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지가 쓰는 편지

죽음을 마주보며 살기

- 윤석원(전 전교조교사)

홍아야, 살다보면 우리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문제가 반드시 들이닥친단다. 늙고 병들어 결국은 죽는 문제 말이다. 젊고 건강한 시절에 그걸 잊고 지내는 동안은 남의 일 같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늙음과 병듦을 데리고 들이닥치면 대개는 당황하다가 절망하고 비참해진단다. 그래서 나는 누구에게나 차라리 젊고 건강한 때에 이 문제에 맞서자고 제안한단다.

너도 젊고 건강하니까 그런 문제는 나중에 생각해봐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 그러나 하버지는 네가 아무리 젊고 건강해도 누구나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사실과, 그래서 인생은 덧없다는 사실을 언제나 염두에 두고 살기를 바란단다. 그래야 네 젊음과 건강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고 더욱 값지게 사용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고, 또 그것들이 들이닥치더라도 평소에 정리해둔 마음가짐으로 차분하게 그것들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우리가 태어날 때 이미 죽음이 늙음과 병듦을 데리고 언젠가 우리에게 쳐들어오겠다고 선전포고를 해놓았기 때문에 우리가 잠시 잊고 지낸다고 그것들도 우리를 잊어버리는 않을 거야. 그런데도 우리가 만약에 상대방의 전투 능력과 시간이 갈수록 유리한 조건을 모르거나 잊고 있다가 막상 그들이 들이닥쳤을 때 그 기세와 위력에 충격을 받고 두려움과 절망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그것들에 휘둘릴까봐 걱정이 되는구나.

그러니 미리 적을 알아두고 전쟁이 터지면 어떻게 대처하겠다는 우리의 마음가짐과 프로그램을 정리해 두자. 만약에 명상으로 훈련을 거듭했다면 이미 잘 훈련받은 군인처럼 충격이나 두려움이나 절망감에 빠지지 않고 프로그램에 따라 질병과 늙음과 죽음에 용감하고 익숙하게 맞서 싸울 거다. 그리고 만약에 그렇게 싸워서 벌어들인 시간이 있다면 얼마나 값지게 보내겠니.

우리가 남들의 병고를 대할 때마다 공감으로 고통에 충분히 익숙해져 있다면 고통이 들이 닥쳐도 당황하지 않을 수 있을 거야. 또 남들의 죽음을 대할 때마다 죽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을 정리해뒀다면 그것이 들이 닥쳐도 두려움이나 절망에 빠지지 않고 담담하게 대할 수 있을 거야. 홍아야,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을 영원히 물리치거나 피해갈 길이 없다는 것을 안다면 비장하게 죽어야할 이유가 없어. 그렇지? 잘 훈련받고 최선을 다해 싸운 병사는 최후의 일전에서 비장하게 죽는 것이 아니라 그냥 덤덤하게 죽어야한다는 것을 안단다.

그는 죽음과 늙음과 병고에 맞서 최선을 다해 싸웠기에 언제 어디서라도 최후의 순간에 죽음에게 자기 몸을 기꺼이 맡겨버린단다. 덤덤한 죽음이란 어떤 걸까. 기쁘게 또는 억지로 맞이하는 죽음이 아니야. 너무 자주 만나서 잘 알고 지내는 친구를 맞이하듯이 덤덤하게 맞이하는 거야. “안녕, 이제, 나도 떠날 때가 됐는데 마침 잘 왔어! 같이 가자.”

그런데 어쩌면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죽음 직전의 고통일 수 도 있어.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고, 또 체념 상태라면 고통이 훨씬 적게 느껴질 거야. 무엇보다도 현대 의학의 도움을 받으면 쉽게 고통을 넘길 수도 있고. 임사체험을 들어보면 죽음이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래. 말할 수 없이 행복하고 황홀하기까지 하단다. 대개의 임사체험에서 죽음은 행복한 경험이래.

하버지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죽음이 당사자에게 무엇을 뜻하는지에 따라 죽음을 기쁘게 맞이할 사람도 있다는 거야. 하버지는 죽음이 하버지 존재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다만 한 토막 여행의 종착지라고 생각해. 거기서 머무는 동안 자기완성으로 만족할 때까지 나는 다음 여행을 원할 것이며 원하는 대로 될 거라고 믿고 있어. 어쩌면 지금 여기서 나의 삶으로 다음 여행의 여정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몰라. 때가 되면 지금 여기서 사랑했던 모든 생명들이 잘 살기를 바라고 나 혼자 다음 여행을 훌쩍 떠날 거야. 작은 개울을 건너뛰듯이 저 쪽 언덕에 훌쩍 건너뛰는 거야.

홍아야, 그럼 너는 어떻게 죽을래? 너도 죽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네 생각을 정리해보렴.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도 함께 정리될 거야. 명상과 수행이라는 게 특별한 시간에 특별한 자세로 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생각을 정리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틈틈이 할 수도 있어. 어떻게든지 죽음에 대하여 네 생각이 정리되어 있다면 넌 죽음을 기다리지도 않겠지만 두려워하지도 않을 거야. 생사관이 분명하다면 더 높은 수준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훨씬 보람 있게 그리고 열심히 살 거라고 믿어. 네가 그렇게 되기를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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