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각자의 영화觀

그들 각자의 영화觀

- 편집자

변,황 영화평론가가 글을 썼었던 ‘씨네꼼’를 무진장 의식(만)하면서 만들게 된 ‘그들 각자의 영화觀’은 수유너머N에서 영화를 좋아하는 YB들이 꾸린 코너다. 액션영화, 연애영화, 잉마르 베리만, (독립)다큐멘터리, 예술영화와 B급영화. 영화라는 틀로 묶이긴 하지만 다섯 명 모두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고, 이런 우리를 표현하기에 ‘그들 각자의 영화觀’은 적절한 코너타이틀로 보인다.(물론 동명의 영화는 황금종려상 수상 감느님들의 작품들을 모아노은 영화 제목이다. 흐흐흐.) 우리의 목표는 적어도 6개월 이상은 이 코너를 유지해가는 것, 그리고 펑크 내지 않는 것이다. 비평문 한 편을 비문 없이, 유기적으로, 섹쉬하게 써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목표! 동상5몽을 하고 있는 ‘그들 각자의 영화觀’팀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필자 & 코너소개

전성현
반쯤 겉멋으로 시작한 공부였는데 어느새 일상이 되어, 수유너머란 공간에서 많은 걸 배우고 익히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글도 쓰고 있다. 차이 있는 반복으로서의 일상을 향유하고자 하기에, 일상을 다양한 외부에 노출시키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영화에 대한 글쓰기는 그 방편 중 하나다. 맑스에 관심이 매우 많다.
전성현의 <연애시대>
‘연애’를 다룬 영화 중 ‘주체의 해체’가 드러나는 영화들에 대해 비평을 할 계획이다. 주체가 해체된다고 함은, 주체가 자기를 주체화시킨 영토와 단절을 함으로써 새로운 영토로 발돋움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 가능성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였을 때, 주체는 새롭게 주체화되지 못하고 파멸(혹은 죽음)을 맞이한다. 나는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연애를 겪음으로써 어떤 영토와 단절을 하고, 어떤 주체로 새롭게 거듭나는지, 혹은 어떻게 파멸해나가는지에 대해서 서술할 것이다. 이를 통해 연애를 어떤 일관성 위에 위치시켜야 하는지, 그래서 연애가 갖는 의의는 무엇인지를 밝히고 싶다.

김지안
나는 8학군에서 자랐다. 거기서 나는 다르다는 것에 대해 차별받았고, 벗어나고 싶었다.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든 이유도 그 때문이었으며, 연구실에서 공부를 하게 된 까닭도 내가 자란 공간에 대한 반감에 있다. 하지만 최근 ‘강남-8학군’이 어떤 방식으로든 나의 일부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소통이라는 주제로 글을 연재하게 된 이유도 아마 거기 있는 것 같다.
외치기 위하여- 베리만
서로에게 입을 다문 사람들, 침묵, 소통 불가능성은 베리만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사실 베리만 영화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침묵은 보는 사람에게조차 고통스러울 정도이다. 나는 그의 영화에서 ‘침묵’을 특별히 주목하고 싶다. 그 이유는 이때의 침묵이 실패한 소통의 결과이기 때문이며, 그것은 또한 사회적 맥락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지금 생각해보려는 이유는 너무나 많은 공간에서 침묵이 강요되고 있기 때문이며 소통(나아가 소외) 불가능성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의 엇갈리고, 끊겨버리는 대화와 침묵들은 결코 시대와 동떨어진 종류의 침묵이 아니라 지금! 현실과 일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침묵’이다. 더불어 베리만의 영화는 절망 속에 희망을 ‘붙들고’ 있다. 미약하지만 꺼지지는 않는 희망을 향한 ‘외침’이라는 그의 주제의식은 분명히 우리의 희망과도 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런 이유에서 베리만의 작품들을 ‘사회성, 인간 내면 성찰, 신’으로 구분해 ‘소통-단절-침묵’이라는 주제를 생각해보려고 한다.

조지훈
몇 년 째 수유너머에서 기웃거리다가 작년부터 수유너머N 회원이 되어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저런 공부에 관심사가 많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특별히 시각예술 쪽에 마음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 한동안 예술의 형식적 층위에 흥미가 있었는데, 최근에는 삶으로서의 예술, 혹은 예술의 정치라는 미학의 오래된 테마에 매혹되고 있다. 갈 길이 너무 멀다.
액션영화의 수사학
액션영화는 한결 같지 않다. 냉전시기 전후로서 해서, 또한 9.11테러를 기점으로 해서 액션영화는 크게 전환점을 맞았다. 이러한 전환기를 기점으로 액션영화의 수사학이 어떻게 변모하였는지를 보고자 한다. 영화 속에 뻔히 들여다보이는 구태의연한 이데올로기 비판이 아니라, 액션영화 자체가 어떠한 수사학을 구사해왔는지, 즉 ‘액션’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액션영화에서 역시 보아야 될 것은 액션이니 말이다.

이상욱
아버진 쉬는 날 찜질방에 가신다. 나는 쉬는 날 영화관에 간다. 둘 다 잠에 든다. 아버진 그러려고 가신 거지만 나는 꼭 그러려던 건 아니었는데.
A씨와 B씨
‘아트하우스 영화’라 불리우는 A급 씨네마와 어떤 메이저한 가치와 목표를 지향하지 않는, 어떤 ‘소수적’인, 심지어 상업적 목표가 있는 경우조차 ‘매니아’들의 홈비디오 시장이 그것인 B급 씨네마 그 사이를 분주히 돌아다니는 것이 이번에 내가 하려는 것이고 그곳이 이번 글들에서 다루게 될 한정된 영토이다. 그러나 이번에 하고자 하는 것은 그 영화들의 소개나 분석 혹은 소개를 위한 분석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를 만나는 매순간 내 ‘머릿속’과 육체에서 동시에 혹은 이후에 상영되는 ‘영화들’ 혹은 배태된 경험들, 그것들을 재상영시키는 공간이 이번에 내가 쓰게 될 일련의 글들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저 개인적 감상을 적은 수준의 ‘일기장식 글쓰기’가 아닌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설득력을 가져 수긍할 수 있는 글을 목표로 한다.

권은혜
한국 독립영화 특히,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많다. 학부에선 생명과학을 석사에선 영화이론을 전공했고, 수유너머N에선 네거티브·우울·멜랑콜리를 담당하고 있다. 들뢰즈와 벤야민을 좋아하고, 언젠가는 “치밀하면서도 아름다운” 글만 쓸 수 있다면 좋겠다.
독립영화 다시보기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출범한지도 6년째에 접어들고 있는 이 시점, 독립영화는 여전히 80년대 영화운동의 전통에서 독립·저항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한편, ‘다양성영화’라 불리는 영화들과 더불어 예술영화로 소비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다. 독립영화에 대한 기존의 관념들을 버리고 영화 하나 하나에 집중하는 글을 쓰고 싶은데, 내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응답 1개

  1. 세영말하길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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