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책꽂이

작은 공동체, 작은 꿈틀거림

- 풍경지기 박혜숙

풍경지기의 책이야기 18

『가정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마을로』, 조한혜정 외, 또 하나의 문화

1

“선생님, 떨려요.”
“선생님, 「눈길」 다 못 읽었는데 어떡해요?”
1학년 7반 수업 시간이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소란스러웠다. 아이들마다 긴장한 표정이었다. 한 아이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교실 앞 공간을 청소하고 있었고 교실 뒤편에는 아침에 내가 부탁한대로 참관자용 빈 의자 여섯 개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문이 열렸다. 아이들이 긴장한 채 뒷문을 바라보았다.
“오신다, 오신다.”
아이들이 외쳤다. 그러나 문이 열리며 등장한 사람은 화장실에 다녀오느라 늦게 들어오는 아이였다. 반 친구들의 반응에 그 아이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자, 손님 오셨다. 인사하자.”
내가 장난으로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아이들이 웃으며,
“안녕하세요.”
하고 외쳤고 문을 열고 들어선 아이는 빨개진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학교 행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너희들 평소 수업하는 모습을 보러 오시는 거니까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나 역시 평소보다 긴장한 상태였다.

오늘은 연세대 문화인류학과에 계시는 조한혜정 선생님 강연회가 울산에서 열린다. 이 행사를 위해 전날 울산에 내려오신 선생님은 학교 수업을 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오전에는 인근 중학교 수업을, 오후에는 고등학교인 우리 학교 수업을 참관하시기로 했다. 조한혜정 선생님 제자 한 분과 인근 학교에서 오신 국어교사 두 분, 그리고 우리 학교 동료교사 세 분과 교감 선생님도 참관을 하겠다고 했다. 잠시 후 선생님들이 들어오셨다.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아이들. 선생님들이 교실 뒤편 자리에 앉으셨다.

오늘 저녁에 있을 조한혜정 선생님 강연회에 참가하기 위해 책을 읽고 있는 학생이 네 명 있었다. 그 아이들을 교실 앞으로 나오게 했다. 가장 먼저 웃는 사람에게 조한혜정 선생님 소개를 맡긴다고 했다. 웃음을 참기 위한 아이들의 다양한 표정으로 인해 교실 안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결국 서원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서원이는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 아이를 거부하는 사회』(또 하나의 문화)를 읽으며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어른을 만나서 반가웠다고 조한혜정 선생님을 소개했다. 그리고 이어서 내가 엄기호 선생님의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푸른숲)란 책으로 조한혜정 선생님을 소개했다. 그 책에는 저자가 스승인 조한혜정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이 담겨있었다. 이렇게 소개가 끝나자 조한혜정 선생님이 일어나셔서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셨다.

수업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이청준의「눈길」을 읽고 모둠별로 질문거리를 만드는 날이다. 먼저 아이들에게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기 삶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것처럼 오늘은 모둠별로 작품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눈 다음 좋은 질문을 만들어보자고 했다.

아이들의 토론이 시작되었다. 참관하시는 선생님들도 각 모둠에 앉아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지켜보셨다. 나는 활발하게 토론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간혹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둠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민이의 모둠에서 약간은 흥분된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상민이와 소연이는 이 작품의 주인공인 아들이 나쁜 사람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노모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고 ‘빚이 없다’는 말만 반복하는 아들은 자기만 아는, 인정없는 사람이라고 분노했다. 두 아이는 나의 동의를 구했다.

“그러니? 그런데 다영이 표정을 보니 생각이 좀 다른 것 같네. 다영아, 너도 아들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그 모둠의 다영이는 흥분한 친구들과는 달리 차분하게 친구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그럼 됐구나. 너희들이 다영이를 설득해 보렴.”
하고 나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아이들의 토론이 더욱 진지해지고 있었다. 아이들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친구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있었다.

2

동료교사들과 ‘희망찾기’라는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작년과 올해, 두 해 동안 한 학기에 한 번씩 우리가 만나고 싶은 저자를 모시고 강연회를 열었다. 강연회가 있기 전에는 저자가 추천해준 책 세 권을 한 달에 한 권씩 읽고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 2학기에는 조한혜정 선생님을 모시고 강연을 듣기로 했다. 그래서 강연을 앞두고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책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엄기호, 낮은산), 『쓰레기가 되는 삶들』(지그문트 바우만, 새물결), 『추방과 탈주』(고병권, 그린비)를 읽고 토론을 했다. 그리고 네 번째 모임에서는 대안을 모색해보자는 의미에서 『가정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마을로』(조한혜정 외, 또 하나의 문화)를 읽고 토론했다.

『가정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마을로』는 ‘돌봄과 배움의 공동체’를 꿈꾸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다. 배려와 돌봄의 사회를 상상하는 사람들이 모여 워크숍을 하면서 나눈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돌봄 사회의 구성’, ‘돌보다, 배우다, 소통하다’, ‘마을 재구성 프로젝트’로 이루어져 있다. 과거에 우리에게는 마을이 있었다. 어른이 아이를 돌보고 아이가 어른을 돌보았다. 그러나 산업화, 신자유주의 체제를 거치면서 마을이 사라졌다. 그와 함께 ‘배려’와 ‘돌봄’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 치열한 경쟁이 뿌리내리고 불안이라는 열매가 가득 달렸다. 불안은 시간이 갈수록 증폭되고 세상을 회의적으로, 냉소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 책은 이런 세상에 어떻게 ‘배려’와 ‘돌봄’의 가치를 살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직접 그 가치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삶을 소개하고 있다.

예전 대안교육 직무연수를 받은 적이 있다. 공교육 교사와 대안교육 교사가 어우러지는 자리였다. 그때까지 나는 대안교육은 대안학교에서나 가능하며 내가 있는 공교육 현장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연수 기간 동안 대안학교 교사들과 공교육 교사들이 만나 배우고 토론하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이 대안교육이구나.’였다. 그러나 그 결론을 잊고 지냈다.

최근에 희망찾기 모임에서 함께 공부를 하면서도 우리는 지금 내가 서있는 현장에서 대안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말하는 마을, 공동체는 항상 현실을 떠난 곳이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돌봄과 배움이 있는 공간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대안학교 교사들 이야기 등을 읽으면서 내가 만나는 아이들, 내가 만나는 동료교사들과 함께 생활하는 시간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리고 잊고 있던 그 결론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주로 모둠토론 수업을 진행한다. 모둠은 네 명으로 이루어지며 아이들이 토론을 통해 질문거리를 만들고 이 질문거리를 중심으로 다시 모둠토론을 한다. 토론이 끝나면 한두 모둠에서 토론내용을 발표한다. 발표가 끝나면 질의응답시간을 갖는다. 아이들이 서로 토론하면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길 바랐고, 자신이 아는 것을 친구들에게 나눠주길 바랐다. 이 관계가 작은 공동체였구나 하는 생각이 그제서야 들었다.

물론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특히 ‘배움의 공동체’를 소개하는 글을 읽으면서 부족한 부분들이 보였다. 모둠토론 후 발표를 할 때 내가 아이들에게 요구했던 것은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모둠토론을 통해 어느 정도 조율된 모둠 전체의 생각이었다. 그것은 집단 속에서 나를 죽이도록 강요하는 교육이었다. 아이들은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이 가진 생각을 다듬어 나간다. 그래서 토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듣기’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생각은 보다 넓고 깊어진다. 그래서 ‘배움의 공동체’에서는 “우리 모둠에서는……”이 아니라 “나는……”으로 시작되는 표현을 하도록 이끈다. 이런 지도는 아이들로 하여금 함께 배우는 기쁨, 서로 돌보는 기쁨을 통해 ‘배움’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든다. 그리고 수업과정에서 보이는 아이들의 ‘의미없는 침묵’도 존중하게 된다.

내 수업에서 교사인 나를 조금 더 지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들로 하여금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면서, 친구의 침묵조차도 존중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해야겠구나. 이것이 결국 아이들이 서로를 돌보는 과정이며, 교사가 아이를 돌보고 아이가 교사를 돌보는 과정이 되는 것이구나.

3

모둠토론을 시작한 지 15분~20분 정도 지난 후 토론활동을 마무리하도록 했다. 그리고 모둠별로 만든 질문거리를 칠판에 적도록 했다. 각 모둠마다 정성껏 만든 질문거리 두 가지씩 칠판에 채워 나갔다. 그런 후 왜 그런 질문을 던지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는 아이들이 만든 질문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진 후 이 작품에서 담고 있는 삶의 이야기를 자신의 삶에 비추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겠다고 했다.

국어 시간 다음 시간은 학급회의 시간이었다. 이 시간에는 조한혜정 선생님과 아이들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아이들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조한혜정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한혜정 선생님은 아이들과 따뜻한 눈빛을 나누시며 현재 우리가 어떤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지 들려주셨다. 선생님의 환대가 아이들 가슴 속에 씨앗이 되고 있었다. 저녁 7시, 신정중학교에서 강연회가 시작되었다. 조한혜정 선생님은 차분한 목소리로 ‘돌봄이 사라진 우리의 삶’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현재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불안에 길들여져 왔는지를 들려주셨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들려주셨다.

강의가 끝난 후 질의응답시간이었다. 이번 강연회를 가장 열심히 준비한 사회자 선생님이 긴급 제안을 했다. 울산에 있는 여러 풀뿌리 단체에서 오신 분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갖자는 것이었다. 강연회를 준비하면서 조한혜정 선생님을 만나 뵙고, 하자센터 창의밋션 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온 그 사회자 선생님이 희망찾기 모임에서 제안했던 것도 우리가 중심이 되어 울산 지역에서 뜻있는 활동을 하고 계신 분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허브가 되어보자는 것이었다. 그런 꿈을 담은 제안이었다.

울산 대안문화 공간 페다고지, 한살림, 어린이책시민연대, 울산여성문화공간, 더불어숲, 희망찾기와 울산국어교사모임 내 독도랑 모임 등 여러 모임 대표가 나와 각 모임을 소개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이것이 『가정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마을로』에서 소개하고 있는 ‘돌봄’의 자리였다. 그리고 조한혜정 선생님께서 강조하신 ‘상호 호혜, 환대의 공간’을 일구는 자리였다. 지금까지 희망찾기 모임을 하면서도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지금 여기’를 벗어난 곳이라는 느낌 때문에 답답했는데 그 감정이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움직이고 있구나. 우리가 끈이 되어 여러 사람들이 만나고 있구나. 그리고 서로 돌보면서 꿈틀거리고 있구나. 그리고 아이들도 수업시간에 서로를 바라보며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었구나. 이 작은 공동체, 이 작은 꿈틀거림이 의미있는 작업 아니었을까?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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