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책꽂이

같은 위치에서 같은 질문을 던지다

- 풍경지기 박혜숙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엄기호 지음, 푸른숲

날이 차다. 하늘은 맑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다. 교실에서 내다보는 세상은 따뜻하게만 보인다. 얼마 전 쌓인 눈 위에 눈부시게 비치는 햇빛이 차가운 눈마저 따뜻한 솜이불처럼 보이게 한다.
세상이 차다. 세상은 멋지게 보인다. 높은 빌딩이 하늘로 치솟고 있고 멋진 차들이 도로를 질주한다. 교실에서 내다보는 세상은 점점 더 세련된 모습이다.

문을 열고 길을 나선다. 바람 한 줄기가 지나간다. 깜짝 놀란다. 따뜻하게만 보이던 세상이 낯설다. 입고 있는 옷을 본다. 따뜻한 햇빛을 잊지 못한 가벼운 외투가 떨고 있다. 아무도 얘기해 주지 않았다. 날이 추우니 가벼운 외투를 입고 가면 안 된다고……. 아무도 얘기해 주지 않았다. 세상은 몹시도 차니 따뜻하게 입어야 한다고…….

교육과학기술부에서 2009 개정교육과정과 입학사정관제 확대로 중등학교의 진로, 진학 상담이 더욱 중요하게 되었으며 이를 위해 기존의 담임교사 중심에서 역량있는 전담교사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이에 따라 2015년까지 전체 3,760개 중,고교마다 진로진학상담교사를 충원하기로 하고 우선 내년에는 고교에 1000명을 선발, 배치하기로 했다. 직원회의에서 이 내용을 알리며 진로진학상담교사를 희망하는 교사는 교무부로 알려달라고 했다.

진로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학교 정책에 반영된다는 점은 반가웠다. 하지만 씁쓸했다. 어떤 훌륭한 사상, 제도도 왜곡시키는 블랙홀이 입시 중심의 교육 현장이다. 현재 고등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진로 지도란 성적에 맞는 대학에 지원을 하도록 배치시키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진로와 관련된 학교 풍경은 숫자로 가득차 있다. 수능시험이 끝난 후 아이들은 마음을 졸이며 성적표가 나오길 기다린다. 드디어 성적표가 나오는 날, 작은 종이에 표준 점수와 백분위와 등급이 표시되어 있다. 마치 자신의 품질 확인서를 받는 풍경처럼 보인다. 이 숫자 앞에서 아이도, 부모도, 교사도 의식이 마비된다. 그 이전까지 적성을 고려한 대학 선택을 권하던 교사가 있더라도 이 숫자 앞에서는 합격 가능한 대학의 목록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아이들은 대학에 진학한다. 대학 진학과 함께 교사와 부모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했다며 안도한다. 아이들은 대학 입학 후 1-2년 동안은 가끔씩 교사를 찾아온다. 인사를 하러 온 아이들은 교사에게 대학 생활의 즐거움을 이야기한다. 잠시 만나 반가움을 나누는 시간은 아이들로 하여금 그들이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사유하고 말할 시간을 만들어주지 못한다. 교사는 아이들의 행복한 이야기를 들으며 또다시 뿌듯함을 느낀다.

그래서 아이도, 부모도, 교사도 대학 합격 이후를 보지 못한다. 아이들은 대학 합격을 하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마음이다. 부모는 드디어 대학생이 된 자식이 자랑스럽다. 교사는 자녀를 모두 결혼시킨 후 부모할 도리는 다 했다고 생각하는 부모처럼 아이들을 바라본다. 그 어디에도 아이들이 마주칠 세상에 대한 관심은 없다.

모든 사랑 이야기는 결혼식 장면에서 끝이 난다. 결혼한 이후 일상에서 치르는 전쟁에 관해서는 아무도 보여주지 않는다. 학교 현장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과정은 졸업식에서 끝이 난다. 이 책은 우리 아이들의 졸업식 이후를 보여준다. 가벼운 외투를 입은 아이들이 어떻게 추위와 맞서서 싸우게 되는지, 쓰러지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읽는 동안 마음이 아팠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엄기호, 푸른숲)는 저자가 2년 동안 덕성여대와 연세대 원주캠퍼스에서 학생들과 함께 쓰고 토론하고 강의한 내용이다. 서울에 있는 명문대에 가고자 했던 학생들이 성적 때문에 명문대의 지방캠퍼스에 진학하지만 자신이 꿈꾸는 학교는 서울에 있는 캠퍼스이다. 입학은 이곳으로 했지만 자신의 종착지는 이곳이 아닌, 서울이 될 것이라 꿈꾼다. 그래서 학교에 다니는 동안 자신이 서있는 자리를 긍정하지 못한다. 대학시절 내내 현재의 자신을 부정하면서 대학생활을 하게 된다. 이런 생활은 현재 대학생활을 하는 20대들 대부분의 생활이기도 하다.

엄기호 선생이 이런 학생들과 수업 시간에 했던 작업은 그들에게 자신들의 언어가 있음을 알게 하고 그 언어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사유하도록 한 것이었다. 선생은 언어의 중요성을 말한다. 언어는 성장의 지표이다. 성장한다는 것은 자기만의 언어를 가지게 되는 것이며 자기만의 언어를 가질 때 비로소 인간은 자기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읽고, 그 세상에 개입할 수 있다. 그래서 선생은 정치와 민주주의, 교육, 가족, 사랑, 소비, 돈, 열정을 화두로 그들 자신의 언어로 그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을 사유하게 한다.

지난 11월, 우리 학교 분회 행사에 엄기호 선생을 모시고 강연을 들었다. 이 자리에는 교사들 외에도 우리 학교 학생들이 참가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이 책을 읽은 후 강연을 듣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걱정이 되었다. 대학에 대한 환상만을 배운 아이들이 앞으로 자신들이 맞이하게 될 현실을 바라보며 참담한 기분을 갖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오히려 모든 희망을 놓아버리거나 그 현실을 외면해 버리지는 않을까?

강연이 시작되었다. 역시 아이들이 가지고 있던 대학에 대한 환상을 깨지고 있었다. 아이들의 한숨소리가 들렸다. 막막해하는 표정도 보였다.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질문의 내용은 한결같았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강연이 끝난 후 다음 날이었다. 복도에서 강연회에 참석했던 한 아이를 만났다. 같이 독서모임을 하는 아이였다. 그 아이가 강연회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어했다. 절실함이 담겨있었다. 그래서 내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 중 강연회에 참가했던 아이들과 점심시간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강연을 듣고 난 후 아이들은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그날 집에 돌아가 했던 고민들을 들려주었다. 나는 그냥 듣고만 있었다. 그런데 신기했다. 강연을 들은 아이들이 하나같이 강연이 좋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마음이 많이 힘들지 않았는지 물었더니 마음은 힘들었지만 다른 강연들과는 달리 자신들의 문제를 진심으로 이야기하는 시간이라 참 친근하게 여겨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 그것이었구나. 누가 어떤 마음으로 이야기하는가에 따라서 그것은 절망의 언어가 될 수도 있고 희망의 언어가 될 수도 있구나. 그리고 그 희망은 헛된 희망이 아니라 초라하지만 지금 여기에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구나.
그러고 보니 아이들은 상담을 하고 싶어할 때도 자신에게 이렇게 하라는 명확한 답을 내려줄 선생님을 찾는 게 아니었다. 내가 첫 발령을 받아 근무할 때 그렇게 명확한 답을 내려주는 선생님보다 아무 말도 못해주는 나를 찾는 아이들이 있었다. 실업계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여러 가지 힘든 상황들이 많았다.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너무 힘들었다. 내가 만일 그런 상황이었다면 저 아이들처럼 씩씩하게 생활할 수 있었을까?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도움되는 말을 해주지 못하는 내 자신에 대해 회의감을 느꼈다. 그러나 이제 알겠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누군가가 제시하는 명확한 답이 아니라 공감하며 함께 질문을 던져줄 친구였다.

엄기호 선생의 강연과 글은 아이들에게 그런 역할을 해주었다. 같은 위치에서 공감하며 고민을 들어주고 아이들이 자신의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과정에서 좀 더 명확한 언어로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성장한다. 그리고 비록 답은 나와 다를지라도 같은 위치에서 같은 질문을 던지는 친구를 만나게 된다.

나는 나 스스로를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대안 따위는 만들 엄두도 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다만 내가 잘하고, 할 수 있는 일은 학생들이 자신의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과정에서 좀 더 명확한 언어로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북돋아주는 일이다. 삶과 세상에 대해, 해답이 아니라 더 많은 질문을 가질 수 있도록 자극하는 일이다. 나는 인간은 삶에 대해 새로운 질문이 많아질수록 세상을 새롭게 살아갈 용기가 더 많아지는 존재라고 믿는다. 질문과 함께, 질문에서 인간은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다. 새롭게 시작할 용기만 있다면 인간은 새로운 사회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그것이 내가 학생들과 함께 나눈 위로이자 희망이며 격려이다. (27쪽)

그렇다면 내가 교사로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해야 할 일은 아이들과 함께 같은 자리에서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해온 일이 같은 답을 찾고자 하는 것이었고 이 과정에서 나와 추구하는 답이 다른 존재는 배제하면서 상처를 주고받았다면 이제는 같은 질문을 던지는 일이 필요하다. 공감하면서 같은 위치에서 같은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엄기호 선생의 얘기처럼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과정이 될 것이다. 질문을 던지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언어를 가지게 되고 비로소 자기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읽고, 그 세상에 개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비록 초라하지만 지금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창 밖으로 따뜻하게 보이는 세상이 몹시 차다고 말한다. 문을 나서서 세상과 만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질문을 던진다. 아이들이 사유를 시작한다. 자기 언어로 자신이 놓여있는 상황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아이들은 조금씩 따뜻한 옷을 꺼내입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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