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농사 일지

- 김융희

농사 일지를 쓴지가 까마득합니다. 너무 오래여서 기억도 나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일지쯤은 쓸거리가 없거나, 쓸 여건이 안되면 쓰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마땅히 심어야 하는 작물을 놓치고 말았으니, 이 농직이는 할 말이 없습니다. 농사꾼이 바람이 나도 많이 난 모양입니다. 이런 내 짖이 왜인지를 나도 잘 몰겠습니다. 특히 일상 가장 많이 늘 먹는 채소류를 거의 심지를 않고 빠뜨렸습니다. 쑥갓, 아욱, 근대, 열무, 알타리, 시금치, 등… 겨우 상추만 몇 포기 모종한 것을 뻬고는, 야채 모두를 심지 않고 그냥 빠뜨렸습니다.

또 날씨 탓입니다. 아마 요즘 들어 매우 심한 기후 변덕의 영향이 없지 않을 듯 싶습니다. 농사란 것이 자연과 더불어 기후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기 때문에 못난 농사꾼은 번번히 날씨 탓을 못면한 답니다. 올해는 날씨가 풀려 농사 준비로 한창 바빠야 할 시기에도 계속 영하의 날씨로 꽁꽁 언 땅을 바라만 보아야 했고, 임박해 서둘러야 할 때에는 벌써 여름 날씨처럼 갑자기 더위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작물은 어떤 기후에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용케도 작물은 말없이 자연에 적응하여 잘 대처합니다. 뒷치다꺼리나 하는 못난 농사꾼만이 불평을 늘어놓은 것입니다.

놀라운 작물의 자연에 적응력을 보면서, 그 치다꺼리가 나에겐 여간 힘듭니다. 물론 작물의 환경 적응을 위한 고통에 비하면 어림없는 엄살부림일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 새싹은 높은 기온, 강한 햇빛에 너무 약합니다. 가끔씩 비라도 내려줘야 지탱이 되는데, 지난 겨울부터 지금까지 계속 비다운 비는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물을 뿌려줘야 새싹이 지탱하며 겨우 자랍니다. 그런데 잡초가 엉뚱하게도 뿌려준 물에 제세상처럼 춤추듯 무성합니다. 물을 뿌리랴, 잡초를 제거해 어린 싹을 보호해 주랴, 이래 저래 힘겨운 농사꾼의 불평도 일리는 있는 것입니다.

농직이는 개으름은 피울 망정, 자리를 비우면 않됩니다. 늘 곁에서 함께 있어주어야 합니다. 작물들이 외로움을 타는가 봅니다. 곁에서 눈길 주기를 바라며, 계속 손길을 바람니다. 농작물은 어지간한 환경에는 잘 적응하면서, 농부의 손길이 닿아야 씩씩하게 잘 자랍니다. 개으름부림엔 별로 개의치 않지만, 눈길, 손길이 없는 작물은 늘 부실합니다. 그런데 나는 거의 자리를 비워 수시로 외도를 일삼고 있으니, 우리집 작물들은 불평이 많습니다. 더구나 금년은 외도가 더 심했습니다. 오랜 시간을 집수리로, 또 여름행사 준비에, 수시로 서울 나들이에 작물에는 거의 관삼이 없었습니다.

아직도 집수리는 마무리를 지우지 못한 채, 독일행 행사가 임박하고 있습니다. 못심은 채소라야 없으면 그만, 주위에 널려있는 것이 먹거리들입니다. 나물이 먹고 싶으면 지천으로 널려있는 비름, 국거리가 필요하면 항상 가능한 쑥국에, 야생의 머위도 있고, 취도 계속 자라며, 씀바귀, 고들빼기, 민들레, 질갱이등, 주위에는 야생의 먹거리가 널려있습니다. 다래순 고춧나물, 두릅등, 금년 봄나물들. 손쓸 시간이 없어 지금까지 그데론 채, 모두가 쇠해 버렸습니다. 이처럼 내가 작물을 기르는 것은 꼭 먹거리가 필요해서만은 아님니다.

바쁘다는 핑개로, 믿는 구석이 있어 채소류를 놓와버렸을 뿐입니다. 봄냉이도 케지 않고 그냥 두었더니 잡초로 변해 하얀꽃이 만발했고, 일부는 벌써 새싹으로 태어나 여름냉이로 나물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어쩜 이같은 야생 토종 야채들이 우리의 참먹거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요즘 시장의 먹거리들을 보면 온통 신품종의 일색입니다. ‘신토불이’를 로고로 쓰고 있는 마트에도, 그 어디도 마찬가집니다. 야생 토종먹거리는 용돈 천원이 아쉬운 촌노의 일거리로 시장 골목에서나 가끔씩 볼 수 있을 뿐입니다. 빵하나 값도 안되는 야채가 팔리기를 고대하며 쪼그리고 앉아계신 할머니를 보면 어쩐지 나는 눈물이 납니다. 이런 세상이 참 밉습니다.

토종 작물은 줄곧 곁에 함께하면서 우리를 지켜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훨씬 오랫적부터 우리와 함께 있는 토종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작물을 외면이나 괄시뿐만이 아니라, 사정없이 종자를 없에버리고 변형시켜 버리는 요즘 세상입니다. 메스컴이나 티비를 보면, 모두 변형시켜 만신창이의 도깨비 작물들을 몸에 좋다며 신품종으로 추켜세우는 꼴을 보면 가관이다 못해 분통이 터집니다. 무조건 새것이 좋다는 엉터리 세상. 그래서 지금은 우리 종자조차도 지키지 못하고 모두 빼앗겨 남들의 돈벌이나 시켜주고 있는 어리석음이 오늘 우리의 현실입니다.

비웃음이나 사면서, 정신병자 취급을 받지 않음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말해 뭘합니까.
그러나 나는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토종씨를 구하려 해도 도대체가 구할 수 없어 속상하고 답답합니다. 나처럼 개으르고 불성실한 농사꾼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 우리 토종 작물의 재배입니다. 토종은 오랜 세월을 우리와 함께 하면서 환경에 적응력이 매우 좋습니다. 오랜 세월을 함께 했음에 잡초에도 강하며 병충해에도 잘 이겨냅니다. 물론 우리의 체질에도 잘 맞을 것입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당연지사이겠지요.

잎을 뚝 따면 젖빛 진을 내뿜으며 독한 상추내음이 진동하는 옛날 상추가 그리워서 시골 장터를 모두 뒤져도 아직 구하질 못했습니다. 노각이라고 하는 토종 물외는 잡초속에서 더 잘 영글며 향이 짙어, 잡초를 감당못해 버려둔 곳에 심었음싶어 찾아보지만 역시… 이처럼 우리곁을 모두 소리도 없이 사라져 종적을 감췄습니다. 야채나 식물뿐이 아닙니다. 삽사리를 기르고 싶습니다. 상품으로의 토종닭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순 토종닭은 아닙니다. 이런 것들이 없어서 그리운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데도 구할 수 없어 속상합니다.

모처럼 농사일지를 쓰면서 처음부터 어둡고 목맨 소리만 늘어놓으려니 멋쩍고 죄송스럽습니다. 건강이 중요한 만큼 먹거리에도 보다 지혜로운 관심 갖기를 바라면서 오늘은 이만 줄이렴니다. 여러분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