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책꽂이

[10호] 나이듦의 행복

- 기픈옹달(수유너머 R)

나이듦의 행복

봄 산에 피는 꽃이 그리도 고울 줄이야
나이가 들기 전엔 정말로 몰랐네.
봄 산에 지는 꽃이 그리도 고울 줄이야
나이가 들기 전엔 정말로 생각을 못했네.

만약에 누군가가 내게 다시 세월을 돌려 준다 하더라도
웃으면서 조용하게 싫다고 말을 할테야.
다시 또 알 수 없는 안개빛과 같은 젊음이라면
생각만 해도 힘이 드니까.
나이든 지금이 더 좋아
그것이 인생이란 비밀
그것이 인생이 준 고마운 선물.

며칠 전 버스를 타고 가는데, 라디오에서 낯익은 가수의 노래 가사가 가슴 깊이 여운을 남긴다. 어린 시절에는 내 나이 서른 이후를 상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는 서른도 까마득한, 마흔 줄에 들어선 나이라는 게 실감이 안 날 때가 많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멋있는 연예인을 보고 좋아하다가, 어느 순간 나보다 한참 어린 나이라는 걸 알았을 때 느끼는 소스라침도 요즘 자주 나타나는 증상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이드는 것이 그다지 나쁘지만도 않다. 요즘은 길을 가다가 멈춰서 꽃눈을 달고 있는 나무들을 한참 쳐다볼 때가 많다. 헐벗은 겨울 나무의 의연함과 외로움, 제 몸을 다 지탱하기 어렵게 보일 정도로 풍성하게 드리우고 있는 여름 나무의 화려함, 봄꽃보다 화려한 색색의 향연을 펼치면서 자신을 갈무리하던 가을 나무의 성숙함 등등,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무를 오래도록 바라보면서 마음이 커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것은 아무리 봐도 나이 들어가면서 얻는 또다른 행복인 것 같다.

나이 들면서 좋은 게 그뿐만이 아니다.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때도, ‘아, 정말 나이를 먹으니까 좋다’는 생각을 한다. 대학에 갓 들어갔을 때 강의를 맡으셨던 한 노교수님께서 우리가 너무나 무식(?)하다며 매주 고문진보에 나오는 글을 한 편씩 외워서 원고지에 써서 내게 하신 적이 있다. 그 때 배웠던 글이 ‘어부사’, ‘춘야연도리원서’, ‘출사표’, ‘사설’ 등이었다. 그 때는 그 난해한 한자를 억지로 외우는 데 급급해 직역하는 것조차 힘들었고, 게다가 글 속에 담긴 깊은 의미를 이해하기에는 내가 너무나 어렸었다. ‘맹자’도 배웠었다. 그 때 우리 지도교수님께서, 희망하는 사람에 한하여 한문학을 전공하는 어느 박사과정 선생님에게 맹자를 배우라고 하셨다. 그래서 몇몇 친구들과 함께 매주 토요일마다 두세 시간씩 맹자를 공부했다. 그 때 우리에게 맹자를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은 무엇이든 시작하면 10년은 해야 한다고 당부하시면서 여기저기 들쑤시며 다니지 말고, 하나만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고 하셨더랬다. 매 시간마다 이전 시간에 배운 맹자 글귀를 다 외우게 하셨고, 다 못 외면 회초리를 맞는 벌을 감수해야 했다. 딱 한 번 매를 맞고, 그 다음부터는 열심히 외어 갔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시작한 맹자를 다 끝내는데 4년이 걸렸다.

다 이십 년 가까이 지난 일들이다. 지금은 그 때 배웠던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도 내가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책은 바로 깨알같이 옆에 메모를 해둔 맹자집주이다. 그리고 가장 소식이 궁금하고 오랫동안 보고 싶은 선생님도 바로 그 분이다. 왜 일까? 오랜 시간을 공들여 공부한 것에 대한 애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린 나이에도 왠지 그게 진짜 공부라는 생각을 했던 탓일 게다. 그리고 지금은 그 때 배웠던 글을 다시 하나하나 짚어가며 큰 소리로 읽어 보고 싶다. 내 마음과 머리에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올 것 같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을 한참 하다가 다시 고전을 읽을 기회를 만났다. 수유 너머를 통해서였다. 한번은 정민 선생님과 함께 조선시대 실학자의 글을 원문 그대로 함께 읽는 강좌였고, 또 한 번은 3년 전 우응순 선생님과 고문진보를 읽는 강좌였다. 정민 선생님과 공부할 때는 강좌를 하나도 놓치기 싫어 어린 아이를 업고 오거나, 학교에서 수업 시간표를 옮겨 조퇴까지 해 가며 들었다. 우응순 선생님과 고문진보를 읽을 때는 ‘귀거래사’에서 도연명이 떠나기로 결심하는 비장한 부분을 읽으며 나도 몰래 고개를 끄덕끄덕하기도 했고, ‘포사자설’을 읽으며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삶의 잔혹함에 가슴 아파하기도 했으며, ‘종수곽탁타전’을 읽으며 아이를 가르치는 일의 진정성이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기도 했다. 오래된 글이지만 삶이 느껴지고, 그들의 고민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고전이 전해 주는 향기와 깨달음은 가볍게 쓰여진 실용서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 학생들에게 읽히고 싶어, 서점을 여러 차례 기웃거려 보았지만, 넘쳐나는 책의 홍수 속에서 고전을 쉽게 풀어놓은 책을 찾기가 너무나 힘들다. 겨우 몇 권 찾으면 품절이거나, 청소년 서가(대부분 대형 서점에서 가장 인기없는 코너이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책보다는 참고서나 문제집을 더 좋아하니까) 구석에 방치된 채 꽂혀 있기 일쑤이다. 지금 우리 학생들이 접하는 고전문학은 오로지 문제를 풀기 위한 지문의 형태로 나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작년부터 틈날 때마다 돌베개에서 나온 <우리고전 100선> 시리즈를 읽곤 한다. 이규보의 <욕심을 잊으면 새들의 친구가 되네>를 읽으며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다가오는, 한 인간의 고뇌와 성찰을 되짚어 보노라면, ‘고전은 이렇게 읽어야 하는 건데’ 하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밀려온다.

오늘도 나는 슬그머니 대중지성 세미나 커리큘럼을 들여다보며 군침을 삼킨다. 하지만 아이를 키워야 하는 중차대한 의무 때문에 아쉬운 마음에 컴퓨터 화면을 닫는다. 언젠가는 공부하리라는 다짐을 하면서.

– 김대경(고등학교 교사)

응답 2개

  1. 김대경말하길

    양희은이 부르는 노랜데요, 제목은 잘 기억이 안 나요^^

  2. 밍키말하길

    물흐르듯이 편안한 글 잘 읽었습니다.
    위에 인용하신 가사나 너무 좋은데, 노래제목과 가수이름을 알려주실 수 있는지요?
    듣고 싶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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