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은 사람들

마늘장아찌

- 체리

외할머니는 매일 저녁 7시에 잠에 들어 다음날 4시에 기상한다. 5시면 천주교TV에서 나오는 <자녀를 위한 기도>를 복창하고, 6시엔 세탁기를 세 번씩 돌려 구정물이 안 나오는지 확인하고, 8시 반엔 침 묻은 젓가락을 휘둘러 밥그릇마다 마늘장아찌를 추가한다. “마늘 두 쪽씩 먹어야 건강하다.” 외할머니는 매년 장독 두 동이를 마늘장아찌로 채운다. 장아찌가 알맞게 익으면 그 중 반을 건져내어 자식과 손주들에게 전해 주고, 반은 자신이 먹는다. 가장 저렴한 설탕과 간장으로 재워 둔 마늘에서는 불량식품 같은 단맛이 난다.

밥을 먹으며 우리는 <아침마당>을 시청한다. 외할머니는 그곳에 등장하는 모든 사연을 꼼꼼히 체크한다. 매주 수요일이면 재혼을 꿈꾸는 중년들을 가리키며 혀를 차고,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국제결혼 커플의 화사한 웃음소리에도 흑국년이 뭐가 좋으냐며 질색팔색을 한다. 이름난 중매쟁이인 할머니가 사무치게 후회하는 단 세 건의 중매는 제 자식들의 결혼이다. 그는 아들을 못 낳을 거라는 애기무당의 예언에 질겁하여 약혼까지 마쳤던 삼촌과 그의 애인을 갈라 세웠다. 이후 삼촌은 13년간 어떤 선 자리에도 출석하지 않다가, 자신만큼 가난한 아내를 데려와 시골로 떠나 버렸다. 이 이야기를 할 때면 외할머니는 주먹을 말아 쥐고 엄청난 소리로 가슴께를 내리친다. “자식 안 길러 본 사람은 인생을 반도 못 산 거다.” 가끔 기분이 좋아지면 나에게 호언을 한다. “대한민국에서 최고 눈썹이 새까만 놈으로 골라 줄게.” 용한 관상쟁이한테서 눈썹이 짙은 남자를 만나야 여자 인생이 핀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다음 주엔 H가 우리 집에 온다. 그가 부산에 오는 건 이번이 6번째이고, 나는 그 중 5번을 함께 했다. 첫 번째 방문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 두 번째 여행에서 우리는 서로의 몸과 담요만 가진 채 밤새 놀았다. 배낭을 두른 H가 마당에 등장하자, 온 가족이 H를 보러 베란다에 모였다. 저렇게 머리카락이 짧은 여자애는 처음 봤다고 수군거렸다. 남동생이 파자마 차림에 우산을 들고 뛰어나와 허공에다 H의 이름을 불러댔다.

그 다음 해에 H가 부산에 왔을 때, 나는 그를 우리 집에 재울 수가 없었다. 담배를 꼬나문 내가 H의 볼에 키스를 퍼붓는 사진이 모든 식구들의 메일로 전송된 직후였다. 우리는 한 여자대학교의 기숙사에 들어가 며칠 밤을 보냈다. 방학이 시작되고 난 뒤의 기숙사는 처음부터 누구도 살지 않았던 모델 하우스 같이 공허했다. 공용 샤워장에 잠입해 수증기를 천장까지 피워 올렸다. 지금 H와 함께 있다고 이실직고한 다음 날, 수건을 가지러 집에 들렀더니 부엌에 아빠가 있었다. 유명한 데서 사 왔다며 도시락을 건네줬다. 여러 가지 생선이 얹어진 초밥 한 팩과 유부초밥 한 팩이었다.

2012년 가을에 나는 부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H와 부산영화제에서 영화를 봤다. 남동생의 책장을 구경하는데 거기에 『동성애의 역사』가 꽂혀 있었다. 그 무렵 아버지는 시도 때도 없이 다리가 저렸다. 8시 뉴스가 시작되면 엄마와 나는 아버지의 다리를 건성으로 주물거리며 단감을 깎아 먹었다. 그해 겨울, 나는 H와 헤어졌다. 저녁식탁에서 그 사실을 밝히자 어머니는 웃는 얼굴로 “어머, 많이 힘들겠다”라고 말했다. 나는 좋으면서 웬 위로하는 척이냐며 따졌다. 그때까지 듣고만 있던 아버지가 갑자기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아버지는 올해 봄에 돌아가셨다. 나는 가장 먼저 H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서로의 꼴을 보고 폭소를 터뜨렸다. 야윈 팔 다리에 까만 자켓을 걸친 H는 허수아비 같았고, 내 정수리에선 기름이 흐르고 있었다. H는 발인을 치르는 삼일장의 마지막 날까지 부산에 머물렀다. 충직한 개처럼 빈소를 지키는 그를 확인하고 나서, 나의 친구들은 안심했다는표정을 지으며 두 번씩 절을 하고 떠났다. 여동생은 상주 노릇이 지루해질 때마다 H의 옆자리로 향했다. 맥주를 마시던 그녀는 경쾌한 톤으로 나와 H를 아웃팅 했던 자신의 과거지사를 회고했다. 조문을 왔던 친구는 경악스런 입모양을 한 채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효과음 넣어 주는 사람들처럼 나와 H만 신나게 낄낄거렸다.

외할머니는 처음부터 H에게 비상한 관심을 쏟았다. 늦봄, 충동적으로 떠난 효도관광의 목적지는 제주였고, H는 마침 그곳에 있었다. 2박 3일 동안 H는 제각각 개성 있는 밉살맞음을 뿜어대는 모계혈족과 동행하며 사진사, 짐꾼, 개그맨의 역할을 동시에 해냈다. 제주를 떠나는 비행기에서 엄마는 십대소녀 같은 뺨을 하고 내 귓전에 속살거렸다. “할머니가 H 처음 보고 뭐라 했는지 아나? 쟤랑 다니면 니 혼삿길 막힐 것 같단다. 네 할머니 참말로 용하제?” 우리 어머니는 나와 H의 과거지사를 소재로 한 농담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다.

제주에 다녀와서 외할머니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H의 이야기를 꺼냈고, 마침내 H가 부산에 놀러오자 엄마는 외할머니와 H를 데리고 소고기를 먹으러 갔다. 그날 밤, 엄마와 나는 별것 아닌 이유로 말다툼을 벌였다. 궁지에 몰리자 엄마는 필살기를 꺼내들었다. 내가 H의 얼굴을 보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 아냐며,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희생하고 있는지 아냐며 눈물을 쏟았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아오자 엄마는 갑자기 팔 토시를 하고 나타나 H에게 버찌를 따러 가자고 말했다. 내가 짜증을 벌컥 냈더니, 엄마와 똑같은 팔 토시를 차고 온 외할머니가 너 같은 애는 필요 없고 H만 있으면 된다고 외치면서 H의 한쪽 팔을 낚아채 갔다.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나와 H의 연애, 눈썹 진한 남자의 부재, 남편도 아기도 없는 반쪽짜리 인생으로 꽉 채워질 나의 여생. 저 과거와 미래들이 매우 느린 속도로 내 가족들의 삶에 침윤하고 있다. 아직은 우리 중 누구도 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아버지가 죽은 적이 없다는 듯이, 아버지가 살았던 적도 없다는 듯이. 그러나 언젠가는 우리도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그날이 오면 우리는 아버지의 콧구멍이 얼마나 컸는지, 아버지가 시치미를 떼는 게 얼마나 어설펐는지 말하며 배를 잡고 웃게 될 것이다. 삶이라는 바다 한가운데에 죽음이라는 추를 걸어 두는 데 훈련이 필요한 것처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정상가족에 대한 페티시로 치환해 온 우리 가족의 족보 한가운데에 레즈비언 손녀를 등재하는 데에도 긴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다. 그 순간까지 우리는 매일 아침마다 마늘장아찌를 두 점씩 아작거리며 무수한 가족들이 비슷비슷한 이유로 슬퍼하거나 우쭐대는 화면을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이 연금술에 필요한 원료는 우리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나와 H가 단련해야 했던 능력과 거의 일치한다. 우리가 함께 지내온 하루와 또 다른 하루들은 그럴싸한 결론으로 도약하기 위한 직선을 그리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순간 자체로 충실하기 위한 노력이 원형으로 반복될 뿐이었다. 그것은 어떤 완성형이 되려는 야심 없이, 그저 피어나기 위해 피어나는 잎사귀들과 비슷하다. 동일한 형태로 이뤄진 부분들의 종합이 다시금 부분들을 닮아 버리는 탓에 부분과 전체의 선후관계를 무화시키는 프렉탈 구조. 이때 펼쳐지는 잎맥 속에는 장성한 나무 한 그루가 가장 완전한 모습으로 새겨져 있다.

모래사장으로 향하는 산책로를 걷다가 H가 물었다. “우리가 무슨 관계냐고 사람들이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지?” 해는 주황색 바다와 주황색 하늘 사이에 간당간당하게 걸쳐 있었다. H는 촘촘하게 갈라진 나무껍질을 가리키며 대장에서 오래 묵은 분비물 같다고 말했다. 나는 그 자리부터 모래사장을 지나 주차장이 나올 때까지 울었다. 시장 골목으로 향하는 도로에는 가설무대가 서 있었다. 마이크를 잡은 사람이 한 줄의 가사로 이뤄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I wanna reggae with you.” 부모의 무릎 아래를 빙글빙글 달리는 아이들의 손에서 아이스크림이 흘러내려, 아스팔트 이곳저곳에 불꽃놀이처럼 둥근 자국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춤추자”라고 말하고 H가 내 앞에서 사라졌다. 무대에서 발원한 노란 조명 빛이 그가 이동하는 방향을 따라 흔들리기 시작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다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코너 <우리 같은 사람들>은 매주 1편의 성소수자 에세이를 싣습니다. 마포레인보우연대에서 기획, 진행한 퀴어에세이 낭송회에 모집된 글들입니다. 

*퀴어에세이 낭송회를 기획한 마레연 소개 
마레연은 2010년 지방선거 당시 마포레인보우유권자연대로 시작해, 같은 해 모두모임에서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로서 지역, 성정체성 상관없이 주민들 스스로 만들고 함께해 온 모임이다. 한 달에 한 번 밥상, 연말이면 모두모임, 퀴어축제 번개, 서울여성영화제 번개 등 같이 먹고, 이야기하고, 즐길 수 있는 모임뿐만 아니라 강정마을지지 현수막 보내기, 여러 다른 단체들과의 연대, 보트피플, 비록 아직까지 현수막이 걸리진 않았지만 마포구청을 통해 현수막 걸기, 야유회 등과 같은 대대적인 활동을 짧은 기간동안 내실있게 진행해왔다.

http://cafe.daum.net/maporainbow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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