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책꽂이

다음 시간엔 어떤 책을 읽어주지?

- 김대경

“여보, 요즘은 왜 글을 안 써?”

“무슨 글?”

“위클리에 글 쓴 지 오래 됐던데.”

아뿔싸,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정말 잊어버리고 지냈다. 9월 1일자로 학교에 복직을 했기 때문이다. 친정 엄마가 잠시 와서 애들을 돌봐 주고 살림을 챙겨 주는데도 불구하고, 학교에 오랜만에 돌아오니 완전 초보 저리 가라다. 낯익은 공간에 와 있어도 왠지 기름처럼 붕 떠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고등학교 2학년과 3학년 수업을 하게 되었는데, 3학년이 중간고사 기간이라 그다지 시간에 쫓기지는 않았는데도 하루 종일 교무실 책상 앞에 앉아 하는 일 없이 마음이 분주하기만 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감각이 곤두서 있었던 것 같다. 보름이 지나고 이제야 조금 정신을 차리겠다. 그래도 여전히 수업 시간 시작종이 울리면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왜냐고? 아이들을 만나는 기대감에 설레서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엎드리지 않게 하고, 졸지 않게 할까? 그게 가장 고민이다. 그다지 오랜 기간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의 모습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무기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유가 무엇일까? 아이들이 변한 건가? 내가 변한 건가? 학교 돌아오기 전에 <아이들은 왜 학교를 좋아하지 않는가?>라는 책을 읽기도 했는데도 영 적응이 안 된다.

첫 시간에는 진도를 나가기보다는 우리가 왜 국어를 잘해야 하는가에 대해 얘기하려고 하자, 아이들이 딱 두 부류로 나뉜다. 엎드려 자거나, 학원 숙제를 하는 아이들로 말이다. 그 순간 느꼈던 절망감과 외로움(?)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나 스스로를 추스르기가 힘들 정도로. 그래도 지금까지 수업이 제대로 안 돼서 힘들었던 적은 별로 없었는데, ‘이러다가 내가 무능력한 교사가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이제는 나이가 어느 정도 되고 보니, 그다지 심각하게 고민하지는 말고, 이 상황에서 좀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시도해 본 것이 ‘그림책 읽어주기’였다.

무슨 책을 읽어줄까 고민하다가 딸 아이 책꽂이에 꽂혀 있던 <100만 번 산 고양이>라는 그림책을 가지고 교실로 들어갔다. 재미없는 수업(내가 생각해도 재미없다. 교과서에 나오는 문제의 답을 불러주면 학생들이 받아 적는 수업이 뭐가 재미있겠는가? 그래서 어떤 수업을 해야 할까 고민 중이다)을 끝내고 5분 정도 시간이 남았기에,

“얘들아, 내가 그림책 한 권 읽어줘도 될까?”

했더니, 시큰둥한 표정으로 고등학생한테 웬 그림책? 하는 의아한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그냥 듣고 싶은 사람은 들어보라고 하고 읽어 주었다. 나도 그림책을 읽어주는 건 처음이라 약간 반응이 걱정스러워서 그랬는지, 목소리가 자신이 없었다.

“백만 년이나 죽지 않은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백만 번이나 죽고 백만 번이나 살았던 것이죠. 정말 멋진 얼룩 고양이였습니다. 백만 명의 사람이 그 고양이를 귀여워했고, 백만 명의 사람이 그 고양이가 죽었을 때 울었습니다. 그런데 고양이는 단 한번도 울지 않았습니다. 한때 고양이는 임금님의 고양이였습니다. 고양이는 임금님을 싫어했습니다. 임금님은 싸움 솜씨가 뛰어나 늘 전쟁을 했습니다. 그래서 고양이를 멋진 바구니에 담아 전쟁터에 데리고 다녔습니다. 어느 날 고양이는 날아온 화살에 죽고 말았습니다. 임금님은 전쟁이 한창인데도 고양이를 껴안고 울었습니다. 임금님은 전쟁을 그만두고 성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성의 정원에 고양이를 묻었습니다……”

그리고 고양이는 뱃사공의 고양이였다가, 서커스단 마술사의 고양이였다가, 도둑의 고양이였다가, 홀로 사는 할머니의 고양이였다가, 어린 여자 아이의 고양이였다가, 불행한 혹은 아무렇지도 않은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다가 도둑고양이로 태어나 자유롭고 당당한 삶을 살던 고양이는 예기치 않은 사건을 접한다. 이후의 이야기들은 스포일러가 될까 싶어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겠다.

이렇게 몇 개의 반에서 그림책을 읽어주다 보니, 어느새 내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가게 되었고, 아이들도 엎드려 있다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그림책을 쳐다보곤 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오늘 일곱 번째로 읽어준 반에서 박수갈채를 받았다. 수능을 앞둔 3학년 학생들이었다. 2학년 수업을 할 때는 어쨌든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있겠다 싶어 그냥 읽어주었는데, 사실 3학년 교실에 들어갈 때는 그림책을 읽어줘도 될까 하고 좀 망설였었다. 그런데 ebs문제집(요즘은 수능에 연계가 된다고 해서 수업 시간에 대부분 이 책으로 수업을 나간다)을 풀 때는 딴 과목 공부하거나, 엎드려 있던 학생들의 눈이 그림책을 읽어주니 반짝 빛나는 것을 보았다. 나도 깜짝 놀랐다. 다 큰 녀석들이 그림책에 이렇게 관심을 보이다니. 마지막 문장까지 다 읽고 나자 아이들이 갑자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사실, 나도 여러 번 반복해서 읽다보니 마지막 부분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감동해서 울컥 할 뻔 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그림책 읽기 수업이 나를 놀라게 하고, 아이들을 놀라게 한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그림책이 갖고 있는 매력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림책은 유아만 본다는 편견이 사라진 지 오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걸 잘 모르고 산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언젠가 어른들 독서 모임에서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무척 재미있었던 생각이 난 것이다. 그림책은 연령 제한이 없다.

또한 문학이 주는 상상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이야기 속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내용의 의미를 곱씹어 보고, 앞으로 어떤 내용이 나올지 상상해 보고,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 음미해 보는 것이야말로 문학이 주는 힘이 아니겠는가? 아이들에게도 이것이 바로 언어 능력이라고, 문학에서 자꾸만 정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살아가면서 천천히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현재 학생들이 풀고 있는 입시 문제의 위험성도 짚고 넘어가야겠다. 좋은 책을 읽으면서 정신적으로 성숙해 가야 할 학생들이 자신의 삶과 연관이 거의 없는 지문을 앞에 두고 장시간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현실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진다. 나는 얼마 전에 우리 아들이 수학 문제집을 풀다가 너무 어려운 문제를 두고 낑낑거리는 것을 보고, 차라리 책을 읽으라고 했다. 정말 인내력 테스트 하게 만드는 문제들이 너무 많다. 요즘은 학생들을 줄 세우기를 하다 보니 정말이지 어른들도 혀를 내두르는 이상한 문제들이 판을 친다. 아무래도 현 입시 제도는 아이들을 너무 괴롭고 힘들게 만드는 것 같다. 이건 순전히 어른들인 우리들의 잘못이다.

최근에 나온 책 중에 <수업 중 15분 행복한 책읽기>라는 책이 있다. 미국에는 북 위스퍼러(book whisperer)라는 이들이 있나 보다. 책을 읽어주는 사람인데, 책을 읽어 주기만 해도 학생들의 독서 능력이 사뭇 올라간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다. 어쩌면 수업 시간에 문제를 풀어 주기보다는 좋은 책을 소리 내어 읽어주는 것이 진정한 국어수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나는 요즘 고민이 하나 더 늘었다. 다음 시간엔 어떤 그림책을 읽어주지?

응답 1개

  1. 곽안숙말하길

    선생님, 올려 주신 글 처음부터 하나씩 클릭해서 찬찬히 읽어보았어요. 아마도 학교에 선생님이신 것 같네요. 아이들과 함께 책을 나누는 것은 즐거움이자 행복이지요. 저는 대안학교에서 초등아이들을 만납니다. 3학년 아이들이어서 ,등을 읽었지요. 올려놓은 신 책 중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책들도 적어보았습니다. 학교에 구입해서 놓을 책이 많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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