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지기의 책 이야기 2
– <나무의 죽음> 차윤정, 웅진지식하우스
수업시간이다. 아이들의 표정에 지루함이 담긴다. 자신도 모르게 정신줄을 놓아버리는 아이도 눈에 띈다. 뭔가가 필요하다. 오늘은 어떤 책으로 아이들을 깨어나게 할까? 그래, 차윤정 선생의 <나무의 죽음>을 소개하자.
“얘들아, 내가 퀴즈를 낼 테니 맞춰봐!”
아이들의 눈이 열린다. 귀를 쫑긋 세운다.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고등학교 2학년이라고는 하지만 덩치만 컸지 역시 아이들이다. 순간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 계곡이 있어. 이 계곡 근처는 키 큰 나무가 많은 숲이야. 이곳에는 앞니가 잘 발달된, 다람쥐처럼 생긴 비버라고 하는 녀석이 살아. 어느날 이 녀석이 계곡 오른편에 있는, 오래된 나무를 갉아먹었어. 이 녀석은 나무 아래 부분을 빙 둘러가며 갉아먹어서 결국 나무를 쓰러뜨리거든. 이 나무 역시 쓰러지면서 계곡을 가로질러 자리를 잡았어. 자, 문제 나간다. 이 계곡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모둠별로 의논해서 한 가지씩 이야기해보자.”
5교시 수업이 무색할 정도로 활기가 넘친다. 모둠별로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온다. 어떤 아이는 황당한 이야기로 구박받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친구들의 손뼉을 받기도 한다.
“자, 그럼 이야기해볼까?”
“쓰러진 나무가 다리 역할을 해서 사람들이 건너다닐 수 있어요.”
“그렇구나. 다리가 만들어져서 사람들뿐만 아니라 숲 오른편에 사는 동물들이 왼편으로 이동해서 삶의 공간이 확장되겠구나.”
“나무가 쓰러지면서 그 나무 때문에 들어오지 않던 햇빛이 환하게 들어와요.”
“그래, 나뭇잎으로 가려지던 곳이 뚫리면서 햇빛이 들어와 햇빛을 많이 받아야 하는 식 물들이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겠지. 근데 계곡 자체의 변화는 없을까?”
“물 흐름이 방해를 받아요.”
“그래, 물 흐름이 방해를 받으면서 유속이 느려지고 그로 인해 계곡의 깊이는 얕아지고 폭은 넓어질 거야.”
“또 어떤 변화가 있을까?”
이제는 생각이 동이 났나보다. 나는 설명을 이어간다.
“계곡 물에 잠긴 나뭇잎들은 그곳에 사는 물고기들이 좋아하는 먹이가 된단다. 또 계곡 상류에서 떠내려오는 나뭇가지가 이곳 나무에 와서 쌓이겠지. 이곳이 하나의 댐이 되는 거란다. 그러면 유속이 느려지고 숨을 곳이 많이 생기면서 물고기가 몰려들고 양서류와 파충류가 몰려든단다. 그럼 이것들을 먹이로 삼는 새들도 날아오게 되겠지. 시간이 지나면서 이곳은 다양한 생물종이 살아가는 습지로 변해간단다. 나무 한 그루가 쓰러졌을 따름인데 이곳의 생태계는 서서히 변하게 되고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나갈 수 있는 세상이 열리게 되는 거지.”
아이들은 경이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때 책을 보여준다.
“이 책에 지금 우리가 나눈 이야기가 담겨있단다.”
산림학자 차윤정 선생의 글은 재미있다. 생태, 자연에 관한 책들을 몇 권 읽어보았지만 이 분의 글은 느낌이 달랐다. 재밌게 읽혔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았다. 숲에 관한 책 대다수는 백과사전에서 대상을 설명해 나가는 방식과 그리 다르지 않다. 친절하지만 글을 읽으면서 경험하게 되는 즐거움은 별로 없다. 하지만 차윤정 선생의 글은 즐겁다. 왜냐하면 ‘서사’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독자 자신이 씨앗이 되어 세상을 처음 맞는 설렘을 느껴보게 되기도 하고 죽어가는 나무가 되어 세상을 돌아보게 되기도 한다. ‘서사’로 풀어나가는 글에서 우리는 대상화된 나무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나무가 되어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나무가 되어 세상을 바라보았고, ‘죽음’을 생각했다. ‘삶’의 다른 이름이 ‘죽음’이구나. 차윤정 선생의 『신갈나무투쟁기』가 씨앗이 뿌리내려 나무로 자라는 과정을 담은 책이라면 『나무의 죽음』은 나무가 서서히 죽어가면서 그 삶이, 죽음이 다른 생명에게 자리를 내주는 과정을 담고 있다. 나무에게는 1%의 삶과 99%의 죽음이 공존한다. 나무가 씩씩한 청년기를 지나 장년기로 접어들면 주위에서 공격하는 여러 존재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물론 씨앗이 땅에 떨어져 뿌리내리고 자라는 과정 모두 삶에 위협이 되는 요소는 존재한다. 다만 장년기로 접어들면서 그런 공격에 대항할 힘이 줄어든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다른 생명체에게 자신의 삶을 내주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나무가 치열하게 싸우면서 살아가는 것, 그리고 주변 다른 존재들과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것은 우리네 삶과 그대로 닮아 있다.
딱따구리가 날아와 나무에 구멍을 뚫으면 그 구멍에 곤충들이 알을 낳고 그 알이 부화를 하면 나무를 갉아먹으면서 자란다. 시간이 갈수록 나무줄기는 썩어간다. 이곳에 이끼가 자리잡고 곰팡이가 자라고 지의류가 자란다. 그러면 이 나무는 분해되는 과정으로 접어드는 것이다. 필자는 오랜 숲에서 나무가 쓰러진 후 깨끗하게 분해된 흔적을 바라보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나무의 삶에 경외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은 직후였다. 친한 교사 두 분과 함께 경주 감은사지에 갔다. 두 분은 초등학교 혹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을 데려왔다.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요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엄마, 아빠가 죽을까 두렵다는 것이다.
나는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감은사지에 귀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는, 지의류가 자리잡고 있는 소나무 아래로 갔다. 수피는 모두 떨어져 나가고 내부 조직이 분해되고 있는 가지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아이에게 이 가지를 만져보게 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들려주는 죽음을 이야기해주었다. 죽음이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이렇게 다른 삶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라고.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명 속에 소중하게 담겨지는 것이라고. 아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아이가 내 이야기를 이해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내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삶과 죽음은 공존하는 것이며, 죽음이란 다른 삶을 소중하게 담는 것이라고.
과연 내 삶은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 것일까? 어떤 삶을 만들어주고 있는 것일까? 교사로 생활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 물음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 풍경지기 박혜숙
누군가에게 자리를 기꺼이 내어주는 삶이라니… 참 아름답네요. 저도 어제 밤에 이 책을 펴놓고 조금 읽었답니다.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물어본 질문… 비버가 넘어뜨린 나무가 무슨 일을 만들어낼까… 그건 계보학자가 던지는 질문과 같네요. 하나의 사건이 어떻게 계열화되고, 얼마나 다양한 의미를 낳을 수 있는지… 그것을 발생 과정에 따라 전개해가는 것… 정말 재밌어요. 참 풍경 아이들에게도 안부 전해주세요.
아, 정말 멋진 이야기예요. 저도 샘의 반 아이들 중 하나가 되어 샘이 내주는 문제를 함께 풀어보고 싶어 지네요.그리고 죽음이란 다른 삶을 소중하게 담는 것이라는 말이 와 닿네요. 그런데도 죽음에 대한 이미지와 두려움은 좀처럼 떨쳐지지 않습니다. 깊은 수양이 필요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