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책꽂이

쿨? 오, No 쿨!

- 달맞이


-『쿨보이』사소 요코 지음 / 이경옥 옮김 / 생각과느낌

‘쿨하다’는 말이 한때 유행처럼 번졌던 적이 있다. 시원시원하고 주위에 휘둘리지 않고 무지 담백할 것 같은 느낌. 세상이 무너져도 똑 부러지게 제 할 말은 다 할 것 같은 당당함. 그래서인지 ‘쿨하다’는 게 마치 신세대의 아이콘처럼 생각된 적이 있었다. 쿨하고 싶었고, 더러는 쿨 한 체 하기도 했다. 헌데 생각해 보니, 쿨 했던 게 아니라 그냥 멋져 보이고 싶었을 뿐이었다. 짐짓 괜찮은 척 제스추어를 취했을 뿐. 이 책의 주인공인 호시노 유처럼.

중학교 2학년 호시노 유는 머리가 좋고 미래에 대한 목표가 확실하다. 엘리트 코스로 바로 돌진하는 게 그의 희망사항이다. 일류 중, 고등학교, 대학교를 나와 좋은 회사에 취직해 실내 온천 풀장이 달린 궁전 같은 집에서 사는 게 인생의 목표다.

그런데 엉뚱하게 일이 꼬여 버렸다. 엄마가 느닷없이 친할아버지가 사는 깡촌으로 이사를 가기로 한 것이다. 단식투쟁을 하겠다고 엄포까지 놓지만 엄마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깡촌에서의 일상은 갑갑하기만 하다. 치매기가 있는 할아버지는 손자를 아들로 착각해서 황폐해진 과수원을 복원할 계획을 세워 호시노 유를 속 터지게 하고, 동급생이라고는 단 네 명뿐인 학교는 이상하기 짝이 없다. 말하기를 거부하는 애, 남자이기를 거부하는 애, 바보스럽기 짝이 없는 애. 이상하기 짝이 없는 시골 아이들은 친밀감을 무기로 막무가내로 들이대고, 호시노 유는 조금씩 자신의 색깔을 잃어간다. 엄마는 농촌에서의 생활에 잔뜩 들떠 피아노 교실까지 연다. 가출을 결행하지만 실패하고, 읍내에서 만났던 불량배 삼인조가 자신을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까지 겹치자 호시노 유는 점점 소심남이 되어간다.

그때 외국에 있던 아버지로부터 자신의 페이스를 잘 파악해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라는 충고가 담긴 메일이 날아온다. 호시노 유는, 예전처럼 백 퍼센트 자신을 드러내며, 호시노 유의, 호시노 유에 의한, 호시노 유를 위한 인생을 살아가겠노라고 다짐한다. 기운을 차려 다시 자신의 인생계획을 매만진다. 읍내에 있는 학원에 나가 모의고사를 보고, 학교에서도 주도적으로 활동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자 생활에 활기가 생기고, 할아버지나 엄마를 배려하는 마음도 생긴다.

하지만 모의고사 성적이 나오자 한순간에 모든 것이 뒤바뀐다. 자신이 원하는 고등학교에 합격할 가능성이 제로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 자신이 그동안 너무나 방만했으며 뒤처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깡촌의 분교에서 미적거리는 동안, 수많은 경쟁자들이 저만치 자신을 앞질러 갔다는 것을 깨닫자 마음이 급해진다. 그래서 급히 도시에서 같이 학원에 다니던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학원 교재나 프린트 물, 문제집을 보내달라고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냉담뿐이다.

그럴수록 호시노 유는 점점 더 공부에 매달린다. 동아리 활동을 쉬겠다고 선언하고, 공부에만 몰두한다. 패션쇼 준비를 하던 친구들이 예행연습을 하자고 해도 냉정히 거절한다. 그러다가 여자 같은 친구에게 “게이”라는 말을 내뱉게 되고, 그 순간 자신이 감춰왔던 비밀을 아이들이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작가는 툭툭 짧고 건조하고 빠르게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쿨한 호시노 유의 성격을 반영하듯 대사는 톡톡 튄다. 세상 물리를 다 터득한 듯 치밀하고 과감하게 자신의 목표를 위해 나아가는 호시노 유를 바라보면 피식 웃음이 난다. 중학교 2학년 아이가 자신의 희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엄마와 직접 담판을 벌이는 장면이나, 가출을 준비하는 장면 등에선 천재 기질이 있는 엘리트 소년 호시노 유가 아니라, 웃자란 애어른 호시노 유가 더 많이 떠오른다. 그래서 ‘쿨보이’라는 닉네임이 ‘not 쿨보이’로 읽힌다.

작가는 뒷부분 반전을 통해서 그동안 깡촌 아이들을 깔보고 우쭐대고 뻐기던 호시노 유가 사실은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상처로 인해 자신을 닫고 사는 불쌍한 아이였다고 말함으로써, ‘쿨보이’가 결국 허세의 다른 이름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도시에서 엘리트로 자라 주위 아이들을 바보 취급하길 잘했던 호시노 유는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과, 그로 인한 환경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죽음을 모두 다 기억하고 있었으면서도, 모른 척 하고 했다.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잊어버리고 싶어 죽은 아버지에게 계속 메일을 썼고, 아버지를 대신해서 자신에게 답장을 썼으며, 그 메일을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아버지가 존재하는 것처럼 연극을 해 왔던 것이다.

깡촌 삼인방 역시 남모를 아픔을 가지고 있었다. 사쿠가 바보처럼 실실거리는 것은 잘난 누나와 매번 비교를 당해 기가 죽었기 때문이다. 열등감을 숨기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었던 셈이다. 마스크를 쓰고 앞머리를 얼굴로 가리고 다니면서 말문을 닫았던 마유 역시 상처가 깊었다. 마유는 초등학교 졸업 때 까지만 해도 왕수다 여자 모임의 리더였을 정도로 달변이었다. 생각했던 것을 거침없이 말해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그동안 자신의 말에 폭소를 터트리며 좋아하던 아이들이 자신을 악마라고 생각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자, 충격으로 말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치노세 역시 여자처럼 예쁘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기분 나쁜 변태 취급을 받거나 소문의 표적이 되어 상처를 받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옷이나 액세서리를 만들면서 상처를 치유해가고 있었다.

작가는 호시노 유로 대변되는 도시 아이들과 깡촌 삼인방의 모습을 통해, 입시 지옥, 경쟁 사회에 찌든 요즘 아이들의 세계를 신랄하게 비난한다. 모의고사에 대한 자료를 달라는 호시노 유에게 친구는 야박하게 말한다.

“왜 네게 그런 걸 말해 줘야 해? 프라이버시 침해 아냐? 너도 여기 살 때 엄청난 비밀주의자라 한 번도 네 성적 남에게 보여준 적 없으면서. 남의 성적 신경 쓰는 녀석은 어쭙잖은 녀석이라며 비난하더니. 그 말, 사실은 경쟁자를 밀어내기 위한 작전이었지. 적에게는 어떤 사소한 정보도 안 준다고 했잖아. … 지금 분명히 말해두겠는데, 난 네가 싫어. 일본에서 사라졌음 할 정도야. 앞으로 연락 하지 마.”

지나치게 이분법적인 설정이긴 하지만, 친구를 적으로 삼아야만 살아남는 도시라는 사회와, 이상함조차 포용하는 깡촌이라는 사회를 통해서 삶의 문제 또한 제기한다.

“…왕짱이 오는 걸 모두 기대하고 있었어. 잘 자랐든 아니든, 머리가 좋든 나쁘든, 부모가 있든 없든 그런 건 전혀 상관없이 그저 친구가 생겨서 기쁘구나, 그런 뜻에서 두근거렸어.”

마유의 편지를 통해, 작가는 아이들이 호시노 유가 어떤 아이인지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노라고 이야기한다. 그 사람을 둘러싼 조건이 아니라, 그저 ‘사람’이기 때문에 기쁘고 두근거릴 수 있었던 것은 깡촌 삼인방이야말로 진정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호시노 유를 맞았고, 그가 자신들을 업신여기고 잘난 척을 해도 기꺼이 그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초중 합동 문화제날 읍내에 모의고사를 치러 왔던 호시노 유는 결국 방향을 돌려 학교로 돌아간다. 불량배 삼인조가 막아서지만, 몸을 써서 과감히 정면 돌파를 한다. 아버지의 단짝친구였던 토오루의 도움으로 무사히 학교에 도착해 무사히 패션쇼를 마친 호시노 유는, 아버지에게 마지막 메일을 쓴다.

호시노 유는 그동안 자신의 언저리를 맴돌던 오토바이를 탄 남자가 아버지의 단짝 친구였다는 것을 안 순간 이렇게 말한다.

“인생이란 정말 역전과 놀람의 연속이다.”

호시노 유에겐 깡촌으로의 이주가 자신의 장밋빛 미래를 가로막는 먹구름으로 여겨졌을 게다. 그래서 끊임없이 탈출하고자 했고, 아등바등 성적에 목을 맸을 게다. 그것만이 자신이 세웠던 쿨한 인생 계획에 다가가는 길이라고 믿었을 테니까. 그러나 깡촌에서의 이주는 그동안 호시노 유를 꽁꽁 싸매고 있던 지나친 엘리트 의식과,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상처를 극복할 수 있게 해 준 축복이었다.

‘쿨’의 매력에 빠져서 적당히 자기 모습을 감추고, 세상 모든 이치를 아는 양 냉소적이었던 때가 있었다. 앞으로도 종종 있을 게다. 그래선지 오래도록 이 책이 생각날 것 같다. 고백하건데 쿨 한 체 하지 말고, 인생 곳곳에 숨어 있는 역전과 놀람의 순간들을 만끽하라는 전언이 사실은 훨씬 더 매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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