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은 사람들

원점

- 조은지

돼지누린내가 연기로 날리는 국밥집 구석자리에 앉아 연거푸 소주를 들이켰다. 그녀는 내 국밥에 새우젓을 넣어 주며 허기를 달래길 재촉했다. 그녀의 잔을 채우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 긴 싸움을 끝내야 한다.

고속열차의 좁은 의자에 몸을 구겨 넣을 때부터 수차례 이번 귀향의 목적을 곱씹었다. 근 10년의 시간 동안 그녀와 내가 이어온 공공연한 신경전을 이제는 마무리해야 할 때다. 빤히 알면서 정면승부만을 피해 온 싸움이었다.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을 때마다 직접적으로 부딪쳐 보려 했지만 그녀는 번번이 애매한 태도로 자리를 피했다. 누군가는 불효라고 하고 누군가는 이기적이라고 했기 때문에 나는 그런 그녀를 대놓고 붙들 수 없었다. 스스로가 당당하다고 자부하지만 어디서부터 흘러나와 고인 것인지 알 수 없는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이십대 후반에 들어서서야 더 이상 그녀가 놓지 않는 일말의 희망과 싸우는 것이 시간낭비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 여자 만나는 거, 알지.

오늘 무조건 끝낸다는 부담감에 목소리가 억눌려 나왔다. 그녀는 듣기 싫다는 듯 자신의 국밥을 휘저으며 대꾸하지 않는다. 예상했던 반응이기에 오랜 연애 끝에 생각을 정리하고 이별을 통보하는 사람처럼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오랫동안 기다렸다고 생각하고 충분히 내 입장을 많이 설명했다고도 생각한다. 이건 내 연애의 문제가 아니라 내 본질의 문제다. 더 이상 모른 척 남자와 결혼 얘기를 꺼내는 것을 웃어넘길 수 없다. 나를 사랑한다면 이제 그만 내 행복을 위해 받아들여 달라.

그녀는 소주잔에 소주를 반 남기고 물을 타 마저 마시는 식으로 말없이 잔을 비워냈다. 3년 전에도 그녀와 새벽을 꼬박 보내며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긴 설득 끝에 그녀는 마침내 사실을 수용하기로 했고 다만 남자를 만날 마음이 생긴다면 그것을 억지로 막지는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나는 수긍하고 그녀와 웃으며 자리를 파했었다. 하지만 그 대화는 너무 쉬웠다. 직접적인 단어를 피하고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빙 둘러 말하는 그때의 대화는 현실을 버텨낼 힘이 없었다. 결국 얼마 후 마주한 그녀는 다시 모르는 척 남자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허탈함에 말을 잃고 고향을등지던 그때, 나도 그녀가 원점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모른 채 하고 싶었다.

우리의 대화는 물러서지 않는 나로 인해 점점 다툼이 되어 갔다. 나는 날것 그대로의 생각을 뱉어냈다. 당신이 원하는 모습의 딸로 만들고자 내가 평생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소유물로 여기는 것이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남자를 만나 줄 수 있다. 결혼도 할 수 있지만, 당신은 평생 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빈 소주병이 늘어가고 국밥에 밥알들이 불어났다. 설전은 이어지고 쿰쿰한 돼지누린내 속으로 들어왔다 나가는 사람들이 수십이었다. 스무 살이 되길 기다렸다 커밍아웃한 여섯 살 터울의 남동생, 내 연인을 인질로 우위를 점하던 언니, 더블 데이트를 마다하지 않는 일반 친구들, 아웃팅으로 나를 목 조르던 악연들까지 내 정체성을 알고 다양한 방식으로 소화한 이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아직 남아 있는 마지막 과제인 아버지가 뒤따랐다. 지금까지 내 곁에 남아 있는 모든 이들이 만류하는 대상이지만 내게는 결국 마주해야 할 재앙과 같다.

 

네 아버지 때문이다.

정답이 나올 리 없는 ‘왜?’를 던지던 그녀는 원인을 아버지로 몰았다. 아버지에게 상처 입은 여자아이이기 때문에 여자를 만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틀렸다. 나는 남자든 여자든 삐뚤어진 인간의 퍼센티지가 비슷하다는 걸 알고 있고 남자를 만나 본 경험도 있다. 평범한 데이트를 하면서 평범한 연인의 모습을 했었다. 그녀는 반색을 하며 남자친구 이야기를 경청하고 웃어 주었다. 아버지 또한 색다른 이야기에 흥미를 보였고 그 순간 거실의 분위기는 시트콤 같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내가 만들어 놓은 가상공간에 발을 딛고 서 있는 기분이었다. 이 세계가 아닌 곳에 있는 것처럼 공간 자체에 이질감을 느꼈다. 진실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풍경이었다. 그 날 밤, 미지근한 몇 방울 눈물로 나를 위로하며 다시는 그 세계에 발 딛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선한 눈매의 남자친구에게 한 달 만에 이별을 고하며 죄스러움을 느꼈다. 짧게 머리를 쓰다듬고 돌아서는 길에 남은 것은 후회와 죄책감뿐이었다.

그녀에게는 그저 딱 잘라 개인의 취향일 뿐, 이유가 무엇이든 현재의 내가 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녀는 끝내 자신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물어 왔다. 마지막 질문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몸을 낮추고 적의 동태를 살피는 긴장이 그녀의 눈가를 맴돌았다. 내 연애와 결혼과 정체성의 중요성만큼 멀어질 것이라는 내 대답에 그녀는 입술을 잘근 씹었다. 다른 말들보다 현재에 일어날 현실적인 답이기에 당장의 그녀를 흔들어 놓는 말이었으리라 생각했다. 나와 그녀는 어려운 세월을 함께 이겨낸 전우로, 애정 또는 애증의 관계로 어지럽게 벽을 타고 오르는 등나무 줄기처럼 서로 얽혀 살아왔다. 멀어진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만큼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란 걸 그녀도 나도 알고 있다. 한참 말이 없었다. 겨우 문장을 만들어 말할 수 있었던 요만한 어린 아이때부터 지금까지 특별하게 부모 속을 태우게 한 일이 없는 딸이었다. 크게 잘나지 않았지만 제 인생은 알아서 건사하는, 애늙은이 같은 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모나지 않게 굴러 갔다 해도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 다르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평생 수십 번의 사고를 친 언니나 철없이 함부로 굴어 여기저기서 부모님을 부르게끔 했던 남동생보다 못한 딸이 되었다. 나는 그것을 납득할 수 없다. 가족뿐 아니라 인생의 수많은 상황에서 그러한 상황에 놓였을 때마다 오직 그 이유만으로 나를 잊어버리고 죄인으로만 손가락질하는 사람들과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행인이면서 단지 내가 연인의 손을 잡고 있는 모습만을 보고 경멸의 눈빛을 보내는 이들에게 그들보다 더 날이 선 경멸과 조소로 답했다. 내가 한 발 물러서면 그들은 내가 내 죄를 인정한 것처럼 달려들었으므로, 나는 더 이상 단 한 발도 물러설 수 없다. 나와 훗날 내 곁을 지킬 나의 배우자와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지인들을 위해서라도 내내 꼿꼿하겠다는 것이 기울어지지 않는 내 목표다.

 

알겠다.

그녀는 잔을 들어 내 잔을 툭 쳤다.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나도 잔을 들어 제대로 소리를 냈다. 오르지 않던 술기운이 올랐다. 그녀의 국밥에 새우젓을 넣어 주었다. 퉁퉁 불어터진 밥알을 입안에 넣고 씹었다. 싱거운 것도 같고 짠 것도 같은 맛이 났다. 3년 뒤에 또 다시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 그때는 어디서 무엇을 먹어야 하나, 시답잖은 생각이 떠올랐다. 수저를 들지 않는 그녀에게 말했다. 엄마, 국밥 새로 하나 시켜 줄까?

 

*코너 <우리 같은 사람들>은 매주 1편의 성소수자 에세이를 싣습니다. 마포레인보우연대에서 기획, 진행한 퀴어에세이 낭송회에 모집된 글들입니다. 

*퀴어에세이 낭송회를 기획한 마레연 소개 
마레연은 2010년 지방선거 당시 마포레인보우유권자연대로 시작해, 같은 해 모두모임에서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로서 지역, 성정체성 상관없이 주민들 스스로 만들고 함께해 온 모임이다. 한 달에 한 번 밥상, 연말이면 모두모임, 퀴어축제 번개, 서울여성영화제 번개 등 같이 먹고, 이야기하고, 즐길 수 있는 모임뿐만 아니라 강정마을지지 현수막 보내기, 여러 다른 단체들과의 연대, 보트피플, 비록 아직까지 현수막이 걸리진 않았지만 마포구청을 통해 현수막 걸기, 야유회 등과 같은 대대적인 활동을 짧은 기간동안 내실있게 진행해왔다.

http://cafe.daum.net/maporainbow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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