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책꽂이

[7호] 발랄하고 통쾌한 눈물 한 판!

- 기픈옹달(수유너머 R)

달맞이의 책꽂이

발랄하고 통쾌한 눈물 한 판!
– <눈물바다>서현 글, 그림 / 사계절

서현의 <눈물바다>는 표지부터 상큼하다. 앞표지에 있는, 두 눈에 눈물을 머금고 있는 아이 얼굴이 뒷면으로 가면 싹 바뀐다. 활짝 개어있다. 표지만으로도 눈물의 힘을 느끼게 한다.

어려서부터 만화를 좋아했다더니, 작가의 재치와 유머도 돋보인다. 상상력도 남달라, 첫 페이지부터 독자를 휘어잡는다. 시험 보는 교실 안. 아이들은 제각각이다. 그림을 그려놓고 즐거워하는 공상녀, 아는 게 없어 머리를 쥐어짜는 주인공,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친구, 시험지를 생선 모양으로 접어놓고는 책상에 머리를 박고 꿈나라로 떠난 고양이, 시험지를 먹고서라도 시험지옥을 탈피하려는 먹보 괴물, 근엄한 표정으로 교실을 호시탐탐 지켜보다가 시험을 조롱하듯 혀를 내민 학생을 잡아채는 배추 선생님, 그런 선생님을 피해 책상 밑으로 도망친 친구……. 시험과 대면하는 모든 태도가 한 컷에 다 들어있다. 불안, 공포, 도피, 조롱, 무관심.

거기다가 주인공을 눈물 한 방울로 표현한 기발함까지! 공룡 엄마 아빠를 둔 눈물방울 아이라는 설정만으로도 아이 속이 얼마나 답답하고 갑갑할지 확 다가온다.

작가는 울고 싶은, 울 수밖에 없는 아이 심사를 리얼하게 드러낸다. 아는 게 하나도 없어 시험 내내 갑갑했던 아이는 시험이 끝나자 점점 더 짜증이 난다. 싸움 삼매경에 빠진 엄마와 아빠가 비까지 맞고 온 자신을 나 몰라라 하자, 짜증은 이제 설움으로 변한다. 망망대해에 홀로 뜬 섬 같았을 아이의 마음은 회색빛 방안,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어 쓴 모습으로 구체화된다. 어디에도 출구는 없다. 방안의 유일한 장식품인 액자 속에선 아이의 분신이 똑 같이 이불을 쓰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아이는 자꾸만 눈물이 난다. 시험이 아니라 부모가, 혼자 남겨졌다는 고립감이, 내 편은 어디에도 없다는 허무함이 아이를 눈물 나게 한다.

그러나 작가는 눈물(설움)을 기막히게 전복시킨다. 슬픔도 힘이 된다 했던가. 점점 불어난 눈물은 아이 방을 잠식하더니, 야금야금 거실과 안방까지 잠식해 들어가 어느덧 바다가 된다. 눈물은 아이를 쪼그라들게 했던 공룡 엄마와 아빠를 부유(浮遊)하게 함으로써, 아이의 닫힌 마음을 위무한다. 아이는 침대를 보드삼아 바다 위를 질주하고, 파도 위로 솟구치며 한바탕 신나게 논다. 한편 거리까지 잠식해 더욱 거대해진 눈물바다는 많은 것들을 가둔다. 높디높은 빌딩이 휘청거리고, 사건을 취재하러 나온 앵커와 카메라 기자, 선생님과 친구들까지 온통 바다에 빠져 허우적댄다. 거기에 수많은 동화 속 주인공들까지 합세한다. 물고기들에게 발가락과 머리카락을 물어뜯기는 벌을 받는 선생님, 친구를 바보라고 놀린 죄로 기절할 직전인 호박 모양 아이, 때를 미는 선녀, 금메달을 걸고 질주하는 수영선수, 자라 등에 올라 탄 토끼, 고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피노키오……. 악역을 맡았던 이들이 전락한 모습도 고소하지만, 너무도 다른 이들이 빚어낸 너무나 다른 풍경이 재미있고 유쾌하다.

한바탕 축제의 시간이 끝나자, 아이는 눈물과 설움으로 가득 찬 자신을 나 몰라라 하던 엄마를 구해낸다. 엄마만이 아니라 짜디짠 눈물바다에 찌든 모든 이들을 구해낸다(이 장면에서 자꾸 <심청전>의 한 장면이 오버랩된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고 싶다던 심청의 열망은, 눈먼 수많은 이들에게 환한 빛을 선물한다. 그럼으로써 심청은 신화적인 인물이 된다. 어쩌면 진정한 전복은 상상력이 만들어낸 ‘눈물바다’라는 공간이 아니라, 낑낑거리며 사람들을 끌어낸 아이의 행위가 아닐까?). 아이는 오래 전 자신을 바보라고 놀렸던 호박 모양 아이의 젖은 몸을 드라이어로 말려주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눈물 홍수를 만들어 폐를 끼쳤으니 미안하긴 하지만, 시원하다고. 그래서 힘껏 두 팔을 펼치고 눈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활짝 웃는다.

눈물은 참으로 야누스적이다. 우리는 슬플 때도 눈물을 흘리지만, 기쁠 때도 눈물을 흘린다. 눈물은 때로는 내 억울함을 알아달라는 호소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기 치유의 성격도 갖는다. 아니 처음에는 원통함에서 시작했으나 끝은 대개 후련함으로 끝난다. 한바탕 울어버림으로써 평안해지는 기분. 코끝이 뻥 뚫리는 기분. 그건 해 본 사람만 안다. 그래서인지 책 뒤표지에 적힌 글은 백 번, 천 번 공감이 간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날, 억울하고 우울하고 서러운 그런 날, 슬픔이 다 씻겨 내려가게 펑펑 울어 볼까?”

이 책은 아이들 맘을 세세히 잘 짚어준다. 시험이 얼마나 고약한지, 우산이 없어 혼자만 비를 맞는 기분이 얼마나 꿀꿀한지, 공룡처럼 돌변하는 부모 때문에 아이가 얼마나 기가 죽고 간이 쪼그라드는지……. 눈물이 가진 긍정의 힘도 유감없이 잘 보여준다. 슬픔과 설움은 발산해야 한다는 것, 꽁꽁 감춰두지 말고 질펀하게 그 녀석들과 한바탕 뒹굴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만 웃을 기운이 생긴다는 것.

생각해 보니,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을 쏟은 건 드라마를 볼 때뿐이었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아들 녀석은 휴지를 던지며 의미심장하게 한 마디 던지곤 했다.

“쯧쯧, 저걸 보고 질질 짜다니! 저건 다 허구라구!”

녀석,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드라마가 허구라는 걸 누가 모르나. 쫌 살아 봐라. 그렇게밖에 눈물을 뺄 수 없는 때가 올 테니. 그런데 불쑥불쑥 정말 궁금해진다. 왜 그렇게밖에 울지 못하나? 남이 볼까 봐 창피해서? 약해보이기 싫어서?
울어야 할 일에는 정작 눈을 감으면서, 비겁하게 뒤로 숨어 드라마를 빙자하며 암껏도 아닌 일에 훌쩍이는 내게 이 책은 묘한 울림을 준다.

“자신 있게 울어. 울고 싶을 땐 펑펑 울라구! 우는 게 뭐 어때서?”

그런데 정말 언제 울어야 하지?

– 달맞이

응답 5개

  1. 둥근머리말하길

    안 둘러보고 그냥 퍼질러 울어본 지가 언제인지요..ㅠㅠ

  2. 부우말하길

    어릴적 하도 울어 ‘덜미에 우물을 팠냐’는 소리를 자주 들었습니다. 뭐가 그리 서러웠을까 생각해 보지만 전혀 떠올릴 만한 일이 없네요. 울면서 모든 걸 다 뱉어 내 그런가 봅니다. 감정에 충실한 울음, 유쾌한 웃음.. 정신건강에 꼭 필요한것 같아요.. 미소짓게 하는 그림때문에 더욱 끌리는데요, 재밌게 잘 보겠습니다~

    • 박혜숙말하길

      ‘덜미에 우물을 팠냐’ 표현이 정말 재미있네요. 때로는 그냥 울기도 하는 것 같아요. 이유없이. 그러다 보면 먼 기억 속에 있던 서럽고 아픈 기억들이 스물스물 올라오고, 그럼 그것 때문에 더 엉엉 울고. 그러다간 눈물과 콧물이 섞이듯이 슬퍼서 우는지, 울어서 슬픈지 마구 섞여 버리고. 눈물을 통해 나를 비우고, 새롭게 충천하는 것도 좋은데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너무 내 개인을 위해서만 우는 게 아닌가?

  3. 쿠카라차말하길

    와, 이것도 재미있겠다. 샘 덕분에 요즘 매이에게 아빠 체면이 섭니다. 매일 새로운 동화책 보여주니까요. ‘공룡같이 돌변하는 부모’…음…반성합니다. 그러고 보니 펑펑 울어 본 게 꽤 오래되었네요.

    • 박혜숙말하길

      샘, 책 갖다 두었어요. 이 책은 정말 메이도 좋아할 것 같네요. 그림이 엄청 유쾌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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