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책꽂이

책 읽기와 공감능력

- sros23

책 읽기와 공감능력

얼마 전 어느 대학교 화장실에서 청소일 하는 아주머니와 젊은 대학생이 말싸움하는 장면이 인터넷 동영상으로 떠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적이 있다. 뉴스에까지 등장한 이 사건은 결국 그 당사자인 학생이 직접 아주머니를 찾아가 사과하는 것으로 일단락이 되었던 것 같다. 이 사건이 터지자 여기저기서 개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떻게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어머니같은 사람에게 그럴 수가 있느냐, 세상 말세다, 등등.

그런데 나는 갑자기 그 동영상을 곁에서 찍은 사람의 마음 꿍꿍이가 궁금해졌다. 내가 특이한 건지 모르겠지만, 세대 간의 싸움은 어느 시대에나 있어 왔고(가끔 가정 안에서도 벌어지지 않는가), 결국에는 당사자의 반성이나 주변 사람들의 중재로 금방 문제가 풀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인터넷을 통해 전국 아니 전 세계에(?) 퍼졌기 때문에 아마도 당사자인 사람들은 실제 사건으로 인한 충격보다 더욱 엄청난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겪었으리라. 동영상을 찍었던 사람은 그 시간에 그 장면을 찍을 게 아니라 그 싸움을 말리던가, 달래던가 그랬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런 일은 요즘 비일비재하다. 남의 일을 구경거리로만 생각하고 그것은 나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맘껏 비난하고 욕할 수 있고 상처를 입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 말이다. 내가 생각하기엔 이런 일들이 자꾸 일어나는 건, 공감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싶다. ‘내가 저런 상황에 놓였더라면 나는 어땠을까?’, ‘내가 저 피해자의 입장이라면 마음이 어떨까?’ 같은 생각들을 우리는 요즘 너무 안 하고 사는 것 같다.

작년에 나도 학교에서 비슷한 일을 경험한 적이 있다. 우리 학교 교정에 작은 연못이 하나 있는데, 어느 날 점심 시간에 한 고 3 남학생이 연못 속에 있는 물고기를 손으로 끄집어내어, 교정 흙바닥에 내동댕이치면서 친구들과 웃으며 장난을 치는 모습을 목격했다. 나는 그 학생에게 그 물고기가 얼마나 고통스럽겠냐고, 얼른 물 속으로 다시 돌려보내 주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학생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저희도 스트레스 많이 받거든요.” 한다. 나는 그 학생의 대답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한편으로는 물고기에 고통을 가하는 것에 대해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학생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고통과 분노의 덩어리가 그대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네들의 마음자리에 무심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만들었고, 그렇다면 학생들에게 진정으로 가르쳐야 할 것이 무엇이고, 함께 고민해야 할 지점이 어디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주구장창 암기 훈련과 시험공부에 시달려 온 아이들은 커 가면서 자신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삶에 있어서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엄청난 답답증을 느끼며 살아오지 않았겠는가. 학생들에게 공감의 능력을 기르도록 도와주는 일이야말로 교사로서 해야 할 중요한 의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분노를 품고 있는 아이들에게 남을 배려하고 자신의 마음과 삶을 들여다보게 하는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 얼마 전 읽었던 < 달라이 라마, 마음이 뇌에게 묻다>에서는 그러한 공감 능력이나 정서적 능력이 주변 환경이나 마음을 달리 먹음으로써 얼마든지 형성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좋은 책이나 영화를 통해 타인의 삶에 대해 공감하고 세상과 자신의 관계를 잘 연결짓도록 도와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얼마 전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학습 부진아들을 위한 읽기 자료집을 만든 적이 있었는데, 그 때 했던 방법이 바로 그림책과 읽기 자료를 제시하여 학생들과 함께 읽어보는 것이었다. 처음엔 중고등학생들이 그림책을 보고 황당해 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실제로 수업을 해 본 선생님들은 그림책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이 놀라웠다고 한다. 공부를 지긋지긋해 하던 학생들이 재미있고 쉬운 그림책을 교사들과 함께 읽고, 관련된 주제의 글을 읽은 다음 활동을 하는 데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우리가 배워야 할 지식은 너무나 많고 깊고 따분하겠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정서는 그렇게 복잡하고 어렵지 않다. 이미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그런 정서적 능력을 길렀어야 하는데 그러한 삶을 너무 외면하고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아이들의 마음과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에 너무 소홀히 했던 것은 아닌지, 나 스스로도 많이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엄청난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공감해 보게 하는 책을 두 권 소개하려고 한다. 엘렌 레빈이 지은 < 모스 가족의 용기 있는 선택>과 박정애의 < 환절기>가 그것이다. 이 두 책은 모두 청소년을 대상으로 나온 성장소설로 분류되는 것인데, 어른들이 함께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

< 모스 가족의 용기 있는 선택>은 19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성장소설이어서 처음에 읽을 때는 이런 책이 요즘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하는 약간 회의적인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면서 너무나 익숙한 장면들에 압도되어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남들이 다 이것이 옳다고 이야기할 때,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을 적으로 만들어 마음 놓고 폭력을 가하는 사회를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솔직히 매카시즘이라는 말을 하나의 유행어로 흘려들었었는데, 이 책은 매카시즘이 미국 사회를 어떻게 흔들어 놓았고, 그 과정에서 한 지식인 가족이 어떻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야기의 힘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어려운 이야기라고, 우리 이야기가 아니라고 귀를 막고 살 것이 아니라, 귀를 기울여 보게 하고, 내 생각에 어떤 부분이 잘못 되었는지를 거듭 생각해 보게 하는 힘 말이다. 아빠가 딸에게 하는 다음 대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스스로 생각할 권리를 잃는다면 그건 감옥에 갇히는 거나 다름없어. 민주주의는 단지 생각에 그치는 게 아니란다. 우리가 끊임없이 가꾸어 가야 하는 거야.” 지금 시대와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아, 그런데 나는 어제 아침 뉴스에서 미국에서도 이미 한물간 이 ‘매카시즘’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박정애의 < 환절기>는 상습적인 성폭행을 당해 온 어느 소녀 가장과 일제강점기에 정신위안부로 끌려가 갖은 고통을 겪고 돌아온 할머니의 편지로 구성된 소설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 등장하는 성폭행 사건들. (얼마 전에 우리 아들이 나에게 나영이 사건이 뭐냐고 묻는 바람에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던 기억이 있다) 끔찍한 범행 과정을 반복하는 아나운서의 멘트와 범인의 얼굴 사진을 보면서 텔레비전을 없애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그런 이야기를 담은 책을 왜 읽어야 하느냐고? 이 책을 읽으면서 피해자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왜 약하고 힘없는 아이와 여성이 숱하게 이런 고통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지 한번쯤 곰곰이 생각해 보게 한다. 그러한 고통은 결국 대다수 사람들의 무관심과 그들이 내뱉는 욕설, 구경꾼 심리에 의해 더욱 가중되기 때문이다. “제 몸은 환절기처럼 일교차가 심하고 면역력이 떨어져 있어요. 그래서 억지로 잊으려는 노력 같은 건 하지 않기로 했어요. 그냥 상처받은 그대로의 제 몸을 사랑하려구요. 해를 많이 쬐어서 그 볕에다 상처를 말리려구요.”라고 말하는 주인공의 말에 가슴이 아프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정말 중요한 많은 것을 바쁘다는 핑계로 무시하면서 산다. 하지만 무시한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뒤늦게야 아는 경우가 참 많다. 그런 걸 일일이 생각하면서 사는 것이 부담스럽고 짜증이 난다고 해도 나중에 그것이 산더미 같은 고통이 되어 나에게 돌아오는 것보다는 오히려 낫지 않겠는가. 얼마 전 어떤 선생님이, 학원에 어린 아이를 데리고 가면서 아이를 다그치는 엄마의 표정을 보니, 계모라도 저런 얼굴은 아니겠다 싶을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부산하게 움직이는 엄마들의 표정을 유심히 볼 때가 있는데, 정말 그랬다. 게다가 가끔 내 표정도 그렇다는 것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다.

공감하며 배려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 혼자서 잘났다고 살아가는 사람이나 나와 다른 생각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선을 긋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처방전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한다.

– 김대경(고등학교 교사)

응답 3개

  1. 연초록말하길

    공감능력, 말로는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가 고민하게 만드는 글

    잘 읽었습니다.

    요즘 파시즘에 관한 글을 읽고 있는 중이라서 일까요?

    어떤 상황속으로 몰려가고 있는 환경에 살고 있을 때 그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다수가 사는 방식이 아닌 방법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나에겐 과연 있는가를

    많이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거든요.

  2. 민지말하길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 그런데 글 중간에 학습 부진아들을 위한 읽기 자료집을 만드셨다는데, 한번 자료를 참고용으로 볼 수 있을까요? 열심히 노력을 기울이신 결과물을 날로 먹으려는 것은 아닌가… 죄송한 마음이 들긴 하는데…그래도 배우고 싶네요. 가능하시면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제 소개와 함께 메일을 드리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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