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두물머리에서의 3년, 좌충우돌 외부세력 연대기

- 김디온(두물머리 밭전위원)

그림  2010. 5 서울-팔당 두물머리 자전거 떼잔차질

그림 2010. 5 서울-팔당 두물머리 자전거 떼잔차질

우리는 외부세력이다. 올해로 벌써 3년이 되었다. 4대강사업의 일환으로 자전거도로를 놓기 위해 강변의 유기농단지를 철거할 계획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야 말로 이곳에 가서 자전거도로 반대 운동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자전거를 좀 탄다는 친구들이 있어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나는 당시 자전거를 못 탔다. 출발과 정지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빈 운동장에서 매우 긴장하며 한 바퀴 겨우 돌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라면 짐작이 가시려나. 다행히 친구 중 하나가 2인용 자전거를 가지고 있어 나는 뒷자석에서, 몸자보와 깃발을 휘날리며 페달을 밟을 수가 있었다. 서울에서부터 두물머리까지 자전거 떼잔차질을 하며 가자 했더니 30여명의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모였고 무려 8시간의 개고생 라이딩 끝에 두물머리에 도착했다. 그렇게 딱 한 번만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그만 그것이 지난 3년간 내 활동의 시작이 되었다. 나는 두물머리 유기농지 싸움에 푹 빠져버려 어느새 이곳에 자리를 잡고 살고 있다.

전혀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첫 방문 이후 나는 마음을 앓기 시작했다. 그곳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조용하고 사람들은 평온한 미소를 띠었다. 연대하겠다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과잉 친절을 베풀지 않는 독특한(?) 문화도 있었다. 호기심이 솔솔 생기기 시작했다. 투쟁한다는 곳에 이 평화로운 분위기는 무엇이며, 채식을 한다거나 여자가 담배를 뻑뻑 피운다거나 하는 일에 ‘그러려니’의 태도로 일관하는 농부들의 모습은 또?(나중에 알고보니 이분들도 한 때… ) 어쨌거나 나는 그후 주말마다 두물머리에 가게 되었다. 다행히 나와 같은 병에 걸린 자들이 주변에 몇몇 있어 외롭지 않았다.

그림  협상하고 떠난 농부들의 밭은 매년 수많은 외부세력들이 경작하고 있다

그림 협상하고 떠난 농부들의 밭은 매년 수많은 외부세력들이 경작하고 있다

‘8당은 에코토피아’라는 희안한 이름의 생태캠프를 벌였고, 빈 밭에 배추를 3천포기를 심어 ‘4대강포기배추’라 하여 판매를 했다. 사람들은 무엇에 홀린 듯 꾸준히 주말마다 두물머리에 왔다. 이곳에 오면 가슴이 탁 트이고 무엇이든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4대강 사업 등 이 정권이 우리에게 주는 각종 스트레스에 분한 마음이 좀 풀리는 듯도 했다. 그러던 12월 어느 날, 두물머리 농부들 11농가 중 7농가가 협상에 임하여 4농가만 남아 싸움을 지속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2011년, 우리는 일찍이 비어있던 땅을 우리 자체의 밭으로 삼고, 주말마다 번개모임처럼 작물들을 심고 가꾸었다. 두물머리가 조용해지는 것이 싫었고, 뭐든 해야 했다. 자고 일어나면 농민분들과 에코토피아 친구들이 보고 싶어졌다. 우리들의 접촉면은 우둘투둘하게, 서로 맞고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하기 싫은 일은 억지로 시키지 않으면서 다같이 마음이 모아지는 일들을 찾아나갔다. 작년 가을에 있었던 ‘두물머리 강변가요제’는 그야말로 외부세력들이 자립적으로 뭔가 해보겠다고 벌인 기념비적 사건 중에 하나였다. 그때까지 별로 교류가 없던, 그러나 두물머리에서 지속적으로 만나던 ‘록빠’라는 팀과 함께 일을 벌이게 되었다. 그 전에는 에코토피아가 무슨 행사를 하나 하고, 록빠도 무슨 행사를 하고 각자 자신들의 텃밭을 일구며 오가며 인사 나누는 정도의 사이였는데 일종의 우드스탁 같은 큰 행사를 같이 하게 된 것이다. 몇 백만원을 들여 야외 스테이지를 꾸미고 조명과 엠프를 설치하고, 3개의 무대에 수십개의 밴드와 수많은 뮤지션들을 초대하여 호화로운 잔치를 열심히 준비하였다. 홍보를 하고 표를 팔고 온갖 것들을 준비하였는데 대망의 행사 당일, 날씨가 안 좋았다. 아침부터 서서히 바람이 불었고 비와 돌풍이 예고되어 야외에 마련한 그 몇 백 만원짜리 스테이지는 바람에 날아갈지로 모를 일이었다. 비싼 음향 기기를 실은 차량이 두물머리에 도착함으로써 결국 강행을 하기로 했다. 공연 시작과 함께 내리던 비는 공연의 클라이막스와 함께 폭우를 몰고 왔고, 급기야 천둥 번개를 동반한 돌풍이 불어 닥쳤다. 이런, 이건 진짜 우드스탁과 똑같았다. 얼마 안되는 관객과 스텝과 뮤지션들이 진흙탕 속에서 미친 듯 놀았다. 한편 그날 주차된 차들이 모두 진창에 빠져 농부들이 차를 빼느라 고생하고 공연은 보지도 못했다. 나는 한동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는데, 농부들은 그렇게 고생하시고도 괜찮다 하셨다. 다행히도 다녀갔던 사람들에게는 그날이 얼마나 인상 깊었는지, 참여했던 몇몇 사람들이 우리처럼 주말마다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후부터는 농부들이나 팔당공대위나. 그냥 두손 두발 다 들고 ‘니네들 마음 대로 해라!’하는 심정이셨던 것 같다. 크고 작은 이벤트들을 겨우 내 열었는데, 역시 매번 다같이 고생하고 즐거워했다.

그림  두물머리 강변가요제 웹자보

그림 두물머리 강변가요제 웹자보

그림  폭우 속 진행된 야외 스테이지. 뮤지션들과 팔당공대위 위원장님이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림 폭우 속 진행된 야외 스테이지. 뮤지션들과 팔당공대위 위원장님이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고 올해엔 외부세력들이 스스로 ‘두물머리 밭전위원회’를 발족하기에 이르렀다. 작년까지만 해도 작물들이 빼곡하게 자라던 하우스는 이제 벌판이 되었고 간간이 큰 흙무덤과 쓰레기들이 쌓여갔다. 작년 12월 시공사의 공사시도를 겨우 막아낸 것 말고도 올초에는 지역발전협의회의 ‘4대강 사업 적극 찬성’ 플래카드가 마을 입구에 잔뜩 붙어 분위기가 안 좋았다. 농부들은 이들과 대화를 위해 밤낮없이 긴급회의를 했다. 이런 일들에는 외부세력들이 별 수를 쓰지 못했다. 2년 넘게 주말마다 함께 일하고 놀고 사고를 치며 보내왔는데도 이런 문제에는 별다른 힘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그간 외부세력들이 해왔던 판들을 다시 열어보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많은 분들의 우려 속에 잘 시도되지 못했다. 그런 것들은 아직 한계가 명확한 일들이었던 것일까. 아직 이 문제는 답을 내리지 못한다. 그 무렵 외부세력들은 답답한 마음을 한 켠에 가지고 일요일마다 늦은 오후나 밤에 모여들어 밥을 먹고 얘기를 풀어갔다.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갈 것인가. 봄에 우리가 이곳에 연대하는 길은 농사가 첫째인데 이에 대해 올해는 적극적인 고발조치가 이뤄질 게 예고되고 있었다. 우리가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 농부들이 고발될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실제로 지금 그렇게 되었다). 농부들도 외부세력들도 긴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술도 마시고 노래도 하고. 난로에 불을 피워놓고 떡이나 김 등을 구워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림  외부세력들의 모임. ‘사랑방’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눈다

그림 외부세력들의 모임. ‘사랑방’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눈다

그림  제작년, ‘4대강포기배추’ 수확

그림 제작년, ‘4대강포기배추’ 수확

일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도모되었다. 우리가 두물머리에서 무엇을 하든, 이제는 민폐인가 아닌가는 더 이상 따질 상황이 못 되었다. 봄은 왔고 ‘두물머리 밭전위원회’라는 거창한 이름을 걸고 사람들을 모으기로 했다. 처음에 팔당공대위에서 이런 형태의 농사를 ‘명랑텃밭’이라 하여 진행했었고, 그 다음해는 ‘시민텃밭’이라 하여 진행했었는데 이번엔 주체가 바뀌었다. 먼저 들어온 외부세력들이 나중에 올 외부세력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여기서, 우리 불법이라고 고발당하더라도 그냥 농사 지을 사람, 모이시오.’하고 몇몇 외부세력들은 이미 포트에 씨앗을 넣어 기르고 있었고 제작년부터 농사를 지어온 에코토피아도 늦지 않게 씨를 넣으려 애쓰고 있었다. 소식이 퍼지자 천주교농부학교가 아예 두물머리의 한 땅 한 귀퉁이를 자신들의 농토로 삼아버렸다. 녹색당은 작년에 농사짓던 곳에 뿌려둔 것들이 있어 새로운 곳으로 밭을 이전하는 문제를 고심하다가 그곳과 새로운 곳에 동시에 밭을 갈았다. 그러는 와중에 소식을 들은 여러 그룹들과 지역의 후원세력들이 이 땅을 차곡 차곡 점거하기 시작했다. 4월과 5월, 그렇게 조금씩 땅들이 채워지고 모내기를 앞둔 지금은 넓고 황량했던 빈 들이 작물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정부가 경작을 불법화한 그 땅은 아무리 공무원들이 들어와 말뚝을 박고 띠를 둘러도, 이미 수많은 사람들, 그룹들의 밭이 되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두물머리가 밭으로 지속되는 것을 바랄 뿐이다. 제발 더 이상 ‘국가가 하는 사업이니까’, 또는 이미 다른 4대강 사업 구역들이 다 공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형평성’ 때문에, 라는 말로 두물머리에 억지스럽게 자전거 도로를 놓으려고 하지 않기를 바란다.

3년간의 좌충우돌 민폐작렬 연대 속에서 외부세력들은 점점 더 뭉쳐지고 다양한 색깔을 뿜어내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주어진 일들을 해나가기 보다는 일을 저지르고 그걸 헤쳐나가는 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작년에 두물머리를 대안연구단에서 생태습지, 자전거도로와 함께 유기농교육이 가능한 농장, 치유농장 등을 포함하는 모델을 제시한 바 있는데 지금 우리는 어쩌면 이미 각자의 방식대로 두물머리 마을을 가꾸고 있는지 모른다. 복잡한 갈등과 정부와의 신경전으로 피곤이 쌓이기도 하지만, 그런 것은 최대한 무시하기로 한다. 외부세력들은 지금 치유와 휴식과 즐거움을 최대한 누릴 방도를 매주 모여 궁리하고 있다.

광고 한 마디. 이번 주 일요일, 27일에는 일년 중 가장 큰 행사인 모내기가 진행될 예정이다. 지난 주에는 이때 내갈 국수를 위해 들판에 심은 열무를 뽑아 200인분의 열무김치를 담궈 놨다. 오전10시부터 저녁 때까지 모내기 하고 놀고 먹고 노래하고 놀 것이니 도시락을 싸들고 오시길. 두물머리와 외부세력들의 소식이 궁금하다면 http://cafe.daum.net/6-2nong 에 들어와서 둘러보시고, 에코토피아가 궁금하다면 http://8dang.jinbo.net 에 들어가 보시라. 두물머리 밭전위원회의 소식을 꾸준히 받아보고 싶다면 http://riverun.org/farm 에서 밭전위원 등록을 하면 된다. 그럼, 언제고 두물머리에 한 번 방문하여 함께 씨 뿌릴 날이 있기를 기도하며.

응답 6개

  1. 박카스말하길

    27일 모내기심기! 풍물패의 흥겨운 노래들, 모줄 잡이의 카운트 소리와 나이가 어린 친구들의 비명의 신경전!
    폭풍우 속 너도나도 날아가는 텐트잡기, 집요한 벼룩시장 관계자,
    맛있는 콩나물열무국수, 막걸리. 경쾌진지 쏭님의 노래공연,
    강정소식 나누기, 급결성밴드의 멀쩡한 대낮에 ‘달리는 말’

    곰취,깻잎,오이소박이..두물머리 농지 밥상,
    잘 보고, 먹고, 모도 심고 즐거웠어요!!

    비온 뒤 개인 하늘에 아무자리에 높게 서 있는 나무와 그 앞에 텃밭,들판들이 너무 예뻤어요. 두물머리, 정말 예뻤어요

    • 디온말하길

      박카스? 반가워요. 전 디오니소스의 줄임말로 디온이란 이름 쓰는데.ㅎㅎ 두머리 어제 오셨었군요. 맨날 가도 좋아요. ^^ 6월 말에 감자캐기도 오시면 좋겠다.. ㅋㅋ

  2. 밥톨말하길

    명쾌한 정의!
    이 설기고도 찔긴 연대의 근간이 되는 것은 동병상련.
    불치의 두물머리병.^^;

  3. 지나가다말하길

    작고 못난 사람들, 그 사람들의 작고 못난 행사들이 많은 사람들을 두물머리 대지를 갈게 하는 힘이 되는 모습이 참 감동입니다.

    • 디온말하길

      고맙슴다. 더 크고 싶은데 커지지 않는것이 늘 아쉽지만 그래도 ^^언제나 고만고만한 사람들과 웃고 함께할 수 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함다. 담에 오시면 아는척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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