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책꽂이

완벽한 가족으로 거듭나기

- 달맞이

완벽한 가족으로 거듭나기

-『완벽한 가족』로드리고 무뇨스 아비아 글, 오윤화 그림 / 다림

‘완벽한 가족’. 다가가기엔 너무도 먼 꿈같은, 그래서 헛헛하기까지 한 이 제목에 대한 반감은 표지에 있는 그림을 보는 순간 스르르 녹는다. 앞표지엔 단정한 옷차림의 가족이 소파에 앉아 있다. 박제된 듯한 정지된 표정이 ‘완벽한 가족’이라는 설정에 의문을 자아내게 한다. 뒤표지엔 정물처럼 앉아 있는 가족들 뒷모습 사이로, 가족의 구멍인 알렉스만 얼굴을 반쯤 내밀고 있다. 알렉스만이 자신이 걸어온 길을 성찰하는 존재라는 듯이.

이쯤 되면 표지만으로도 이 책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은 ‘절대 완벽할 수 없는, 완벽함을 가장한 어느 가족의 이야기’이다. 완벽함이야말로 가장 완벽하지 못한 것들과 가장 가까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이야기이며, 완벽함보다는 조화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가는 이야기이다. 자신의 결점을 받아들이고 부끄럼 없이 끄집어 낼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게, 바로 가족이라는 걸 일러주는 이야기다.

주인공 알렉스는 자신의 가족이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물리학자인 아빠, 실내장식가인 엄마는 똑똑하며 이해심이 많다.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화를 내지 않으며, 아이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땐 벌을 주거나 질책하는 대신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누나들 역시 똑똑하고 예쁘다. 집안은 늘 청결하며, 질서가 잡혀 있다. 몸에 나쁜 것, 인스턴트 음식은 바라보지도 않으며, 어떠한 경우에도 서로 말다툼을 벌이지 않는다. 어리광을 부리지도 않는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무지무지 사소한 결점(손가락으로 코를 후빈다던가, 수프를 들고 마신다든가 하는)조차 이들 가족에겐 없다.

식구들과는 약간 다른(알렉스는 자기 생각을 분명히 밝히는 데도 서툴고, 엉뚱한 짓도 잘 한다. 치약으로 세면대를 엉망으로 만들거나, 누군가를 부를 때 교양 없이 소리를 지르거나, 때때로 슈퍼마켓에서 새치기를 하기도 한다) 알렉스는 가족들의 지나친 완벽함이 지겹다. 완벽하지 않는 게 도대체 어떤 기분인지 알고 싶다.

알렉스가 국어와 수학 두 과목에서 낙제점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서도, 부모님은 눈을 부라리거나 소리를 치지 않는다. 낙제한 이유가 있을 테니, 스스로 찾아서 해결하라고 어깨를 다독인다. 넌 영리하니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라며, 믿는다고 속삭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알렉스는 자신이 왜 낙제를 했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이런 순간에조차 완벽한 가족들 때문에 짜증이 난다. 알렉스의 기분을 알아챈 친구 라파는 어쩌면 알렉스의 가족이 생각처럼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속삭인다. 식구들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 네 기분이 나아지지 않겠냐고, 그러니 힘을 합해 너희 식구들의 결점을 찾아보자고.

라파와 함께 가족들 결점 찾기에 돌입한 알렉스는 완벽하게만 보였던 가족들의 결점을 하나하나 밝혀낸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가족들이 모두 결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 알렉스는 혼란스럽다. 가족들 또한 자신처럼 숨을 쉬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 결점을 찾아다녔는데, 막상 가족들의 결점을 알게 되자 차라리 가족들이 완벽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아니, 자신이 완벽한 사람이 되어 가족들을 도와주고 싶다.

가족들에게 행운을 나누어주고 싶은 알렉스는, 식구들이 모두 집을 비운 사이 카스텔라 만들기에 도전한다. 하지만 7살 때 실패한 이후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카스텔라 만들기는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실수연발이다. 소파에 큼지막한 기름자국을 남기고, 얼룩이 묻은 소파 덮개를 감쪽같이 세탁해 놓으려다가 부엌을 물바다로 만들고, 불 위에 럼주를 올려놓은 것을 깜빡해 불을 내고, 소화기 사용법을 몰라 부엌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린다. 부엌은 연기와 하얀 분말, 탄 냄새로 엉망이 되고, 소방차까지 출동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출에서 돌아온 식구들은 알렉스를 따뜻하게 안아준다. 다친 곳은 없는지 묻고 또 묻고, 침착하게 잘 대처했다며 ‘진정한 영웅’이라고 치켜세워주기까지 한다.

엉망진창이 된 부엌을 피해 밖으로 나온 알렉스 가족은 난생 처음 피자를 시켜 먹는다. 바람 부는 정원에 운동복 차림으로 모여 앉아 덜덜 떠는 꼴이라니! 난민이 따로 없다. 하지만 가족들은 이 기묘한 상황을 유쾌하게 즐긴다. 그날 밤, 라파 네서 신세를 지게 된 알렉스 가족은 각자 감추고 있던 비밀을 털어놓는다. 아버지가 뭔가 변화가 필요한 것 같아 연구소를 그만두었다고 털어놓고, 엄마는 일 때문에 예민해져서 20년 만에 다시 담배를 피웠다고 고백한다. 누나들은 그동안 최고 점수를 받아야만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려 왔다고 밀한다. 너무 잘하려다 보니 컨닝 페이퍼까지 만들게 되었다고. 하지만 가끔은 실패도 받아들여야 하고, 그걸 감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고.

알렉스 가족은 더 이상 완벽한 가족이 아니다. 아니, 그들은 여전히 완벽한 가족이다. 자신의 결점을 드러낼 줄 알고 다른 사람의 결점을 받아들여줄 줄 알게 되었으니, 이제야말로 완벽한 가족이다. 가끔 불같이 화를 내기도 하고, 말다툼을 하기도 하고, 아침 내내 콜라 뚜껑을 막지 않고 놔두는 실수를 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이제 사람 냄새나는 완벽한 가족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작가는 완벽한 가족처럼 보이는 알렉스 네 옆에 완벽과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라파 가족을 배치한다. 질서라곤 찾아볼 수 없는 엉성하고 부실한 가족. 거실은 여러 개의 소파와 잡동사니로 늘 난장판이라 ‘정리’라는 말이 무색하고, 페스트 푸드 먹기를 밥 먹듯이 하며, 늘 고함을 지르면서 이야기를 하는(각자 다른 방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려니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라파 네 집에선 항상 텔레비전을 시끄럽게 켜 놓는다) 엉뚱한 가족. 그런데 이 어설픈 가족이 참 진국이다. 소파 장사를 하는 친구를 돕기 위해 망가지지도 않은 소파를 몇 개씩이나 들여놓고, 곤란에 빠진 알렉스 가족을 흔쾌히 데려다 재우기까지 하니 말이다.

가족들의 결함을 찾다가 가족들에 대한 사랑을 발견하고 가족들을 변화시키는 알렉스도 매력적이지만, 라파도 참으로 매혹적이다. 뚱뚱하고 발 고린내도 지독하고, 엉뚱하게 낭독을 해서 사람을 당황시키긴 하지만 친구가 무엇을 원하는지 귀신처럼 알아채니까. 어디 라파 같은 친구 없을까? 먹을 것이 없으면 말을 하지 않아도 군것질거리를 나누어 주고, 풀이 죽어 있으면 뭔가 과장된 행동을 해서 기어이 웃게 만들고, 여섯 과목이나 낙제를 했는데도 당당하게 “나는 결점이 있다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라고 소리치는 당당한 녀석.

작가는 액자처럼 삽입된 두 편의 이야기를 통해 변화를 통해 무언가를 배워가는 것, 그게 바로 삶이라는 것도 넌지시 일깨워준다.

병에 담은 케첩으로 성공을 거둔 하인즈 회사는 세월이 흘러 플라스틱 용기가 나왔는데도, 계속 고집스레 유리병을 사용한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 하나, 완벽한 것은 절대로 바꾸면 안 된다!

정말 그럴까? 1985년 소비자들의 입맛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한 코카콜라 회사는 백 년 동안 이어오던 코카콜라의 맛을 바꾸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엄청난 반대에 부딪치고 만다. 결국 코카콜라 회사는 전략을 바꿔, ‘코카콜라 클래식’이라는 이름으로 본래의 맛을 지닌 코카콜라를 출시한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맛은 그대로이니 사기극이라 할만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코카콜라의 횡보가 예전 맛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 하나, 잘 굴러가는 경우에는 절대로 건드리지 말아라! 같은 말이라고? 천만에! 작가는 코카콜라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뭔가를 바꾸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랬기에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코카콜라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는 것. 변화를 통해 뭔가를 배울 수 있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 이야기. 조오지 말로리는 에베레스트 산을 본 순간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세 번이나 원정에 나섰음에도 정상을 정복하지 못한다. 세 번째 등반에서 그동안 그 누구도 오르지 못했던 8600미터까지 올라가는데 성공하지만, 실종되고 만다. 알렉스는 그들이 정상을 밟았다고 하더라도 내려오는 길에 죽었다면, 그건 완벽한 성공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만약 산에 대한 말로리의 열정이 후대 산악인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면, 그래서 누군가의 성공을 이끌어 냈다면 말로미의 실패를 과연 실패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완벽한 사람이 되고,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려고 노력하고, 이를 통해 승리를 거두는 것만이 언제나 전부는 아니다. 그러니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이야기는 완벽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변화에 관한 이야기인 셈이다.

응답 2개

  1. 지나가다말하길

    결국 완벽이란 건 없는 거군요. 아님, 모든 게 완벽하다고 할 수도 있고. 참, 알쏭달쏭한 이야기입니다.

    • 달맞이말하길

      아마도 작가는 우리가 ‘완벽’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이면, 허상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완벽은 좋은 것, 완벽하지 않음은 뭔가 결함이 있는 것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서, 완벽하기 위해 노력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완벽이란 사실 어찌 보면 주관적이고, 찰나적이잖아요? 완벽에 다가가는 방법의 하나로 ‘변화’를 들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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