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각자의 영화觀

현대사회에서의 사랑의 코드

- 성현

images주지하다시피 근대적인 사랑이 확립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주어에 열정, 낭만, 권태, 감정, 설렘, 인정, 광기 등등의 술어를 쉽게 붙인다. 하지만 사랑에 이러한 술어가 붙은 것은 역사적으로 봤을 때 근 200년 정도밖에 안된 것으로, 사랑을 가족이나 공동체로부터 분리시켜 순수한 개인 대 개인 간의 관계로 보게 된 것은 분명히 역사적 산물이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안고 있는 사랑이 무르익고 있던 시절에 살았던 카프카는 “끊임없이 죽고 싶은 욕망과 여전히 자신을 지키고 싶은 욕망만이 존재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라고 사랑을 정의한 바 있다. 이러한 사랑에 대한 모순적 정의는 상식적으로나 시대적으로나 충분히 적확하다고 볼 수 있는데, 우리가 사랑에 대해 쉽게 이해하듯이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너무나 쉽게 포기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통하여 상대방으로부터 인정받음으로써 자아에 대한 충만한 긍정을 얻기 때문이다. 이렇듯 현대에서의 사랑은 개인들의 자기 포기와 자기 확신을 기초로 하여 유지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역사적 산물로서의 낭만적 사랑은 사회적으로 어떤 효과를 낼까? 아니 이 질문하기 전에 우리는 이 질문의 전제에 대해서부터 물어볼 필요가 있다. 아니, 어떻게 사랑을 설명하는 데 사회라는 개념이 사용될 수 있는 것이지? 사랑은 순수한 개인 대 개인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본능적인 것에 구애받는 욕망이 아닌가? 사회학적인 시선으로 볼 때 이러한 사랑에 대한 이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설렘은 길게 가야 3년이다”와 같은 사랑에 대한 생물학적 이해는 근자에 유행되는 것으로 이는 분명한 역사적인 산물이다. 또한 사랑을 개인의 내밀한 감정의 차원으로 이해하는 것은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으로, 이는 분명 그 이해가 가능케 된 역사적 사회적 조건을 기초로 하는 것이기에 이 기초에 대한 이해를 분명하게 요구하게 만든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했듯이 신이 죽은 시대에서 인간은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분명히 비극의 시작이기도 하였는데, 이제 인간은 삶의 의미의 근거를 기존 시대의 중요한 가치척도로 평가받았던 종교나 공동체로부터 부여받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니체는 이러한 시대를 오히려 긍정하며, 이제야 비로소 인간이 ‘초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지만, 맑스 베버와 같은 사회학자에게는 이러한 니체의 관점과는 반대로 신이 사라진 시대에서 ‘인간’이 도덕적으로 살 수 있는가와 같은 문제가 더욱 시급한 과제였다. 니체가 말한 초인은 분명 도덕을 거부하며 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척도를 건립하여 그 척도의 근거를 스스로로 내세울 수 있을 테지만, 베버와 같은 사회학자가 보기에 대개의 인간들은 이러한 초인이 되지 못한 채 방황하며 살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도덕이 함축하고 있던 안정성, 위계, 질서 등은 이제 사라졌다. 그리고 그 도덕에 기댐으로써 얻었던 충만한 삶의 의미 또한 사라졌다. 이제 인간은 부유(浮遊)하며 살아가게 될 것인가? 그렇게 된다면 이제 인간은 더 이상 의미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없게 되는 것인가?

그에 대한 대답으로서 나온 역사적 산물이 바로 낭만적 사랑이다. 신이 사라진 시대에 이제 우리 인간을 인정해주고 긍정해주는 지위는 타인이 짊어지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타인의 인정을 먹고 살아야만 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인정을 통해 우리의 삶의 의미는 그 근거를 갖게 된다. 특히나 이때 타인의 인정을 가장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사회에서의 사랑은 일종의 구원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나를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렇게 내가 그 사람에게 유일무이한 사람이라는 것, 나 또한 그 사람이 유일무이하다는 것. 이것만큼이나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신이 사라진 시대의 유일한 구원을 정말로 사랑일지도 모른다.

현대에 이르러 사랑이라는 영역에서 생긴 분화 중에 재밌는 것이 있다. 그것은 연애와 결혼의 구분이다. 에바 일루즈라는 사회학자는 결혼시장의 형성을 일종의 거대한 전환으로 본다. 즉 공동체와 종교로부터 구애받지 않고, 개인의 자율적인 선택에 기초하여 사랑을 형성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가 바로 결혼시장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결혼시장에서의 선택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이때의 선택은 정말 개인의 감정에 기초한 주관성 아래에서 이루어질까? 이러한 직관적인 선택은 오히려 연애의 차원에서 많이 이루어진다. 반대로 결혼시장에서 우리들의 선택은 일종의 가치판단체계 위에서 진행된다. 즉 우리는 배우자를 선택하기 위해서 그 배우자를 어떤 체계를 바탕으로 해서 가치(value)를 매긴다는 것인데, 이러한 체계가 바로 가치판단체계인 셈이다. 맑스는 『자본』의 물신화 부분에서 돈이 우리가 사물을 있는 그대로 파악할 수 없게 만든다고 비판한 바 있다. 즉 우리는 사물을 사물 그 자체로서 보고 느끼고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의 상품가치를 바탕으로 해서만 그것을 인지한다는 것이다. 맑스가 보기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물은 상품가치의 유무라는 가치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동시에 그 상품은 그것이 얼마짜리인가와 같은 방식으로만 가치를 갖게 된다. 이러한 가치판단체계가 점점 공고화되는 것이 바로 물신화이다. 이러한 물신화는 결혼시장에서도 존재한다. 물론 이때의 가치척도는 화폐가 아니라 바로 ‘매력’이다.

이때 매력을 매기는 판단기준은 다소 복잡하다. 특히 현대화가 되면 될수록 미디어의 영향으로 인해 이 매력의 정도(degree)를 판단하는 기준에서 신체적인 섹시함이 점점 강세를 띠고 있지만, 적어도 결혼시장에서는 이러한 신체적인 섹시함보다는 재력, 학벌, 가정환경 등이 더욱 강력한 판단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가치판단체계의 작동이 가장 활발하기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 바로 결혼정보회사이다. 이 회사들은 이러한 가치판단체계를 바탕으로 회원들에 대해 점수를 매기고 등급화한다. 그렇게 사람에 대해서 가치를 매기는 것, 이러한 것이야말로 결혼시장에서 요구되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연애(이때의 연애는 부부관계로 환원되지 않는 사랑의 관계를 통칭한다)에서도 그럴까? 연애까지 시장이라고 말하기는 조금 무리가 있는 것 같다. 물론 연애든 결혼이든 신체적인 섹시함이 중요한 척도로서 존재하고 있기는 하지만, 연애에서 가치를 매기는 판단체계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오히려 연애는 결혼과는 달리 ‘끌림’이라는 애매모호한 직관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결혼시장에서처럼 상대방을 판단하게 만드는 복잡한 가치체계가 오히려 연애에서는 상당히 무력해진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애야말로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낭만적 사랑에 가장 부합한다. 합리성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광기어린 열정, 위에서 언급한 자기포기와 자기 확신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사랑이 바로 연애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연애와 결혼은 어찌 보면 대립관계인 것처럼 보인다. 나는 이러한 연애와 결혼의 대립관계를 현대화된 우리의 현실에서 어떻게 표상되는지를 세 개의 영화(『결혼은 미친 짓이다』『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연애의 목적』)를 통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나는 단순히 물신으로서의 가치판단체계에 대한 고발을 목표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가치판단체계와 직관이라는 두 코드를 바탕으로 현대사회에서의 사랑이라는 장(場)을 설명해보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사랑이 정말 구원인지 아닌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나의 관심사는 사랑이 어떻게 구원으로 표상되게 되었는지, 또 사랑이 구원으로 인정되는 근거는 무엇인지 등일 뿐이다. 나는 이렇게 사랑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을 때만이 비로소 사랑을 맥락화 ‧ 부분화할 수 있게 됨으로써, 사랑하는 서로가 블랙홀로서의 ‘검은 구멍’으로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의 성찰성을 견지할 수 있게 하는 것. 이 소박한 목표가 이후 세 편의 글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길 바란다.

응답 2개

  1. 성현말하길

    어이쿠 꾸냥!! 댓글 달아줘서 고마워요 ㅎ 권보드래 선생님 책은 사놓기만 하고, 아직 읽지는 못했는데.. 꼭 읽어볼게요! 촌철살인과 같은 조언 감사합니다. 다음 번 글에 꼭 반영하도록 할게요^^

  2. 꾸냥말하길

    사랑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해서 맥락과 부분화 하고나면 블랙홀에 빠지는 걸 과연 막을 수 있다는건 너무 쉬운 생각이 아닐까 합니다..무엇보다 이 발언은 몇문장 위에서 이야기한 가치판단체계에 대한 고발이 아니라는 말과 대치되는 듯 보입니다. 연애에 대한 사회학적, 계보학적 접근을 하시는것 같아서 떠오른 책인데, 한국의 맥락에서 연애라는 개념이 어떻게 들어왔는지 조선시대의 사료들을 바탕으로 역사연구를 한 권보드래 선생님의 라는 책이 있더라구요. 혹시 시간되면 참고하시길.. 무엇보다 영화분석이 잼나길 기대합니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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