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은 사람들

나에게 힐링푸드란

- 보라

나는 요리를 잘 못한다. 못한다기보다는 만들긴 만드는데, 그 맛이 잘 안 난다. 배고프니까 먹는 그저 ‘먹거리’가 아니라 ‘요리’를 ‘요리’답게 해 주는 그 특별한 감칠맛 말이다. 왜 그럴까? 함께 산 지 3년이 되어 가는 애인은 나에게 ‘정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정말일까? 아니다. 그럴 리 없다. 나도 한다고 하는데. 이렇게 생각해 볼 수는 있겠다. 나란 인간은 손재주가 없는 데다 워낙 ‘효율성’을 중시하도록 프로그래밍된지라 나도 모르게 요리에서도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노력을 덜 들여 음식을 완성할까?” 하는 잔머리가 작동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요리 비스무레한 결과는 나오는데 순서도 뒤죽박죽, 맛이 발현되는 섬세한 과정들은 생략돼 버리는 경우들이 많을 수밖에.

 

이에 비해 애인은 섬세하기로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을 성품의 소유자다. 때문에 스피드 면에서 늘 월등한 나에게 “꾸물거린다” “ 답답하다”는 말을 자주 듣기도 한다. 준비하고 밖에 나갈 때도, 빨래를 널 때도, 뭘 하든지 자신이 정한 순서를 지키며 서두르지 않는다. 아마 이러한 성격이 가장 빛을 발할 때가 요리 과정이지 않나 싶다.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도 마치 장인의 손길같이, 부엌에서 뭔가 뚝딱뚝딱 하고 있는 것 같으면 맛있는 요리가 완성된다. 나로서는 알 수 없는 경지의 일이다. 들어가는 재료나 요리하는 방법이 나와 별 차이 없는 것 같은데, 이 맛의 차이는 뭘까. 그리고 그럴 때마다 감탄한다. 나 이런 사람과 함께 살고 있구나!

 

부모님 집에서 독립한 지 얼마 안 되어 처음으로 내 살림을 살게 되면서 가장 낯설었던 게 요리하고 밥 먹는 일이었던 것 같다. 학습 속도가 빠른지라 청소도 빨래도 뭐, 그냥 하면 되는 일이었던 반면에 요리는 질적으로 좀 달랐다. 기계적으로 배운다고 금세 되는 일이 아니었고, 또 나 자신을 돌보기 위해 스스로 요리하는 게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핍된 영역처럼 느껴졌었다. 그때 간간히 애인이 찾아와서 요리를 하고 함께 밥을 먹곤 했는데, 이 여자 이런 능력이 있을 줄이야. 생활형 요리부터 집에서 해 먹을 수 있으리라 생각 못 했던 스케일의 요리까지, 애인의 요리에는 혀끝에서 느껴지는 맛을 넘어서 마음으로 느껴지는 훈훈한 감동이 담겨 있었다. 그저 주위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만든 소박한 밥상 한 끼인데, 애인과 함께 먹는 애인표 음식들은 경직되고 날 선 나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만들어 주곤 했다. 덕분에 배만 고프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나는 음식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라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먹는 밥 한 끼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었다. “효율의 법칙”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을 조금씩 알아보게 되었달까.

 

시간이 흘러 우리는 매일 얼굴을 보고 살을 맞대며 같이 살고 있다. 나의 요리엔 없지만 애인의 요리에는 있다고 표현한 것. 정성. 다시 생각해 보니, 어쩌면 그 표현이 맞을 수도 있겠다. 넣어야 할 요리 재료를 다 넣어도, 지켜야 할 조리 순서를 다 지켜도, 잠시나마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이, 순간의 정성이 첨가되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 맛깔스러움이 더해지겠는가. 지금도 이따금씩 지치고 힘이 들 때면 애인이 해 주는 최고의 된장찌개를 먹으며 몸과 마음을 채우곤 한다. 나를 살리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애인과 살고 사랑하며 나도 점점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 세상에 효율적이지 않아도 좋은 것들이, 오히려 효율적이지 않기에 좋은 것들이 있다는 것, 요리 또한 관계 맺음이 그렇다는 것. 묵묵히 지켜봐 주는 진정성에 더해 한 숟갈의 정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씩 알겠다. 그나저나 이 습하고 더운 여름이 지나가야지, 본격적으로 요리를 좀 해 볼 텐데. 내 손으로 완성될 힐링푸드는 어떤 모습일까나.

 

*코너 <우리 같은 사람들>은 매주 1편의 성소수자 에세이를 싣습니다. 마포레인보우연대에서 기획, 진행한 퀴어 에세이 낭송회에 모집된 글들입니다. 

*퀴어 에세이 낭송회를 기획한 마레연 소개 
마레연은 2010년 지방선거 당시 마포레인보우유권자연대로 시작해, 같은 해 모두모임에서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로서 지역, 성정체성 상관없이 주민들 스스로 만들고 함께해 온 모임이다. 한 달에 한 번 밥상, 연말이면 모두모임, 퀴어축제 번개, 서울여성영화제 번개 등 같이 먹고, 이야기하고, 즐길 수 있는 모임뿐만 아니라 강정마을지지 현수막 보내기, 여러 다른 단체들과의 연대, 보트피플, 비록 아직까지 현수막이 걸리진 않았지만 마포구청을 통해 현수막 걸기, 야유회 등과 같은 대대적인 활동을 짧은 기간 동안 내실 있게 진행해 왔다.

http://cafe.daum.net/maporainbow2010

 

응답 2개

  1. 말하길

    애인!!!!!!!!! 이 말이, 이렇게나 예쁜 말이네요. 덤 님의 글을 읽으면 뭔가 기분 전환되면서 새삼스러워지는 생활, 언어의 낯설음이 다가오곤 합니다.

  2. 말하길

    와우! 왕 기대되요. “진정성에 더해 한 숟갈의 정성이 필요하다”는 말, 가슴이 깊이 와 닿네요. 요리만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풀때도, 활동을 할 때도, 책을 쓸 때도,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래요. 깊이 우려낸 진정성의 육수에 한 숟갈의 정성이 담긴 끈질김과 인내…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