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다양한 목소리가 모여 다양한 요구를 외치다 – 5.1 총파업에 관한 기록

- 유일환(수유너머N 회원)

무언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질 때 사람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5월 1일 400여명의 청년들이 총파업을 선언하며 거리로 나왔을 때, 이들과 마주한 사람들의 얼굴이 그랬다. 비정규직, 백수, 알바생, 장애인, 대학생, 예술가, 성소수자, 생태운동가 등이 모여 총파업을 한다? 사람들은 노동조합이 아닌 이들이 총파업을 한다는 사실에 벙쩌했고, 무언가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 이들이 모였다는 사실에 당황해했다. ‘대체 무슨 집회이지, 누가 주최하는 거지?’ 처음, 휠체어를 보곤 장차연 집회구나 싶었는데, 이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무슨 대학생이라고 써진 깃발이 지나가고, 씨앗을 들고 밀짚모자를 쓴 사람들이 지나간다. ‘이거, FTA집회인가?’ 그런데 이어서 강정티셔츠를 입은 생명평화강정, 기본소득 왕관을 쓴 기본소득 청‘소년’ 네트워크, 속옷으로 피켓을 만든 잡년행동이 지나가자 머릿속이 마구 헷갈리기 시작한다. ‘애네 뭐야? 뭐하는 얘들이야?’

가장 심각하게 반응했던 이들은 기자와 경찰이다. 취재하러 온 기자들. 그들은 집회가 시작되기 전  자기들끼리 모여 ‘이 집회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보도자료를 봐도 모르겠다’며 푸념 섞인 말을 나눴다. 그리고 행진을 시작하자 이번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는다. 행진하는데 주유소나 행사장에서 볼 수 있는 춤추는 인형이 등장하고, 집회참가자들은 DJ의 음악에 맞춰 클럽댄스를 추며 도로를 걸어간다. 어정쩡한 자세로 사다리에 올라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기자들. 그 모습은 영락없이 ‘이거 집회 맞나?’하며 의뭉스러워하는 표정이다. 경찰들도 황당해하긴 마찬가지다. 한 경찰 지휘관은, 분명 학생들 같긴 한데, 얘들이 뭘 하려는 건지 어디로 가는 건지 모르겠다며, 이러면 전의경도 당황해서 막을 수 없다고 자조 섞인 말을 던졌다. 행진 대오 선두에 선 장차연은 순식간에 3차선 도로를 점거해서 교통의 흐름을 정지시켜놓았고, 뒤따르는 대열은 정해진 행진 경로를 이탈해 자꾸만 다른 곳으로 흩어졌다가 모이는 걸 반복했다. 갑자기 삼성화재 본관 앞에 누워서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기습적으로 삼성 생명 건물 앞에서 큰 원을 만들어 강정댄스를 추는 식으로 종잡을 수 없는 행동들을 일삼았다. 이러니 경찰이 당혹스럽다고 말 할만도 하다.

거리를 두고 지켜보던 사람들은 당황했을지 모르지만, 집회에 참여한 우리들은 더 없이 즐거운 경험을 했다. 누구는 공연장에서 신나게 논 것 같다고 했고, 누구는 촛불집회 같다고 했다. 누구는 화끈한 퍼포먼스와 공연에 매료됐다고 했고, 누구는 부딪치는 모든 상황을 유머로 만들어버리는 유쾌한 기술에 반했다고 했다. 이외에도 즐거움의 이유야 많이 있겠지만, 5월 1일 총파업에 참여한 우리가 즐거웠던 이유는 무엇보다 나의 목소리, 나의 요구를 말할 수 있는 장이 열린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총파업을 준비한 기획팀이 있었지만, 그들의 역할은 함께 모일 수 있는 장을 마련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총파업의 진짜 주인공은 함께 참여한 총 59개의 워크그룹들이다. 그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요구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수십 수백 가지의 온갖 요구들을 퍼포먼스, 공연, 발언, 피켓, 구호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기본소득 청‘소’년 네트워크는 기본소득을 요구하며 왕관과 스티커를 나눠줬고, 노들장애인야학은 장애인 차별철폐 조끼를 입고 도로를 점거했다. 두물머리 밭전위원회는 자연 파괴에 무감각해진 상황을 안타까워하면서 도심에 씨앗 폭탄을 던졌고,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은 집회장소에 배설물을 이용한 생태화장실을 만들었다. 생명평화강정은 구럼비 바위를 발파하고 있는 삼성에 항의하는 의미로 삼성 빌딩 앞에서 강정댄스를 선보였고, 수유너머N은 삼성 범죄 지도를 그려서 전국 곳곳의 국토를 죽이고 있는 삼성을 비판했으며, 수유너머R은 서로의 처지를 서로에게 알리는 아이유(I am You) 편지를 떡과 함께 나눠주었다. 인민보녕이, 바리케이드 톨게이트, 무키무키 만만수, DJ 하박국, 야마가타 트윅스터, 소리꾼 김정은은 공연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표현했고, 잡년행동은 가부장제가 강제해온 꾸미기 노동, 감정노동을 벗어 던지겠다는 의미로 속옷과 하이힐을 벗어 던지는 퍼포먼스를 행했다. 또한 디자이너, 예술가 팀들은 ‘창작자에게 기본소득을’이라는 메시지를 담아 커다란 공을 만들어 굴리면서 행진했으며, 대학생사람연대와 헤드에이크는 현장에서 설문조사를 행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수많은 그룹들이 같은 공간에 모여 다양한 요구들을 표출했다. 총파업은 도시를 멈추고 거리로 나와서, 온갖 요구들이 흘러넘치도록 하는 발산의 장이었다.

같은 날 시청 광장에선 민주노총의 대규모 총파업 행사가 열렸다. 그리고 그 옆을 프레카리아트의 총파업을 선언한 400여명의 청년들이 지나쳤다. 우리는 민주노총이 있는 시청이 아닌 상공회의소로 방향을 틀어 정리집회를 하고 해산했다.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가 있는데 굳이 따로 집회를 열어서 행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비정규직 철폐, 정리해고 철폐, 노동법 전면재개정!” 물론 이 요구들은 중요하다. 치열하게 투쟁하고 싸워서 얻어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구호로 환원될 수 없는 환경에 놓여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백수들, 실업자들, 오히려 비정규직이기를 원하는 사람들,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들, 장애인들, 예술가들, 작가들 등등. 이런 사람들의 요구와 목소리는 민주노총 총파업에서 드러날 수 없다. 노동자의 핵심 요구사안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총파업을 당신들의 총파업이 아닌 우리들의 총파업으로, 프롤레타리아트(노동자)의 총파업이 아닌 프레카리아트의 총파업으로 창안하기 위해서, 작업장의 정지가 아닌 현 사회 시스템의 정지를 요구할 필요가 있었으며, 그럼으로써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고, 우리의 목소리를 드러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

5월 1일 한국은행을 출발해서 명동 거쳐 상공회의소로 행진하는 반나절 동안, 우리는 우리와 함께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함께 각자의 요구를 외쳤고, 함께 각자의 피켓을 들었고, 함께 각자의 리듬으로 춤추며 걸었다. 5월 1일 모두가 참여하는 프레카리아트 총파업이 하나의 이벤트(사건)으로써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각자의 요구들을 가진 채로 여럿이 함께 모이는 것이 가능함을 확인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총파업 이후에 관한 고민 역시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각자의 요구를 가진 이들이 다음에는 어떤 방식으로 다시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을까? 현 체제를 정지시킬 다음의 총파업은 언제 어떻게 행해져야할까?

응답 2개

  1. 어머나말하길

    두물머리 발전위원회 -> 두물머리 밭전위원회

    • tibayo85말하길

      결정적인 실수, 혹은 무지를 지적해 주셨군요. 두물머리에서 4대강 강제수용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만든 것은 ‘밭전위원회’입니다. ‘발전’을 앞세워 농민들과 지렁이들의 소중한 삶터를 빼앗는 짓을 하지 말자는 취지로, 올해도 농사짓자, 불복종 농사를! 이라는 취지로 ‘밭전’위원회로 이름붙인 건데…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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