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폐 끼치는 존재들의 공존을 위하여

- 박정수(수유너머R)

작년에 장애인 관련 학술대회에 이진경쌤의 ‘장애자의 존재론적 평면’에 대한 토론자로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이진경쌤의 발표는 ‘많은 이들이 장애자를 폐 끼치는 존재로 보면서 정상사회에서 배제시키는데 기실 모든 존재는 폐 끼침 속에서 타자와 공존재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폐끼침의 존재론적 일반성을 은폐하는 것이 교환관계로, ‘폐’를 ‘돈’으로 지불해 버림으로써 폐끼침 속의 공존재에 대한 사유를 닫아버린다는 지적이 특히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시비를 걸고 싶었던 건 폐끼침의 일반성에 대한 사유가 ‘인식’에만 머물러서 ‘폐 끼침 속의 공존’을 위한 정치적, 윤리적 ‘실천’을 막아버릴 위험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한 사람이라도 있단 말인가?” 라는 인식이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가 장애자이므로 장애인을 특별대우 할 필요는 없다’는 괴변으로 변질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었습니다. 저는 이진경쌤의 글이 장애인 볼 일 없는 비장애인들의 존재론적 깨달음을 위한 글이 아니라, 폐 끼치는 존재로서의 장애인과 일상에서 몸 부대끼며 생존하는 활동보조인들의 돌봄노동에 대한 성찰의 계기로 쓰일 때 비로소 진가를 발휘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도와주지 않으면 밥 먹을 수도 없고, 똥 쌀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고, 가고 싶은 데 갈 수도 없고, 자기 의사를 전달할 수도 없고, 여자 친구 만날 수도 없고, 섹스할 수도 없고, 자위행위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장애인들을 위한 돌봄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장애인활동보조 노동자들입니다. 전국적으로 3만명 정도 되는데, 수유너머회원들 중에도 많고 ‘빈마을’이나 농성장에 드나드는 젊은 친구들 중에도 상당수 있습니다.

작으나마 월급도 받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노동이기도 해서 가난한 활동가들이 많이 합니다. 이것도 엄연한 임노동인지라 이진경쌤이 지적하신 ‘교환관계로 폐끼침을 지워버릴’ 위험도 다분히 있습니다. 활보노동자들이 장애인을 ‘이용자’라 부르고 자신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려 하는 것만 봐도 활동보조 노동이 자본주의적 임노동으로 포섭될 여지는 분명 있습니다. 장애인 사용자들과 활동보조 노조 사이에 권리다툼이 발생할 우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교환관계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폐끼침 속의 공존’을 위한 더 많은 정치적, 윤리적 실천들의 가능조건이기도 합니다. 활보노동자와 장애인이 연대하여 자신들의 공통된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장애인활동보조노동을 하다가 장애해방 활동가로 거듭나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

이와 함께 장애인과 활보노동자의 공존에는 미시(성)정치학적인 문제와 자기배려의 윤리에 관한 온갖 문제들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법이나 거래, 협상과 제도로는 결코 해소할 수 없는 문제들이 그득 합니다. 이번주부터 연재되는 ‘활보일기:활동보조노동자의 눈으로 본 장애와 노동’을 보시면 무슨 말인지 금방 알 겁니다. 엄청난 논란과 토론을 불러일으킬 글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응답 3개

  1. 하금철말하길

    우앙~~~ 기대되요~~~ (일주일에 한번씩이긴 하지만) 한 명의 활동보조 노동자로서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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