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책꽂이

‘그들’에서 ‘우리’로

- 풍경지기 박혜숙

풍경지기의 책이야기

– <4천원 인생> 안수찬 외 / 한겨레출판

“너희들, 요즘 20대를 뭐라고 부르는 줄 아니?”

수업 시작 종이 울린 후 인사를 나누자마자 던지는 나의 질문에 아이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청춘불패’, ‘N세대’ 등의 낱말들이 나오는 가운데 ‘88만원 세대’를 이야기하는 아이들도 있다. 학기 초 우석훈 선생의 책 소개를 기억하는 아이들이 있나보다. 아이들에게 지금의 20대가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는 이유를 간단히 소개한다. 그런 후,

“오늘은 가계부 한번 써보자.” 했더니 아이들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너희는 지금 25세이며 대학은 졸업을 했고, 정규직 직장을 구하다가 취직이 안 되어 비정규직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각자 생활할 지역은 가족도, 친척도 없는 낯선 지역이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없다. 일 년 동안 그 직장에서 일을 하게 될 것이고 매달 임금으로 88만원을 받게 된다. 이렇게 가정하고 한 달 동안의 가계부를 써보자.”

나의 설명을 들은 아이들이 와글와글 떠든다. 그리고 짝이랑, 모둠 친구들이랑 연습장에 열심히 가계부를 적는다.

“선생님, 요즘 방값이 얼마예요?”
“선생님, 수도세랑 전기세도 내야 해요?”
“선생님, 쌀값은 얼마예요?”

아이들 표정은 가계부 적는 엄마, 아빠의 표정과 닮아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숨소리도 들린다. 이걸로 어떻게 살아요. 나는 아이들의 반응에 그저 고개만 끄덕인다.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듯 보인다. 아이들에게 방금 작성한 가계부를 칠판에 적게 한다.

A 모둠
하숙 400,000원, 전기세 13,000원, 수도세 24,000원, 식비 120,000원, 저축 143,000원, 교통비 50,000원, 용돈 100,000원

B 모둠
하숙 500,000원, 교통비 30,000원, 용돈 200,000원, 기부 70,000원, 저축 80,000원

C 모둠
하숙 600,000원, 전기세 30,000원, 수도세 70,000원, 휴대폰 요금 100,000원, 식비 70,000원

이 학급은 남학생반이다. C 모둠이 칠판에 가계부를 적기 시작하자 아이들이 폭소를 터뜨린다. 다른 학급에서는 음식을 마트 시식코너에서 때우거나 교회에서 때우겠다고 하는 아이도 있었다. 또 어떤 아이들은 교통비를 0원으로 계획했다. 걸어다닐 거라고 했다. 그럼 부모님은 일 년 동안 한 번도 뵙지 못하겠네 했더니 아이는 그제서야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살림을 해보니 어떠냐고 하니 아이들은 너무 힘들다고 외친다. 너희들의 가계부와 부모님들의 가계부는 어떻게 다를까 하고 물으니 부모님의 가계부에는 ‘의료비’, ‘양육비’, ‘교육비’ 등등이 포함된다고 대답한다. 부모님이 겪으시는 마음고생을 아이들이 어렴풋이 헤아려본다.

가계부 쓰기가 끝난 후 『4천원 인생』(안수찬 외, 한겨레출판)의 한 부분을 소개했다. 마트에 근무하면서 20만 원짜리 고시원에 방을 얻은 기자 이야기였다. 방값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고시원에 방을 얻었는데 그곳 생활이 얼마나 열악한지 소개하고 있는 대목을 읽어주었다. 그리고 고시원은 원래 고시나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공부를 하는 곳이지만 지금은 도시빈곤층의 주거지 기능을 하고 있음을 들려주었다.

이 책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작년이었다. 남편이 하루는 『한겨레21』을 내밀었다. 특집기사로 노동일기를 연재하는데 기자가 직접 빈곤노동일을 하면서 쓴 노동일기라고 했다. 수업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편이 덧붙였다. 그때 읽었던 기사가 ‘감자탕 노동일기’였다.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음식점마다 직원 수가 줄고 한 사람이 맡은 일은 늘어나서 하루 종일 쉴 사이 없이 일을 하는 식당 아줌마들은 식당 종이 울릴 때마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자동 반응을 한다. 하루 12시간을 일한 후 퇴근하면 다시 가족들 뒤치다꺼리에 뻗어버린다. 수업시간에 이 기사를 복사해서 남학생들과 함께 읽었다. 기사를 읽는 아이들의 표정이 숙연해졌다. 아이들은 그 속에서 어머니의 얼굴을 보는 것 같았다. 나도, 아이들도 그 기사를 본 후에는 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빨리 갖다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2009년 7월부터 경기 안산의 가전제품 공장, 서울의 갈빗집과 인천의 감자탕집, 경기 마석의 가구공장, 서울 강북의 대형마트 현장에 4명의 기자가 각각 들어가 한 달 동안 일했다. 그 고단한 일상을 기록하여 < 한겨레21>에 연재했고 이를 최근에 책으로 펴냈다.

내가 맡은 일은 마트 양념육 매대의 판촉 직원이었다. 호객도 하고 시식용 고기도 구웠다. 취업이 결정되니, 다른 걱정이 생겼다. 나는 신문기자이지만 가끔 얼굴을 대중에게 내놓는다. 작은 사진이 박힌 칼럼도 쓰고, 드물지만 대중 강연이나 토론회에 나서는 일도 있다. 마트에선 하루에도 수천 명의 손님이 내 앞을 지나갈 것이다. “어머, 기자님이 여기서 뭐하세요?” 그런 사람이 하나라도 생기면 어쩌나, 출근 전부터 근심이 적지 않았다.

완전한 착각과 기우였다. 마트에 오는 손님들은 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얼굴을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그것은 작은 충격이었다. 마트 노동자는 형형색색의 유니폼을 입고 있다. 나는 하얀색 주방장 모자에 연보라색 유니폼을 입고, 붉은 색 앞치마를 둘렀다. 세상에서 가장 눈에 잘 띠는 옷이다. 그 옷을 입고 목청을 높였다. “양념육이 있어요. 제주도 꺼먹 돼지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에 잘 들리는 박자와 톤으로 손님을 불렀다. 그러나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손님들은 마치 그 자리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나의 존재가 완전히 무시당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마트 노동은 ‘투명 노동’이었다.
– 히치하이커 노동일기

늘 스스로를 가둔 채 일을 해야 하는 그들의 노동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단속에 대한 그들의 깊은 두려움을 잘 아는 한국인 동료들도 물론 함께 먼지와 소음을 먹고 산다. 말을 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도 ‘단속’이 그들의 영혼을 얼마나 좀먹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눈은 작업대를 향하고 있지만, 머릿속 관심은 늘 공장 문에 쏠려 있다. 언제 단속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 ‘불법 사람’ 노동일기

한 달은 안산 시내버스 노선을 다 외기도 부족한 시간입니다. 하지만 그 기간 일을 하며, 임금을 시급 5,000원, 1만 원으로 올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빈곤 노동이 유전만은 되지 않는 내일을 모색해주는 사회가 더 절실함을 충분히 봅니다. 부르길 ‘희망’이라 하는, 그것만이 오늘 살아야 할 이유가 될 테니까요.
– ‘9번 기계’ 노동일기

이런 책을 읽으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우울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들’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연민, 물론 중요하다. 그런데 그 바닥에는 나와의 거리감이 존재한다. 내가 그 속에 있지 않다는 안도감, 나는 그 속으로 가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 그들을 위해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부채감……. 이 책을 읽으면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자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의식 밑바닥에는 기자와 ‘그들’의 삶이 다른 지평에 존재한다는 의식이 있었다. 기자들이 한 달 동안 ‘그들’과 똑같이 고생하며 생활한 기록이지만 기자들에게는 결국 한 달 동안의 ‘특집’일 뿐이고 ‘그들’에게는 평생의 ‘일상’이라는 의식.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반응한다. 지금까지는 투명인간처럼 여겼던 마트 노동자의 얼굴을 이제는 들여다 볼 것이다. 그리고 예전처럼 함부로 불평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은 어렵다. 혹시 자신도 그렇게 살게 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자신이 ‘그들’처럼 살지 않기 위해서는 결국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래서 이런 책을 아이들에게 권할 때는 조심스럽다. 오히려 입시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책이 될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이 아이들에게 빈곤노동자로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게 되는 시간으로 채워져야 하고 우리들 자신이 놓여있는 현실에 대한 자각으로 채워져야 한다. 그런 자각을 바탕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좀더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이런 과정 없이는 이 책의 가치가 한낱 ‘연민’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도덕적으로 합리화하는 시간을 갖게 하는 것뿐이다.

며칠 전 한홍구 선생의 강연이 있었다. 한국 현대사의 고통을 들여다보고 그 기원을 찾는 내용이었다. 강연이 끝난 후 한 학생이 ‘이런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지금 우리들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했다. 한홍구 선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예전 자신의 세대가 싸워온 방식이 내 자신을 희생시키며 ‘그들’을 위해 싸워나가는 방식이었지만 지금은 개인이 행복을 추구하면서 그것이 공공선과 일치해나가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속한 계급성을 인식해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이제 일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었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싸우는 것은 결국 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일이며 사회 구성원 모두의 행복을 추구하는 일이다.

한홍구 선생의 가르침처럼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내 자신이 ‘연민’을 넘어서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내 자신이 놓인 자리, 우리 아이들이 놓일 자리가 결국 그 자리임을 깨닫고 우리가 함께 행복하기 위해서 어떤 몸짓들 나눠야할지 고민하기 시작해야겠다.

감히 바라는 바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드러내준 비정규직․워킹푸어의 현실을 우리 사회가 있는 그대로 느끼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진지한 논의를 다시 시작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 책을 관통하는 우리의 메시지처럼, 이 문제는 ‘그들’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 이 책의 머리말 중에서

– 풍경지기 박혜숙

응답 2개

  1. 이야기캐는광부말하길

    저도 요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4천원 인생이라는 책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다함께 행복하고 웃을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이라 꿈꿔봅니다

  2. 말하길

    항상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이 책이 아이들에게 가난에 대한 공포와 연민의 감정만 갖게 하지 말아야 할 텐데요. 가난한 자들의 용기와 지혜, 가난하기에 가질 수 있는 공동체적 삶의 가능성과 꿈까지 갖게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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