여유로움을 만끽하며 도서관에 도착했다. 기대감과 설렘으로 도서관 현관문을 밀었다. 아침 아홉 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도서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너무 조용하다. 아무도 말이 없다. 현관 바로 앞에는 독서실 좌석표를 배부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처음 왔다고 하니 문헌 자료실에 가 보랜다. 그 사람은 아무리 봐도 사서가 아닌 듯했다.

문헌 자료실에 가서 사서로 보이는 듯한 사람에게 대출증을 신청하고 나서 이 도서관에 처음 와서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고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그 직원은 “현관 앞에 탁자 위에 팜플렛 있을 텐데, 못 보셨나요? 다 떨어졌나? 궁금한 거 있으면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보세요.”하고 무표정하게 대답한다. 순간, 당황스럽고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물론 나는 우리나라 공공 도서관 사서들이 얼마나 바쁘고 힘든지 알고 있다. 하지만, 한번쯤 도서관의 첫 방문자에게 환한 미소로 맞이해 줄 수는 없었는지, 아쉬움이 남았다.

그 때 내 가방 속에는 <듀이>라는 제목의 책이 한 권 들어 있었다.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라는 작은 제목이 붙어 있는 이 책은 미국의 작은 도시의 유일한 지역 도서관 관장인 한 여성이 자신이 직접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쓴 책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 이 도서관 반납함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발견된다. 그리고 저자는 이 고양이를 도서관에서 키우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이 마을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

이 고양이는 싱글맘으로 사춘기 딸을 어렵게 키우면서 동시에 자신이 맡은 도서관 일로 항상 일에 치여 살았던 저자의 생활에 놀이와 휴식을 주었다. 그리고 경기 불황으로 침체되어 있던 지역 주민들의 마음에 온기와 생기를 불어 넣어 주었으며,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도서관 이용자 수가 크게 증가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책은 고양이의 등장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사실 저자 자신의 인생 이야기와 자신이 평생 살아온 지역에 대한 애정과 관심, 주변 사람들의 삶이 함께 녹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이 도서관을 다룬 책 중에 각별한 책으로 느껴진다. 왜냐하면 도서관은 책이 있는 곳이기 이전에, 책을 핑계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그 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삶에 대한 불안함, 공허감, 위로받고 싶은 마음 들이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도서관은 더더욱 그렇다. (나는 도서관에 있는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그러니까, 책을 건네기 전에, 책보다는 사람들의 시선과 한번더 마주치고 한번더 웃어주는 게 더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도서관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이 책의 일부분을 인용하면서 글을 맺는다.

훌륭한 도서관이라고 해서 꼭 크거나 아름다워야 하는 건 아니다. 최상의 시설, 최고로 능률적인 직원, 최다 이용객 등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좋은 도서관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도서관은 그 지역 사회의 삶에 완전히 동화되어,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야 한다. 좋은 도서관은 언제나 그곳에 있고, 또 주민들이 원하는 것을 늘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이 당연시 여기는 존재여야 한다.

좋은 사서라면 더 깊이 분석해야 한다. 우리 지역 사회가 진정으로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역사는 어떠한가. 이 지역 사회는 어떻게, 왜 변화해 왔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인, 이 마을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해서까지. 좋은 사서라면 이러한 정보를 포착하고 처리하는 여과 장치를 머릿속에 만들어 두어야 한다.

– 김대경(고등학교 교사)

응답 2개

  1. 곽양말하길

    고양이 이름이 듀이라니…센스있네요 ㅎㅎㅎㅎ

  2. 쿠카라차말하길

    제게는, 들어가기만 하면 빨리 나와야 할 것만 같고, 오래 있으면 머리가 아픈 곳이 세 군데 있었습니다. ‘화장실, ‘집’, 그리고 ‘도서관’이었죠. 대학 때는 책의 숲 한 가운데 있으면 어지럼증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요즘엔 안 그렇지만. 가끔씩 남산 도서관에 가는데, 그렇게 좋을 수 없더라구요. 경치도 좋고, 책 냄새도 좋고. 마음의 평화를 얻곤 합니다. 도서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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