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책꽂이

평범하지 않은 이들의 평범한 인생 비법

- 김대경

요즘 청소년의 진로나 직업에 관한 책이나 자료를 눈여겨보고 있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모임에서 학교도서관에 비치하면 좋을 책 목록을 해마다 만들고 있는데, 올해의 목록 주제가 바로 ‘진로와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그냥 흘려듣는 신문 기사나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최근에 손에 집어든 오르한 파묵의 <내이름은 빨강>의 책 겉표지에 적혀 있는 저자의 약력을 보면서도, 작가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글귀구나 하며 메모해 두기도 하고, 미용실에서 읽은 주부 잡지에서 본 탤런트 김여진의 인터뷰 내용에서도 도움말을 얻기도 한다.
내가 일부러 관심을 두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최근에 나타난 독특한 시류 중의 하나인지 모르겠는데, 요즘 들어 부쩍 ‘청춘’을 대상으로 하는 책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소위 지금 잘 나가는 직업이나 꿈을 이룬 사람들이, 아직도 꿈을 꾸지 못하거나 꿈을 이루지 못해 낙담하는 젊은이들을 위로하는 책들이 많이 눈에 띄는 것이다. 이런 책들이 많이 출판되는 것은 어찌 보면 그만큼 오늘날의 사회 현실이 젊은이들이 꿈을 갖기 어렵고 청춘을 청춘답게 보내기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진로 관련 책들도 많이 눈에 띄는데, 몇몇 관련 기관에서 목록을 따로 만들어 제시하기도 하고, 우리 동네 도서관에서도 다양한 직업 세계를 조망하는 팸플릿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기도 했다. 그런 목록과 책들을 눈여겨보면서 예전보다는 참 좋아졌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책들을 찾아 읽으면서 몇 가지 의문점이 들곤 한다.
우선 이 분야의 책들 중 상당수에는 현재 소위 잘나가는 인기 직종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직접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직업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기술하거나, 혹은 어떤 이가 여러 직업인을 인터뷰한 내용의 책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런 책에 등장하는 직업의 종류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변호사, 의사, 디자이너, CEO 등등). 물론 오늘날 청소년들 중에는 그런 몇 안 되는 직업을 장래 직업 희망란에 기재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 직업을 얻을 수 있는 학생들은 극소수일 것이다. 그 책을 읽으면서 현실을 직시하는 대신, 곧 이루어질 꿈처럼만 여기다가 좌절하는 학생들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또한 현재 청소년들에게 ‘꿈을 가지고, 그 꿈을 향해 매진하라’는 말이 어쩌면 그들에게 또 하나의 형벌이자 짐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어릴 때부터 자신의 재능을 일찌감치 발견하고 주변에 연연하지 않고 열심히 자신의 삶에 매진하는 학생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내 꿈이 무엇인지, 내 적성이 무엇인지 여전히 오리무중의 상태에 있는 이들이다. 단순히 몇 번 적성 검사를 하거나 심리, 성격 검사를 한다고 해서 미래의 직업이 쉽게 선택될 리도 만무하다. 그런 상황에 놓인 학생들에게 화려한 직업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될까? 오히려 남의 나라 얘기인 것만 같은 거리감과 일찌감치 찾아오는 패배감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처럼 직업의 세계를 안내하는 책이 과연 지금의 청소년에게 긍정적인 작용만을 할까 하는 회의감이 들 때가 많았다. 현재 자신의 인생에 만족하고 자기의 일을 좋아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개 인생에서 수많은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그 자리에 온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직업을 안내하는 책들은 마치 그 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그 직업의 세계에 쉽게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처럼 보인다. 인생은 매뉴얼대로 사는 것이 아닌데, 오히려 결과보다는 그 결과에 도달하기까지 거쳐 온 수많은 경험들이 삶의 자양분이 되었을 터인데, 그것을 생략하는 것이 인생에서 더 빨리 효율적으로 성공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들릴 때가 많은 것이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면서 오래 전에 사두었다가 먼지가 잔뜩 앉은 책 한 권을 우연히 꺼내 들었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쓴 <청춘표류>라는 책이다. 저자를 좋아해서 사놓기는 했지만 책 제목이 그다지 매력적이지도 않고(‘청춘’이 ‘표류’한다니…), 책 소개글에 보니 책 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직업도 너무나 생소하고 심지어 엽기적이기까지 했기 때문에(칠기장인, 나이프 제작자, 원숭이 조련사, 정육 기술자, 매잡이… 매력적인 직업이 하나도 없다) 선뜻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나 보다. 일류대학 졸업, 유망 직종, 엄청난 연봉만을 기대하는 오늘날의 청춘들에게 너무나 맞지 않는 책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펴서 읽는 동안, 나는 책 속에 등장하는 그 이상한 직종을 가진 사람들의 인간성에 완전히 매료되어 버렸다. 그들의 대사 하나하나에 밑줄을 치면서 읽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들의 직업은 평범하지 않았지만, 그 길을 걷게 되기까지 그들이 걸어온 삶의 행로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너무나 비정상적인 꿈과 인생을 상상하지 않나 하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인생의 비법이 무슨 로또 당첨 같은 것을 기다리거나 남들이 말하는 거창한 매뉴얼대로 살면 되는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된 것이다.
책 속 인물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좀더 현실에 가까이 다가가고, 자신의 삶을 보다 더 상식적으로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가구를 만드는 이나모토의 말을 들어보자.

“스스로에게 무얼 바라는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 건지 반문해보면, 결국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고 인간답게 사는 삶이 좋다는 결론에 이르잖아요. 저는 안락한 생활만을 원하지 않았어요. 아무리 나빠져도 굶어죽지만 않으면 되잖아요. 그렇다면 인간성을 발휘할 수 있는 생활이 뭐지요? 요즘 세상은 모두가 엘리트를 꿈꾸고 머리만 굴리면서 생활하는 걸 추구하잖아요. 하지만 인간이 정말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건 몸을 움직여서 일하고 무언가 구체적인 걸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요”

그들에게는 어릴 때부터 미래의 직업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이 세워져 있는 것도 아니었고, 자신의 몸과 마음이 따라 가지 않으면 부모의 충고나 명령에 저항하기도 했다. 그래서 사회에 나가 그들은 무수히 깨지고, 다치고, 넘어진다. 그 와중에 자신에게 닥친 위기가 기회로 다가오기도 하고, 자신의 운명을 판가름할 만한 인물을 대면하기도 한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순간이긴 하지만, 숱한 고통과 고민의 끝에서 만났기에, 이쯤 되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후루카와는 스무 살에 다시 고향인 규슈로 돌아간다. 그러나 공장에서 일한 것은 아주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의 앞날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선 친구의 형인 오다와 친하게 지내면서 수렵이나 수렵 나이프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난 것, 나이프 매력에 이끌려오다가 나이프를 만드는 작업을 옆에서 보고 자신도 만들어보고 싶다고 느낀 것, 공구를 연마하는 일의 기초를 배운 것, 그리고 실제로 해보니 그 일이 자신에게 맞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전두엽 부분 뇌파에 이상이 있다는 거예요.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간질 발작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하더라고요. 그렇다면 자전거는 탈 수가 없잖아요. 적어도 선수로서는요.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눈앞이 캄캄해지더군요. … 모두 연습을 나가면서 저한테는 자전거를 못 타니까 오지 말라고 하더군요. 텅 빈 합숙소에 있다 보면 정말 슬퍼져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자전거 부를 그만두지 않은 게 신기해요. 자전거가 그만큼 좋아서 그랬겠죠. 타는 것도 좋았지만 자전거를 갖고 노는 것도 좋아했어요. 그래서 다행이었죠. 자전거 기술자가 되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 순간 어쩌지, 드디어 쫓겨나겠다는 생각을 했죠. 허둥지둥해봤자 어쩔 수 없으니 아주 태연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계속 먹고 있었어요. 전무가 옆까지 와서 ‘이봐 맛있어 보이는데, 나도 하나 줘봐’라며 손을 내밀더라고요. 하나 줬더니 너무 맛있다며 먹어치우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는 거예요. 보고 있자니 그때까지 내 안에서 툭하고 삐져나온 모진 부분이 갑자기 부드러워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전무한테는 졌다고 생각했어요. 이 사람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겠다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여기까지 읽다보면, 가르치는 일의 아이러니를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진정한 가르침은 가르치려 들지 않을 때 오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 책을 통해 어떤 직업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직업인들을 만나면서 우리는 결국 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직업 자체라기보다는 그 사람의 자기 성찰 능력과 삶에 대한 자세에서 오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생에서 역경이 닥쳤을 때 그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라.

중학교 때 그렇게 멸시받았던 인간인데 이대로 못나게 죽고 싶지는 않다,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이런 이유를 대며 살기 위해 몸부림쳤죠. 그 당시에 여러 번 이불 속에서 혼자 울었어요. 부모님께 들킬까 봐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를 죽여가며 울었죠. 죽고 싶은 마음이 발작처럼 일어날 때에는 울음이 최고더라고요. 그러면 마음이 편해져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근처에 작은 동물원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곰매를 보면 기분이 좋아졌어요. 곰매는 매 가운데에서도 굉장히 거대하고 당당한 새라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품격이 있어요. 우리 안에 갇혀 있지만 위엄에 가득찬 그 모습이 정말 멋있죠. 그 새와 비교해 제 자신의 나약함이 한심하게 느껴졌어요. 곰매의 생명력이 가득찬 박력과 존재감에서 저도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겠더라고요.

그리고 그들은 일을 통해 금전적인 보상이나 평가보다는 기쁨으로 보상받는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아 드디어 매가 사냥감을 잡았다는 걸 알았어요. 정말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감동이 밀려왔어요. 옆에 있는 나무를 붙들고 엉엉 소리 높여 울었죠. 기쁨의 눈물이 점점 흘러내려 몇 분간이나 울었어요.

결국 이 책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서 치열하게 자신과 대면하는 것, 끊임없이 배우려고 하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 세상에서 무언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즐기게 하는 원천임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한곳에 고착된 삶을 살지 말고 끊임없이 표류할 것을 주문한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모색하는 시간이 바로 청춘의 시간이라고 서문에서 말했다. 나도 요즘 나의 진로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있다. 내가 진정 좋아하는 일, 평생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 중이다. 음,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도 표류하는 청춘의 일원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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