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농사 일지(10). -가을 걷이와 겨울 갈무리(秋收 冬臧)의 계절에..

- 김융희

秋收冬臧(추수동장)은 한문 세대의 처음 배우는 교과서 천자문(千字文), 첫 페이지에 나온 문구(文句)이다. “천자문”은 양(梁)나라 주흥사(周興詞)가 지은 책으로, 자연 현상과 인륜 도덕의 내용인 지식 용어를 사용한 주로 어린이(童蒙)의 교양 습자로 쓰인, 사언고시(四言古詩) 250구로 구성되어 있다. 나도 어린 시절, 한석봉의 필사본으로 첫 구절 천지현황(天地玄黃)에서 끝 절인 언재호야(焉哉乎也)를 내용도 모른 채, 무조건 열심히 베끼고, ‘하늘천 따지 감을현 누루황’을 운율에 맞춰 암송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먼저 익히는 어린이 책”이라는 “동몽선습”(童蒙先習) 보다 “천자문”을 먼저 배웠던 까닭을 잘 모르겠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는 내용의 ‘천자문도 못 읽고 인(印)을 위조한다’(어리석고 무식한 주제에 남을 속이려 함)는 속담처럼 “천자문”이 배움 수준의 초보를 지칭한 것이 대게 옛 한문 세대였었다. 이처럼 순서가 “동몽선습” 보다는 “천자문”이 먼저였던 것 같다.

11월이 시작되면서, 우리 지역의 오늘 아침 기온이 영하 4도였다. 벌써 장포에도 무우 배추를 제외하고는 빈터가 대부분으로 모두가 텅 비워지고 있다. 가을 걷이를 하여 곳간 저장을 서둘르는 천자문의 사언 절구인 ‘추수동장’의 계절이 바로 지금인 것이다. 내 어렷을 적, 여덟살 때 읽었던 천자문의 내용들이 너무 생생하게 떠올라 잠깐 샛길로 셋던 것 같다.
참으로 금년은 농사짖기에 힘든 날씨였다.
추위도, 가믐도, 지루한 장마도, 혹독한 더위도, 그 사나운 태풍까지도 몇 차례씩이나……
기상 요소의 모든 기상 재해에 “가장”(best)이란 접두사가 붙지 않는 것이 없을 만큼 일기가 불순한 지난 해의 날씨였다. 정말이지 농사를 못 지을 것 같았고, 흉작으로 인한 흉년거지가 불안했었다. 그런데 가을은 변함없이 역시 수확의 계절이었다. 의연한 자연 앞에 방정꾸러기 우리들의 지레 짖일 뿐, 고마운 작물들이 잘 대처하여 극복하면서 결실을 맺어, 들깨, 콩을 수확하고 토란도 케고, 고구마도 켔다. 밤도 대추도 잘 열려 익어서 수확했다.
이제 남는 무우, 배추, 갓, 파,등도 곧 거둬 들일 것이다.

다만 수확의 양과 질의 차이로, 양은 예년의 수준에 못 미쳤다. 그러나 질에서 더러는 예년 수준을 넘었다. 온도의 차이에서 결실이 튼실한 것처럼, 불리를 극복하면서 충실한 열매가 질을 높인 것이다. 그리고 해충과 질병에도 훨씬 더 잘 대처하여, 병충해가 적었다. 해마다 골칫거리였던 고추도 질병 없이 잘 수확했고, 특히 벌레 먹는 밤도 대추도 금년엔 전혀 없다. 아내가 좋와하는 밤, 내가 즐기는 대추차로 금년 겨울을 보내며 한결 즐거울 것 같다. 금년에는 달고 시원한 물고구마를 새로 주문해 정성껏 가꿨는데, 밑이 없고 깊이 박혀있어 케기도 여간 힘들었다. 추운 겨울 날씨에, 긴긴 저녁을 보내는데 동치미 국물에 곁드린 달고 시원한 물고구마를 먹는 즐거움은 많지않을 것 같다. 금년에 호박이 흉작으로 호박 팟죽은 없다. 대신 토란국으로 추위를 극복하라며 토란이 탐스럽고 오지게 매달렸다.
이처럼 매사는 호오(好惡)도 희비(喜悲)도 모두가 함께 한 것, 좋은 것만을 바라는 것은 인간의 탐욕이다. 탐욕이 지나쳐 삶을 망가뜨리는 것이 우리의 생임을 자연에서 배워 익혀야 한다. 이같은 자연과 더불어 살며 먹거리를 가꿔 수확하는 농사이기에 천하에 큰 본보기가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농자가 대본이 못되고, 농심이 변해 우리 곁에서 농사가 멀어지면서, 오늘의 문명 위기가 시작된 것이다. 아무리 과학 기술 문명이 발달한다 해도 인간이 농사를 저바릴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난 한 때 연금술사들이 날뛰었어도 원소인 금, 은은 턱도 없었듯, 어떤 과학의 힘으로도 우리의 먹거리를 농사에 의존 않을순 영원히 없다. 농사에 의존한 우리의 먹거리를 어설픈 과학 기술로 이리 저리 갈르고 고치고 조작해서 지금의 각가지 성인병을 유발한 것이 현대인의 건강 위기를 초래하지 않았는가? 왜 신성한 유전자까지 조작하면서 창조 질서를 파괴하고 그것도 모자라 남들의 씨앗까지 훔쳐다 특허 독점으로 싹쓸이 짖을 감행한 짖거리들인가?. 욕심으로 말하면 매일 낳은 계란이 탐나서 암탉의 배를 가르는 꼴이요, 어리석기로 전도됨은 생명을 지키는 의술을 배워 아름다움이란 미명으로 돈벌이를 위해 멀쩡한 뼈를 깍고 자르며, 살갖을 떼고 붙여 사람 잡는 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오늘의 농업 위기를 과학이나 현대 문명의 탓으로 돌리며 쓸데 없이 전혀 무관한 다른 분야를 탓하거나, 어찌하다 뼈 깍고 살 찢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다른 직업의 비위를 거슬르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다. 농업의 위기는 외부의 탓보다는 농업 자체의 책임이 훨씬 크다. 그럼에도 진정의 농자는 없고, 외부의 너무 호의적 관용의 시선이 현대 농업 위기의 본질이란 생각이 절실하다.
추수 걷이와 갈무리의 계절을 맞아, 땀흘려 가꾼 여름에 무성했던 작물들, 결실과 더불어 텅 빈 장포를 바라보는 감회가 지나쳐 엉뚱한 시비지단인 듯 싶다. 아니 충분한 시간에 꼭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있다. 오늘은 가을걷이의 이야기를 이쯤으로 마친다.

응답 1개

  1. 가을말하길

    잘읽었습니다. 그런데 외부의 호의적인 관용의 시선이란 어떤 것인지요?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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