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각자의 영화觀

<우중산책>(1994),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동시상영관을 그리며.

- 권은혜(수유너머N)

사진출처 : http://blog.naver.com/bunilee/10030277873

영화는 또 다른 영화로 시작한다. 남녀 콤비인 도둑들이 무기상을 털고 있다. 이어지는 쇼트에서 영화는 영화 속 영화에서 빠져나와, 돌아가는 영사기와 졸고 있는 영사기사를 보여준다. 콤비 도둑들이 가게를 빠져나가는 순간 영화상영이 멈추고, 관객들의 야유가 쏟아진다. 뒤이어 ‘우중산책’이라는 영화의 타이틀이 뜬다. 임순례감독의 첫 단편 <우중산책>은 1994년 삼성의 지원 하에 시작된 서울단편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한국독립영화의 새 시기를 알린 영화다. 이 시기 한국독립영화는 문민정부 출범, 영화제를 통한 상영공간의 등장과 관객군의 형성, 기업들의 지원 같은 이유들로, 90년대 이전 강한 운동적 성격에서 벗어나 사회 여러 층위의 소재를 다루기 시작한다. 영화와 극장에 대한 영화이자, 여성이 주인공인 <우중산책>은 이 같은 90년대 한국독립영화의 전환기를 잘 보여준다.

1993년 여름, 동네 상가 지하에 위치한 동시상영관 대기실. 어슴푸레한 조명과 그 아래를 휘적휘적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후덥지근한 날씨가 느껴진다. 가득 찬 습기만큼이나 그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것은 선풍기와 홍콩영화의 소리다. 인물들의 대사만큼이나 큰 소리로 들리는 이 사운드들은 어두운 조명과 함께 동시상영관의 분위기를 감각적으로 전달한다. 상영관으로 들어가는 문 맞은편에는 스넥류의 과자들이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유리진열장이 있고, 그 뒤에는 이곳의 모든 업무를 보고 있는 여자가 있다. 평소와는 다르게 민소매 원피스를 차려입고 올림머리를 한 그녀는 중요한 약속을 앞두고 있다. 동시상영관으로 그녀의 맞선남이 오기로 한 것이다.
내가 동시상영관의 존재를 먼저 안 것은 향수어린 이야기와 글 속에서였다. “당당하게 밝은 곳으로 나가지 못하거나 혹은 나가기 싫은 사람들이 그곳의 구성원인, 평일의 동시상영관은 그것대로 하나의 작은 사회, 언더그라운드를 형성한 셈이다. 어른도 아이도 아니었던 우리는 그때 막 성에 눈을 뜨는 시기였고, 동시상영관에서 그 폭발할 듯한 에너지들을 발산하며, 작은 사회를, 언더 정신을 배웠는지도 모른다.”(동시상영관에서의 한때/황병승) 동시상영관은 지금으로 치자면 루저 혹은 잉여라고 불리는 이들이 모여드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루저 혹은 잉여’들이 최근의 이삼십대를 중심으로 생겨난 말이고 이들이 중심적으로 활동하는 공간이 온라인이라면, 동네 후미진 곳에 위치한 동시상영관은 십대부터 육칠십 할아버지들까지(주로 남성을 위한 공간이었지만) 다양한 연령대의 일없는 이들이 모여들었던 곳이다. 한 편 값에 두 편의 영화를 볼 수 있고, 연소자들도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 있었으며, 담배까지 피울 수 있었던 동시상영관은 그야말로 당시의 잉여들을 위한 최고의 공간이었음에 틀림없다.
<우중산책>은 시각을 정확히 정해놓지 않은 맞선남과의 약속을 기다리는 동안 반복되는 정자의 기대(설렘)와 좌절(체념)의 시선을 축으로, 당시 동시상영관의 일상적 풍경을 담는다. 동시상영관을 찾는 이들의 대부분이 남자들인 만큼 오가는 이들에 대한 정자의 시선은 예민하고 섬세하며 대부분의 쇼트들은 이러한 정자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따라간다. <우중산책>에서 보여지는 풍경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동시상영관을 드나들며 그곳을 완성하는 다양한 인간군상이다. 어두운 상영관 안에서 ‘관객’으로 불특정다수를 이루고 있는 이들을 각기 다른 인물들로 파악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중산책>이 보여주는 곳은 상영관 내부와 바깥세상의 중간지점인 대기실이다. 특히나 영화 후반부, 정자가 대기실 선풍기 앞에서 머리를 말리는 장면은 전경에서 후경에 이르기까지 그곳의 모습과 사람들을 (단편영화로서는 보기 드문)35mm 필름의 화질로 선명히 담아내며, 공간과 인물들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동시상영관의 대기실은 영화를 보러 온 이들이 ‘대기’만 하는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대기실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의 대부분은 그곳에서 상영되는 영화에 관심이 없는 혹은 반쯤만 관련 있는 사람들이다. 음료수 도매상, 녹즙기 외판원, 아이를 업고 손에 잡고 남편을 데리러온 아내, 더위를 피해 선풍기를 찾아온 노인과 재수생, 그리고 그곳에서 근무하는 정자와 같은 사람들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중산책>은 그곳을 찾는 관객들뿐 아니라 영화관람과는 다른 이유들로 동시상영관을 찾은 언더클래스의 사람들까지 담아내며, 당시 ‘언더그라운드’의 인간군상을 제시한다. 영화를 보며 의아했던 점인, ‘근무지인 동시상영관에서 맞선이 가능해?’ 라는 질문은, 이렇듯 극장 바깥의 이들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던 동시상영관 대기실의 특성으로 가능해지고, 맞선남을 기다리는 정자의 기대어린 시선 덕택에 영화는 한층 더 인물들을 세심히 담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보면 <우중산책>이 나온 94년은 ‘문화학교서울’과 같은 씨네필을 위한 영화공간이 있었던 시절이고 각 대학마다 영화동아리가 활발히 활동했을 시점이다. 그럼에도 임순례감독이 선택한 곳은 영화에 대한 관심보다 시간을 때우고자 하는 이들이 모이는, 남성위주의 루저들의 공간이자, 사라지는 추세에 있었던 동시상영관이다. 이는 80년대의 강한 정치적 성향과는 구분되지만, 90년대 여성감독으로서 가질 수 있는 마이너리티에 대한 애정으로, 다른 방식의 운동적 감수성이 들어가 있는 영화다. 이후 <세친구>(1996),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는 <우중산책>에서 감독의 관심의 확장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주 가끔, 글과 이야기로만 동시상영관을 접해왔던 나는 <우중산책>을 보고 이 영화와 동시상영관 모두에 매료되어버렸다. 만약 지금도 동시상영관이 존재한다면 내 인생 그 어느 때보다 잉여롭고 루저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영화를 보는 것도 시간을 때우는 것도 아닌 모호한 상태로, 한편 값으로 두 편의 영화를 볼 수 있고, 개봉을 놓친 영화들도 스크린으로 볼 수 있으며, 서로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비슷한 처지의 이들이 모여 묘한 연대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공간이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인 것 같다. 또 동시상영관이라는 공간을 담아내는 <우중산책>의 카메라는 내가 사랑해마지않는 정적이고 조심스럽고 관찰자적인, 또한 그렇기 때문에 바깥에 나가 비 맞다가 나무 밑에 주저앉은 정자 쪽으로 카메라가 팬 할 때, 오랜 기다림과 좌절 끝에 가발을 쓴 맞선남과 머리를 풀어헤친 정자가 마주하는 장면에서 그들을 향해 카메라가 다가갈 때, 그 어떤 영화에서 보여주는 화려한 움직임 보다 더한 설렘을 주는 것이다.

응답 3개

  1. 말하길

    우중산책 속에서 나오는 외국 영화의 제목이 무엇입니까

  2. 꾸냥말하길

    우왓, 로스트하이웨이를 반복해서 보신건가요? ㅋㅋㅋ 기억 공유 감사드려용 ㅋ 동시상영관을 직접 경험해보셨다니.. 부럽습니다. 지금도 있으면 좋으련만 ㅠㅡㅠ

  3. 영진말하길

    고등학생때, 학교에 가기 싫어 결석하는 날이면, 동시상영관 가서 하루종일 3개내지 2개의 영화를 교차해서 반복관람하곤 했죠. 헐리웃 b급 액션영화들도 그 반복 관람속에서는 근육과 화염, 담배연기의 순수한 이미지로 변신합니다. 또 어떤 날은 이런 날도 있었죠. 데이비드 린치의 “로스트 하이웨이” 첫 개봉날 조조로 들어가 저녁 10시에야 극장 밖으로 나온 적도 있었죠. 배고프면 내부에 있던 극장 매점에서 간식을 사 먹어가며, 영화의 쇼트들을 거의 외워버립니다. 왜 그 당시 많은 청춘들이 영화에 관심을 가졌는가에 대해 이러한 잉여로운 극장경험을 빼놓을 수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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