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아이들을 밀어내는 학교 (2)

- 숨(수유너머R)

2. 배제의 두 번째 구조 : 격리와 도태

“거기 날라리들이 다니는 학교 아니에요?”
내가 위탁형 대안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한다고 말하자 한 중학생이 보인 반응이다. 나도 딱히 반박할 수가 없어서 그렇다고, 수긍했다. 그게 현실이다.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날라리들을 요즘은 위탁형 대안학교로 보낸다.
관 내의 학교에서 보내주는 부적응 학생들이 위탁되는데 다니던 학교의 학적을 유지하면서 한 학기 동안 출석을 대안학교로 한다. 위탁되는 학생의 대부분은 무단으로 장기결석을 해서 학업 유예 가능성이 높은 아이들이다. 학업유예가 되면 해당년도에는 학교를 쉬었다가 다음해에 이전의 학년으로 복학해야한다. 어학연수나 신체질병 외에 학교 부적응으로 유예가 된 경우 복학한다고 해도 다시 적응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부적응으로 인한 학업 유예를 막기 위해 지역사회 민간단체나 지자체가 함께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 위탁형 대안학교다.
대안학교 교사들이 교육과정을 대안적으로 구성하고 학생과 평등한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한다고 해도, 학교의 태생과 한계는 명확하다. 학교의 태생과 한계라고 말하는 것은 학교에 들어오는 아이들에 관한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대안교과가 있는 교육과정에 훨씬 만족하는 편이고, 교사와의 관계에서도 편안해하는 편이다. 멍하니 앉아 있어야 하는 수업시간이 적고 생활교사와 교과담당 교사가 아이들이 교과수업에서 느끼는 어려움을 외면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위탁형 대안학교의 한계는 학생들을 위탁 의뢰하는 학교와의 관계로 인해 생긴다. 위탁형 대안학교는 기존의 학교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지 않고, 학교의 기능을 보완하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따로 모집할 수 없고, 기존의 학교에서 보내주는 아이들을 받아야 한다. 위탁형 대안학교에 보내지는 아이들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흡연/금품갈취/비행/학교폭력/교사에게 반항 등으로 학교와 지속적인 갈등을 겪으면서 결석일수가 많아 학업 유예 직전인 아이. 또는 학교에서 두드러진 문제를 일으키진 않으나 장기 결석으로 학업 유예 직전인 아이.
재밌는 것은 학교에서도 이런 부류의 아이들을 위탁형 대안학교로 보내는 것에 매우 적극적이라는 사실이다. 아이들 또한 원래 학교보다 대안학교를 오고 싶어 한다. 작년에 대안학교에 출석을 하다가 다시 원래 학교로 돌아간 아이들이 올해 다시 위탁 심사에 지원해서 다니고 있다. 아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원래 학교로 돌아갔을 때 적응이 쉽지 않고, 기존의 학교보다 대안학교가 복장이나 두발 등 일상생활에서 규제하는 교칙이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평소에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면 대안학교에 대한 낙인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장애인만 모아놓은 학교에요.” 위탁형 대안학교가 부적응한 학생을 따로 모아 놓은, 예외적인 학교라는 인식을 아이들 스스로도 하고 있다. 학교가 일군의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을 포기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현재의 교육환경이 모든 학생을 담아낼 수 있는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형태를 포기하고 있으며 학교 교육에 적응하고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구분하여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특수하게 처리하고 격리하는 형태로 교육 환경을 재편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시도들은 위탁형 대안학교 이외의 다른 형태로도 학교 안팎에서 진행되고 있다. 지난 해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실시된 정서행동선별검사는 정신건강상 문제있는 아이들을 선별해내고 그들을 관리하기 위한 시스템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다. 정서행동선별검사 결과 관심군으로 판명이 된 학생은 문제유형별 검사를 통해 다시 주의군으로 분류된다. 주의군 아이들은 교육청의 Wee센터, 지역의 위기아동청소년 지원기관, 정신보건센터에서 다시 심층평가를 받게 되고 최종적으로 정신건강상의 문제가 있다고 판명이 되면 전문 상담센터나 신경정신과에 의뢰되기도 한다. 다른 여러 측면이 있겠지만, 이 과정을 통해 학교는 교육환경이 가지는 부작용이나 문제를 아이들의 정신건강이나 적응력 탓으로 돌릴 수 있게 된다. 더 이상 학교가 교육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 전문 분야에 아이들의 학교 생활과 적응에 관한 문제를 일임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처음에 교실에서 상담실로 보내지고, 그 다음에 외부 상담기관 등에 의뢰되고, 더 이상 기존의 학교에 출석하며 교육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위탁형 대안학교에 보내진다.

하지만 이런 분리와 격리를 통한 보호(?)도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학생의 의사와 상관없이 학교가 막아버리는 경우도 있다. 겨우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나 고등학교에 여러 가지 이유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긴다. 학교는 아이의 적응을 방해하는 요소를 없애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방치한다. 이때 국공립 계열의 고등학교라면 학생이 위탁형 대안학교를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립계열의 전문계고등학교에서는 학생이 위탁형 대안학교를 가겠다고 하면 자퇴를 하라고 종용한다. 위탁형 대안학교로 학생을 보내게 되면 한 학생당 국가에서 지원되는 수업료를 대안학교에 보내야하는데 학교의 입장에서는 행정처리를 다시 해야하니 번거롭다. 또한 차라리 자퇴를 하면 빈자리가 생기므로 다른 학생을 받을 수 있는데 공연히 대안학교로 학생을 보내면 그럴 수도 없기 때문에 손해다.
한 아이는 고등학교 진학 후 전공의 특성 상 남학생들이 많아 분위기가 폭력적이고 교사의 체벌이 공공연히 이루어지는 학교에서 적응이 어려워서 장기 결석을 하고 가출을 했다. 학교를 가지 않고 친구집을 전전하던 아이에게 지역아동센터 실무자가 대안학교를 제안했고, 아이는 학교를 그만두더라도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없기 때문에 대안학교라도 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판단을 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위탁을 보내는 것을 불허하는 방침이었고 학교의 입장을 거스르기가 쉽지 않아 아이는 자퇴를 하기로 했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많다. 이럴 때에 학교와 싸워서 아이의 선택권을 보장받기가 쉽지 않다. 보호자가 학교에 강하게 의견을 피력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실정이다. 강압적인 분위기로 학교의 각 부장교사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담임교사도, 도움을 줄 사람도 전혀 없는 상황에서 학생과 보호자가 학교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서울시인권센터에 진정하려고 상담을 받은 사례도 있었는데 인권 센터의 담당자가 진정을 넣어도 권고 사항이라 강제력이 없어 학생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을 듣기도 했다.

3. 나가며

실제 부적응으로 인한 학교 탈락 비율은 초등학생보다 중학생이 더 높다. 중학교는 초등학교보다 성적으로 인한 경쟁과 평가가 격심해지고 교칙이 강력해진다. 아이들도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학교생활의 스트레스와 부적응을 호소하는 경향이 높다. 가정과 지역의 환경이 원인이기도 하지만 학교 또한 청소년들의 학교 부적응과 비행 등 문제 행동의 원인이 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스스로를 가장 강력하고 유일한 교육의 주체로 상정하는 학교는 문제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끝없이 아이들을 문제로 규정해서 분리, 격리, 퇴출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경쟁적이고 폭력적인 교육환경이다. 하지만 학교는 특정한 아이들을 위험요소로 지목하고 다수의 선량한 아이들을 소수의 위험한 아이들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듯이 처벌과 추방을 강화한다. 혹은 의무교육 영역에서 더 이상 해결이 불가능할 것 같거나 감당하기 쉽지 않은 아이들은 분리해서 교육하거나 그도 아니면 도태시켜버린다. 공공의 교육 현장이 배제의 구조를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형태로 만들어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교육의 이름으로 차별받고 배제당하는 경험을 하며 정말 이 사회의 변두리로 밀려난다.

위기 상황에 놓여있다고 일컬어지는 아이들을 만나면서 나는 한국의 학교가 ‘교육’이라는 주제를 과연 고민하고 있는 건지 의심스러워졌다. 하지만 학교에서 밀려나는 아이들을 돕고자 하는 여러 시도들, 상담센터를 세우고 위탁형 대안학교를 만드는 지역사회의 노력이 현재 학교교육의 모순을 더 강화하고 공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라는 회의가 들면 더욱 괴로워진다. 밀려나는 아이들을 위한 울타리를 만든답시고 학교 밖의 게토를 계속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야 할 때이다.

응답 4개

  1. 현장말하길

    학교는 문제 학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전학이나 자퇴까지의 과정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일말의 개선의 여지도 없어보이는 아이들을 가장 오래 붙잡고 고민하는 기관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학교행정의 편의를 위해 전학을 시킨다? 현장에서 있을수 없는 일입니다. 정말 저 아이 하나 없다면 온 학교가 평온해질텐데, 라고 생각된다 해도 끝까지 해볼수 있는 조치를 다 취하는 곳이 학교라는 것을 세간은 모릅니다. 아니 아는척하지 않으려고 하는것 같습니다. 그랬다가는 쉽게 정치할수 있는 공분의 대상이 사라지니까요. 현장에서 어떻게 해서든 아이들에게 신나고 멋진 시간을 제공하고자 노력하는 많은 교사들이 어찌 고민이 없겠습니까. 하지만 일반적인 생각들처럼 학교가 그렇게 교사나 행정 위주의 편의에 따라 돌아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힘이 빠집니다. 시정잡배가 한두마디 거드는 교육에 대한 탄식이나 이렇게 논리정연하게 쓰여진 글이나 사실은 근본적으로 공분의 맥락 이상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이 안타깝고, 쉽고 아무렇게나 회자되는 교육 현장의 일원으로서 속상할 따름입니다.

    • 말하길

      글에서 강제 전학을 문제로 다룬 이유는 학교 당국의 행정편의적인 선택만을 문제삼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교사의 자질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선생님의 말씀대로 쉽게 “공분의 대상”을 만드는 것 밖에 안 되겠지요.
      문제는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중 특정한 부류를 “문제”로 지정하는 시스템이지요. 학교의 교칙은 일상적으로 문제학생을 생산해냅니다. 더욱이 학교 폭력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높아지고 이들 중 폭력을 행사하는 학생들은 더욱 특별한 문제 학생으로 지정되고, 이전에 없던 전학이라는 처벌이 도입된 시스템 자체가 일정부류의 학생을 학교밖으로 배제하는 구조를 강화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떤 학생들을 처벌할 수 밖에 없는 교사들도 그 구조의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헌신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과 그 속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시스템의 한계는 따로 다루어져야 할 부분이라고 봅니다.
      제가 이 글을 쓴 이유는, 열심히 헌신하시는 선생님들을 포함한 어른들이 그 구조의 한계는 명확하게 보셔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글 중에 “일말의 개선의 여지도 없어보이는 아이들”이라고 쓰셨는데요, 어쩌면 지금의 교육(교사만이 교육현장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겠지요)현장에서 일말의 개선의 여지가 없는 아이들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지금의 교육이 그 아이들을 전혀 교육하지 못한다면 아주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 성찰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이 글은 학교 현장의 교사를 타켓으로 쓴 글이 아닙니다. 오늘의 교육현장이 특정 부류의 아이들을 어떻게 구조적으로 배제하고 있는지, 해결책이라고 내놓는 것이 그 배제의 형태를 더 강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함께 고민해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처벌이 아닌 교육의 형태로요.

  2. 오대석말하길

    글 잘 읽었습니다. 공감하는 부분이 많지만 학교현장에 있는 저로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인권조례와 학부모들의 민원 및 법적 절차의 문제에 대한 고소와 고발, 이런 것에 대처하기 위해선 우리 또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원칙을 고수해야 되는 현실에 안타까워합니다. 그런 학생들을 품을 수 있는 대안들을 끊임없이 고민하지만 학교현장에 전담인력을 두지 않은 상태에선 대안이 없는 상태입니다. 선생님의 글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대안이 없다는 것입니다. 시원한 대안이 있는 글을 써주셨으면 합니다. 수고하세요.

    • 말하길

      위탁형 대안학교에 오는 애들이 그런 얘기를 합니다. “학교에 가도 상담실에 주로 가 있는다. 나도 수업 안 들어서 좋다.”라구요.
      특정한 부류의 아이들에게는 학교가 교육을 포기한 듯 느껴집니다. 수업을 억지로 시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들을 수 있는 수업을 해야하는 거 아닐까요.
      지금의 교육제도 안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거 압니다. 성적중심의 경쟁교육이 일으키는 폐해는 너무 많이 이야기되어서 뻔할정도입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끝에 있는 아이들, 특히나 무슨 무슨 문제아라고 딱지붙여진 아이들은 별도로 격리되고 있는 현상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상담실에 가 있는 것처럼 위탁형 대안학교에 가 있는 아이들도 기존의 학교보다 좋다고 하지만 그게 꼭 좋은 걸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지역에 전문기관을 여럿 만들어 문제 학생을 따로 위탁하거나 의뢰하는 형식이 아닌, 학교에 지역사회가 참여하여 교육환경을 정상화하는 데에 힘을 보태는 것이 조금 나은 해결책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 면에서 지역사회는 학교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학교는 지역사회에 문을 여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