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책꽂이

삶에 대한 예지(叡智)가 돋보이는 그림책

- 기픈옹달(수유너머 R)


달맞이의 책꽂이
삶에 대한 예지(叡智)가 돋보이는 그림책
– <똑똑하게 사는 법>고미 타로 글, 그림 / 강방화 옮김 / 한림출판사

얼마 전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눈 밑이 파르르 떨릴 때, 주먹에 불끈 힘이 들어갈 때, 어깨가 축 쳐질 때,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 천지처럼 느껴질 때 펼쳐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책이 있다고 하기에, 두말 않고 그랬다.

“도대체 무슨 책인데?”

고미 타로 책이라는 말에, 주책없이 입이 먼저 헤벌어졌다.

작가: 고미 타로

고미 타로는 꽤 유명한 그림책 작가다. 그림은 발랄하고 경쾌하고 단순하며, 글은 깔끔하나 정곡을 찌른다. 해서 고미 타로의 책을 읽다 보면 “어?” 하는 사이에 뒤통수를 한 방 맞는 기분이다. 더 희한한 건 맞고 나서도 실실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는 것. 까불대는 막내처럼 보이나, 속에는 참으로 깊고 따듯하고 날카로운 어른 서너 명쯤 도사리고 있을 것 같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을 것 같은 매력을 가진 이가 바로 고미 타로다.

<똑똑하게 사는 법>은 일상에서 흔히 벌어질 수 있는 작고 소소한 것들을 소재로, 이야기를 펼쳐간다. 카툰 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다. 인물들의 다양한 표정들을 살펴보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정말 좋은 건 틀에 박힌 사고를 죽비로 내려치는 듯한 고미 타로의 일갈(一喝)이다!

<홈런을 제대로 치는 법>을 설명하면서, 고미타로는 방망이와 공의 우정을 잘 키워주라고 이야기한다. “방망이를 제대로 잡는 법, 자세를 바로 잡는 법, 다리에 힘을 주는 법, 투수에 대한 마음가짐, 공을 고르는 방법, 치면 안 되는 공을 거르는 방법, 쳐야 하는 공을 불러들이는 방법 등등” 홈런을 제대로 치려면 여러 가지 방법들이 필요하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방망이와 공의 진정한 우정”이라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나의 바른 자세, 상대에 대한 마음가짐, 혜안, 기다림, 적극성이 필요하다는 것. 하지만 그러한 여러 가지보다 더 우선하는 게 바로 ‘우정’이라는 관계를 만드는 거란다. 다분히 스피노자 적이다. 홈런을 제대로 치기를 욕망하는 존재가 방망이와 공이라는, 자신과 결합할 신체를 찾아 나선 길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그들의 만남에 ‘우정’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것도 그렇고.

장자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여랑 폭포에서 헤엄을 치는 사내에게 어떻게 하면 그렇게 헤엄을 잘 칠 수 있는지 묻자, 사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한다. 물의 흐름에 자신을 맡겼기 때문이라고. 헤엄을 잘 치는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물과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어찌 홈런을 치는 일, 헤엄을 치는 일 뿐이겠는가!

<강아지를 제대로 기르는 법>, <고양이를 제대로 기르는 법>, <코끼리를 제대로 감상하는 법>, <쓰레기를 제대로 분류하는 법>등을 보면 고미 타로의 관심이 뭇 생명들과 생명이 없는 사물들에게까지 무한대로 뻗어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미 타로는 인간 중심의 사고, 나 중심의 사고를 단박에 뒤엎는다. “내 맘대로 개를 훈련시키거나 일을 시키고 놀리는 것을 강아지를 기르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잘못”이라고 꼬집는다. 강아지는 기르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존재라는 것. “함께 달리고, 함께 신이 나고, 함께 싸우고, 함께 평온함을 느끼는 동반자”라는 것.

그런데 바로 다음 페이지에 오면 약간 변덕을 부린다. 돌연 ‘기르는 것’이 옳은 일이며, 길러야 한다며 고집을 부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미 타로가 길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동물들은 “집이 없거나, 버려졌거나, 병에 걸렸거나, 다쳤거나, 인기가 없거나, 소심한.” 뭔가 문제가 있는 고양이들이다. 그렇지 않은 고양이들에게는 외려 깍듯하게 “잘 모시겠습니다. 함께 해 줘서 고맙습니다.”라는 태도를 취해야 한단다. 고미 타로의 신랄함이, 위트가 인간들의 위선을 발가벗기는 것 같아 신선하다.


코끼리를 볼 때도 조심해야 한다. “크다! 엄청나다!” 등의 눈치 없는 말을 내뱉어서는 절대 안 된다. 코끼리 몸집이 큰 것은 코끼리가 우리에게 자신이 있는 풍경을 맘껏 상상할 수 있는 은혜를 준 것이니,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거기가 끝이 아니다. 코끼리가 있을법한 수많은 배경을 상상해 본 다음, 반드시 동물원에 있는 코끼리의 모습을 바라보아야 한다. 마지막 대목에 오면 목젖이 파르르 떨린다. 겉모습에 혹하지 말고 진심으로 누군가를 이해하라는 고미 타로가 보내온 전언(傳言)이 봄비처럼 가슴을 적시는 까닭이다. 상대가 가진 수많은 가능성을 놓치지 않되,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세심히 살피라는 것.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상대를 읽으라는 것.

쓰레기를 제대로 분류하는 법을 가르치면서 고미 타로는 왜 쓰레기인지 그 이유부터 분류하라고 알려준다. 쓰레기라고 다 같은 쓰레기가 아니다. 너무 유치해서, 쓰기가 불편해서 어쩔 수 없어서 쓰레기가 된 것도 있고, 오랫동안 나와 같이 있느라, 나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어서 쓰레기가 된 것들도 있다. 깨진 그릇이나, 물주는 것을 깜빡 잊어 죽은 화분처럼 내 무관심으로 인해 쓰레기가 된 것들도 있고, 멀쩡한데도 내 잘못으로 쓰레기로 분류된 것들도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누구, 내가 쓰고 있는 어떤 것의 현재 모습에 연연하지 말고 그와 내가 맺어온 관계에 주목하다 보면 쓰레기도 그냥 쓰레기가 아니라 “어쩔 수 없어요, 미안해요, 고마웠어요, 잘못했어요!”라는 특별한 쓰레기가 된다는 것. 필요 없는 것으로 치부되는 쓰레기를 통해, 표피적이고 일회적인 관계에 대한 깨달음을 주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등산을 제대로 하는 법>을 보다 보면, 거울을 보는 것만 같다. 산을 오르는 여러 양태의 사람들을 그려 놓고, 과연 누가 제대로 된 등산을 하는지 생각해 보란다. 산을 오르는 일이 신기한 일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등산과 그렇지 않은 등산을 가리는 것은 무척 힘이 든다고 전제하면서도, 한번 제대로 찐하게 생각해 보란다.

오르기도 전에 툴툴거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등산을 하는 목적은 잊어버리고 산에 흠집을 내는 사람도 있다. 마음을 비우고 덤덤히 수도하듯 오르는 사람도 있고, 고생을 즐기는 사람도 있고, 콧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오르는 사람도 있다. 글을 쓰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오른 사람들도 있고, 주먹밥에 취해서, 연인에 취해서 오르는 이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편한 게 제일이라며 기계를 이용해서 오르는 사람도 있다.

우린 날마다 삶이라는 산을 오른다. 때로는 전쟁을 하듯이, 때로는 모든 것을 훌훌 다 털어버리고 유유자작하게, 때로는 뜨거운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마지못해, 때로는 정상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감동스러워 풍선처럼 부푼 마음을 안고 산을 오른다.

나에 앞서 수많은 사람들이 산을 올랐고, 내 뒤를 따라 또 수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른다. 그들이 선택한 수많은 방법 중에서 딱히 어떤 것이 올바른 방법이라고, 제대로 된 방법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어떤 방법으로 산을 오르고 있는지, 내 등산법이 제대로 된 등산법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는 일이다.

결국 또 고미 타로에게 한 방 먹었다. 세상을 똑똑하게 사는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게 아니었다. 뭇 생명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 나만이 아니라 그들과 같이 행복해지는 법에 대해 생각하는 것, 설령 지금 행복하지 못하다고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산을 오르는 것. 그것이 바로 세상을 똑똑하게 사는 특별한 비법인 것을.

그래도 여전히 고미 타로는 근사하다. 나를 두드려 깨운다. 때로는 웃음 한 다발로, 때로는 눈물 한 움큼으로.

– 달맞이

응답 7개

  1. 둥근머리말하길

    젓가락질 잘 하는 법을 배우려고 읽은 책인데요..ㅋㅋ 달맞이샘이 풀어주시니, 이런 책이구나.. 그러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산을 오르는 것이 똑똑하게 사는 법이라는 말. 잠언같아요. 또 고맙습니다.

    • 달맞이말하길

      난 낄낄거리고 싶어 읽었는데… 신나게 웃게 만드는 데, 웃고 나면 찡한 거. 그런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삶이 너무 건조해서, ‘유머’ 감각이 너무 없어서 문제라우. 고마우이.

  2. 연초록말하길

    그럼에도 불구하고,이 말을 오래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늘 만난 고등학교 남학생이 말을 합니다.선생님,문법은 왜 이렇게 어려워요?

    문법만 어렵니? 다른 것은 다 편한데 문법만 어렵다고 하더군요.

    아,그건 네가 문법에 애정을 주지 않아서 그래.

    문법에 애정을? 이게 무슨 묘한 방식의 말인가 의아해하는 아이에게 이야기를 했지요.

    어려서부터 노래를 못해서 함께 즐기지 못하는 저는 노래를 잘하는 법이 궁금해서

    이 책을 구해서 읽게 될 것 같네요.

    네가 싫어하는 마음을 가득담고 설명을 읽으면 과연 머리에 들어올까?

    문법은 글을 재미있게 그리고 제대로 읽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데 시험에 얽매어 생각하니까

    그냥 저절로 싫어지는 것이지,그러면서 문장속에서 여러가지 설명을 하고 그 구문을 더 보라고

    부탁을 했습니다.한 번이 아니라,두 번 ,세 번,한참 있다가 반응이 오네요.

    정말 신기하네요.아까보타 훨씬 보이는 것이 많아요.

    그러게,그러니 애정이 필요하다고,문법에도.

    • 연초록말하길

      글이 중간에 얽혀버렸군요.그래도 아하면 어하고 알아서 읽으시겠지요?

      늘 마음깊이 감사하면서 글을 읽고,글을 기다리기도 하는 애독자랍니다.

    • 달맞이말하길

      연초록님, 감사합니다. 저도 가끔 게시판에서 샘이 올리시는 그림과 글들 훔쳐보곤 한답니다. 후후. ‘애정’을 가져 보라고 조언해 주시는 선생님, 참 멋집니다.

  3. 쿠카라차말하길

    와 이 책 정말 재미있겠는데요. 재미있으면서도 심오해요. 땡큐땡큐

    • 달맞이말하길

      샘, 책 가져가려고 챙겨 두었어요. 한 달이 다 되어가니, 금단 현상이 나타나네요. 슬슬. 화요일에 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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