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책꽂이

‘뜻밖의’ 선물이 가져다 준 행복

- 달맞이


-『최기봉을 찾아라!』김선정 글 / 이영림 그림 / 푸른책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끊임없이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는 욕망에 시달려왔다. 인정 욕망은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고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한 셈이다. 그런가 하면 인정받지 못한 경험들은 아픈 상처로 남아, 남은 생을 지배하기도 한다. 마음의 문을 꽁꽁 닫고 무관심으로 세상을 응시하는 것이다. 무관심은 당사자뿐 아니라, 주위까지 얼어붙게 만든다. 희망의 바이러스가 전염되듯이, 무관심의 바이러스 또한 빠른 상태로 확산되어 사람과 사람 사이를 벌려놓는다.

『최기봉을 찾아라!』는 이러한 인간의 속성을 잘 파헤치고 있는 작품이다. 도장을 훔쳐간 범인을 추적해 가는(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추리적 기법을 활용해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게 읽힌다. 작가는 ‘왜 도장을 훔쳤나?’와 ‘어떻게 범인을 잡을까?’라는 추리 소설의 두 가지 과제를 제법 충실히 이행해 나간다. ‘왜?’라는 물음이 사람들의 인정욕망으로 인한 상처를 보듬어가는 과정이라면, ‘어떻게’라는 물음은 문제적 아동으로 여겨졌던 ‘도장 특공대’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울보 도장을 가장 많이 받았던 공포의 두식이들과 공주리가 상을 받는 마지막 장면이 진부함에도 불구하고 빛이 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 뿐이 아니다. 생동감 있으면서도 다면적인 캐릭터는 읽는 재미를 배가 시키며, 소원했던 사람들이 마음의 빗장을 풀고 화해하는 장면은 가슴 뭉클한 감동까지 준다. 묵은 상처를 드러내고 새로운 관계를 모색해 가는 과정은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삶에 대한 성찰을 하게 만든다.

상징적 제목

이 작품은 최기봉 선생님이 잃어버린 도장을 찾는 이야기다. 도장이란 그 사람을 상징적으로 대리하는 것이다. 그러니 제목 ‘최기봉을 찾아라!’에 등장하는 ‘최기봉’은 ‘도장(대리자)’과 ‘최기봉이라는 인물(실체)’, 둘을 다 이르는 말이다. 최기봉 선생님이 잃어버린 도장엔 최기봉이란 이름과 엄지손가락을 높이 든 손이 그려져 있다. 이름이 의미하는 바(‘가장 높은 봉우리’)를 따르든, 도장에 새겨진 내용을 따르든 최기봉 선생님은 ‘최기봉 선생님 최고’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현실 속 최기봉 선생님은 도장이나 이름이 표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의미와는 사뭇 다르다. 어릴 적 따뜻한 정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남에게 정을 주는 법을 모르며 그 어떤 제자도 제대로 바라본 적이 없는, 무심한 선생님이다. 아이들이 떠들거나 게으름을 피우면 고함이나 치고 벌로 청소나 시킬 뿐, 아이들의 속내를 들여다 볼 줄 모른다. 같은 반 아이들의 이름조차 잘 기억하지 못하니, 어찌 보면 선생님으로서는 자격이 모자라는 셈이다. ‘최고’라는 의미와는 너무도 걸맞지 않는 사람이다. 아니, 최기봉 선생님 식대로 하자면 벌을 받아야 마땅할, ‘울보 도장’에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최기봉을 찾아라!’는 잃어버린 도장을 찾는 주문인 동시에, 현실과 다른(현실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최기봉 선생님을 찾고 싶다는 아이들의 염원이 담긴 주문인 셈이다. 울보 도장과 엄지손가락 도장 가운데, 엄지손가락 도장만 잃어버렸다는 설정이야말로 기막힌 트릭이요, ‘최기봉을 찾아라!’ 라는 제목이야말로 이야기의 전체 흐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기막힌 제목인 셈이다.

살아 있는 캐릭터

우리가 이야기를 읽고 공감하는 것은, 이야기를 두고두고 기억하는 것은 이야기의 힘이라기보다는 캐릭터의 힘이다. 많은 이들이 동화의 줄거리보다는 빨간 머리 앤이나, 말괄량이 삐삐 등과 같은 매력 있는 캐릭터들을 훨씬 더 오래 기억한다. 캐릭터를 어떻게 구현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성공 여부가 갈린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 책이 술술 잘 읽히는 것은 캐릭터들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형식이와 현식이는 울보 도장을 독차지할 정도로 말썽꾸러기들이다. ‘공포의 두식이’라는 별명만으로도 이 아이들이 얼마나 골칫덩어리인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이 골칫덩어리들을 당당하고 매력적으로 그려낸다. 둘은 하고 싶은 말은 다 한다. 최기봉 선생님에게 머리통을 쥐어 박혀도, 버르장머리 없다는 소리를 들어도 주눅이 들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생각을 드러낸다. 특공대로 활약을 했으니 떡볶이를 사달라는 요구도 하고, ‘모른다’는 말도 자신 있게 내뱉는다. 앙칼지게 말대꾸도 한다. 공포의 두식이들이 더욱 더 매력적인 건 직관적으로 공주리의 숨은 사연을 알아채고 있다는 점이다. 공주리가 ‘목숨을 걸고 걸레질을 하고 있다’는, 선생님도 모르는 비밀을 그들은 알아챈다. 공주리는 발표도 숙제도 하지 않는 그림자 같은 아이다. 자신을 드러내는 법을 모르는 공주리에게는 걸레질을 하는 것만이, 유일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러기에 걸레질에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에 반해 최기봉 선생님은 보이는 것 밖에 보지 못한다. 도장판 때문에 벌을 가장 많이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공포의 두식이를 도장을 훔쳐간 범인으로 단정 짓고 윽박지르는 장면은, 최기봉 선생님이 드러난 것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우를 범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삽화이다. 최기봉 선생님은 이렇듯 드러나는 것에 집착하지만, 정작 보아야 할 것(공주리와 유보라 선생님의 존재와 아픔을 간과하는 것 등)은 보지 못한다. 작가는 제대로 보지 못하는 최기봉 선생님의 반대편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간파하는 공포의 두식이를 배치시킴으로써, 최기봉 선생님의 무심함을 극대화시킨다. 소심함까지 더해 최기봉 선생님을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로 만든다. 교장 선생님의 말 한 마디에 가시에 찔린 듯 상처를 받고, 자신의 말에 아무 대꾸도 없이 나가는 박 기사의 행동이 자신을 무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최기봉 선생님은 찌질남에 가깝다. 독자들로 하여금 선생님답지 않은 선생님이라는 원망보다는, 연민을 자아내게 한다. 게다가 최기봉 선생님의 그러한 성격이 유년시절의 상처 때문이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최기봉 선생님의 캐릭터는 설득력을 갖고 독자들에게 훨씬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최기봉 선생님의 제자로 등장하는 유보라 선생님은 표면적으로는 아이들이 숨만 크게 쉬어도 반성문을 쓰게 하는 무서운 선생님이다. 그러나 내면은 다르다. 십오 년 전 자신을 가르쳐 주었던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속정 깊은 제자이며, 개미처럼 열심히 청소만 하는 주리를 눈여겨 볼 줄 아는 섬세함을 가지고 있다. 제자의 모습을 통해 아이들을 잘 쳐다 봐 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자신의 꿈을 기억해 내고, 자신이 지금 그러지 못하고 있음을 반성한다. 자신의 스승인 최기봉 선생님이 변화할 수 있도록 ‘멋진 선물’까지 보낸다. 최기봉 선생과 아이들 사이를 잇는 매개자이면서, 최기봉 선생님을 촉발하는 동인인 셈이다.

작가는 주요 등장인물들을 입체적으로 그려나간다.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같이 부각하는가 하면(공포의 두식이들이 공주리의 사연을 알아채거나, 유보라 선생님이 공주리의 아픔을 눈치 채는 것), 부정적으로 보이는 성격이나 행동의 측면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근거를 부여해 줌으로써(최기봉 선생님의 무심함과 유보라 선생님의 무서움) 독자들로 하여금 인물들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런가하면 형식이나 유보라 선생님, 최기봉 선생님처럼 캐릭터들의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삶이란 상처를 통해 진화하는 것이라는 것, 그래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처를 딛고 거듭나는 사람들

이 작품은 학교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스승과 제자, 학부모와 선생님이라는 관계로 묶인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작가는 등장인물들 각자가 가지고 있던 내밀한 상처를 들여다보고, 상처들이 치유된 모습을 보여준다. 상처는 꽁꽁 싸매두는 것이 아니라, 햇볕 속에 환하게 드러내야 한다는 것. 그럴 때 상처는 상처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한 손짓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난 너뿐 아니라 아무도 제대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78쪽)

“난, 따뜻한 정을 받아본 적이 없다, 보라야, 남에게 정을 주는 법도 몰랐어. 난 너희가 다가오는 게 무서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아무것도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사람이 되려고 했지. 있는 듯 없는 듯한 사람, 좋지도 싫지도 않는 사람, 아무 영향도 안 주는 사람, 기억에 남지 않고 그냥 스쳐 지나가 버리는 사람 말이야. 그렇게 사는 게 가장 편하고 좋았거든.” (79쪽)

“미안하다……보라야…….”(79쪽)

최기봉 선생님에게 처음 도장을 선물할 때만 해도 유보라 선생님은 자신이 누구라는 걸 정확히 밝히지 않는다. 하지만 공주리가 도장을 훔쳐간 범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유보라 선생님은 자신의 묵은 상처를 드러낸다. 유보라 선생님이 묵은 상처를 치유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최기봉 선생님의 진심어린 사과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유보라 선생님이 자신의 상처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유보라 선생님의 용기가 최기봉 선생님의 무심한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최기봉 선생님 또한 유보라 선생님과 형식이에게 자신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털어놓음으로써, 비로소 닫혔던 마음을 열고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또한 잃어버렸던 자기 자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아버지에게 통 곁을 주지 않던 형식이가 마음의 벽을 허물고 박 기사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었던 데에도, 최기봉 선생님의 진솔한 고백이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공주리는 유보라 선생님을, 유보라 선생님은 최기봉 선생님을, 최기봉 선생님은 형식이의 마음을 여는 데 성공한 셈이다.

최기봉 선생님과 유보라 선생님, 도장 특공대 아이들이 그러했듯이 세상은 이렇듯 서로를 지켜보고,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환해진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뜻밖의 선물(도장)’에 의해 시작된다. 이 기막힌 설정이야말로 지극히 동화적이다. 오랫동안 굳어져 왔던 습성을 깨는 게 ‘뜻밖의’ 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 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 일어난 사소한 일이, 내 삶의 바꾸는 동인이 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 작품이 보여주는 가장 독특한 매력이다.

응답 2개

  1. 김선정말하길

    최기봉을 찾아라 작가입니다. 검색하다 발견한 글에 감사해서 댓글남겨요. 좋은 작가가 되겠습니다.

  2. 둥근머리말하길

    이렇게 읽으니 참 좋으네요.ㅋㅋ 그저 넘 뻔한 답이었지 않나, 그랬었는데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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