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 <우리 같은 사람들>은 매주 1편의 성소수자 에세이를 싣습니다. 마포레인보우연대에서 기획, 진행한 퀴어에세이 낭송회에 모집된 글들입니다. 본격 연재를 시작하기 전 퀴어에세이 낭송회 기획단에 참여한 달꿈님이 보내주신 소개글을 먼저 올립니다.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에서 총 기획하고 실행한 퀴어 에세이 낭송회 <우리 같은 사람들>의 시작은 기형도의 「거리에서」란 시의 “우리 같은 사람들”이라는 말에 꽂혀버린 누군가의 제안이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 그러니까 우리처럼 퀴어(Queer; 원래 “이상한”, “색다른” 등을 나타내는 말이나, 지금은 성적 소수자-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 섹슈얼, 트랜스젠더 등-의 사람들 모두를 포괄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인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다고, 우리 “같은 사람들”, 우리는 퀴어든 아니든 모두 같다고 하는 의미를 모두 품고 있다.
그리고 때마침 성소수자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마레연의 현수막 게시를 마포구청에서 불허한 지도 5개월이 흐른 상황이었다. 당시 마레연은 “LGBT, 우리가 지금 여기 살고 있다”, “지금 지나가는 10명 중 1명이 성소수자입니다” 라는 현수막 문구로 구청에서 관리하는 현수막 게시대에 현수막을 걸기로 하였다. 현수막 내용은 말 그대로 정치적인 주장도 아니었고 어떤 결과를 얻어내고자 요구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우리가 지금 여기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수막 게시 불허 이유로 청소년에게 유해하다, 혹은 과장되었다, 직설적이다 등의 마포구청의 답변을 들으면서 오랜만에 얼척없는 경험을 해야 했다.
이것이 지금, 여기에서 살아내고 있는 가장 보통의 존재의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를 우리 스스로 말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에세이 모집 공모를 하고, 퀴어들의 일상을 담은 다양한 에세이들이 우리에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유의 해학과 풍자가 빛나는 이야기, 짧고 투박하지만 진정성이 느껴지는 이야기, 사소한 일상이 반짝반짝 빛나는 이야기 등 21명의 소중한 경험이 모였다. 그리고 그 중 낭송회에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6개의 에세이를 추렸다.
그렇게 퀴어에세이낭송회 <우리 같은 사람들>은 시작되었다.
무대 위에 떨리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 지지와 연대의 눈빛들과 낭송회 공간에 퍼진 따스한 기운들 모두 꿈과 같은 아름다움으로 기억된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누군가의 ‘말하기’라는 것은 또 다른 누군가의 ‘듣는다’는 것이 없다면 의미를 잃는다. 성소수자들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성소수자들은 삶으로서 우리의 존재를 늘 증명하고 있지만, 때로 그 존재는 종종 지워지고 삭제되고,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취급받기 때문이다. 퀴어에세이낭송회 <우리 같은 사람들> 에는 조금 서툴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당사자의 목소리’와 ‘그 목소리의 소중함을 알아보는 사람들’ 이 있었다. 그리고 서로를 향해 보내는 연대와 지지의 메시지는 뜻깊고 감동적이었다. 앞으로도 더 많은 목소리와 그 목소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 자리를 통해서 서로에게 커밍아웃하고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비록 낭송회에 함께 하시진 못했을지라도, 소중한 목소리를 진심을 담아 즐겁게 읽어주시길 바라며 퀴어에세이낭송회 <우리 같은 사람들>을 시작하며 읽었던 시를 마지막으로 남긴다.
진정한 이름으로 나를 불러 주세요 -틱낫한
내가 내일 떠날 거라고 말하지 마세요.
나는 오늘도 여전히 도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보세요. 매순간 내가 도착하고 있는 것을
나는 봄 나무의 새싹으로
새로운 둥지에서 노래를 배우는
부러질 듯한 날개를 갖는 작은 새로
꽃 속의 벌레로
돌 속에 자신을 숨긴 보석으로 도착하는 것을
나는 아직도 오고 있습니다.
웃고 울기 위하여, 두려워하고 희망을 갖기 위하여
나의 심장 고동 소리는 살아있는 모든 것의 탄생이며 죽음입니다.
나는 강물 위에서
탈바꿈하는 하루살이입니다.
그리고 봄이 오면
그 하루살이를 먹는 새입니다.
나는 연못의 맑은 물에서
행복하게 헤엄치는 개구리입니다.
그리고 소리 없이 다가가
그 개구리를 잡아먹는 물뱀입니다.
나는 피부와 뼈, 다리가 대나무처럼 기는 우간다의 아이입니다.
그리고 그 우간다에 죽음의 무기를 파는 무기상입니다.
나는 해적에게 강간당하고 바다에 몸을 던지는
작은 배를 탄 12살짜리 소녀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보거나 사랑할 수 없는
마음을 가진 그 해적입니다.
나는 권력을 한 손에 움켜 쥔
권력가입니다.
그리고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천천히 죽어가는
국민들에게 ‘피의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그 사람입니다.
나의 기쁨은 봄과 같아서
모든 생명체에 꽃을 피울 만큼 따스합니다.
나의 고통은 눈물의 강과 같아서
4대양을 가득 채울 만큼 가득합니다.
진정한 이름으로 나를 불러 주세요.
그래야 나의 울음과 웃음을 모두 들을 수 있고
그래야 나의 기쁨과 고통이 하나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깨어날 수 있도록
진정한 이름으로 나를 불러 주세요.
그래야 내 마음의 문을 열어 둘 수 있습니다.
자비의 문을 말이죠.
*퀴어에세이 낭송회를 기획한 마레연은 누규?
마레연은 2010년 지방선거 당시 마포레인보우유권자연대로 시작해, 같은 해 모두모임에서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로서 지역, 성정체성 상관없이 주민들 스스로 만들고 함께해 온 모임이다. 한 달에 한 번 밥상, 연말이면 모두모임, 퀴어축제 번개, 서울여성영화제 번개 등 같이 먹고, 이야기하고, 즐길 수 있는 모임뿐만 아니라 강정마을지지 현수막 보내기, 여러 다른 단체들과의 연대, 보트피플, 비록 아직까지 현수막이 걸리진 않았지만 마포구청을 통해 현수막 걸기, 야유회 등과 같은 대대적인 활동을 짧은 기간동안 내실있게 진행해왔다.
http://cafe.daum.net/maporainbow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