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로커씨의 죽음과 마이너씨의 살인

- 고병권(수유너머R)

<위클리 수유너머> 여러분 오랜만에 ‘편집자의 말’에 복귀한 고추장입니다. 어떻게들 지내고 계세요? 인사말을 뱉고 나니 ‘5분 대기조’라도 되는 듯 맘 속 어디선가‘애틋함’이 신속히도 튀어나오는 군요. ㅎㅎ 아는 분 알고 모르는 분 모르는 사실, 지금 제가 미국에 있습니다. 3월에 와서 한 달하고 보름 지났습니다. 예전 같으면 이역만리 머나먼 곳이라 하겠지만, 저희 편집진끼리는 매주 화상회의를 하는지라 아주 쥐어짜지 않는 한 그리움 같은 건 한 방울도 없답니다. (참고로 저희 디자이너인 기화샘은 하와이에서 회의에 참여합니다. 서울 오전 10시, 하와이 오후 3시, 뉴욕 밤9시에 회의가 동시 진행되지요. 참 대단한 시대입니다.) 따지고 보면 <위클리 수유너머>가 웹 코뮨이니 멀리 떠나 있다는 말도 이상하군요. 굳이 따지자면 1초도 안 되는 거리 이동을 한 셈일 겁니다. 그래도 쑥스럽긴 하지만 여러분께 인사 올립니다.

미국에서 편집자 말 쓰는 김에 미국 이야기 하나 해 볼까 합니다(호, 겁이 없지요? 미국 온 지 얼마나 됐다고 ㅎㅎ). 열흘 전쯤 이야기입니다. 미국 연방정부 재정삭감을 둘러싸고 공화당과 오바마 정부의 줄다리기가 심할 때였는데요. 공화당이 지배하는 하원에서 정부 예산이 통과되지 않자 연방정부의 기능 마비 사태, 일명 ‘셧다운’이 눈앞에 닥쳤습니다. 신문 방송이 연일 난리였지요. 아마 아시겠지만 이 갈등은 ‘셧다운’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극적으로 타결되었습니다. ‘극적으로’라고 했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이런 ‘극적인 일’은 항상 일어나고 또 대부분 계산된 것이지요. 정치인들은 극적 타협을 이루면서 언론의 조명을 받고, 민중들은 언론의 조명이 닿지 않는 곳에서 복지 없는 비극을 살아야겠지요.

이야기가 옆으로 샜습니다만, 예산안 줄다리가 한참일 때 <뉴욕타임즈>의 기사 하나가 제 눈을 끌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덩치 큰 흑인 남성의 사진이 눈 길을 끌었다고 해야겠습니다. 그의 이름은 케네스 마이너(K. Minor). 2009년 뉴욕 동부 할렘지역에서 ‘동기부여 연설가(motivational speaker)’였던 제프리 로커(J. Locker)씨를 살해한 혐의로 20년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사진은 선고가 내려질 때 판사를 올려다보는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30대 후반인 그는 아내가 지켜보는 재판정에서 “노인이 되기 전에 집에 갈 수 있게 해달라”고 판사에게 간청했다는 군요. 재판정에는 마이너씨의 부인만이 왔고, 로커씨의 가족은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그의 가족은 로커씨가 아주 자상한 남편이고 아버지였다는 진술서만을 법정에 제출했다는 군요.

이 날 마이너씨는 판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 그날 밤 일을 아는 사람은 딱 둘입니다. 이제 그 한 사람은 여기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내가 이렇게 되는 걸, 내가 내 여생을 잃게 되는 걸 바라지 않았습니다. … 결국 로커씨는 자신이 원하는 곳에 갔습니다. … 나는 짐승이 아니고 내 맘 속엔 어떤 악의도 없습니다.”

뭔가 사연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마이너씨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로커가 자기 동네에 와서 돈을 받고 자신을 죽여줄 사람을 찾아다녔다는 겁니다. 무슨 황당한 소리냐구요? 뉴욕타임스 기자가 맞춰본 퍼즐은 이런 겁니다. 지난 번 금융위기 때 불거진 일명 폰지(Ponzi) 사기라는 걸 들어보셨을 겁니다. 거기에 투자한 로커씨는 파산했습니다. 막대한 채무에 시달리던 로커씨는 엄청난 액수의 보험에 든 뒤에 가족에게 보험금을 넘겨주려고 자신의 살해를 모의한 것 같습니다. 자살을 암시하는 글도 어딘가에 남겼고요. 그래서 마이너씨 동네에 찾아가 자신을 묶은 뒤에 칼로 찔러달라고 한 것이죠. 그리고 자기 카드 비밀번호를 알려주며 사례비(?)를 찾아가라고 했습니다. 직업도 돈도 변변치 않던 어수룩한 마이너씨는 일을 마치고 돈을 찾으러 인출기에 갔다가 사진에 찍혔습니다. 살인 피해자의 카드를 들고 카메라 앞에서 당당히 돈을 찾은 거지요. 보험회사에 따르면 마이너씨가 자기 수입을 허위로 부풀린 게 밝혀져 원래 액수의 1/3 정도만 지급했답니다. 뭔가 의심스러운 대목이 많았다는 증거지요. 하지만 판사는 복잡하게 생각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돈을 받고 사람을 죽였다.’ 돈을 준 사람이 죽은 그 사람이라는 사실은 크게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로커씨 가족은 원래보다는 많이 줄어든 보험금이었지만 그래도 수백만 불을 챙겼습니다. 법정에서 살인죄가 성립했으니까요.

이름이 문제였던 걸까요? 마이너가 로커에 갇혀 희생물이 된 것 같습니다. 물론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인 것 -설령 그가 원했다 하더라도-은 문제가 있지요. 그래도 살인죄로 20년 형을 선고한 것은 조금 이상해 보입니다. 어떤 편견이 작동한 건 아니었을까요. 더욱이 이 사건을 기획한 백인 금융상품 투자자 가족은 수백만 불을 지급 받고, 이 사건에 끌려들어간 흑인 가족은 20년 형을 선고 받았다는 게 더욱 묘한 기분을 불러일으킵니다.

2009년 밤에 일어난 살인 사건과 2011년 대낮의 판결. 제 눈에는 이 사건이 금융위기 이후 미국 사회의 대처 방식에 대한 은유처럼 보였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가입해서 집을 얻었다가 재산을 날린 상당수는 유색인이었다고 합니다(어느 연구자가 서브프라임 사건이 인종차별적이었음을, 즉 재산을 잃은 이들이 인종적으로 구별된다고 주장하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거대 금융투자회사들도 몇 개 넘어가고 남은 회사들도 엄청난 위기를 겪었지요. 하지만 최근 뉴스에 의하면 금융투자회사들은 물론이고 GM 같은 자동차 회사도 손실의 상당 부분을 만회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선을 앞둔 오바마 정부는 세금으로 그 이익을 환수하지 못했고 그 대신 공화당의 반격을 받아 가난한 이들에게 갈 복지의 상당 부분을 내어주었습니다. 요컨대 서점에 가면 널려 있는 ‘동기부여’ 책들의 설파자이자 금융상품 투자의 실패자인 로커씨는 파산 후에도 재산을 일으켜 가족에게 넘겼습니다. 그런데 그 재산을 일으킬 계략에 흑인 마이너씨의 희생이 필요했던 겁니다. 어수룩한 마이너씨는 나쁜 일을 저질렀지만, 그 나쁜 일이란 악한 일이기 보다는 자기 삶을 망친 바보짓이었다고 해야겠습니다.

지난 주 내내 예산 삭감 문제로 미국 사회가 들끓었을 때 ‘유색인의 삶의 향상을 위한 전국 협회(NAACP)’에서 흥미로운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교도소 수감자를 줄여 예산을 절감하고 그것을 교육에 투자하라’는 것인데요. 미국 사법당국의 지나친 구속수감 정책(특히 유색인들에게)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대폭 삭감된 교육 복지 예산을 확충하라는 요구를 담은 겁니다. 그런데 이것은 재치 있는 구호라기보다는 ‘아프리칸-아메리칸’들의 아픈 진실을 담은 구호였습니다. ‘아프리칸-아메리칸’ 들의 경우 대학진학율보다 수감율이 더 높더군요. 제가 찾아본 통계(2006)에서는 컬리지 이상을 진학한 젊은 흑인들(18-29세)은 8%가 채 되지 않는 반면 수감자는 10%가 넘었습니다. 대학진학율은 백인의 반도 안 되는 반면 수감율은 7배도 넘습니다. 젊은 흑인들의 사망율은 다른 인종에 비해 무척 높았는데요, 상당수가 총기 등에 의한 사망이었습니다. 실업율, 빈곤율도 당연히 높지요. 그런데 지금 미국 정부는 복지를 줄이고 강력한 수감 정책과 감세 정책을 유지합니다. “세계 인구의 5%를 차지하지만 세계 재소자 수의 25%를 차지하는 미국”. 결국 로커씨는 파산하고 죽어서도 막대한 재산을 가져가고, 마이너씨는 산송장으로 가족을 떠나 교도소로 향합니다. 이것이 제가 지켜본, 이 달의 미국이었습니다.^^

분위기가 너무 칙칙해졌나요? ^^ 이번주 <위클리 수유너머>의 표제는 ‘풀여치와 떠난 여행’입니다. 배문희 선생님 격주로 연재하고 있는 신비한(?) 이야기입니다. 드뎌! 지난 주에 ‘풀여치’와의 인연이 밝혀졌지요? 사실 카페 ‘고장난 기억’에서 만난 이들, 히피할머니부터 얄리, 수자언니, 나몽달씨, 랭보엉아, 도라에몽아저씨, 염씨아저씨들이 어떤 사연을 갖고 있을지도 너무너무 궁금하답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본만화 <키노의 여행>이 떠올랐어요. ‘모모’와 ‘풀여치’가 마치 ‘키노’와 ‘에르메스’처럼 보였거든요. 마치 세상 밖으로의 신비한 여행 같기도 하고, 어쩌면 세상 안, 그러니까 우리가 들여다보지 못한 세상 깊숙한 어떤 곳의 이야기일 듯 싶기도 하고. 최근 들어 부쩍 속도감이 올라간 ‘풀여치와 떠난 여행’ 정말 기대됩니다. 조금 더 지나면 격주 연재를 매주 연재로 바꾸어달라고 농성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

이상 뉴욕의 고추장이었습니다

응답 4개

  1. 강물처럼말하길

    궁금하던 차, 소식 반갑소. 더구나 정보화로 가깝게 마주보면서
    외롭지 않게 지내고 있다니, 더욱 안심이요.

    그러나 멀리서 홀로 일상을 보내려면 특히 건강에 많은 배려를,
    그래서 좋은 성과 갖고서 우리 다시 만나요.

    가끔 고추장이 생각나면 우리 식구들과 노타리의 감자집에서
    만나고 있소. 귀국하면 그 곳에서 봅시다……………

  2. 고추장말하길

    단단님/ 단단님의 눈부신 활약상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우리 코뮨R이 단단님의 또다른 공공미술 작품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ㅋㅋ

    엉컹퀴님/ 전 뉴욕 이타카에 있습니다. 이사를 하셨군요. 이사한 김에 인생도 새로운 곳으로 옮기시는 건가요? 정리하는 건, 새로 또 시작하는 것 맞죠? 도무지 세월이 침투할 수 없는 철옹성의 젊은 의지를 가진 엉겅퀴 선생님이 항상 부럽습니다.

  3. 엉겅퀴말하길

    오잉,미국가셨어요? 미국 어디 계셔요? 정말 오랫만에 weekly를 보게 되고 고추장 글도 보게되니 반갑군요.저도 이사했답니다. 지금은 이사한 김에 인생 정리도 함께하느라 두문 불출중. 미국에서도 식구들 모두 건강하고 즐겁게 사세요.CU~^^

  4. 단단말하길

    “호, 겁이 없지요? 미국 온 지 얼마나 됐다고 ㅎㅎ”
    요 부분 읽으면서 쌤의 어투가 들리는듯 했습니다.ㅋㅋ
    위클리 웹진이 아니어서 제겐 잠시라도 쌤을 뵐 기회가 없네요.
    잘 지내시는 것 같아 다행이고 좋은 글 또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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