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책꽂이

함께 꿈을 꾸다

- 풍경지기 박혜숙

풍경지기의 책이야기

『책만 보는 바보』, 안소영, 보림

빗속을 달렸다. 퇴근 후 저녁 7시 30분에 울산에서 출발했다. 경기도 남양주로 향하는 먼길이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차 속에는 오랫동안 함께 공부한 네 명의 벗이 있었다.

독서교육활동가 연수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최근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 좀더 긴 호흡으로 독서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연수를 기획했다. 이 연수에서는 현장에서 독서교육을 실천하기 위한 사례, 사례를 전달하는 방식, 앞으로 마련해야 독서정책을 고민하게 된다.

교직에 있으면서 스스로 연수를 찾아다니기 시작한 것은 11년 전부터였다. 전남에서 열리는 국어과 연수에 참가하기 위해 혼자 길을 나섰다. 지금은 전문계 학교로 명칭이 변한 실업계 학교에서 3년 동안 근무하면서 내린 결정이었다. 수업시간이 지옥이던 시절이었다. 처음 발령을 받을 때 대학 선배에게 실업계 고등학교의 상황에 대해 대략적인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당혹스러웠다. 수업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벌을 주면 다음 시간에는 다섯 명을 제외하고는 졸고 있었다. 이런 날들이 계속되었다. 아이들이 변하지 않는다면 교사인 내가 변해야 했다.

날마다 고민을 했다. 당시 6차 교육과정에 따른 국어 교과서는 그곳 아이들에게 너무나 어려웠고 실질적 도움도 되지 않았다. 아이들과 만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교육청에서 이루어지는 교과 연수는 형식적인 경우가 많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길을 나섰다.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 준비한 연수에 참가했다. 아이들과 행복하게 만나고 있는 선생님들의 실천 사례 발표를 들으며, 그리고 그 자리에 나와 같은 마음으로 길을 나섰던 선생님들을 만나 공부하면서, 나는 아이들을 새롭게 만날 수 있었다.

조금씩 국어 교과서를 손에서 놓았다. 어려운 교과서와 씨름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교과서 자료 중 아이들에게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단원들만 남기고 나머지는 간략하게 소개하는 정도로 수업했다. 그런 후 남은 시간에 아이들과 시를 쓰기도 하고 부모님 전기를 쓰기도 하고 자기 소개서를 쓰기도 했다. 이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는 수업시간에 졸고 있는 아이를 보며 ‘어제도 햄버거집에서 늦게까지 일을 했구나.’ 생각하며 안쓰럽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동료교사와 수업방법을 고민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이 모임은 시간이 지나면서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모임으로 발전했다. 읽은 책이 쌓여가면서 아이들과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학교를 옮긴 후에는 아이들과 독서모임을 꾸렸다. 방학이 시작될 즈음이면 해마다 연수를 신청했다. 연수에서 만났던 분들을 보고 싶어서였다. 그런 인연이 쌓여 이번에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빗속을 달리고 있었다.

『책만 보는 바보』는 조선 후기 실학자였던 이덕무와 그의 벗에 관한 책이다. 지은이는 이덕무가 쓴 <간서치전>(책만 보는 바보 이야기)를 본 후 이 책을 쓰게 되었다. 하루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온종일 햇살을 따라 상을 옮겨 가며 책을 보는 이덕무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백탑 근처에서 그와 삶을 나누었던 벗과 스승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백동수, 이서구, 홍대용, 박지원 등 학창시절에 국어시간과 국사시간을 통해 이름을 접했던 당대 실학자들이 지은이의 손끝에서 숨을 쉬기 시작한다. 이런 느낌을 가졌던 때가 있었다. 예전 고미숙 선생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그린비)을 읽으면서였다. 그 책을 읽기 전에는 ‘박지원’하면 홀로 비장한 모습으로 꼿꼿하게 앉아있는 선비가 떠올랐다. 「허생전」의 허생이 홀로 길을 떠나는 모습과 박지원의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미숙 선생의 안내로 박지원을 만난 후에는 그가 홀로 있는 모습은 떠오르지 않았다. 나에게 그는 언제나 벗들과 함께 웃으며 이야기 나누는 선비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이덕무가 남긴 글을 우리말로 옮긴 글이라 착각했다. 벗을 소개하는 글마다 이덕무가 그들에게 가졌던 따스한 마음과 벗들과 함께 고민하고 배우는 삶이 생생하게 담겨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처럼 서자로 태어나 가지게 된 분노를 잘 갈무리하여 세상을 바로 세우는데 쏟아낼 줄 알았던 박제가. 그를 아끼는 이덕무의 마음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방대한 옛 문헌을 뒤지며 우리 역사를 정성껏 담아내던 유득공, 스승을 통해 진정한 무예의 길이란 결국 진정한 평화로 가는 길임을 깨닫는 백동수, 더 큰 세상과 만나게 해준 스승인 박지원과 홍대용 등 그들은 서로가 스승이었고 벗이었다.

특히 마음에 남는 대목은 홍대용과의 만남을 통해 이덕무가 이 세상의 중심은 자신임을 깨닫는 대목이었다. 서자로 태어나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며 살아가던 이덕무가 홍대용에게 ‘지구’라는 말을 들은 후 깜짝 놀란다. 왜 둥글다고 표현할까를 궁금하게 여기는 이덕무에게 홍대용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지구가 둥글다면 중심이란 없는 것 아니냐.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었던 그의 생각이 깨진다. 그렇다면 서자인 자신도 세상의 중심이 아닌가 하는 깨달음에 이른다.

어쩌면 나의 처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신분의 굴레가 있는 현실 속에서 나와 같은 서자들은 변두리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일생을 놓고 보면 누가 중심이고 누가 변두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는 스스로가 중심인 것이다. 나는 자꾸만 실 뭉치를 굴려 보았다. 지구가 둥글다는 담헌 선생의 말씀은,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의 모습에 대해서만 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변두리 자그마한 나라에 산다 하여 큰 나라의 눈치만 보지 말고, 피어날 길 없는 신세라 하여 주눅 들지 말고 당당히 살아가라는 말을 하고 싶으셨던 것이리라. 실 뭉치를 이리저리 돌리며, 그날 밤 나는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다른 벗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 본문 중에서

평생 서자라는 신분에 울분을 느꼈던 이덕무, 그에게 책은 어떤 의미였을까 생각해본다. 그에게 책은 스승과 만나는 길이었을 것이고, 벗을 만나는 길이었을 것이다. 그 길 위에서 그는 자신을 바로 세울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에게 책은 어떤 의미일까? 처음에는 혼자 읽었다. 책 읽기 자체를 즐겼다기보다는 뭔가를 알기 위해서 읽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동료 교사들과 아이들이 함께 했다. 그저 그들과 만나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었을 뿐인데 어느 덧 눈을 들어보니 나는 그들과 함께 꿈을 꾸고 있었다. 제자, 동료교사가 아니라 함께 길을 걷는 벗이 되어 함께 꿈꾸고 있었다.

새벽 1시가 되어서야 연수 장소에 도착했다. 광릉숲 근처에 있는 집이었다. 나는 그곳 툇마루에서 밤늦게까지 빗소리를 들으며 벗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날에는 아침 식사를 하며 자신이 현장에서 실천하고 있는 독서교육 사례를 소개하고 그 사례에 대해 도움말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과 학급문고를 운영하며 만나는 이야기, 동료교사와 독서모임하는 이야기, 전문계 고등학교 아이들에게 책과 인연 맺게 해주려고 노력하는 이야기 등이 이어졌다.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에는 책이 있었고, 아이들이 있었고, 그리고 벗이 있었다. 툇마루에서 바라본 산에서 안개가 피어올랐다. 마치 겸재 정선이 그의 벗을 위해 그렸던 <인왕제색도> 속에서 보았던 안개처럼…….

연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아쉬움은 없었다. 단지 설렘만 있었다. 우리는 긴 호흡으로 길을 걷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함께 꿈꾸고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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