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통치 불가능한 자율공간의 가능성을 묻다

- 정정훈(수유너머N)

지난 1월 14일과 15일 양일에 걸쳐서 일본 교토에서 열린 작은 토론모임에 참석했다. 모임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국제워크샾’이라고 명명된 학술토론회였다. 한국과 일본의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이 모여서 ‘공간과 통치’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각자의 연구작업과 활동상황을 발표하고 서로에게 묻고 응답하는 자리였는데, 수유너머N의 다른 동료들 및 달팽이공방 활동가들과 더불어 나 역시 초청을 받아 참석했던 것이다.

나 개인적으로도, 그리고 내가 속한 수유너머N으로서도 교토에서 열린 이 토론회는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지는 자리였다. 수유너머가 지금과 같은 네트워크 형태로 분절되기 이전인 연구공간 ‘수유+너머’ 시절부터 우리는 ‘국제워크샾’이란 이름의 연구모임을 운영해 왔다. 우리가 관심을 가진 주제를 공부하는 외국의 연구자를 초청하여 5일간 집중적으로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수유너머의 국제워크샾은 수유너머N이 만들어진 이후로는 수유너머N이 계속 이어오는 중이다. 연구공간 ‘수유+너머’ 시절에는 사카이 다카시, 우카이 사토시, 데이비드 그레이버 등을 초청하여 세 번의 국제워크샾을 진행했었고, 수유너머N에서는 요네타니 마사후미와 오사카대학교의 ‘횡단하는 파퓰러컬쳐’ 연구단 및 카페 커먼즈(cafe commons)와 더불어 국제워크샾을 진행했었다.

‘횡단하는 파퓰러 컬처’ 연구단은 수유너머와 오랜 인연을 맺어온 도미야마 이치로 선생이 주도하는 프로젝트 연구팀이고, 카페 커먼즈는 히키코모리 지원활동을 하는 활동가들이 운영하는 자율공간이다. 작년 초 2박3일간, 우리는 지식과 밥, 그리고 술과 음악을 공유하며 친구가 되었다. 이번 교토에서의 국제워크샾은 작년 수유너머N을 방문하였던 오사카대학교의 연구팀과 카페 커먼즈가 교토대학교의 ‘아시아의 공공권과 친밀권’ 연구단과 협력하여 수유너머N과 달팽이공방을 초청한 자리였다. 그러니까 작년에 이어 올해 초 우리는 이렇게 두 번째 만남을 가짐 으로써 이 우정을 지속할 보다 튼튼한 고리를 만들었던 것이다.

워크샾의 주제는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공간과 가버넌스’였지만 참여한 사람들이 정말 관심을 가졌던 문제는 국가와 자본의 통치(거버넌스-일본에서는 거버넌스를 협치의 의미로 이해하는 우리와는 달리 통치라는 개념으로 사용한다)를 벗어난, 혹은 활용한 자율적 공간의 가능성이었다. 이윤을 최대하기 위해 사회질서를 재구조화하는 자본과 국가의 신자유주의적 통치 방식이 삶의 모든 영역을 포획하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그로부터 벗어난, 그것을 활용하는 ‘자유의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해 토론의 초점이 맞추어졌다.

이번 위클리 수유너머에서는 ‘공간과 가버넌스에 관한 국제워크샾’에 제출된 발표문들 중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글들을 선정하여 싣는다. 68혁명의 자장 가운데서 형성된 유럽과 일본의 자율공간들이 어떻게 운영되었고 그것이 제도화되는 과정에 어떤 ‘조정’이 발생하였는지, 그리고 어떤 한계들에 직면하고 있는 지를 다룬 글. 특정한 집단의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사유를 구축하는 민족지라는 사유방식이 실제적인 코뮨적 삶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을 다루어 가는데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수유너머라는 형태로 한국에서 실험되고 있는 코뮨을 통해 모색하는 글. 공동체의 구성원과 비구성원을 가르고 공동체에 소속된 개인들이 다른 구성원과의 협의나 합의 없이도 공동체의 이름으로 활동을 구성해가는 소속 없는 공동체, 혹은 무엇인가를 공유하였다는 의식 없이 만들어지는 공동체의 가능성으로서 달팽이 공방을 소개한 글들을 게제한다. 그리고 일본의 3.11 핵발전소 사고 이후 일본의 권력이 어떤 방식으로 이 위기를 통치하는 지, 그리고 포스트 3.11의 통치방식에 대응하여 일본의 자율적 공간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소개하며 그러한 통치에 대응하는 활동방향을 모색하는 글을 따로 청탁하여 싣는다.

이번 일본 방문을 통하여 나는 하나의 관계가 또 다른 관계로 이어지고, 어떤 만남이 또 다른 만남으로 연결되는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이미 하나의 관계, 하나의 만남 안에는 무수히 많은 관계와 만남들이 잠재되어 있는 지도 모르겠다. 위클리 수유너머의 독자들에게 이번 커버스토로리와의 만남이 또 다른 만남으로 이어지는 연결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응답 1개

  1. […] 편집실에서 | 통치 불가능한 자율공간의 가능성을 묻다 _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