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책꽂이

전쟁의 광기, 그 참혹함

- 달맞이


달맞이의 책꽂이
전쟁의 광기, 그 참혹함
-『이름을 빼앗긴 소녀 에바』조안 M. 울프 글 / 유동환 옮김 / 푸른나무

‘독일의 순교자’, ‘프라하의 도살자’ 상반된 이 별칭은 라인하르트 트리스탄 하이드리히에게 주어졌던 것이다. 하이드리히는 히틀러가 가장 신뢰하던 부하였으며, 나치를 위해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전쟁기계였다. 유럽에 있는 모든 유태인을 말살시켜 버리겠다며 ‘최후의 소탕작전’을 세운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레지스탕스에게 암살당하자, 나치들은 그에게 ‘독일의 순교자’란 거룩한 이름까지 부여했다. 우표까지 발행하며 그를 추억했다.

살아서는 ‘홀로코스트’ 계획을 세워 수많은 유태인을 학살하는데 앞장섰던 하이드리히는 죽어서도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사랑하는 부하를 암살한 레지스탕스를 용서할 수 없다며 히틀러가 무지막지한 보복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부하들을 시켜 만 명이 넘는 체코인을 체포했고, 3천명이 넘는 유대인을 게토에서 끌고 왔다. 하이드리히가 죽은 날이라며 152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것뿐이 아니다. 1942년 6월 10일 프라하 북서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있는 리디체라는 작은 광산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하이드리히를 죽인 레지스탕스들과 관계가 있다는 혐의를 씌워, 173명의 남자와 십대 소년들을 사살해 구덩이 속에 매장하고, 여자들은 라벤스브뤼크 강제수용소로 이송시켰다. 여자들 대부분은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폭발과 파편으로 폐허가 된 마을 위에 나무와 농작물을 심어 자신들의 만행을 은폐했다. 체코의 모든 기록에서 ‘리디체’라는 단어를 삭제하기까지 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자신들만이 우월한 인종이라고 생각했던 나치들은 ‘게르만 우성 선발’ 작업을 시행했다. 아리안 민족의 인종적 특징을 가졌다고 판단된 다른 민족의 아이들을 납치해서 독일 아이로 만든 것이다. 그들이 명명한 ‘레벤스보른(생명의 원천)’ 프로그램에 참가하지 못했거나, 부적합하다고 판정을 받은 아이들은 독가스 실로 보내 목숨을 앗아갔다.

이 책은 생명의 원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고향으로 되돌아 온, 리디체 마을에 살던 한 소녀의 이야기다. 나치가 체코를 점령한 지 3년이 되었지만 밀라다는 가족들과 행복하게 지낸다. 친구와 같이 별을 보며 소원도 빌고, 조잘대기도 하고, 생일파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나치들이 쳐들어 와서 가족들을 모두 붙잡아간다. 아빠와 오빠는 어디론가 끌려가고, 할머니와 엄마, 여동생과 말라다는 학교에 갇힌다. 왜 끌려왔는지 이유도 모르는 채 마을 사람들은 그 곳에서 군인들의 감시를 받으며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한 검사가 시작된다. 나치들은 금발머리에 파란 눈을 한 아이들을 골라 코의 크기를 재고, 면밀하게 머리칼과 눈 색깔을 체크한다. 아리안 인종의 특징을 가졌다고 판명된 아이들을 교육원으로 데려간다. 밀라다는 가족들과 헤어져 교육원에 강제 수용된다. ‘에바’라는 독일식 이름을 부여받은 밀라다는 독일 아이가 되어 독일 제복을 입고, 독일어를 배운다. “내 이름은 밀라다예요.”라고 저항해 보지만, 가시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교육원에서 에바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순응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팬티를 내리고 자로 엉덩이를 맞는 치욕스러움을 감내하거나, 사라져야 한다.

나치들은 아이들을 뼛속까지 철저한 아리안 민족으로 만들기 위해 세뇌작업을 일삼는다. 살아 있는 가족들을 “연합군의 폭격으로 죽었다”고 이야기하고, 너희들이야말로 “아리안 민족의 자랑이고 희망이며, 유태인들로부터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선택된 특별한 아이들”이라며 자긍심을 고취시킨다. 바깥세상으로 나가면 “독일제국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라고” 독일인으로서의 정신자세까지 교육시킨다.

에바는 “네가 누군지, 네 고향이 어딘지 늘 잊지 말라”는 할머니의 말씀을 떠올리며 자신의 이름과 기억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여의치가 않다. 같은 동네 친구였던 루사는 완벽한 어린 나치로 변해가고, 훈련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끌려 나간 아이는 돌아오지 못한다. 총살을 당했으리란 추측만 무성하다. 에바는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본모습을 숨긴다. 현실을 선택하자, 예전의 기억들이 점점 희미해져 간다.

훈련원에 수용된 지 2년 뒤, 드디어 바깥세상으로의 외출이 허락된다. 새 제복을 입고 용돈까지 받은 에바는 아이들과 같이 거리로 나간다. 좋아하는 군것질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한껏 부풀어 있던 에바는 길에는 자신의 할머니와 닮은 사람을 보자 그리움에 손을 뻗는다. 그러나 노인은 “‘나치! 악마의 자식!”이라고 비명을 지르면서 잡아먹을 듯이 에바를 향해 달려온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할머니의 눈을 보는 순간, 에바는 자신이 이미 독일 소녀로 변해 있음을 깨닫고 충격을 받는다.

훈련원 생활이 끝나자 에바는 수용소 소장인 베르너 부부에게 입양된다. 대 저택, 핑크빛 벽지로 도배된 방, 레이스가 달린 새 잠옷, 새로 생긴 부모님과 오빠, 언니. 나치며 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새엄마는 너무 달콤하다. 끌어안고 부드럽게 등을 쓰다듬어 주면,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엄마와 아빠가 자신을 데리러 오지 않았다는 배신감과, 이대로 독일 소녀가 될 지도 모른다는 걱정스러움, 부모님이 이미 자신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싶은 불안감이 한데 섞여 에바는 혼란스럽다. 하지만 차츰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 나간다. 편한 잠자리와 좋은 음식에 익숙해져 가고, 히틀러의 초상화를 향해 자진해서 경례까지 한다. 행복하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언니 엘스베트와 숲속에 갔다가 수용소에 갇힌 여자 죄수들을 보게 되자, 에바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체코 말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여자 죄수들에게 다가가 고향과 부모 소식을 묻고 싶었는데, 말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까맣게 체코 말을 잊어버린 것이다. 아리만 민족의 소녀로 완전히 탈바꿈한 자신의 모습을 거울 속에서 확인한 에바는 자괴감에 빠진다. 자신은 독일인이 아니며, 자기 이름은 ‘에바’가 아니라 ‘밀라다’라는 것을 깨닫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엄마와 아빠가 당장 자신을 구하러 오는 것도 아니다. 예전처럼 온전한 독일 소녀로 돌아갈 수 없으니, 혼란스러움은 더욱 가중될 뿐이다. 에바는 결국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외톨이 신세가 된다.

그러는 사이 독일이 항복을 선언하고 히틀러가 죽자, 낯선 손님들이 밀라나를 찾아온다. 엄마가 프라하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에바는 “내 이름은 밀라다예요. 집에 가고 싶어요.”라고 또박또박 말한다. “이 아이 이름은 에바야! 내 아이야! 내가 이 아이 엄마라고!” 라며 울부짖는, 고통에 찬 목소리로 애타게 자신을 바라보는 독일 엄마를 에바는 과감히 외면한다. 언니 엘스베트를 두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지만, 에바는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간다.

3년 만에 참으로 많은 것이 편했다. 오빠와 아빠는 나치에 의해 사살 당했고, 할머니는 수용소에서 돌아가셨고, 동생 아네카는 독일인 가정에 입양되었지만 아직 찾지 못했다. 수용소에 갇혀 짐승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다는 엄마도, 예전에 밀라다가 기억하던 모습이 아니다. 하지만 초췌하고 깡마른 얼굴의 여자가 다가와 흐느끼며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는 순간, 밀라다는 자신이 잊고 있었던 것들을 기억해 낸다. 조금씩 체코 말을 기억해 내고, 가족들과 즐거웠던 기억을 복원해 낸다.

전쟁이 참혹한 것은 파괴와 살육, 죽음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 안에 얼마나 무서운 폭력이 있는지 일깨우기 때문이며, 그런 폭력을 휘두르고도 ‘전쟁이기 때문’이라는 면죄부를 얻었다고 스스로를 세뇌시키기 때문이다. 전쟁이 끔찍한 것은 평범한 개인들의 삶과, 인간성을 말살시키기 때문이다. 인간의 심성 저 깊은 곳에 지워질 수 없는 상흔을 남기기 때문이다. 남겨진 이들, 전쟁 이후가 더욱 참혹한 것도 그 때문이다.

리디체 아이들 105명 가운데, 17명만이 겨우 살아남았다. 리디체 아이들 가운데 열 명이 자신의 이름과 부모, 가족과 고향을 잃고 독일인 아이로 자라야 했다. 전쟁이 끝나고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그 아이들 깊숙이 자리한 고통은 누가,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실제로 아이들은 그 전의 생활에 대해서 기억하지 못했으며, 독일 양부모와 떨어지는 것도 두려워했다고 한다.

영화「파괴된 사나이」에서 나오는 혜린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순식간에 가족과 헤어져 자신의 원수와 살아야 했던 소녀, 어쩔 수 없이 공범자이자 사내의 인질이자 가족이 되어야 했던 소녀, 자신을 구하러 오지 않는 부모에 대한 원망과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죄의식으로 인해 입을 닫아버리고 표정을 잃어버린 소녀.

리디체의 아이들 또한 혜린이와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들은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될 것을 강요받았다. 살기 위해선 그 전의 생활을 망각해야 했고, 자신들을 그렇게 만든 낯선 독일인들을 ‘엄마, 아빠’라고 불러야만 했다. 그야말로 적과의 동침이다. 그 생활에 겨우 적응할 즈음 그들은 살기 위해서 애써 망각했던 과거를 다시 복원해 내야 했다. 한 때 부모라고 불렀던 이들, 가족이라고 믿었던 이들과 냉정히 등을 돌려야 했다.

이 책은 전쟁이 평범한 한 가족을 어떻게 파멸시켰으며, 한 소녀의 심성을 어떻게 유린했는지 잘 보여준다. 에바와 밀라다 사이, 적과 가족 사이, 나와 나 아닌 것 사이에서 그 소녀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다는 것, 강압에 의해 모든 것을 빼앗기고 다른 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눈물겹도록 서러운 일이다. 소름끼치도록 참혹한 일이다.

리디체 마을에 대한 히틀러(나치)의 대응 또한 끔찍하다. 특별한 자만심에 고취되어 있었던 히틀러는 체코의 총독이었던 하이드리히의 암살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특별하지 않은 이들에 의해 자행된 특별한 자의 죽음.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은 이 상황을 역전시킬 빌미가 필요했을 것이다. 하이드리히의 암살을 계기로 거세질지도 모르는 레지스탕스의 반격이 두렵기도 했을 것이다.

그들의 보복을 증폭시킨 것은 원한감정이었으리라. ‘감히 니들이 내 부하를 죽여?’ 내지는 ‘감히 니들이 내게 도전을 해?’ 그러니 애당초 리디체가 레지스탕스와 연관이 되어 있던, 있지 않던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 터였다. 그저 희생양이 필요했을 뿐이니까. 리디체가 하이드리히의 암살과 무관할수록, 보복이 무자비할수록 이를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에겐 더욱 공포스러웠을 테니까.

‘자, 봤지? 어디 맞설 테면 맞서 봐!’라면서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한 마을을 깡그리 부수어버린 인간들. 잘못된 자만심과 원한 감정에 사로잡혀 수많은 이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이들.

이 세상엔 아직도, 여전히 그들과 같은 족속들이 있다. ‘고통을 통해서만이 창조의 기쁨을 얻을 수 있다’면서 자신들이 마치 신인 양 고통을 축수(祝手)해 주는 어줍지 않은 인간들이 널려 있다. 그래서 1942년 6월 어느 날 일어난, 이 이야기는 남의 일 같지가 않다.

– 달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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