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맞이의 책꽂이
<오합지졸 배구단 사자어금니>강민경 글 / 파란자전거
얼마 전 발표된『미리 가본 2018년 유엔 미래보고서』를 읽다가, 2018년 대한민국 인기 직업 가운데 ‘다문화 전문가’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다문화 가족이 무려 100만 명, 10년 후엔 400만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란다. ‘그래, 그쯤 되면 다문화 전문가가 필요하기도 할 거야.’ 싶으면서도, 한편 걱정스런 마음이 들었다. 우린 뭐든 자신 없는 일엔 그럴듯한 ‘전문가’를 내세우지 않던가? 이번에도 혹여 ‘전문가’ 뒤에 숨어 묻어가고픈 얄팍한 심리가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치자. 그들에겐 과연 어떤 교육 프로그램이 제공될까? 그들은 어떤 방법으로 다문화 가족과 우리들의 벌어진 틈을 메워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머릿속엔 안개만 가득했다.
코끝이 찡해지는 성장드라마
강민경의『오합지졸 배구단 사자어금니』는 우리나라에 와서 살고 있는 여성결혼 이민자, 다문화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크게 두 축으로 전개되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준수가 베트남에서 온 레티를 새엄마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과정이 씨실이고, 한국생활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외로워하던 어성결혼 이민자들이 배구단을 만들어 자신들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날실이다.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면서 이야기는 점차 풍성해진다.
베트남에서 온 레티와 메이언, 일본에서 온 마사코, 몽골에서 온 짱이, 필리핀에서 온 마라테스, 카자흐스탄에서 온 보랏,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결혼 이민자들은 대한민국이라는 사막에 불시착한 외계인들이다. 십 년 넘게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한국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투명인간들이다. “친구 사귈 곳도 없고, 속 얘기 할 곳도 없고, 답답할 때 바람 쐴 곳도 없는(145쪽)” 고립된 섬들이다.
“소금 뿌린 배추처럼 숨죽여 있던(83쪽)” 이들이 모여 스파이크를 날린다. 설움과 외로움을 털어내고, 서로를 보듬어 안고 눈물을 닦아주며 또 하나의 가족이 된다. 그들을 괄시했던 이 땅에서 “아주 아주 힘든 일에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114쪽)”인 ‘사자어금니’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 뜨거운 땀을 흘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이야기는 새로운 가족드라마요, 성장드라마라고도 할 수 있다.
피날레인 마지막 시합 장면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우리 며느리 잘혀라!” “사자어금니 이겨라!” 엉덩이를 들썩들썩하며 사자어금니 팀을 응원하는 동네 할머니들의 모습을 통해, 응원소리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코가 찡해진다는 진수의 진술(200쪽)을 통해 배구시합은 ‘그들만의 잔치’가 아닌 ‘우리들의 잔치’가 되기 때문이다.
타자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 불온하고 폭력적인 / 융숭하고 곡진한
이 동화의 장점은 여성결혼 이민자, 다문화 가족 아동에 대한 시선을 여과 없이 재현해 냄으로써, 우리의 옹졸함을 여실히 드러낸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무자비하기까지 하다. 마사코의 아들인 유성이에게 서슴없이 “이 쪽발이 놈아, 너의 나라로 가!(119쪽)”라고 소리치는가 하면, 베트남 여자를 엄마로 둔 준수를 ‘튀기’라고 부르며 밟아버리겠다고 선언한다. 아이들에게 유성이나 준수는 공격해야 할, 공격을 당해야 마땅할 하나의 대상일 뿐이다. 분노의 근저가 무엇인지 분명하지도 않고, 분명해야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싫을 뿐. 심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 뿐이다.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이러한 감정들이야말로 우리의 몰인정함을 극명하게 드러내 주는 부분이다.
마라테스의 남편과 시어머니의 시선 또한 불온하고 폭력적이다. 두 사람은 물신주의에 물든 현대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에게 마라테스는 며느리가 아니라, 아이를 낳아 ‘돈값’을 해야 하는 하나의 상품일 뿐이다. 그러기에 남편은 상품 구실을 못하는 마라테스를 두드려 패고, 시어머니는 한 푼이라도 벌라고 비닐하우스로 내몬다.
타자를 억압하는 건 이들 뿐이 아니다. 사자어금니 배구단과 정읍 어머니 배구단의 시합을 구경하던 준수네 학교 아이들은 “내 편”을 확실하게 가름으로써, 여성결혼 이민자들을 돌려세운다. ““한국 이겨라!”라는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83쪽)”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는 준수의 입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 몸에 각인되어 있는,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이데올로기들이 타자에게 얼마나 폭력적으로 작용하는지, 당신 한번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런가하면 융숭하고 곡진한 시선으로 타자들을 감싸 안는 매력적인 인물도 있다. 이 동화에서 단연 돋보이는 캐릭터인 준수 할매는 아들보다 열여덟 살이나 어린 베트남 여자를 단번에 며느리로 받아들인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개구리처럼 눈만 커다란 레티를 예쁘다며 쓰다듬고 또 쓰다듬고(16쪽)”, 해산한 며느리를 위해 돼지고기를 넣은 미역국을 끓여(21쪽) 병원까지 배달(22쪽)한다. 새 아내와 아들 사이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준수 아버지 대신, 적극적으로 며느리와 손자 사이를 이어주려고 노력도 한다. 엄마는 누가 엄마냐며 쏘아붙이는 준수에게 “그러지 말어라잉, 그려도 레티는 네 생각 끔찍허게 혀.(21쪽)”라며 레티의 마음까지 전해주면서.
그렇다고 할매의 사랑이 가족 안에만 갇혀있는 것은 아니다. 짱이 신랑 웅석이 아저씨가 죽었을 땐 “흉한 일에는 그저 한 사람이라도 더 보듬어 주는 게 사람 사는 정(97쪽)”이라며 준수를 데리고 장례식에 가고, 메이언 아줌마가 위암으로 입원하자 어린 남매를 데리고 와 돌봐준다. “내 맘이 이렇게 짠헌디, 그네들 마음이야 요죽허겄냐?(103~104쪽)”며 남편을 잃은 짱이 누나를 위로하기 위한 모임에 고들빼기와 갓김치를 싸 보내기도 한다.
할매의 진가는 마라테스의 못난 남편이 나오는 대목에서 빛을 발한다. 체육관까지 찾아와 여편네를 내놓으라는 사내에게, 할매는 대걸레를 휘두르며 돌진한다. 황천길 건너온 저승사자 흉내까지 내면서.
나와 다르다고 ‘따’ 시키지 않기, 남의 마음 헤아리기, 힘든 사람 보듬어 안기, 거기에다 못된 사람 과감히 응징하기까지. 할매야말로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의 아름다움을 한껏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세태를 반영하듯 다문화를 다룬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억압 받는 이주 노동자들의 이야기, 이주 여성들의 고난한 삶을 다룬 이야기, 다문화 가족 아동들의 따돌림 현상을 다룬 이야기……. 이는 우리 사회가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것이리라.
다문화를 다룬 많은 이야기들이 차이를 차별로 만들지 말자고 강조한다. 우리와 다르다고 억압하고, 배제했던 타자들을 껴안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필요한 것은 타자들이 가지고 있는, 그들만의 특이성을 무화시키지 않고 융합하는 길이다. 그들을 ‘한국 사회, 한국인’의 룰에 일방적으로 포섭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폭력일 테니 말이다.
바람직한 다문화 사회를 위해서는 어쩌면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다문화에 대한 시선부터 교정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나랑 같이 살래?”가 아니라 “우리 같이 살래?”라고 말하기. 그러려면 과감하게 ‘나’라는 기득권부터 버려야 할 게다.
이 책을 여기서 보니까 반갑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