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책꽂이

그냥 팍 싸 버려

- 달맞이

달맞이의 책꽂이
『마법사 똥맨』송언 저 / 김유대 그림 / 창비

송언의 글은 언제나 유쾌하다. 그의 글을 읽으면 그가 어떤 선생님일지 눈에 확 그려진다. 아이들보다 더 아이 같고, 아이들보다 더 어수룩한, 아이들보다 더 눈물이 많고, 아이들보다 더 짓궂은 선생님. 키도 아이들처럼 아담하고, 얼굴도 아이들처럼 동글동글한, 그래서 한없이 만만한 선생님. 그래서 어른이라는 걸 깜빡깜빡 잊어버리게 하는 재주 좋은 선생님.

그의 글은 캐릭터들이 잘 살아있다. 그는 맛깔스런 문체로 현장에서 만난 개성 넘치는 아이들을 팔딱팔딱 되살려 낸다.

『마법사 똥맨』의 주인공인 천방지축 고귀남 역시 볼수록 정이 가는 인물이다. 작가는 ‘고귀남’이라는 이름에 ‘똥맨(똥을 된장이라고 속여서 팔아먹고도 남을 녀석’이라며 선생님이 붙여줌)’이라는 별명을 붙여준다. 같은 인물, 상반되는 두 명명은 고귀남의 엉뚱함, 규정할 수 없음을 잘 드러낸다. 고귀남은 고귀남이라는 이름으로도, 똥맨이라는 이름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특이한 인물이다. 고귀남과 똥맨 사이에는 수많이 다른 특성들이 숨어있다. 괴상한 짓으로 수업 분위기를 망쳐놓는 못 말리는 개구쟁이,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짓은 다 하는 자유인, 부메랑 주인을 가리는 재판을 단칼에 해결하는 재치, ‘동물병원주인’이라는 평범하고 시시껄렁하고 재미없는 이름 대신 ‘개장수’라는 이름을 갔다 붙이는 기발함, 수업시간에 당당하게 똥을 누러 갔다 오겠다고 선언하는 뻔뻔함, 뿌리 뽑힌 상추에게 제사를 지내주는 다감함……. 시시각각 다른 특성을 내 보이는, 주눅 들지 않는 똥맨의 모습은 자유분방한 아이들의 본성을 대변한다.

작가는 똥맨의 대척점에 동수를 내세운다. 동수는 시험과 공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요즘 아이들을 대변한다. 작가는 똥맨과 똥수(아이들에게 화장실에서 똥을 싸는 것을 들켜, ‘똥수’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를 짝꿍으로 묶어준다. 천생연분이라 한다. 둘은 하나나 마찬가지다. 똥맨이 아이들의 본성이라면, 똥수는 본성을 잃어가는 요즘 아이들의 모습이다. 그러니 똥수가 용기를 내어 화장실에서 성공스레 똥을 누는 장면은 아이들이 본성을 회복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책은 재미있다. 작가는 구석구석에 아이들이 신나게 놀 수 있는 판을 만들어 놓는다. 몸으로 문화재를 표현하는 장면, 굼벵이로 변신했다가 나비가 되는 퍼포먼스, 부메랑에 코딱지를 묻혔다는 거짓 증언을 함으로써 진짜 주인을 찾아주는 재판과정, 분수 시간에 똥맨이 끄적거린 기상천외한 낙서, 쥐라기 공원에서 벌이는 공룡놀이……. 보면 볼수록 재미있고 흥겹다.
다른 아이 말만 듣고 똥맨에게 벌을 내린 선생님을 골탕 먹이는 장면은 압권이다.

똥맨은 교실 뒤 칠판에 붙은 선생님 사진 위쪽에 검은색 색종이 띠 두 개를 붙인다. 영정사진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런 다음 사진 앞에 넙죽 엎드려 절을 올린다.

“애고애고, 우리 선생님이 돌아가셨네. 나를 벌세우고 반성문을 쓰게 하더니 갑자기 돌아가셨네. 이렇게 돌아가시면 어떡해요. 애고애고, 선생님. 저승에 가서는 제자들 괴롭히지 말고 착하게 사세요.”

자기만 절을 한 게 아니다. 선생님 제자니 당연히 절을 올려야 한다면서, 똥수 옆구리까지 찌른다. 똥맨의 애도사는 계속된다.

“애고애고, 우리 선생님이 돌아가셨네. 나를 벌세우고 반성문을 쓰게 하더니 갑자기 돌아가셨네. 선생님, 우리는 이 세상에 남아서 잘 살게요. 애고애고 선생님. 저승에선 제자들 벌세우지 말고 반성문 쓰게 하지 마세요. 그냥 모른 척 봐주세요, 알았죠?”

그러자 청소를 하던 아이들까지 우르르 모여들어 절을 올린다. 선생님이 나타나자 똥맨의 태도는 돌변한다. 다소곳한 자세로 엎드려 큰 절까지 올린다.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몸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백 살, 아니 백오십 살까지 사세요. 훌륭하신 우리 선생님, 제 소원도 들어주세요. 비나이다, 비나이다. 제 소원도 들어주세요.”

이쯤 되면 팔색조 연기자 저리가라다. 똥맨의 기막힌 변신은 능청스러우면서도 통쾌하다.

공부, 시험이 대체 뭐간데 생리적인 욕구마저 가로막는가! 사방팔방 꽉 막힌 시험지옥에서 허덕이는 아이들에게 똥맨 마법사는 말한다.

“신경 꺼! 그냥 팍 싸 버려!”

똥맨의 마법은 표면적으로는 똥 누는 것을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주문이지만, 아이들의 억눌림을 확 풀어주는 기분 좋은 마법이기도 한 것이다.

허긴 이 세상이 어찌 시험지옥뿐이랴! 경쟁지옥, 싸움지옥, 폭력지옥, 탐욕지옥……. 고민 고민하며 온갖 지옥에서 시달리느라 똥꼬만 잡고 끙끙거리는 중생들에게 똥맨 마법사가 이른다.

“신경 꺼! 그냥 팍 싸 버려!”

응답 2개

  1. 아기새말하길

    송언선생님 글은 재미있는 거 같아요. 현장에 계셔 더 그런것 같아요. 달맞이 선생님의 이 글도 술술 잘 읽히고 재미있네요.

  2. 둥근머리말하길

    똥도 말도 항의도 건의도 죄다 팍 싸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럴 때의 ‘좋겠어요’가 스스로도 좀 비겁하게 들리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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