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보일기

허겁지겁 번외편

- 라훌라(장애인활동보조인)

0. 우리는 정권교체에 실패한게 아니라, 한미FTA 체제에서 살고 있다

1. 활동보조일기는 어떤 연대의 수줍은 기록이다. 우선, 장애인과 노동자의 연대이고. 수유너머와의 어떤 방식의 연대-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의 기록이다. 우선 나는 수유너머에 대해 잘 모른다. 그리고 좋아하지 않는다. 잘 모르는 대상에 대해 좋다 아니다를 말하기란 여간 쉽지않다. 일단 나는 공부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샌님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수유너머가 말만 앞서고 공부만 하는 모임인지는 잘 모르겟지만, 분명한건 이 글을 부탁받을때의 나의 지배적 인상은 그랫다. 2011년 겨울, 한미fta 집회에 나와서 꿋꿋하게 피켓을 들고 있는 ‘박’을 보았다. 그날 많은 이들이 촛불을 들었고, 물대포도 맞았던 아름다운 날이었다. 그 날 이후 ‘박’은 내게 글을 하나 부탁했고, 나는 잘은 못 쓰지만 재주껏 해보겟다고 답햇다. 추운날 같은 곳에서 물대포를 맞은 이후 생긴 어떤 연대의 마음이랄까? 단순히 말만 앞서는 치들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활보일기 원고를 청탁받았을때,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원고료를 요구했다. 모든 노동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글을 아무리 엉망으로 쓴다해도, 두시간은 끄적일테니 만원은 받아야 하지 않겟냐는 생각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연재후 만원정도를 꾸준히 받고있다. 무슨 말인지 의아할것이다. 활동보조를 하면서도 틈틈 집회 현장에 갈 일이 있다. 그곳에서 꾸준히 나는 ‘박’ 과 그의 친구들과 마주친다. 그들이 연대하는것과 내가 글을 쓰기 위해 들이는 수고를 퉁치기로 했다. 어쩌면, 내 멋대로의 믿음일지라도, 지금은, 그걸로도 괜찮다. 진심이다. 지금까지 내 글이 연재되고 있는걸 보면, 이 막연한 연대가 여전히 작동하는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혹 누군가 수유너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난 아직도 잘 모르겟고, 딱히 관심이 없다. 확실히 수유리 너머에 있는건 알겟다.

(사족같아 괄호를 친다. 나는 내가 이제 확실히 멍청한걸 알겟다. 여러해 동안 내가 어쩔수 없는 천재가 아닐까? 하는 일말의 가능성을 기대해 봤지만, 나의 멍청함을 인정하려 한다. 다만 이 멍청함은 개인의 어떤 특징일뿐, 똑똑함이 바람직한 덕목이고 그렇지 못함이 안타깝고 쓸모없는 상태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도 똑똑하고 많이 배운 분들이 세상을 열심히 망가뜨리고 있다. 사실이다. 궁금하다면 신문을 펴보시라. )

2. 활동보조를 한 지, 어언 여덟달이 넘어간다. 업무특성상 동료가 생기기 어려운 구조다. 동건씨의 사생활을 쓰는 아비와도 난 직장동료지만, 하루에 한번 마주치기도 힘들다. 이 지면에 ‘아비’가 연재하는 글이 불편한 지점을 만든다는 지적이 들어와, 통째로 들어냈다는 말을 들었다. 우려하던 일이 터진 셈이다. 나는 우리가 미담사례 쓰는거 아니니 너무 낙심하지 말라고 햇다. 보통 이런 경우, 맥주잔이라도 기울이며 이런저런 푸념을 털어놓는게 남조선 직장인들의 사회생활이겟으나, 아비와 나는 카톡으로 안부를 묻는게 전부다. 거짓말이 아니다.

아비의 글이 아슬아슬한 지점이 있다는건 인정! 불편한 지점을 포함해서 담론화 할 수는 없는것일까? 라는 점에서 안타깝다. 장애인의 성이 불편한 주제라고 느껴진다면, 그것을 불편하게 느끼도록 업악하는 구조가 존재하는게 아닐까? 장애인운동의 역사는 불편한 구조와 담론과 싸워온 역사라고 알고 있다. 미담사례를 원하신다면 가까운 편의점에서 월간 좋은생각을 구입하시는게 여러모로 좋다. 적극 추천한다.

3. 오늘 총파업에 참가했다. 지난주에는 아담의 사정으로 아담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더부살이를 햇다. 아담에게는 총파업에 참가하겟다고 미리 말해 놓았고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말은 그렇게 했으나 불편햇다. 왜 나의 노동자로써의 권리 실천이 장애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느낌인지. 썩 개운하지 못햇다. 쉽지않은 제안에 응해준 아담에게 신뢰의 마음을 보낸다.1 혹시 아담이 누구인지 눈치챘거든 이런 결정에 대해 칭찬을 해주면 그는 멋적게 웃을 것이다. 그는 꽤 근사하고 훌륭한 사람이다.

아비는 총파업에 참가하고 묵묵히 일을 하러 갔고, 총파업에 참가한 장애인들의 옆에는 입을 굳게 다물고 행진하는 활동보조인들이 있었다. 노동자로써 메이데이에 참가할 수 있어서 나는 그저 행복했다. ( 메이데이 참가는 오랜 로망이었다.)

노동자의 파업은 공장을 멈추지만, 활동보조인의 파업은 장애인의 삶을 멈춘다.
노동자는 이제 장애인의 삶도 멈출수 있다. 장애인의 삶이 향상되길 원한다면?

4. 활동보조를 하며 꼬박꼬박 임금을 받고는 있지만, 그 정도의 임금으로 미래를 준비하기에는 매우 부족하다.식비를 줄여볼려고 몇달전부터 내 몸을 하루에 한끼만 먹어도 되게 적응중이다. 걱정하지 마시라. 아담을 굶기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누구의 동정이나 시해는 받고 싶지 않고, 부러 욕심내어 꼬박꼬박 챙겨먹고 싶은 생각도 없다. 더구나 내가 먹을 몫을 누군가에게 양보함으로써 다른이의 몫을 늘리고 싶다. 무튼, 노력은 가상햇으나 안타깝게도 이번달에도 적자다.

5. 나는 장애인의 친구가 아니다. 노동자다. 장애인에게 봉사와 선행을 제공하는게 아니다. 노동력을 제공한다. 나와 아담과의 관계가 전적으로 친분의 관계로 남기 위해서는 그의 부탁을 좋다 혹은 나쁘다로 접근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어느순간부터 그의 일상의 부탁을 가능한가 와 불가능한가로 접근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틈이 날때마다 아담의 일년후를 그려보곤 한다. 그는 어떻게 자립을 할것인가? 어떤 사랑을 하게 될건가. 어떤 성취를 이루고, 자신의 결핍을 극복하고 욕망을 충족시켜 나갈것인가? 내게도 쉽지 않은 미래가 그에게도 환하게 열려있을리 없다. 그래도 건투를 빈다. 도대체 왜?

종종, 아니 자주.
내가 그의 삶을 책임질것도 아닌데 염려하는게 위선이 아닌가 싶다. 시키는것만 잘 하다 적당한 순간 이직하면 그만이 아닐까? 노동자는 세상을 만들고, 활동보조인은 장애인의 삶을 만드는가? 글세올시다.

6. 오랫동안 섹스를 하지 못햇다. 사실 그럴듯한 로맨스도 없었다. 아담에게 마지막 섹스가 언제였냐고 묻지는 못햇다.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딱히 중요하지 않아서다. 생각해보니 오랫동안 편지도 쓰지 못했다. 아담한 골목길을 자박자박 걸은지도 오래되었다. 마주앉아 누군가와 맥주를 조용히 마신 기억도 희미하다. 꽃들이 졋으니 긴 여름이다. 다행이다. 올해는 화분에 씨앗을 심었다. 내년에 나도 아담도 생존햇으면 좋겟다, 어찌됐든

  1. 아무리 생각해봐도 고마워할 일은 아니다. []

응답 3개

  1. 사비말하길

    애독자로서 어떤 글이 통째로 들어내졌는지 알겠네요. 저는 그 글이 장애인의 성을 얘기한다고 하지만, 남성 장애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불편했어요. 하지만 글쓴이는 남성 장애인의 활동보조인이었으니 초점과 관심은 어쩔 수 없겠다 싶었지요.
    이번 번외편이 아니였으면 그 글이 들어내여졌는지 모를뻔했어요. 왜 편집실에서는 그에 대한 변이 없는거죠?? ‘어떤 문제가 있었고, 어떻게 얘기가 오갔는데 그래서 이렇게 결론을 냈다’는 얘기는 있어야 겠는데 이상하네요.
    활보일기가 계속 불편한 이야기들을 들춰내면(과연 누구에게 불편한 것인가…-_-;;;) 그 간의 글들은 다 들어내어질 수도 있는건가요?? 저는 불편해서 좋은데 말이예요.
    어떤 불편한 글이 연재되든지 응원하겠습니다. 심하게 불편하면 댓글로 쏘아대기도 할게요.^-^

    • 말하길

      활보일기에 대한 장애인활동가들의 의미있는 문제제기가 있었고, 지난주에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이번주 편집회의가 거리에서 있어서 그 결과의 공유에 대한 논의를 못했네요. 다음번 활보일기에서 이야기할거라 생각했죠. 그분들의 주된문제제기는 ‘착한 활보’의 이미지를 넘어 활보노동자의 노동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코너, 참 반갑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관찰자’의 입장에서 장애인의 사생활을 흥미거리로 다루거나 제 3자(가령, 활보이용장애인의 성생활에서 파트너의 사생활)의 사생활이 아우팅되는 건 조심해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글쓴이의 동의하에 비가시화된 부분은 장애인의 성을 보는 관점 때문이 아니라, 제 3의 장애인의 사생활이 아우팅 된 부분입니다. 자세한 얘기는 다음 활보일기나 편집자의 말에서 이야기될 겁니다.

    • 아비말하길

      덤님이 이미 말씀하신 것 처럼, 제 3의 사생활이 아우팅 된 부분이 글을 내리게 된 주요 이유입니다. 간담회 내용에 대해서 정리하고 있으니 잠시 기다리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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