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책꽂이

심청이가 88만원 세대로 살아가기

- 기픈옹달(수유너머 R)


풍경지기의 책이야기
심청이가 88만원 세대로 살아가기
– <조선 최고의 예술, 판소리> 정출헌, 아이세움

1997년에 첫 발령을 받은 학교는 실업계 고등학교(지금은 전문계 고등학교라고 부른다.)였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많은 이곳에는 구제금융 위기 이후 타격이 무척 컸다. 경제적 타격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2000년에 2학년 여학생반 담임을 맡았다. 한 아이가 자퇴를 하겠다고 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돈을 못 버시는 상황이고 동생들이 많다고 했다. 형편이 어려워지니까 부모님이 맏이인 자신에게 학교 그만두고 일해서 집안을 도우라고 하셨단다. 그 이야기를 하는 아이는 소위 ‘쿨’했다. 부모님을 보면 한심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 아이에게 자퇴를 만류하는 이야기를 했다. 힘들어도 조금만 더 견디자. 3학년 1학기만 지나면 실습을 나갈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월급을 받아 집안을 도울 수 있다. 지금 자퇴를 하고 구하는 직장과 내년 실습이 취업으로 연결되는 직장은 근무 조건이 다를 것이다. 지금 너는 가족을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하겠지만 가족을 진정으로 위하는 것은 그게 아니다. 네가 지금 스스로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하고 학교를 떠난다면 ‘가족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다는 생각’이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하는 원망감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너에게 도움을 받는 가족들에게도 ‘갚을 수 없는 마음의 빚’을 남긴다. 그것은 진정으로 서로를 위하는 길이 아니다. 조금만 더 견뎌보자.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애써보겠다. 그러나 결국 그 아이는 학교를 떠났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왜 빠졌을까?”

“사람은 어차피 죽잖아요. 그러니까 아버지 눈도 뜨게 할 수 있어서 일찍 죽은 거지요.”

중학생들과 책을 읽고 토론하는 자리였다. 주위 아이들의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 이야기를 한 친구의 표정은 물에 스스로 뛰어들고 싶어하는 아이처럼 우울했다. 그럼, 어차피 죽을 것 미리 자살한 거구나 하고 다시 물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웃으며 들었다. 그저 이 말을 아이의 엄마가 들으시면 마음 아프겠다고 여길 뿐이었다. 시간이 지난 후 그 아이의 말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아이의 말이 깊이 있게 다가왔다. 심청이는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이렇게 살기보다는 죽음을 택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고 자신은 영원히 휴식을 취하고 싶지 않았을까? 죽음보다 가혹한 현실 속에서 심청이는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을까?

지금도 우리 현실 속에는 심청이들이 넘쳐난다. 그 심청이들은 오늘도 가족을 위해 학교를 그만둘 것이고, 최저임금을 보장해 주지 않는 직장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을 것이고, 다음 학기 등록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만날 수 있는 심청이를 우리는 오랫동안 심장을 꺼낸 후 박제시켜 왔다. 하늘이 내린 효녀로 떠받들며 가혹한 현실 속에서 갈등하는 심청을 외면하고 있었다. 우리 기억 속 심청에게는 어린 시절, 아비를 봉양하기 위해 멸시에 찬 눈길을 받으며 밥을 구걸하던 비참함도, “더 이상 공밥 먹지 않겠다.”며 삯바느질로 힘들게 생계를 꾸려가던 열두살 소녀의 아픔도 담겨있지 않았다.

심청전 초기 판본에는 당시 절대적 궁핍에 내던져진 심봉사와 심청 부녀의 현실이 잘 그려졌다고 한다. 궁핍한 현실 속에 있는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오랜 시간 다른 가족을 따뜻하게 챙겨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주변의 멸시와 냉대 속에서 이들이 살아낸 시간이 후대로 갈수록 점점 가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 어린이들이나 읽는, 옛날 동화 정도로 인식하는 우리에게 이르면 예쁜 이야기만 들려주려는 어른들의 욕심이 그런 현실을 따뜻한 이웃이라는 분홍빛으로 덧칠해 놓았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심청이, 함께 공감하며 눈물 흘릴 수 있는 심청이를 빼앗겨버린 것이다. 그와 더불어 그 당시 현실까지도 지워져 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장 승상 댁 부인의 따뜻한 마음을 거절하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 심청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온갖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눈먼 아버지를 봉양하던 심청은 멸시에 좌절하지 않았다. 값싼 동정에도 길들여지지 않았다. 자기 운명은 자기 스스로 개척해 나갈 수밖에 없다는 삶의 이치를 깨닫고 이를 실천한다. 그런 그녀이기에 명분없는 도움은 받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장 승상 댁 부인의 도움을 거절한다. 인당수에서 몸을 던질 때의 심청, 뱃머리에서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 두려움을 앞을 보지 못해 젖동냥으로 자신을 키워준 아비에 대한 인간적 보답으로 이겨내고 차가운 바다 속으로 뛰어든다.

사람들은 이런 심청이를 죽게 놓아둘 수 없었다. 심청과 같이 가혹한 현실을 살아가던 당시 민중들은 그들의 간절한 소망과 믿음으로 그녀를 살려놓는다. 황후가 된 심청이가 아버지와 해후하고 심봉사 뿐만 아니라 모든 맹인들이 눈을 뜨는 결말에는 광명을 꿈꾸던 민중의 염원이 담겨있다.

정출헌 선생의 <조선 최고의 예술, 판소리>(아이세움)을 읽으며 가슴이 뛰고 있는 심청이를 만났다. 그밖에도 정출헌 선생이 이끄는 길 위에서 많은 이들을 만났다.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변학도와 싸우는 과정에서 스스로 성장하고, 주위 사람들도 성장시키는 춘향이를 만났다. 그리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떤 험한 일도 가리지 않는, 그러나 절대 구걸만은 하지 않았던 빈곤가정의 가장인 흥부를 만났다. 그리고 반복의 구조를 통해 숱한 수탈을 당하며 혹독한 현실을 견뎌야 했던 조선 후기 민중의 삶을 보여주는 토끼도 만났다. 또, 바쁜 농사철에 전쟁에 끌려나가 개죽음을 당하던 병졸들도 만났다. 그 속에는 어려운 현실 상황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던 ‘인간’이 있었다. 그리고 웃음으로 그 고난을 헤쳐나가는 건강한 ‘삶’이 있었다.

우리 민중의 삶이 그대로 녹아있는, 그래서 당시 민중들을 울리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하던 판소리가 19세기 무렵 양반가의 사랑으로 들어가면서부터 쇠퇴하기 시작했다. 현장에서 민중과 하나 되던 예술이 더 이상 그들의 삶을 담아내지 못하고 지배계급의 사랑에서 그들의 취향에 맞게 변색되고, 대상화되면서 판소리의 생명력은 잦아들었다.

19세기 후반 판소리 광대들은 더 이상 새로운 판소리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판소리를 판소리답게 만든 시대정신을 상실한 것이고, 판소리를 계속 발전시켜 나갈 생명력을 소진시켜 버린 것이다.

우리는 정출헌 선생이 들려주는 판소리 이야기를 들으며 박제화된 그들의 삶을 복원해 낼 수 있다. 그들을 힘들게 내몰았던 현실에 눈을 뜨는 순간 그 현실이 오늘날에도 되풀이되고 있음을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그 현실 속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갈등하던 인물들의 숨결을 느끼는 순간 내 자신이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여기에 서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대정신을 상실한 판소리를 오늘에 되살려 내는 작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구제금융 위기 이후 무너진 가정 경제 속에서 숨가빠하며 학교를 떠났던 그 아이는 지금 어느 인당수 뱃전에 몸을 내맡기고 있을까? 아무리 힘들어도 그 속에서 ‘가족을 위한 희생’이 아니라 ‘내 삶의 주인’으로 그 자리에 서 있길, 그리고 모든 사람의 바람 속에서 꽃처럼 피어나는 인생이 되어가길 간절히 빌어본다.

– 풍경지기 박혜숙

응답 2개

  1. 방자말하길

    직접 판소리를 들으러가도 좋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판소리판에 몇 번 가 본 적이 있는데
    요즘에는 ‘또랑광대’,’스타크래프트’ 등 현대적으로 각색하여 판소리를 하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구요. 인사동에서 토요일에 한달에 한 번인가 공연했던 것 같은데 언제 구경가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춘향이,흥부,심청이와 내 삶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2. 쿠카라차말하길

    심청이는 왜 인당수에 빠졌을까? “어짜피 죽을 거 돈도 받고 아버지 눈도 고치고 좋잖아요”…가슴이 먹먹해지는 대답입니다. 빈곤의 무거움, 돈의 절박함 속에서 생명은 한없이 가벼워지는 현실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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