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책꽂이

문화로 먹고살기, 함께 먹고살기 – 『문화로 먹고살기』, 우석훈 지음, 반비

- 풍경지기 박혜숙


1.

뮤지컬을 보았다. 제과회사 직원들이 전쟁 같은 일상을 반복하면서 지쳐간다. 그러던 어느날 신제품의 홍보영상물을 만들어 좋은 결과를 얻는다. 이 일을 계기로 직장인 밴드를 조직해서 서로간의 우정을 다져 나간다. 회사가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한다. 그로 인해 회사의 재정이 어려워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회사측은 정리해고를 시작한다. 밴드에서 보컬을 담당한 주인공이 해고될 위기에 놓이게 된다. 그는 비정규직 직원이었다.

지금까지 보았던 뮤지컬은 아무리 현대 사회의 문제를 현실감 있게 다룬 뮤지컬이라도 내게는 ‘즐거운 문화 공연’이었다. 뮤지컬 속 ‘음악’이 관객인 나와 작품 속 상황 사이에 거리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뮤지컬은 그렇지 않았다. 공연을 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음악을 하고 싶어 했지만 현실적 문제로 결국 포기하던 제자가 생각났고, 공무원 시험에서 실패를 거듭하며 점점 사람들에게서 멀어져 가는, 그래서 연락이 끊긴 제자가 생각났다. 그리고 비정규직으로 직장을 다니고 있는 남자친구를 보며 마음 아파하는 후배가 생각났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저 배우들은 과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얼마나 힘든 과정을 견뎌내었을까, 뮤지컬 배우로 생활하면서 경제적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마음이 무거웠다.

2.

며칠이 지났다. 손전화에서 태준이의 전화번호를 검색했다. 2008년 고등학교 졸업을 한 후 지금은 군대 제대까지 했는데 몇 년 전의 전화번호가 그대로 있을까? 혹시나 하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연결이 되자마자,

“네, 선생님.”

하는 목소리가 활기차게 들린다. 태준이었다. 반가웠다. 예전보다 목소리가 더 어른스러워졌다. 안부인사를 나눈 후 나는 전화한 이유를 말했다. 책 소개하는 글을 쓰면서 네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기억이 흐린 부분이 있어 전화했다고.

태준이는 영화를 좋아했다. 앞으로 영화관련 일을 하고 싶어했다. 수능이 끝난 후 대학 원서를 쓸 때였다. 본인은 방송, 영화와 관련된 학과를 가고 싶어했다. 그렇지만 부모님은 취업이 잘 되는 학과에 지원하길 바라셨다. 그 즈음 태준이 아버지께서 몸이 안 좋다는 이야기도 들었기 때문에 나는 태준이를 보면 안타까웠다. 하지만 뭐라고 말해 줄 수 없었다.

어느날, 손전화기가 울렸다. 낯선 번호였다. 전화를 받아보니 태준이 어머니였다. 나는 태준이 담임이 아니었기 때문에 깜짝 놀랐다. 태준이 진로 문제 때문에, 자세히 말하자면 대학진학 문제로 내게 전화를 하신 것이었다. 수업시간, 독서모임활동이 인연이 되어 태준이가 나를 잘 따르기 때문에 전화를 주신 모양이었다. 어머니께서는 태준이의 전공 선택에 관한 고민을 이야기 하시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어머니께서 내게 전화를 하시기까지 얼마나 고민을 하셨는지 보이는 듯했다.

내가 태준이 어머니에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지켜본 태준이의 모습에 대해서만 말씀드렸다. ‘태준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푹 빠지는 학생입니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자기가 원하지 않는 전공을 선택했을 때 태준이는 그 공부를 열심히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대신에 자기가 원하는 일은 정말 열심히 할 것입니다. 그리고 태준이는 책을 읽는 능력, 영화를 읽어내는 능력과 정성이 뛰어납니다.’고 말씀드렸다.

전화 통화 이후 태준이를 볼 때마다 조심스러워서 어느 학과에 등록했는지 묻지 못했다. 본인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생각만 했다. 며칠 후 담임 선생님에게 여쭤봤더니 취직이 잘 되는 한국해양대학교 해사운송학과에 등록할 거라는 얘기만 들을 수 있었다. 대학별 등록이 끝난 후 태준이를 복도에서 만났다. 최종 결정은 어떻게 했는지 물었다. 태준이는 환하게 웃으며 부산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최종 등록을 했다고 말했다. 나는 무척 기뻤다. 대학 입학식을 앞둔 어느날, 나는 풍경아이들과 저녁식사를 한 후 공원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은 고등학교 시절을 추억하기도 하고 앞으로 만들어가고 싶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때 태준이가 등록 마감일에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등록 마지막날이었다. 한국해양대학교에 가서 등록을 하고 왔다. 집에 와서 등록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부산대 신문방송학과를 컴퓨터 화면에 띄워놓고 한 시간 동안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어머니께서 지켜보셨다. 자식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라고 말해주지 못했던 어머니는 얼마나 마음 아프셨을까? 결국 어머니께서는 태준이에게 네가 원하는 곳에 등록하라고 말씀하셨고 태준이는 무척 기뻐하며 한국해양대학교 등록을 취소하고 부산대 신문방송학과에 등록을 했다. 태준이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영화동아리에 가입해서 활동을 하다가 군대에 다녀왔고 지금도 영화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3.

학교 현장에서 만나는 아이들 중에 태준이와 같은 아이들이 많다. 그 아이들은 영화를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문학을 좋아하고, 만화를 좋아한다. 그러나 자신의 진로로 그런 일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이렇게 말한다. “얘야, 그거 잠깐이다. 그 일 해서 밥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니? 결국 힘들어 포기하고 만다. 시간만 낭비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서 취직 잘 되는 학과로 가라.” 물론 이런 조언을 듣고 고민하고 갈등하지만 진정으로 원하는 아이들은 열정을 가지고 그 길로 들어선다.

이런 분야가 문화산업 분야이다. 우석훈 선생은 『88만원 세대』,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를 비롯해 많은 책을 통해 20대의 삶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번에는 그 시선이 문화산업 분야에 가까이 다가간다. 방송, 출판, 영화, 음악, 스포츠의 다섯 분야가 지금 어떠한 상황에 놓여있는지를 살핀다. 직접 그 분야의 일을 하시는 분들을 만나 조사한 자료를 토대로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아이들이 진로를 고민할 때 주로 찾는 책들이 가진 과대포장은 없다. 우리의 음악산업이 얼마나 무너졌는지, 우리의 방송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 출판계는 어떤 위기에 봉착해 있는지 들려준다. 이런 현실 속에서 문화로 먹고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혹은 할 수 있는지를 제시한다. 그리고 이를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제시한다.

이 책을 읽고 난 이후에도 계속 내 머릿속에 맴도는 낱말은 ‘협업’이다. 다소 어색한 낱말이지만 그 속에 담긴 ‘함께 함’의 의미는 우석훈 선생이 지금까지 저술한 모든 책의 바탕에 녹아들어 있다.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에서도 중요하게 제시하는 것이 ‘함께 함’이었다. 신자유주의가 우리 삶을 황폐화시키면서 불안과 공포가 각 개인에게 내재화되었고 우리는 자기만의 고립된 방에서 누군가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친구, 안녕?’하며 고립된 방의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같은 상황에 놓여있음을 알고 함께 진을 짜서 이런 현실을 타개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지금까지 문화산업 분야는 개인의 재능으로 가능한 분야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문화산업 분야야말로 여러 사람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몸을 부대끼면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분야임을 알게 되었다. ‘함께’, ‘연대’가 이 글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 ‘어떻게 하면 나라도 이 분야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하는 고민은 설 자리가 없다.

저자가 제안하는 방안들에 대해 처음에는 ‘와, 신기하다. 이렇게 접근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과연 가능할까? 너무 행복한 꿈으로 가득찬 것은 아닐까?’란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 글을 쓰기 위해 책을 다시 읽어나가고 생각을 정리해 나가면서 드는 생각은 조금 다른 차원의 생각이었다.

우리가 원자력발전의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하고 대체 에너지 문제를 고민할 때 가장 중요한데도 놓치고 있는 문제가 있다. ‘과연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형태가 옳은가?’. 지금 우리 삶의 형태는 너무나 많은 에너지 소비를 필요로 한다. 이런 삶에 대한 반성, 변화 없이 원자력 발전에 대해 반대하고 대체 에너지 개발을 주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현실적인 목소리로 살아날 수 있을까? 지금 내 삶에 대한 성찰이 없이는 어떤 해결 방안도 실현 불가능한 꿈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얻은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함께 함’. 문화산업이라는 분야는 토건처럼 결과물이 우리 눈에 바로 드러나는 분야가 아니다. 우리가 예전보다 더 깨끗하고 넓은 집에서 사는 것이 우리 가족을 더 행복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집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가족의 생활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스포츠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엄마와 딸이 함께 책을 읽고 서로의 느낌을 나누는 대화가 그 집을 행복으로 채워나가기 때문이다. 이런 가정을 꾸리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해야 할 일들을 이 책은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4.

예전에는 영화와 관련되는 일을 하고 있을 태준이 모습만 떠올렸다. 하지만 이제는 태준이가 주위 동료들과 함께 영화를 찍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무대 위에서 열심히 노래하고 춤을 추던 뮤지컬 배우들, 그들도 혼자가 아니다. 그들이 서로 도와가며 한 편의 작품을 무대 위에 올리듯이 어떻게 하면 뮤지컬을 하며 먹고 살 수 있을까를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태준이는 왜 영화가 좋냐는 나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알고 있는 좁은 세상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태준이가 영화관련 일을 하면서 좀더 넓은 세상을 만났으면 좋겠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넓은 세상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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