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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들을 토닥이는 휴머니즘 병맛 개그 – <키사라즈 캣츠 아이>

- AA

작년부터 그 파급력을 주목받기 시작한 이른바 병맛 개그 코드는 이제 인터넷 월드의 상층권을 뚫고 리얼 월드에 진입하여 맹렬히 번식중이다. 이 병맛 개그의 탄생과 번성은 일종의 사회적 현상이라고 하는 분석들이 현재 일반적인데 훌륭함만을 최대치로 늘이고자 하는 욕구의 반작용, 루저의 감각을 일찍부터 깨우친 젊은 세대의 확산 등이 그 근거로 꼽히고 있다. 현실에서는 실존인물인지 의심이 드는 엄친아, 엄친딸들이 매일 나의 존재 가치를 초라하게 만들고 콩나물, 두부, 순대로도 모자라 드라마 안에서조차 매번 재벌이 모든 것을 차지하고 지배하니 특별하지도, 잘나지도, 부자이지도 않은 사람들이 병맛 개그에 열광하는 것은 그만큼 그들의 열패감과 좌절이 크다는 반증이라는 것이다. ‘루저’들이 스스로 2류, 3류임을 선언하고 패배감의 공유를 통해 위안을 얻는 이 병맛 개그의 코드를 절감하는 분들에게 오늘의 드라마를 추천한다. 세상 루저들을 싸구려 동정이나 겉치레 위안이 아닌 인간애로 토닥이는, 휴머니즘 넘치는 병맛 개그의 레벨업 그 자체, <키사라즈 캣츠 아이>다.

일본의 대중 문화계에서 기발한 상상력(이라고 쓰고 ‘넘치는 똘끼’라고 읽는다.)을 탑재한 천재작가라 평가받고 있는 쿠도 칸쿠로의 대표작, <키사라즈 캣츠 아이>는 2002년 TBS에서 방송되었다. 키사라즈는 일본 치바현에 위치한 실제 있는 시(市)로 도쿄에서 지하철을 타고 1시간 반 정도 가면 도착하는 일본의 흔한 지방 중소도시다. 등장인물들은 거의 다 이 동네에서 쭉 살고 있는 평범한 동네 사람들이다. 주인공인 붓상은 동네 이발소집 아들, 그의 친구들 밤비는 기모노집 아들, 아니는 사진관 집 아들이며 이들이 늘 모이는 곳은 역시 친구인 마스터가 운영하는 ‘야구광의 시’라는 선술집이다. 특별한 일이라고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이 평범한 동네에서 한 발짝도 벗어난 적 없는 주인공 붓상은 그저 매일 단짝 친구들과 모여 야구를 하고, 맥주를 마시고, 아버지의 가게 일을 돕는 게 일과였다. 이야기는 22살의 붓상이 암으로 ‘길어야 반 년’ 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부터 시작된다. 보통 이런 시놉시스의 드라마는 주인공의 남은 시간을 처절한 생의 기쁨과 눈물샘을 자극하는 사랑으로 가득 채우지만 이 드라마는 다르다. 감동의 버킷 리스트 대신 붓상이 대충 노트에 갈겨 쓴 ‘반년 동안 하고 싶은 것’의 첫 번째는 야구. 하지만 이것도 사실 매일 하는 것이니 특별하지 않고, 여자친구? 나쁘지 않지만 딱히 필요하진 않고… 하면서 붓상은 한참 고민하다가 ‘에로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볼까!!’라며 방구석에서 꼬물락댄다. 뭔가 재미있는 일이 없냐고 투덜대는 붓상과 남은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 싶은 친구들은 만화 <캣츠아이>를 모방하여 ‘키사라즈 캣츠아이’라는 절도단을 조직한다. 하지만 절도단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대놓고 ‘키사라즈 캣츠아이’라고 곱게 수를 놓은 유니폼을 맞춰 입질 않나, 우르르 몰려다니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기가 일쑤고, 치밀한 계획 같은 것도 없다. 동네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에 재미 삼아 덤벼들었다가 소 뒷걸음질 치는 격으로 어이없게 사건이 해결되어서 거액을 손에 넣어도 이 동네청년들은 야구부 후배들에게 야구 장비를 선물하거나 망가진 동네 영화관의 영사기를 새로 들여놓을 뿐이다. 그리고 재미있었다고 낄낄대며 다시 모여 야구 하고, 맥주 마시는 하루를 반복한다.

일반적인 기준에서 보면, 6개월 밖에 남지 않은 삶을 특별하게 살고자 하지 않는 붓상과 그의 몸 상태를 전혀 상관하지 않는 듯 행동하는 친구들이 개념 없다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기준에서 벗어난 선택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니다. 생각이 깊지 않아서라거나 배운 게 없어서 그런 선택을 한 것일 거라 매도하는 것은 과연 ‘그’ 일반적인 기준에 부합할까. 붓상은 나름대로 자신의 남은 삶에 대해 고민한 끝에 “보통 때와 똑같이” 남은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그동안 그렇게 살아온 자신의 삶이 행복했기 때문에 통념이 어떻고 상식이 어떻든 그게 그에게 있어 가장 최고의 선택인 것이다. 그리고 모두 그의 의견을 존중해서 이전과 똑같이 야구를 하고, 맥주를 마시고, 낄낄대며 농담을 주고받는 하루를 함께 보내고 있을 뿐. 등장인물들은 현실을 외면하는 게 아니라,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현실을 겪어나간다. 한정된 시간과 예고된 헤어짐 앞에서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 억지로 참지도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웃기면 웃고 화나면 짜증내며 평소와 똑같이, 보잘 것 없다 해도 본인에게는 소중한 일상을 충실하게 산다. 스펙을 쌓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에서 헐떡이는 젊은이들에게 6개월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한다면 과연 그 중 몇 명이 남은 6개월 동안, 보통 때와 똑같이 스펙을 쌓으며 살겠다고 선택할까.

주인공과 등장인물들 중 사회적 기준으로 성공했다거나, 잘 나가는 삶을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키사라즈 캣츠아이 5명 중 단 1명만이 대학에 진학한 상태고, 선술집을 운영하는 마스터를 제외하면 나머지 3명은 백수다. 친구 중 한 명인 웃치는 사는 집조차 숨기고 있는 정체불명의 존재며 아니는 심지어 본명이 뭐였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모두 촉망받는 투수인 아니의 동생 준의 이름은 알지만 그에 비해 별 볼일 없는 한량 아니는 그저 준의 형(일본어로 兄을 ‘아니(あに)’라고 읽는다.)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들과 자주 얽히는 등장인물들 또한 동네 깡패 수준의 야쿠자, 동네 캬바레에서 춤추는 아줌마 스트리퍼, 기억상실증에 걸린 동네 노숙자 아저씨 등 현대 사회의 평균적 통념상 루저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뿐이다. 하지만 이들은 세련되거나 유식하지는 않아도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서로의 삶을 존중한다. 다 안다는 듯 가르치려들거나 강요하지도 않는다. 아들의 상태를 알게 된 붓상의 아버지는 무뚝뚝한 아들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연예인 성대모사 차림을 한 채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아들에게 사랑을 전한다. 노숙자 오지아저씨의 장례는 동네 사람들이 십시일반하여 치르고 붓상과 친구들은 오지를 죽인 야쿠자에게서 고가의 사파이어를 훔쳐 아저씨의 동상에 눈동자를 만든다.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춤을 출 수 없게 된 스트리퍼 아줌마의 은퇴무대는 모두가 함께 지켜보며 박수를 치기도 한다. 그래서 모든 등장인물들은 특별하지도 않고, 잘 나가지도 않는 자신들의 동네를 사랑한다. 스타벅스가 동네에 생기면 좋겠지만 없어도 괜찮다. 도쿄의 모던한 스타벅스가 없는 대신 키사라즈엔 촌스러운 아저씨가 주인인 찻집이 있는 것처럼, 세련되고 부드러운 화법의 위로 대신 절망하고 있는 어깨를 툭 하고 아무 말 없이 치고는 묵묵히 함께 있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등장인물들의 똘끼 충만한 행동들에 낄낄 웃으면서도 한편으로 마음이 따뜻해지고 부러운 기분이 드는 건 그래서다.

쿠도 칸쿠로의 작가적 능력은 주요 소재를 야구로 택했다는 지점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매 회를 야구와 마찬가지로 이닝처럼 초와 말로 꾸며 재미와 재치를 동시에 획득한 것도 그렇지만 야구라는 스포츠 자체가 드라마와 맞아떨어진다. 야구는 9명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경기다. 특별하게 잘난 사람 없어도 9명만 있다면 좋아하는 야구를 늘 할 수 있으니까 붓상과 그의 친구들이 스펙보다 ‘사람’을 더 중요시하는 마음은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요즘 프로야구는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고 있지만 일본인들에게 야구는 오래전부터 좀 더 특별했다. 일본인들에게 있어 매년 여름 전국고교야구선수권이 열리는 ‘코시엔(甲子園)’은 그 자체로 꿈이자 청춘인 일본 야구의 성지다. 프로가 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무대이기 이전에 학창 시절의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시엔에 진출하는 팀은 전 일본에서 약 49개 고교뿐이다. 코시엔 출장을 목표로 수많은 선수들이 무수한 땀을 흘리지만 모두가 그 목표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붓상과 그의 친구들도 한때 코시엔에 출전해 빛나는 야구 선수가 되는 게 꿈이었지만 결승진출전에서 진 그들에게 이제 야구는 더 이상 인생의 목표가 아니게 된다. 혹자에겐 이들이 단순히 코시엔 진출에 실패한 동네 백수들이겠지만 드라마는 성공과 실패라는 사회적 이분법을 넘어선다. 이제 야구는 그저 행복할 수 있는 수단으로 존재하므로, 그들은 더 이상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남들보다 더 노력하거나, 무언가를 참고 버티지 않아도 된다. 친구들과 함께 야구를 할 수 있는 인생이라면 번듯한 직장을 가지지 않아도, 부자가 아니어도, 화려하거나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래서 붓상은 이력서에 써넣을 스펙 하나 없는 청년이지만 그저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들과 야구를 하며 남은 인생을 하루도 빠짐없이 행복하게 보낸다. 키사라즈의 루저들은 그럴 듯한 직장을 가지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사회적 잣대에 맞추기 위해, 정해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단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 듯 끊임없이 웃고, 웃기고, 야구를 한다. 특산물이 바지락이고 동네 상징이 너구리인, 자신들의 고향에서.

시청률은 10% 조금 넘는 수준이었지만 매니아들의 지지는 열광적이어서 방송 종료 후에도 2003년에는 <키사라즈 캣츠아이 일본 시리즈>, 2006년에는 <키사라즈 캣츠아이 월드 시리즈>라는 타이틀을 달고 속편 형식의 영화로 제작되었다. (이 드라마의 진정한 엔딩격인 2006년 영화판은 국내에서 ‘일본 영화 페스티벌’을 통해 상영되기도 했다.) 가령 10개의 웃음 코드가 있다면 이중 4개 정도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는 일본식 개그지만(일본의 야구선수, 연예인, 관습 등 일본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를 수 밖에 없다.) 나머지 6개의 웃음과 따뜻함의 퀄리티는 보장하는 바이다.

쿠도 칸쿠로는 이 드라마를 통해 ‘쿠도칸’이라는 약칭 별명을 세상에 알리고 매니아 월드를 세웠다. 본업 이외에도 배우, 작사가, 작곡가, 방송작가, 영화감독, 연출자, 뮤지션, 기타리스트 등등 전방위적으로 다양하게 활동 중이다. 아쉬운 마음에 하나 더, 2003년 TBS 드라마 <맨하탄 러브 스토리>를 추천한다.

오로지 깊은 커피의 맛을 추구하기 위해 순수 찻집 ‘맨하탄’을 열고 묵묵히 커피만 내리고 있던 점장(이름은 스포라 비밀이다.)은 어느 날 찻집 앞에 들어선 방송국 때문에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된 느낌에 안절부절 한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커피 맛도 모르면서 멋대로 와 몇 시간이고 눌러앉아 수다를 떨고 찻집인데 스파게티를 주문하기도 한다. 심지어 방송국 앞에서 장사하면서 TV가 없다며 TV와 노래방 기계를 들여놓으라고 한다.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오로지 혼자 속으로만 말을 하며 카오스의 종결을 기다리는 점장 앞에 택시 운전을 하는 아(A)카바네 노부코가 나타나고, 그녀가 좋아하는 안무가 벳(B)시가 단골이 되고, 벳시가 좋아하는 각본가 치(C)쿠라 마키가 단골이 되고, 치쿠라와 불륜 관계에 있는 성우 도(D)이가키 사토시가 단골이 되며, 도이가키가 흑심을 품고 쳐다보는 아나운서 에(E)모양이 단골로 입성한다. 언제나 속으로만 말하며 이들을 지켜보던 점장은 이들의 연애에 자신도 모르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이들에게 들키지 않게 응원을 하거나 조언을 하기 시작한다. 오로지 커피만 생각하며 타인과 소통하지 않았던 점장의 인생과 순수 찻집 맨하탄은 이들의 연애처럼 뒤죽박죽 난리통이 되어 스파게티와 카레를 팔고, 노래방기계와 만화책까지 갖추는 등 급격하게 그러나 유쾌하게 변해간다. <키사라즈 캣츠아이>가 20대 청년들의 이야기였다면 <맨하탄 러브 스토리>는 3,40대의 후줄근하고 평범한 인생과 사랑이야기다. 등장인물의 알파벳 이니셜을 이용한 사랑의 행로가 한순간 역행하는 쿠도 칸쿠로 특유의 재기발랄한 구성에 “님 좀 짱인 듯 ㅋㅋㅋ”라고 댓글을 달고 싶어지고 점장의 중요대사인 “나의 인생과 경험과 혼을 담아서 말하는데…”를 불쑥불쑥 따라하고 싶어질 만큼 사랑스러운 드라마다.

이외에도 자신이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것에 콤플렉스를 가진 야쿠자가 만담가가 되고자 하는 스토리로 진행되는 쿠도칸의 또 다른 수작<타이거 앤 드래곤>, 에도 시대의 게이 커플이 사랑을 위해 도피하는 쿠도칸의 첫 영화 연출작 <한밤중의 야지키타상>, 나츠메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인용하여 평범한 주부의 몸에 나츠메 소세키의 영혼이 들어가며 벌어지는 쿠도칸의 첫 낮드라마 <나는 주부로소이다> 등 쿠도 칸쿠로는 가지지 못한 자를 늘 주인공으로 두고 이야기를 펼치며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내년 초에는 심지어 NHK의 아침 드라마 대본을 발표할 거라고 한다. (다만 최근작인 2011년 드라마 <11명이나 있어!>에서는 특유의 재기발랄함이 있어야할 곳에 어른의 자애로움이 만개하여 혹여 그의 똘끼 레벨이 부모가 됨과 동시에 떨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긴 하다.)

세상에 똘끼 넘치는 사람이야 뒤져보면 얼마든지 있지만 (<무한도전>의 ‘돌+아이 콘테스트’를 떠올려 보라. 커밍아웃한 돌+아이들만 해도 그토록 많다.) 쿠도 칸쿠로의 장점은 그 똘끼에 휴머니즘이 동반 탑재되어있다는 것이다. 그의 똘끼는 단순한 순간의 즐거움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인생을 함께 나누고 격려하고자 한다. 서툴어도 괜찮다고, 거창한 목표나 빛나는 성과가 없어도 부끄러워 말라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그것을 지키면 누가 뭐래도 당신은 후회 없는 인생을 살게 될 거라고 말이다. 우리 사회의 어른들이 쿠도 칸쿠로의 메시지를 청년들에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대학 나와야 사람 취급 받는다, 대기업에 취직해야 남들보다 넉넉하게 살 수 있다, 너 같은 걸 대신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는 말 대신.

덧붙여,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으로 휴머니즘 병맛 개그를 보여준 프로그램은 <무한도전>이라고 생각한다. 무도의 착실한 시청자였던 본인, 금단현상은 이미 파업 3주차에 겪었고 파업 100일이 넘은 지금은 뭘 해도 토요일이 토요일 같지 않다. 내 일주일에서 토요일이라는 요일 자체가 사라졌다. 어째서 시청자에게 즐거움 대신 이런 충격적인 충격을 선물하고 자빠졌는지 물어보고 싶은데 자기 부정의 정신착란을 겪고 있는 김사장은 만족할 만한 대답을 해줄 리가 없을 것이다. 역시 방법은 이것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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