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책꽂이

지나치게 넘쳐서 문제가 되는 세상

- 기픈옹달(수유너머 R)

아침에 일어나니 푸른 나무 그늘진 뜨락에서 이따금 새가 지저귄다. 부채를 들어 책상을 치며 외쳐 말하기를, “이것은 내 날아가고 날아오는 글자이고, 서로 울고 서로 화답하는 글이로다”하였다. 오색채색을 문장이라 한다면 문장으로 이보다 나은 것은 없을 것이다. 오늘 나는 책을 읽었다.

연암 박지원이 쓴 글을 번역한 것이다. 세상과 소통하고 삶의 방향을 가늠 짓는 행위가 독서라면 굳이 종이 위에 쓰여진 글을 읽는 것만이 독서가 아니라 생동하는 자연과 대화를 나누는 것 역시 훌륭한 독서행위 중의 하나이리라. 어쩌면 책을 읽는 것보다 더욱 생생하고 감동적인 독서를 가능하게 할지도 모른다. 요즘 간혹 찾아오는 봄의 기운과 맞닥뜨릴 때마다, 도서관에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아파트 앞에 줄지어 서 있는 나무를 읽기도 하고, 미술관에 가서 옛그림을 읽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책이 아닌 자연을 읽은 경험을 한번 써 볼까 했는데, 마침 얼마 전에 5박 6일 일정으로 제주도를 다녀왔다.

무척 대단하고 멋있는 결심을 한 것 같지만 사실은 고백하건대 제주도를 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책을 읽어야 ‘책빵’의 글을 쓸 텐데, 거기서 도무지 책 구경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는 여행이라 가방에 잔뜩 옷을 쑤셔 넣고 나니, 책 들어갈 여지가 없었고, 그래도 미련이 남아 딱 한 권 넣어간 책이 그만 레비 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였다. 저자에게는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그 책은 제주에서 딱 한 쪽 읽고,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그 책이 레비 스트로스의 저작물 중에 가장 난해한 책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덕분에 나는 자의든, 타의든 제주를 실컷 읽을 기회를 얻은 셈이었다.

사실 제주 여행은 아이들 못지않게 나 역시 무척 들뜨고 기대되는 여행이었다. 신혼 여행 이후로 제주도 나들이는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우리 딸은 마냥 신이 났다. 하지만 비행기가 이륙하고 상공을 날자, 딸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하긴,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것은 이제 상식이 돼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이런 경험이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다. 땅에서 지나치게 멀어지는 것, 여기에서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감지하게 된다고 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아님 내가 너무 촌스러운 것일까?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가도 한번씩 멈춰 서서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기를 기다린다는데…

제주에 도착하여 이산가족 상봉을 한 우리는 그날부터 당장 제주 어디 어디를 갈 것인지 스케줄을 짜기 시작했다. 공항에서 무료로 배부해 주는 제주도 관광사진을 보니, 정말 갈 곳이 많았다. 오래 전 제주에 신혼 여행을 왔을 때와 영 딴판이었다. 우리는 짧은 일정에 최대한 만족할 만한 곳을 돌아다니기 위해 지도를 펼쳐놓고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여기를 가면 저기를 못 가서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조바심과 긴장감을 느끼면서 말이다. 결국에는 아이들의 취향보다는 우리 부부의 취향에 따라 야외 공원이나 휴양림, 올레길, 오름 몇 곳을 찾아다녔고, 이중섭 미술관과 김영갑 갤러리를 다녀왔다.

아직 제주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필요로 하지 않는 다섯 살 난 둘째는 신나게 야외에서 뛰어다니며 놀았고, 제주와 자연에 대해 그다지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초등학생 6학년인 아들 녀석은 자연 속에서 느끼는 무료함(원래 아이들은 자연에서 그다지 감동을 느끼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을 틈틈이 아빠와 캐치볼을 하면서 달랬다. 그런데 제주도에는 하루에 2만 5천 명 가량의 관광객이 찾아온다고 하고, 지난 석가탄신일 연휴 때는 하루 십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우리가 다닌 곳에는 사람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들 어디로 간 것일까?

우리가 다녔던 곳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제주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가며 도착한 다랑쉬 오름이었다. 제주도에는 오름이 360여 개가 있다는데 그 중의 하나였다. 그 곳에는 사람의 인기척이 별로 없었다. 오름으로 안내하는 밧줄을 잡고 30분 가량 올라가는데, 온갖 야생화와 풀들이 인사를 건네고, 멀리 내려다보이는 제주의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아이들이 오르기에도 그다지 높지 않고 꼬불꼬불한 길이 아이들의 모험심을 자극해서인지 전혀 지루해 하거나 힘들이지 않고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정상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분화구 주변을 돌고 나니, 기분이 그지없이 상쾌하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보다, 자연이 선사한 선물이 훨씬 아름답고 감동적이라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이렇게 좋은 곳을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이런 곳이야말로 제주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곳이 아닌가 싶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도 감탄사밖에 나오지 않아, 다만 연암의 번뜩이는 재치와 필력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며칠 동안 제주의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주를 찾아오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단순히 경제적 이익만을 가지고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여행객 특유의 들뜬 분위기와 렌트카의 행렬, 그들이 만들어내는 각종 소음과 소문들. 진정한 제주의 모습을 알고 가기보다는 한순간의 쾌락과 휴식만을 찾아내려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제주에 대한 다양한 오해와 편견을 갖고 돌아갈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해 누군가가 그런 생각을 품고 있다면, 나는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다.

제주도를 다니면서 불편했던 것들 중 하나는 바로 지나치게 넘쳐나는 물건들과 인파였다. 인파는 그렇다치고, 어디를 가나 관광객을 손짓하는 것은 각종 기념품과 먹거리들인데, 그야말로 천편일률적이고 조잡한 물건들이었다. 제주를 상징한다고 내세우기에는 왠지 맥빠지는 느낌을 주는 그런 물건들을 보고 있자니, ‘영 아니올시다’였다. 제주에 대한 애정과 제주 고유의 아름다움을 떠올리게 하는 의미심장한 물건은 거의 없었고, 오로지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불러 세워서 물건을 파는 데만 급급한 상인들을 보면서 마음이 영 찜찜하다. 물론 그 사람들만의 책임은 아니겠지만, 돈만 벌면 된다는 상업주의와 자본주의의 논리가 결국 우리나라 모든 관광지를 이렇게 무미건조하고 지루하게 만들어놓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겁다. 그러한 논리는 결국 자연을 더욱 훼손하고 인공적인 장식을 덕지덕지 붙이면서 더욱 인간과 자연을 고단하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지나치게 많은 상품과 넘쳐나는 조형물들이 오히려 진정한 의미의 휴식을 빼앗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책으로 치자면, 군더더기와 현학적 표현으로 가득 차 있어 마음에 위로와 감동을 전혀 주지 못하는 비싸기만 한 책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이제 우리는 정말 소중한 것에 마음 하나 둘 여유가 없어진 것은 아닐까? 그리고 기껏 제주도까지 찾아와서 돈만 실컷 쓰고, 머리만 혼란스러워진 채 투덜대며 되돌아가는 건 아닐까?

여행의 마지막 방문지였던 김영갑 갤러리에서 나는 그 해결의 실마리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김영갑은 제주를 사랑한 사진작가였다. 루게릭병이라는 병마와 싸우면서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제주를 더욱 깊이 사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그가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찍은 사진이 수천 장, 수만 장으로 남은 용눈이 오름 사진들이었다. 똑같은 장소를 오랫동안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면서, 제주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게 된 그는 어쩌면 우리보다 행복한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좀 길긴 하지만, 그가 남긴 글을 인용하면서 글을 맺는다. 이 글은 <김영갑 갤러리-두모악> 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글이다. 앗, 자연을 읽겠다고 했는데, 결국은 글읽기로 끝나고 말았네.^^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고 누구의 간섭도, 눈치도 없이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면 외로움과 궁핍함은 감수해야 한다. 외로움과 궁핍함을 즐기려면 무언가 소일거리가 있어야 한다. 즐거운 소일거리가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간장, 된장, 고추장만 있으면 돈이 없어도 하루가 상큼하다. 몸만 움직이면 자연 속에 먹을거리는 무진장이다. 굶주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자연에 묻혀 지내는 한 돈 걱정은 없다. 문제는 소일거리다. 365일 즐겁게 생활할 수 있는 소일거리만 있으면 된다. 제주도의 속살을 엿보겠다고 동서남북 10년 세월을 떠돌았다. 그러고 나니 제주도가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디서 바라보는 해돋이와 해넘이가 아름다운지, 제주 바다는 어느 때에야 감추었던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지. 나름대로 최상의 방법들을 찾아내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숲보다는 나무로, 나무보다는 가지로 호기심이 변해갔다. 계절에 따라, 기상의 변화에 따라, 시간대에 따라, 보는 위치와 각도에 따라 풍경은 시시각각 달라진다.

그 진면목을 무어라 단정지을 수 없다. 아름다움의 핵심에 도달하는 황홀한 순간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최적의 장소에서 미리 준비하고 대기해야 한다. 그래야 삽시간의 황홀을 맞이할 수 있다. 결정적 순간을 만날 수 있다. 눈을 감아도 밤하늘 별자리처럼 제주도 전체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대자연의 황홀한 순간을,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대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끼려면 스물네 시간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으려면 삶이 단순해야 한다. 스물네 시간 하나에 집중하고, 몰입을 계속하려면 철저하게 외로워야 한다. 하고 싶은 일에만 몰두하기 위해서는 최소의 경비로 하루를 견뎌야 한다. 부지런하고, 검소하지 않으면 십년 세월을 견딜 수 없다. 십년 세월을 견딘다고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온몸을 내던져 아낌없이 태워야만이 가능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시행착오를 통해 마음의 눈은 떠진다. 진짜는 두 눈이 아닌 심안으로 보아야 한다. 심안은 간절히 원한다고 열리는 것이 아니다. 앞뒤 재지 않고 육신을 내던져 간절히 소망할 때 마음의 문은 열린다.

365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태풍이 부는 날이나, 바람 한줄기 없는 날에도, 한여름이나 한겨울에도 똑같은 장소에 간다. 앉아서 보고, 서서 보고, 누워서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슬플 때에도, 기쁠 때에도, 혼자서 바라본다. 그렇게 몰입한 후에야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제주만이 간직한 아름다움이 제모습을 드러낸다. 보여 준다고 볼 수 있는 것도,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보고 느낄 수 있는 심안이 없으면 그저 무심히 지나친다. 지금까지 무심히 지나친 것들 속에 진짜배기는 숨겨져 있었을 지도 모른다. 모르기에 마음 편안히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심안으로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마음이 고요해야 한다. 마음이 고요해져선 혼자 지내야 한다. 삶의 의욕이 넘치는 젊음은 온갖 유혹에 흔들린다. 생각을 하나로 모으려면 잡념이 없어야 한다. 한 가지에 몰입해 있으면 몸도, 마음도 고단하지 않다. 배고픔도, 추위도, 불편함도, 외로움도 문제되지 않는다. 하나에 취해 있는 동안은 그저 행복할 뿐이다. 몰입해 있는 동안은 고단하고 각박한 삶도, 야단법석인 세상도 잊고 지낸다.

– 김대경(고등학교 교사)

응답 1개

  1. 말하길

    저도 작년에 5일동안 제주도 캠핑을 하면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곳이 김영갑 갤러리 였습니다. 누군가가 어떤 장소를 지극히 사랑하고 그 열정으로 그런 훌륭한 공간을 마련한다는 일이 너무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ㅎㅎ 제주의 자연에 그리 큰 관심과 감명을 받지 못한 저로서는 그냥 아직….어리거나 젊구나…라고 생각해도되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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