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계약은 없었던 걸로 합시다

- 주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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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수로 4년째 입니다. 고려대를 다니던 김예슬씨(이하 김예슬)가 기업-자본의 하청업체가 되어버린 대학을 그만두며, 아니 ‘거부’하며 ‘탈주’를 ‘선언’한지 천일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 흔한 지식인들조차 대학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역설하며 대학의 문제는 대학 내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음을, 그러한 가능성을 넌지시 내비치는 작금의 현실에서 그녀의 ‘선언’을 통해 바뀐 것이, 바뀔 수 있었던 것이 과연 존재하긴 했었던 걸까요?

현실을 비추어볼때, 그때나 지금이나 대학생-청년들은 뼈 빠지게 스펙, 이력서, 자기소개서를 준비 합니다. 2010년 3월에 일어난 그녀의 선언은 기억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미래의 주역’이 될 지금의 (비)운동권-청년들은 목이 터져라 외칩니다. “반값 등록금, 내놓아라”. 이들은 좀 더 ‘값 싸고 질 좋은’ 대학을 원합니다. 나아가 자신들을 ‘고용’할 ‘국가와 기업’을 원하고 또 원합니다.

모두가 알고 있듯 대학 내 학생 운동은, ‘운동’이라는 말을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그 성질을 잃어버렸습니다. 신자유주의 질서 내에 편입되어 몰락해 버린 대학-기업과 함께 ‘종언’을 고했습니다. 그리고 나타난 ‘대안 삶’을 위해 ‘대학 밖으로의 탈주’를 시도했던 25살의 ‘김예슬’은 이제 우리 앞에서 ‘무력함’의 하나의 상징이 되어버렸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그녀가 말하는 식의 이데올로기적인 이념으로서의 ‘저항과 탈주’는 수명을 다한 ‘오래된 언어’였습니다. ‘학생운동의 종언’ 이전, 그러니까 정확히 25년전, 1989년 사회주의의 몰락과 함께 ‘래디컬’하게 사라져야만 했습니다.

‘대학 거부’식의 운동 말고, 금융경제시대에 ‘부채인간’이 되어버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고진 식으로 말하자면 ‘네이션’을 지양하면서 자본과 국가를 총체적으로 지양할 수 있는 건, 보이콧입니다. 예컨대, 빚을 갚지 않지 않는 것, 부채를 순순히 되돌려주지 않는 것 입니다(김예슬의 대학 거부 행위는 사실상 보이콧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급진적으로는 절대 ‘그것’을 ‘그들’에게 주어서는 안 됩니다. 채권자-채무자 관계의 매듭을 잘라내야합니다.

우리에게 부채는 어떤 의미입니까? 궁핍한 현실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입니까? ‘부자’를 담보하는 미래에 대한 약속 입니까?

니체가 묻습니다. “’죄schuld’라는 저 도덕의 주요 개념이 ‘부채schulden’라는 극히 물질적인 개념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생각해본 적이 있었”느냐고. 부채를 갚지 않겠다는 것은 ‘약속, 신의,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런 약속은 애시당초 있지도 않았습니다.

혹시 부채에 대한 보이콧으로 인해 당신의 육체, 가족, 혹은 당신의 자유와 생명이 저당잡힐까 무서운가요? 채무 불이행에 대한 댓가를 치를까, 형벌을 받을까, 감방살이를 할까 두려운가요?

어떤 의미로든 부채로 인한 ‘죄의식’을 가져서는 곤란합니다. ‘양심의 가책’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우선 빚을 갚아선 안됩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고통당해왔습니다. 충분히 희생할만큼 희생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습니다. 서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사이를 갈기갈기 찢어놓으며 자본주의적 화폐 관계를 제외한 모든 관계를 끝장내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계속 하자면 밑도 끝도 없을거라, 마지막으로 이번 기회를 빌어 제 개인적인 부채감의 근본 원인 중 하나인 부모님께 한 말씀 올립니다. 당신의 (물질적) 증여-은혜는 가슴 깊이 아로새겨져 잊혀지지 않을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살아 생전 그것을 다시 화폐-돈으로 오롯이 되갚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니,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오로지 제가 살고 싶은대로, 반자본주의적으로 ‘잘’ 사는 것이 당신께 드릴 둘도 없는 선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죄송스러운 마음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이것이 효자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이 우리의 발을 옥죄는 자본주의적 권력관계의 사슬이 끊어지는 날이 되길 바랍니다.

*** 이번 152호부터 ‘10대별곡’이 실립니다. 10대 청(소)년들의 학교 안팎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그들의 고민을, 사회를 보는 관점을 현장감 있게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응답 1개

  1. 말하길

    날선 감정이 느껴지는 글,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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