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책꽂이

지금-여기, 우리의 민주주의를 (재)발명하자

- 기픈옹달(수유너머 R)

지금-여기, 우리의 민주주의를 (재)발명하자

<민주주의는 죽었는가>-새로운 논쟁을 위하여

2008년 이맘 때, 우리는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소리높여 외쳤다. 그런데 요즘 한국의 대통령은 촛불들이 반성하지 않는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다시 5월을 맞아 촛불들이 일어날까봐 두려운 걸까.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로 인해 한국의 민주주의가 20년 전 수준으로 퇴보했다고 비난한다. 그리고 6월 2일 지방선거를 맞이하여, 선거로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자며 결의를 모은다. 과연 우리는 지방선거를 통해 후퇴한 민주주의를 되돌릴 수 있을까? 신자유주의ㆍ포스트모더니즘ㆍ이명박 정권의 시기에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마침 <민주주의는 죽었는가?>라는 제목으로 8명의 학자가 짧은 발제문 형식의 답을 제시했다. 아감벤, 바디우, 벤사이드, 브라운, 낭시, 랑시에르, 로스, 지젝이 바로 그들이다.

먼저 이들은 입을 모아 민주주의는 정의되지 않는 개념이라고 말한다. 바야흐로 민주주의의 시대가 도래했다. 모두가 자신을 민주주의자라고 말하며, 이로 인해 민주주의는 아무런 전선도 그을 수 없는 개념이 되고 말았다. 어원상 민주주의는 인민demos과 지배kratos가 합쳐진 말이다. 이같은 민주주의의 어원만으로도 벌써 많은 질문과 입장들이 따라나온다. 예컨대 민주주의의 주체인 데모스는 누구인가? 데모스란 ‘동일화할 수 있는 집단적 실체’, 다시 말해 통치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 국민 혹은 시민인가(브라운). 아니면 ‘권력을 행사할 아무런 자격도 갖지 않은 자들’이 바로 데모스인가(랑시에르). 그리고 데모스와 크라토스의 관계는? 거칠게 말해, 이 책의 저자들은 민주주의를 두가지 층위로 나누어 사유한다. 첫 번째는 정치공동체 내에 개별 유권자들에게 적합한 자리를 할당하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 곧 서구/근대/입헌주의/자유주의이고, 두 번째는 바로 이같은 ‘아르케’에 난입하는 자격없는 데모스의 정치로 정의되는 ‘원리로서의 민주주의’이다.

다음은 민주주의, 자본주의, 공산주의에 대한 문제이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관계를 명확히 직시하면서,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에 끼치는 악영향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이 책의 저자들은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개인ㆍ시장ㆍ사회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자본주의와 위험한 근친성을 갖고 있음을 조심스레 지적한다. 예컨대 푸코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사회계약론을 근거로 한 대의 민주주의가 모두 규율권력을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18세기 초 프랑스의 개혁주의자들이 꿈꾸던 자기 자신을 스스로 부양할 수 있는 합리적 주체는 법전을 주입시키는 것으로 형성되지 않았다. 실제로 법에 복종하면서도 자기 생계를 꾸려나가는 노동자의 신체를 만들어 낸 것은 개인의 신체를 세분하면서도 사회의 각 구조 안으로 유기적으로 포섭한 규율권력의 작동이었다. 또한 동시에 규율권력은 만인의 합치된 의지를 가지고 통치한다는 대의제를 지탱하는 힘과 신체의 복종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즉 규율권력은 실제로 아무런 권력이 없던 대의제 모델의 심층부에서 이 제도를 작동시키는 실질적인 권력 메커니즘이다.

규율권력의 효과로서 자본주의와 대의제 민주주의가 등장한 것이라고 볼 때, 이 양자 간의 친연성은 전혀 의외이지 않다. 이로인해 민주주의가 자신의 운동성을 상실하고, 시장의 작동방식과 유사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자본주의 시장이 수요-공급의 합리적 원칙만으로 작동하지 않듯이, 민주주의 또한 합리적이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합리적 권리자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하나의 시장으로, 투표는 상품의 구매로 나타난다. 유권자들은 가판대에서 눈에 익은 상품을 구매하듯 자신의 표를 던지며, 후보자의 공약을 정치적 의사표현이라기 보다 상품의 효용으로서 소비한다. 따라서 이같이 상품화된 민주주의는 자본주의를 거스르지 않으며 , 더 나아가 개인들을 미세하게 규정짓고 각자에게 자리를 할당해주는 권력의 통치에 어떠한 위협도 되지 않는다.

혹은 이제 자본주의는 단순히 대의제 민주주의와 작동의 유사성을 넘어, 직접적으로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갖는 정당성 자체를 공격한다. 크리스틴 로스는 2008년 6월 12일 아일랜드에서 치러진 국민투표의 결과와 그 영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아일랜드는 국민투표로 리스본조약을 부결시켰다. 이 사건에 대한 사르코지 대통령의 언급은 아일랜드 국민투표를 바라보는 자본의 시선을 단번에 드러내준다. “빌어먹을 아일랜드 바보 놈들. 몇 년간 유럽 돈으로 게걸스럽게 처먹더니 이제 와서 똥을 우리에게 싸대는군!” 요컨대 아일랜드같은 후진국의 국민들은 리스본조약과 같은 중대 결정을 내릴만한 민주적ㆍ지적 역량이 부족하며-이런 결정은 유럽문제 전문가가 해야 한다!-, 더군다나 이제껏 유럽으로부터 받은 경제원조를 생각할 때 감히 부결을 선택해서도 안된다. 돈을 받았다면, 정치적으로는 지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는 국민투표가 갖는, 제도 정치 내에서 국민의 의사가 가장 많이 그리고 직접적으로 발현되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국민투표로 리스본 조약을 부결시킬 수는 있어도, 근본적으로 리스본조약이 승인될 때까지 재투표를 요구받는 상황 자체는 투표로 변화시킬 수 없다.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해지는 상황 자체의 비합리성은 제도로 바꿀 수 없다.

그래서일까. 이 책의 말미에서 지젝은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고 못박는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가 민주적 원리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사실 공산주의 운동을 통해 민주주의에 유입된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소외가 정치적 대의로 재현되는 민주주의의 문제는 오직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로만 해결될 수 있다는게 지젝의 주장이다. 지젝의 주장은 낭시가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처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코뮨주의를 내세우는 것과도 맞닿아 있다. 그에 따르면 민주주의에는 주어진 권리가 없으므로 스스로 권리를 발명해야 하고, 이때 권리를 발명하는 주체는 민주주의라는 삶의 양식에 공유하는 모든 사람들이다. 토대 없는 민주주의, 스스로를 발명해내야 하는 민주주의란 바로 코뮨주의를 가리킨다.

6월 2일 지방선거가 이제 금방이다. 인민의 의지가 숫자로 나타나는 투표는 좋은 계기가 되어 줄 것이다. 우리는 6월 2일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의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는 어이없는 정책들에 분노하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내 보여야 한다. 하지만 설사 선거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이것만으로는 일렁이던 촛불의 갈증을 달랠 수 없다. 선거의 형식으로는 수많은 촛불들의, 그 다양한 욕망과 충동들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차이는 대의제도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별을 넘어서는 코뮨의 ‘공통적인 것’을 통해서만 보존되고, 펼쳐지며, 더욱 다양하게 변주될 수 있다. 선거를 소비하지 않고, 정치로 만들어내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를 넘어서서, 선거 혹은 국민투표 외에 어떤 사건도 불가능해지기 전에, 민주주의의 사유를 새롭게 체현해 내야 하지 않을까.

다행히 우리에게는 생생한 투쟁의 현장이 있다. 이미 수많은 생명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는 4대강 저지 싸움과 MBC, 언제나 투쟁이 끊이지 않는 여러 노동현장들, 청소년 운동과 장애인 투쟁, 도시재개발에 맞선 철거민들의 싸움 등등. 뜨거운 5월과 6월 그리고 깃발이 나부끼는 여름을 이끌어낼 민주주의의 언어는 결국 우리의 숙제로 남는다. 항상 (재)발견되는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더 나은 삶을 향한 힘들의 끊임없는 실험장이다. 민주주의가 품고 있는 이 가능성 때문에, 데모스와 크라토스 간의 아포리아로 인해 영원히 정의되지 않는 민주주의는 아직도 적들에게 순순히 넘겨줄 수 없는 개념이다.

– 안티고네(수유너머 R)

응답 4개

  1. 동동주말하길

    ‘스스로를 발명하는 민주주의’로의 코뮨에 대한 글 인상적으로 잘 읽었습니다.
    한편으로 글을 읽으며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넘어서는 코뮨주의의 공통이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가 더욱 궁금해지기도 하네요.
    한번 책을 사서 보고 싶군요.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2. […] This post was mentioned on Twitter by tzara, Yu-li Ko. Yu-li Ko said: RT @julymon: [17호] 지금-여기, 우리의 민주주의를 (재)발명하자 « Weekly 수유너머 http://ht.ly/1PT0d […]

  3. 매이엄마말하길

    그런데 매이 사진은 저기 왜 들어가 있는지요? 반가우면서도 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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