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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불온해! 너무 불온해!

- 편집자

아, 불온해! 너무 불온해!

< 가난뱅이 역습>은 한마디로 ‘가난뱅이 계급의 서바이벌 기술 실용서’이다. 고로 이 책을 ‘읽을거리’로 취급하는 당신 혹은 ‘이 책을 읽고 이해하는 척하는 당신’! 당신에게는 이 기술들이 필요 없다. ‘바가지나 씌우는 부자 계급’은 가난뱅이의 적임이 분명하다. 당신이 이 책을 읽고도 집에 ‘남아도는 물건’을 창고에 쌓아둔다든가, 여러 명이 탈 수 있는 차를 혼자 타고 다닌다면 말이다. 가난뱅이는 돈이 없는 결과로서 주어지는 이름표가 아니다. 적어도 이 책 안에선 돈을 쓰지 않고 살아갈 방법을 궁리하는 자, 남아도는 자원의 순환을 강하게 주장하는 자가 가난뱅이다. 그러므로 가난뱅이 제군들, 절대 주눅 들지 마시고 마쓰모토의 얘기를 한번 들어보시게나.

의식주 + 미디어?

개인이 최소한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는 단연 의식주이다. 값싼 아파트 구하는 방법, 자동차에서 사는 방법, ‘먹고 튀기 작전’, 파티 음식 먹기 등등에 이어 심지어는 다다미 나무까지 뜯어 삶아 먹어 보는 실험을 하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배꼽 잡는 월세 ‘지불 방법 작전’을 소개한다. ‘헐하고 더러운 방인 데다 집주인이 욕심 많고 성정이 나쁜 놈이라 우리 가난뱅이의 돈을 빨아 먹으려는 놈인 경우’엔 한 번 써먹어 보시길.

체납 작전 1) 조금씩 방세를 낸다.

체납 작전 2) 방세를 냈다가 안 냈다가 도무지 종잡을 수 없게 만들어 적을 혼란시킨다.

몰아서 주기 작전) 방세가 밀린 주제에 갑자기 더블버튼 달린 양복을 쫙 빼입고 여송연을 꼬나물고 적을 방문해서는 “많이 힘드실 텐데 이번 달에는 밀린 방세를 드려야지요”하는 식으로 마치 특별히 봐주듯이 거드름을 피우며 방세를 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밀려 있는 상태로 유지한다.

11개월 작전) 매달 조금씩 지불 날짜를 늦춰서 결국 1년에 11개월만 방세를 낸다.

무조건 항복 작전)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작스레 “이보게,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방세를 덜 냈더구만!”하고 따지고 들면 순순히 “아, 그랬었나요?”하고 모른 척 제대로 지불해주고 나서 처음부터 다시 작전을 개시! (24)

적은 철저하게 공격하지만, 그렇다고 언제나 뻔뻔하게 남을 속이거나 남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사는 것은 옳지 않다. 이 책의 기본 원칙은 ‘자기 힘으로 멋대로 살아가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난뱅이가 혼자서 자기 힘으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가난뱅이에게는 사람과의 ‘연대’가 필수다. 이 때문에 마쓰모토는 가난뱅이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의식주를 마련하는 기술과 나란히 미디어를 마련하는 법을 함께 소개한다. 처음에는 웬 미디어? 했지만, 생각해보면 미디어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통로이자 사람들 간의 정보가 오갈 수 있는 통로이다. 알다시피 가난뱅이에게 먼저 손 내미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가난뱅이인 우리가 먼저 교신을 시도해보자. ‘이런 활동을 하다 보면 예기치 않은 곳에서 뜻 맞는 사람과 딱 마주치기도 한’단다.

‘아마추어 반란’

그럼 이제 뜻 맞는 친구,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방법을 연구해보자. 무엇보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자급자족하며 사는 것이 가장 좋다. 나 혼자도 먹고 살기 힘든데, 어떻게 지역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냐구? 그게 뭐야?

“히피 코뮌을 말하는 건가?” 아니면 “아나키스트들의 자급자족 공동체?”하고 질문을 날리는 제군! 어리석은 자여, 내가 그렇게 대단한 이야기를 할 것 같은가! 그게 아니라 옛날 옛적에 덜 떨어진 장사꾼들이 모여 오순도순 꾸며봤던 널널한 공동체 같은 걸 말하는 거다. (66)

이름하야 ‘아마추어 반란’! ‘지금 고엔지 기타나가 거리의 상점가를 중심으로 재활용 가게, 헌옷 가게, 카페 등 점포 7개를 운영하며 인터넷 라디오와 대안학교 ‘아마추어 대학’을’ 세웠다. 처음부터 무엇을 할 지 계획을 세웠던 것은 아니고, ‘어벙한 친구들이 자꾸 나타나서 ‘나도 할래’ ‘나도 하고 싶어’하며 나서서 어쩌다보니 점포가 늘어나게 되었다.

이들이 낸 점포의 주요 목적은 가난뱅이들이 ‘뻔뻔스럽게 활보’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아마추어의 반란 1호점’은 헌옷과 재활용 가게이지만, 라디오 스튜디오를 설치해 매일 저녁 라디오 방송을 하기도 하고, ‘이웃의 말뼈다귀 같은 놈들을 모아 술’을 마시기도 한다. 가난뱅이들이 헌옷과 재활용 가게에서 라디오 방송도 하고 술도 마신다? 평균적인 상식으로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곳이지만, 이들에게는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추어진 맞춤형 공간이다. 게다가 수익도 생겨서 필요할 때 쓸 수 있으니 엄청난 이익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용도에 맞추어 공간을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필요에 맞추어 공간을 활용하면 우리 모두가 편히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유용한 공간이 된다. 우리의 범위를 우리가 사는 지역으로까지 넓히면, 지역 사람들을 위한 공공시설을 우리의 손으로 만드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가난뱅이가 공공시설을 만든다? 마쓰모토는 이런 식이다. 남들보다 한 템포 더 나아가있다. 의식주와 더불어 미디어를 가난뱅이 생활의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자기들끼리 놀 공간만이 아니라 지역을 위한 공공시설까지 생각하는 것도 그렇다. 이쯤 되면 이 가난뱅이의 여유와 배짱에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된다.

바보들의 축제

가난뱅이들이 개인 차원에서, 지역 차원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살펴봤다. 이제 남은 것은 마쓰모토가 사회에 날리는 하이킥, 데모에 관한 얘기다. 데모하면 바리케이드, 단식, 폭력, 무장경찰 등등 험악한 이미지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마쓰모토의 데모는 특별하다. 마쓰모토의 데모는 무엇보다 너무 유쾌하고 재미있다.ㅋㅋ 마치 개구쟁이들이 옆 집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가는 장난 같다. 이때 중요한 건, 함께 장난을 치는 사이에 서로 친구가 된다는 것. 마쓰모토의 데모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친구로 만든다.

마쓰모토가 대학생이었을 당시, 대학의 주인은 물론 대학생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교는 수업만 끝나면 학생들에게 집에 돌아가라고 난리다. 이에 마쓰모토는 귀가하는 학생들을 모아 난로를 피우고 잔치를 벌이는 투쟁을 실시하여 바보 같은 놈들을 집결시킨다.

어이없는 풍경이지만 끈끈한 정을 느꼈는지 비실비실한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이렇게 되면 아무도 말릴 수 없다! 강의가 끝나고 지나가던 학생들도 신기한 듯이 입이 귀에 걸려서는 다가왔다. 학생들은 난로와 냄비를 둘러싸는 데 멈추지 않았다. 텔레비전을 들고 오는 놈, 냉장고를 갖고 오는 놈, 밥통을 들고 와 밥을 짓는 놈 등 해괴망측한 놈들이 속출했다. 우리는 아침까지 술을 마시고 그길로 강의실에 들어갔다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갔다. … 그런 사정을 전혀 몰랐던 사람들도 바비큐를 굽거나 지나가는 사람에게 “한잔 안 할래?”하고 말을 건네는 일이 일상다반사였다. 흐응, 이게 정말 바람직한 대학인거다. 걸어 다니기만 해도 친구가 생기니까! (113)

에너지를 소모시키기만 하는 데모는 언젠가는 끝이 나기 마련이다. 데모를 하면 할수록 친구도 많아지고 즐거운 일도 많아진다면 사람들도 스스로 데모에 끼어들려고 하지 않겠는가? 사람들을 모이게만 하면 데모의 준비는 그것으로 끝이다. 만나서 무엇을 할지 굳이 행동지침을 정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모이면 뭐가 돼도 된다.’ ‘”나 저기서 가게하고 있소” “저 골목으로 들어가면 이런 가게가 있으니까 다음에 가보쇼”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알쏭달쏭한 정보나 인맥이 생긴다. 이 말은 곧 다음부터 그 거리에 가면 갈 곳이 생긴다는 뜻이다.’ 부자들의 주머니를 터는 것보다 가난뱅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거다. 가난뱅이들끼리도 스스로 살게 만드는 정보와 인맥. 이거면 데모는 충분히 제 역할을 하고도 남는다.

애초에 이 책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아주 단순한 모토를 가진 가난뱅이들을 위해 쓰였다. 그리고 그런 가난뱅이들에게 살아남는 팁들을 제공한다. 그럼 이제 실행에 옮기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만약 계획부터 세우고 있다면 당장 버려라. 대신 사람들을 모아라. ‘사람들이 모이면 뭐가 돼도 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 힘만으론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없다. 사람들을 만나고, 그러다보면 오히려 쉽게 일이 저절로 생긴다. 마쓰모토는 잔치판을 벌여놨을 뿐이고, 사람들이 오면서 우연적인 사건·사고들이 생기니까 일이 만들어졌을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아나키스트니 코뮌이니 하는 거창한 얘기가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들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가 오가는 순간 일자리도 얻고, 공공시설을 만들 수 있는 엄청난 에너지의 원동력이 된다. 가난뱅이의 돈을 먹고 사는 부자들에게, 돈을 쓰지 않고 살 방법을 마련하는 가난뱅이 집단은 무서운 위협이 될게다.

‘자! 그러면 이 책을 빨리 읽고 친구에게 빌려줘서 재미있는 일, 엉뚱한 일, 수수께끼 같은 요상한 일을 속속 일으키자! 무슨 일이 있어도 난 알 바 아니지만, 환하게 웃을 수는 있을 거다! 가난뱅이는 다른 사람의 말은 듣지 않아! 꼴좋다, 이놈들아!’ (202)

– 소하영(수유너머 구로)

응답 3개

  1. 연초록말하길

    일단 해보자, 이 말이 갖는 강력한 힘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서

    어라, 이 책 읽어보고 따라 해 볼 부분을 찾아보자 하는 생각이 드네요.

    잘 읽었습니다.

  2. 박카스말하길

    ‘가난뱅이의 역습’ 배꼽잡으며 읽었던 기억이나네요.
    대학생필독도서라고 생각해요. 강추예요! 강추!

  3. 말하길

    아, 넘 재미있는 책같다. 넘 재미있는 싸움같다. 읽어보자.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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