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책꽂이

어떤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가?

- 김대경

나는 현재 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 모임의 연구모임 중 하나인 권장도서목록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다. 얼떨결에 대표를 맡은 지 햇수로는 5년째에 접어든다. 정작 학교 도서관을 담당해 본 경험이 전혀 없는 내가(다행히도 내가 재직하는 학교에서는 학교 도서관에 전문 사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에는 아직도 사서가 없이 일선 교사가 도서관일까지 떠맡아야 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 모임에 나가게 된 것은 전적으로 내가 책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십여 년 전 관악동작지역 전교조 분회 참실대회에서 내가 독서 사례를 발표한 일이 있었는데, 마침 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모임 서울지역 모임의 대표였던 백화현 선생님이 청소년을 위한 추천도서 목록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권유를 받고 이 모임에 첫발을 디디게 된 것이다. 그 동안 여러 멋있는 선생님들과 인연을 맺는 것도 좋았고, 수년 전에는 서울모임 선생님들과 함께 유럽 도서관을 방문하는 특별한 기회를 가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권장도서목록 모임을 이끌어가는 일은 나에게 또 하나의 커다란 난관이었다. 아무리 책을 좋아한다 하더라도 책을 추천하기 위해 억지로 책을 읽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적어도 학생들에게 책을 추천하기 위해서는 교사가 직접 읽어보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게다가 요즘처럼 학교 평가니 교사 평가니 해서 학교 생활만으로도 벅찬 교사들에게 조직 내에서 뭔가 뜻깊은 일을 한다는 것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힘든 일이다.

‘학교 도서관에 비치하면 좋은 책들’이라는 화두를 내걸고 몇 년 전에는 만화 추천 목록을 만들었고, 조만간 청소년 성장소설 목록을 발표할 예정이다. 격주로 회의를 거듭한 지 벌써 60여 회가 넘었다. 나는 딱 한번 절친한 친구가 시부상을 당했을 때 회의에 빠졌을 뿐, 지금까지 모든 회의를 빠짐없이 나가서 진행해 왔다. 하지만 아직은 신규에 가까운 사서 선생님들이나 국어 선생님들은 여러 가지 바쁜 일로 인해 회의에 빠지는 일이 부지기수이다. 과제를 다 해오지 못하는 일은 더욱 많았다. 그럴 때마다 회의감이 밀려들곤 했다. 내가 리더십이나 역량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 우리 모임이 하는 일이 과연 의미 있는 일인가? 아직 어린 두 아이들을 집에 덩그러니 놔두고 (내가 회의를 나가는 날은 녀석들 치킨 사 먹는 날이 돼 버렸다) 이렇게 회의에 나오는 일이 과연 바람직한 행동인가? 등등.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일을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 아니 멈출 수가 없다. 왜냐 하면 이 일은 내 가슴을 뛰게 만들기 때문이다. 힘들 때마다 옆에서 격려하고 힘을 실어주는 동료 선생님들이 있고, 쉬는 시간마다 종종 내 자리로 달려와 책을 빌려가서는 너무 감동적이었다고 한참 수다를 떠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나는 힘이 솟는다. 그래서 교무실 내 책상과 캐비닛 안에는 참고서와 문제집 대신 다양한 주제의 책들이 잔뜩 꽂혀 있었다. 선생님들과 학생들에게 빌려 주기 위해서다. 학교에 있을 때는 한 달에 한번 꼴로 독서소식지를 발행해서 선생님들에게 배부하기도 했다. 거기에는 교사독서모임 후기와 내가 읽은 책에 대한 간략한 소감, 읽을 만한 글, 자녀들에게 권하면 좋은 책, 간단한 독서 퀴즈 등 책과 관련한 기사와 소식을 담았다. 간혹 선생님들은 그 일을 하는 게 힘들지 않느냐고 하시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소식지를 만들 때만 가장 힘이 나고 기분이 좋아진다. 이 무슨 조화일까? 또한 현재 청소년을 대상으로 좋은 책을 추천하는 곳이 그리 많지 않다. 직접 책을 읽고 자신 있게 권해주는 곳은 책따세(책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교사들 모임) 정도밖에 없는데, 이런 비슷한 모임이 많이 생겨서 더 다양하고 좋은 책을 추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우리 모임을 꾸려가면서 생각해 보니, 이런 성격의 모임이 유지되기가 얼마나 힘든지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쉽고 단순해 보이는 일, 즉 책을 직접 읽는 일이 무엇보다도 힘들고 고단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 모임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회의를 빙자하여(?) 선생님들과 학교 이야기, 도서관 이야기, 책 이야기를 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서로에게 털어놓고, 힘이 되어주는 조직이 과연 얼마나 될까 생각하며 모임을 끝내고 돌아올 때마다 다시 힘을 얻곤 한다.

내가 독서교육에 몸을 담은 지 십년 쯤 되던 해에는 갑자기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고 심한 상실감이 밀려오기도 했다. 책이 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과 답답함이 나를 짓눌렀다. 그러나 육아휴직을 하고 나서 다시 책을 들고 읽으면서, 나는 책이 주는 위안과 배려와 깨달음의 묘미를 다시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느끼고 있을 무렵, 만난 책이 바로 『가슴 뛰는 삶의 이력서로 다시 써라』이다.

유럽 최고의 명문대학이라고 하는 스위스 장크트갈렌 대학을 나와 고액 연봉과 탄탄대로의 승진을 거듭하던 두 젊은이가 어느 날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먹고 사는 데 걱정 없이, 필요한 것 이상으로 물질적으로도 이미 많은 여유를 누릴 수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그렇게만 계속 살아간다면, 인생 말미에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없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매일매일 생활 속에서 찾을 수 없던 무언가 중요한 것이 부족해 보였다. …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을까? 우리가 죽고 나면 친구들과 가족들은 우리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 혹시 이렇게 말할까? “그 친구는 돈 많이 벌려고 매일같이 사무실에서 밤낮으로 사투를 벌인 사람이라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의미와 성취감을 주는 일이 아니라면, 어떤 대안들이 있을까?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이익이 아니라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무언가를 통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을 때,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긍정의 임팩트를 미칠 때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라는 가설을 세우고 일 년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230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 중 23명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냈다.

이 책에서 찾은 그 23명의 삶의 공통점을 찾아본다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서 개인적으로는 이미 상당한 재력과 명예를 갖춘 사람들이 많았다. 이 부분에서 평범한 우리들과는 좀 거리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그들은 그 상황에서 어느날 문득 어떤 일을 계기로 자신의 삶에 깊은 회의감을 느낀다. 둘째, 그러고는 자신의 주변 상황을 돌아본다. 그 때 우연적이면서도 결정적인 계기와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서슴지 않고 거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행동으로 옮긴다. 셋째, 자신이 선택한 그 일이 그들을 수년간 혹은 수십 년간 어렵고 힘든 상황으로 몰아간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들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심지어 당장 죽음을 당하게 되더라도 자신은 그 일을 포기할 수 없다고까지 말한다. 넷째, 그들은 그 일을 혼자서 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동참하는 가족이나 친구들, 동료들이 함께 있다. 그리고 일의 결과보다는 일을 하는 과정 그 자체에서 참된 의미를 찾아낸다.

어찌 보면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사회적 기업가로서의 롤모델이 많아서 일반적인 독자들의 관점에서 볼 때는 현실감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살아가면서 자신의 일과 삶의 방식에 대해 되돌아보게 될 때,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과 비슷한 고민을 할 때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 때 이 책은 ‘어떤 일을 할 때 인간은 더 행복한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더 인생을 값지게 살았다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는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을 하니, 힘들어도 행복하다’는 그들의 말에 나도 많은 용기와 공감을 얻었다.

본의 아니게 육아휴직을 연장하게 되어, 다시 일 년을 학교에 나가지 않고 쉬게(?) 되었다. 그런데 왠지 이 시간이 내게는 단지 휴식의 시간이라기보다는 삶이 내게 주는 또 다른 기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을 좀더 찾아본 다음, 나를 꼭 필요로 하는 곳에 가야 한다는 믿음이 생긴다. 나를 가슴 뛰게 하고, 힘은 들어도 보람 있고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그 일이 무엇일지 생각하면서 여희숙 선생님이 쓴 『도서관 친구들 이야기』를 읽고 있다. 그 책에는 내가 사는 곳 가까이에 있는 일원청소년독서실의 사례도 나온다. 지역 도서관을 살리자는 취지에서 여희숙 선생님이 하고 있는 활동들(도서관 봉사활동, 도서관을 살리기 위한 노력, 다양한 독서 모임 등을 하고 있다)을 읽고 있자니 또 가슴이 뛴다. 다음에 쓸 글은 아마 이 책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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