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책꽂이

[11호] 나, 나를 만나다

- 기픈옹달(수유너머 R)


풍경지기의 책이야기
나, 나를 만나다
– <사람 풍경> 김형경, 예담

예전 근무했던 학교에서 3년 동안 함께 생활했던 아이였다. 이 아이는 1학년 때 몸이 무척 아팠다. 아이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부모님과 의사 선생님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가 자는 줄 알고 나누는 대화는 아이의 생존 가능성 여부에 관한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다행히 건강을 되찾았다.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 된다면 삶이 끝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퇴원을 했다.

이 아이는 조용한 아이였다. 친구들과 잘 어울렸지만 혼자 생각에 잠겨 있는 때가 많았다. 책을 좋아하는 이 아이는 내 수업 시간을 좋아했다. 간혹 교무실 내 자리에 질문을 하러 올 때면 내 책상 위에 놓인 책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자신도 그 책을 구입해서 읽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을 나에게 들려주곤 했다. 그러나 가족 이야기는 잘 하지 않았다. 3학년이 되었다. 고3 생활이 힘들었는지 수업시간에 종종 조는 모습이 보였다. 힘이 없어 보였다. 몸이 약한 아이가 견디기에는 힘든 고3 생활이구나 생각했다.

아이는 수도권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을 했다. 방학이면 울산에 내려왔고 그때마다 나를 찾아와 학교 생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된 후 아이가 나를 찾아왔다. 함께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가족 이야기가 나왔다. 아이가 힘없이 웃으며 부모님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될 즈음 이혼을 하셨다고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자기가 몸이 많이 아팠기 때문에 두 분이 힘드셨나 보다며 자기 때문에 두 분이 이혼을 하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그 시절 이 아이는 힘없이 앉아있었구나. 누군가에게 말을 하지도 못하고 혼자 삭이며 아파했을 시간이 떠올라 마음 아팠다.

아이의 입장에서 부모의 이혼은 자신을 양육하고 보호해주던 세계가 와해되는 경험이다. 그 순간 갖게 되는 생존에 대한 불안감은 거의 평생을 지배하는 흔적으로 남는다. 또한 아이는 부모 중 어느 한쪽, 혹은 양쪽 모두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며, 그 생각은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자기 비하감으로 자리잡는다. 치명적으로 사랑을 잃은 경험 때문에 사랑을 믿지 못하고, 사랑 앞에서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줄 모르기 때문에 부모의 이혼과 가정의 해체가 자기 탓이라는 죄의식도 안게 된다. 부모 중 어느 한쪽을 잃은 박탈감은 성장을 저해하는 질투나 시기심으로 변형된다. 무엇보다도 그 트라우마의 시기에 고착된 아이가 내면에 자리잡고 있어 성인으로서의 삶을 간섭하고 불편하게 한다. (<사람 풍경>중에서)

몇 해 전 김형경의 <사람 풍경>을 읽었다. 교사 독서 모임에서 상담 공부를 하시는 선생님이 추천을 하셨다. 처음에 나는 이 책에 대해 호감을 갖지 못했다. 상담 공부한 사람들이 간혹 자신이 우월한 존재인양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분석하려는 모습이 싫었다. 저런 얘기를 하는 걸 보니까 이러이러한 사람이라고 규정내리고 공감하는 척하며 조언하는 모습이 싫었다. 그래서 책이 손에 쉽게 잡히지 않았다. 모임 날짜에 임박해서야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저자는 자신이 유럽 여행을 하면서 떠올린 자기 이야기들을 ‘분노’, ‘투사’, ‘회피’, ‘공감’, ‘용기’ 등 심리학 용어들로 풀어내고 있었다.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저자는 분명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내 머릿속에는 내가 보였다. 그리고 엄마가 보였다. 나의 불안은 이런 모습이었구나, 내가 뭔가 일을 추진해 나갈 수 있는 힘은 엄마의 인정과 지지 때문이었구나. 그러면서 바쁜 엄마를 둔 내 아이가 가질 감정들을 떠올려 보게 되었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 안타까운 마음이 밀려왔지만 한편으로는 이러이러한 부분에 정성을 쏟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저 아이는 왜 저래?’가 점점 ‘저 아이 내면의 어떤 상처가 저런 반응으로 나오게 되는 걸까?’로 바뀌었다. 그런 마음으로 아이들 바라보다가 어떤 계기가 생겨 이야기를 나누면 아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정성껏 들려주었다.

이 책을 읽은 후에 마음이 힘들어 보이는 아이가 있으면 이 책을 권했다. 마음에 상처가 있는 아이일수록 이 책을 잘 읽어냈다. 비록 크지는 않지만 마음에 작은 위안으로 남는 것 같았다. 이 책 앞 장에 내 책을 빌려간 사람이 남기는 말을 쓰는 공간이 있다. 그곳에 최근 한 아이는 ‘지워질 수 없는 상처를 조금은 덜 아프게 해준 책’이라고 썼다.

작년 보충수업 시간이었다. 연말이 다 되어갈 때쯤이었다. 이 아이들이 입학하는 모습부터 이제 3학년 진급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모습까지 바라보았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아이들의 몸이 자라는 것이고, 아이들의 생각이 자라는 것이고, 아이들과 교사 사이의 믿음이 자라는 것이다. 이 학교를 떠나기 전에 아이들에게 선물이 되는 글을 함께 읽고 싶었다. 그리고 2년이라는 시간이 만들어준 ‘믿음’ 속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를 수업 시간에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앞서 인용한 부분이 들어있는, 이 책의 <자기 존중-행복할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느낌>편을 수업자료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읽게 했다. 지금까지 주어진 글을 읽고 필자의 생각을 요약하게 하던 수업과 달리 접근을 했다. 오늘은 이 글을 읽고 떠오르는 자기 이야기를 발표하자고 제안했다. 아이들이 조용히 글을 읽었다. 아이들이 글을 거의 다 읽었을 무렵 교실 중앙을 기준으로 서로 마주보는 좌석 배치로 바꾸었다. 수업 시간에 뒷모습만 보던 아이들이 친구들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에게 발표를 시켰다.

평소 명랑하던 한 아이였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내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아이는 입을 열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다. 항상 부모님의 이혼은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누군가가 불편해하면 항상 그 이유가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죄의식은 무슨 일을 하더라도 발목을 잡곤 했다. 이야기를 하던 아이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울먹이고 있었다. 그 아이가 아파했던 시간이 읽혔다. 이 아이처럼 부모님이 이혼하신 후 힘들었던 이야기를 많은 친구들 앞에서 들려주던 아이들이 다른 반에도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면 생각이 깊어진다. 어렸을 때는 당위성만 내세워도 받아들이지만 고등학생 정도가 되면 스스로 납득이 되어야 마음을 열고 서서히 받아들인다. 이 책이 그 역할을 해주었다. 필자가 여행을 하면서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본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이들은 자신을 이해하게 되고 받아들이게 된다.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책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아이와 바로 대면해서 하는 상담이 아니라 글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공감을 하면 아이들은 마음의 빗장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교사라면 아이들과 이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고등학교 1학년 시기에 죽음의 위기에 처했던 그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부모님이 헤어지신 것은 두 분이 각자 가지고 계신 삶의 무게가 무거워서일 거다. 그 무게가 너무 무거워, 두 분이 헤어지시면 그 짐이 조금은 가벼워지기 때문에 선택하신 일일 것이다.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다. 나도 살면서 누구 때문이 아니라 나 스스로 힘들어 뭔가를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다. 단지 그것 때문일 때가 있다. 그 이야기를 들려주며 난 빌었다. 이 아이가 자신을 옥죄던 죄의식에서 벗어나 훨훨 날기를…….

– 풍경지기 박혜숙

응답 2개

  1. 아기새말하길

    책을 통해 도움을 받는 아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요즘 아이들 정말 책을 읽지 않으려 해서 걱정입니다.
    좋은 글 좋은 정보, 기분좋네요.

  2. 이지연말하길

    잘 읽었습니다.^^
    안그래도 요즘 힘들어 하는 친구를 보며, 어떤 말을 해야할지 알 수 없었는데
    책한권 선물해보려구요. 물론 저도 꼭 읽어봐야겠네요. 좋은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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