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책꽂이

[11호] 내 안에 꼭꼭 숨어 있는 바로 고 녀석

- 기픈옹달(수유너머 R)


달맞이의 책꽂이
내 안에 꼭꼭 숨어 있는 바로 고 녀석
– <다섯 여섯 행복> 마티스 글 / 이유민 그림 / 이선미 옮김 / 크레용하우스

‘幸福’ 조그만 소리로 읊조려 본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거릴 수가 없다. 그럼 나는 지금 불행한가? 딱히 그렇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불행하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다면, 그럼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그걸 때때로 잊고 산다. 시선은 늘 행복을 향하고 있지만, 발은 항상 더디 움직여 그런가?

이번에는 ‘行福’이라고 바꾸어 써 본다. 복을 향해 걸어가기. 복을 향한 적극적인 몸짓. 그런데 대체 복이 어디에 있지? 순간 또 아득해진다.

불행과 훨씬 친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너무너무 불행해서 세상에 있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던 순간도 있었다. 그 시절 나는 비련의 주인공이었다. 서른셋. 예수가 인류의 죄를 떠안고 묵묵히 죽음을 향해 걸어가던 그 나이에, 난 둘째를 낳고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구완와사. 마음이 힘드니 몸에 금방 신호가 왔다. 심하게 비뚤어진 입을 마스크로 가리고 한방병원을 들락거렸다. 한방병원에서 마주치는 불편한 신체들이 나를 더욱 우울하게 했다. 침과 물리치료로 기진맥진해서 돌아오는 길에 마주치는 아파트 화단의 장미들은 또 왜 그렇게 아름답고 싱싱한지! 그 무렵엔 눈빛 하나, 말 한 마디가 모두 화살이 되어 박혔다. 고슴도치처럼 화살로 도배된 몸을 하고 다녔다. 징징 울면서. 화살을 쏘아댄 사람들을 원망하면서. 화살은 늘 밖에서 날아온다고, 운이 없어 맞은 것뿐이라고…….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가장 깊이 박힌 화살을 쏜 게 바로 나라는 걸, 수없이 박힌 화살을 뺄 생각은 않고 눈물만 흘리고 있는 게 가장 징한 화살이라는 걸 그때는 정말 몰랐다. 福을 향한 몸짓이 꼭 밖을 향해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걸.

‘행복이 가까이에 있다, 네 안에 있다’는 말은 너무 흔해 진부하기조차 하다. 그러나 그 진부함이 바로 진실이다. 문제는 진실을 회피하고 있는 우리 자신이다. 진실을 망각하고 있는 우리 자신.

<다섯 여섯 행복>은 내 안에 있는 행복을 찾아가는 소년의 이야기다. 겨울 방학을 앞둔 어느 날, 선생님이 행복을 주제로 글짓기를 하라는 숙제를 내준다. 파비앙은 공책에 ‘행복’이라고 써 놓고 행복이 과연 무엇인지, 어떤 내용을 써야 하는지 고민 고민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행복이란 글자 때문에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선생님의 좋은 의도가 예기치 않은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행복’ 때문에 ‘행복하지 않은 상황’에 빠지게 된 것! 행복은 도달해야 할 목표나 완성해야 할 과제가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씩씩거리던 파비앙은 화를 가라앉히러 부엌에 갔다가 엄마를 만난다. 자칭 행복전문가라는 엄마는 “사과를 얇게 썰어 주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한다. 파이를 만드는 엄마를 도와 사과를 썰지만, 파비앙은 선뜻 행복하다고 말할 수가 없다. 그러자 방으로 돌아와 사전을 뒤지기 시작한다(사전적 의미에 집착하는 건 동양이나 서양이나, 애나 어른이나 어쩜 이리 똑같은지!). 사전에는 “행복 : [명사]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상태”라고 나와 있다. 이번에도 궁금증은 해결되지 않는다. ‘충분하다는 것’이 대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것인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답이 책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실망한 파비앙은 아빠를 찾아간다. 아빠는 낚시를 할 때 입질이 오는 것이 행복이라고 이야기해 준다. 어렵다. 행복은 점점 멀어져 간다. 파비앙은 이번에는 여섯 살짜리 동생을 찾아간다. 기차놀이를 하고 있던 동생은 ‘그냥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행복이라고 말한다. 아직도 미진하다. 파비앙은 이번에는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혼자 살고 계신 할머니를 찾아간다. 행복이 뭐냐는 질문에 할머니는 눈물만 글썽인다.

가족들을 만나 질문을 하면서 파비앙은 ‘행복’의 다양성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한다. 행복이란 사전에서 보았던 것처럼, 일목요연하게 설명할 수 없는 거라는 것. 행복은 ‘보이지도 않고, 사진을 찍을 수도 없는’ 실증할 수 없는 것이지만,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한다.

파비앙은 자신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글쓰기를 완성한다.

“행복은 마음속에 있는 거다. 사과 파이를 만드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누군가가 사과 써는 일을 도와주는 것이 행복일 수 있다.

낚시꾼의 마음속에는 물고기를 곧 낚을 수 있다는, 낚시찌의 약속이 행복일 수 있다.

여섯 살 아이의 마음속에는 증기 기차 소리를 내는 전동기차가 행복일 수 있다.

오래 산 할머니의 마음속에는 눈물을 짓게 하는 소중한 추억이 행복일 수 있다.

그리고…….

내 마음 속의 행복은 이 글짓기 숙제를 끝내는 거다.”

숙제를 끝낸 파비앙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산책을 나간다. 눈이 소복이 쌓인 숲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한다. 하얀 눈과 아름다운 햇살과 친구가 되어 눈싸움을 하고, 재주넘기를 하고, 나뭇가지에 쌓인 눈을 끌어 당겨 샤워를 하며 논다. 시간이 지나자 옷이 젖어들기 시작해 슬슬 추워진다. 몸이 떨리고 이도 딱딱 부딪친다. 그러자 집이 그리워진다. 언 몸을 녹여주던 엄마의 팔, 볼에 닿던 꺼칠꺼칠한 아빠의 볼, 동생의 어수룩한 웃음……. 사무치게 집이 그리워진다. 파비앙은 집을 향해 뛰어간다. 집을 향해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뛰며 기쁨이 솟구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 순간 행복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행복이 아닌, 자신만의 행복을 발견한 것이다. 눈이 온 어느 날 아침에 발견한 파비앙의 행복. 집에 돌아온 파비앙을 반겨주는 건 동생의 투정과 부모님의 꾸중뿐이지만 파비앙은 행복하다. 자기 마음속에 있던 행복이 무엇인지 깨달았으니!

이 책은 ‘행복’이란 다소 어려운 관념을 단순하고 재미있는 스토리를 통해 잘 풀어내고 있다. 보물찾기를 하듯이 아이들 마음에 행복이라는 씨앗을 뿌려놓고, 아이들 스스로 찾아내게 한다. 사전을 통해, 타인들을 통해 행복이 무엇인지 감은 잡았으나, 정작 행복을 느끼지는 못했던 파비앙은 자신만의 시간을 통해 행복을 발견한다. 아니 행복을 짓는다.

이 책이 흥미로운 건, 마음속에 실재하는 행복을 만나는 건 ‘거리두기’를 통해서라는 걸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은 머리로, 노력으로 찾아지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안에 숨은 행복이란 녀석. 꽁꽁 숨어있는 솜털 같은 그 녀석을 찾으려면 온 몸의 감각을 곤두 세워야 할 게다. 그리고 찬찬히 날 들여다봐야 할 게다. 징징 울지 말고, 롤러코스터에 올라타 씽씽 달리지 말고.

– 달맞이

응답 4개

  1. 부우말하길

    그렇군요, 행복이 바로 내 안에 있었던 것인데 주변만 흘낏거려.. 느끼지 못했던 거네요. 오랜만에 들어왔는데, 위안 받고 갑니다^^

  2. 내가행복말하길

    파비앙의 행복찾기도 좋지만 달맞이님의 행복찾기가 더 구수하네요! 이젠 죽 행복하시길!

  3. 둥근머리말하길

    무척 사랑하는 책이에요.ㅎㅎ 책을 통해, 서평을 통해 저를 들여다보는 일이 의미있어요. 그 일을 할 수 있게 해준 달맞이샘.. 고맙습니다요.

    • 익명말하길

      ㅋㅋ 부족한 글 일일이 대꾸해주는 자네가 더 고맙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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