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가 특집

자크 데리다, 유령과-함께-해체하기

- 최진석

이단적 사유의 행로 — 명성과 악명 사이에서

1930년 알제리에서 태어난 데리다의 첫 번째 저술은 1962년 후설의 『기하학의 기원』을 번역하며 붙인 장편의 해제로 알려져 있다. 단지 번역문에 대한 해설 이상의 함축을 담고 있는 이 논문은 데리다에게 프랑스 최고 철학상인 카바예스 상을 안겨주며 ‘천재’ 소리를 듣게 해 주었다. 젊은 철학자의 전도유망한 미래가 엿보이던 순간이었으나, 이후 40년간 그가 80여권의 저작을 출간하고 수백 편의 인터뷰를 남기며 영화에도 출연할 만치 세계적 명성을 누리리라곤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본격적인 데리다의 시대는 1967년, 그가 세 권의 주저 『목소리와 현상』, 『그라마톨로지』, 『글쓰기와 차이』를 선보이며 시작된다. 특히 『그라마톨로지』는 여전히 데리다의 대표작으로 통용되고 있으며, 그의 사상적 트레이드 마크인 ‘해체론’의 표지로서 인용되고 있다. 계몽 철학자 루소와 루소의 독자로서 구조주의의 창설자인 레비-스트로스를 면밀하게 독해하는 이 책은 서구 사상사의 명시적 기원인 동시에 그 누구도 질문하지 않은 기원의 이면에 놓인 로고스 중심주의를 폭로하고 비판한다. 그것은 사유의 원천에 의문을 던지며 그 원천의 자리에는 아무런 ‘근원적인 것’이 없음을 드러내는 이중의 과제를 실행함으로써, 서구 정신의 ‘전복’을 겨냥한 대담한 시도였다. 이로써 데리다는 니체와 하이데거의 계보를 이어 형이상학의 비판자로 자신의 사상사적 포지션을 정립한다.
『철학의 여백』(1972), 『산종(散種)』(1972), 『조종(弔鐘)』(1974), 『우편엽서』(1980) 등의 후속작들에서 알 수 있듯, 그 후 데리다의 작업들은 주로 문학과 철학의 정전들을 뒤집어 읽거나 그 비-근원을 드러내며, 의미의 괴리와 파열 지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고 있던 일상의 신념들, 아카데미라는 성전에 모셔진 진리가 실은 보기보다 부실하며 근거 박약한 것이었음을 파고든 데리다의 글들은 학계의 센세이션이요, 스캔들이었다. 또한 데리다가 건드린 주제들은 굳이 철학의 영토에 국한된 것도 아니었다. 민족, 결혼, 가족, 종교, 우정, 회화 등 담론 일반에 속한 것이라면 그 무엇도 ‘해체의 망치질’을 비껴갈 수 없었다. 데리다의 작업들이 기성의 지식 담론, 특히 대학 사회에서 두려움과 혐오감을 일으킨 것도 그 때문이었다. 60-70년대에 그가 누린 명성의 이면에는 ‘사기꾼’이나 ‘날라리’라는 악명이 덧칠되어 있었으며, 이는 1980년 소르본 대학에 제출한 그의 국가박사학위가 거절되었던 일화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윤리·정치적 전회 — 실천적 해체론?

초기 데리다의 행보에서 무엇보다도 논란거리가 된 것은 정치적 현실에 대한 그의 애매한 태도였다. 해체의 칼바람은 플라톤과 헤겔, 후설, 하이데거 등 서구 지성사의 대가들에게 거침없이 불어닥쳤지만, 정작 텍스트 ‘바깥’의 현실에서는 큰 반응을 일으키지 못했다. 물론, 프랑스 교육 정책에서 철학이 제외된 데 적극 항의를 벌이거나 대학 사회의 폐쇄적 태도에 직접적인 비판을 가하긴 했어도, 60-70년대 서구 사회를 들끓게 했던 사회 변혁의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현실에 대한 데리다의 거리두기는 일종의 지적인 ‘직무유기’로 비난받을 소지가 충분했다. 더구나 알튀세르를 비롯한 당대의 지식인들이 어떻게든 ‘좌파’ 이데올로기를 공유했던 데 비해 어떤 정치적 이념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하지 않았던 것은 누가봐도 그의 작업을 ‘비정치적인 유희’로 간주하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라마톨로지』를 정점으로 삼는 그의 초기 철학을 연구할 때 마주치는 곤혹은 바로 이런 그의 비정치성, 혹은 정치적인 모호성에 연원한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데리다 사유의 기본 흐름은 전면적인 선회를 시작한다. 소위 ‘윤리적’ 혹은 ‘정치적’ 전회라 불리는 것으로, 『마르크스의 유령들』(1993)과 『법의 힘』(1994)을 필두로 『환대에 대하여』(1997)와 『불량배들』(2003), 『짐승과 주권』(2008-10) 등에 이르기까지 후반부 저작들에서 데리다는 현실과 정치에 대해 보다 개입적이고 발언적인 입장들을 취하기 때문이다. 팔방미인적 재능에다 워낙 다작이었던 탓에 그가 남긴 저술들이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채 숙제로 남겨져 있지만, 80년대 이후 데리다의 글들은 사유가 어떻게 실천적으로 전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모종의 응답이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해체적 사유’가 ‘실천하는 해체’로 전화하는 지점이라고나 할까?
일견 이론이 실천으로, 텍스트가 현실로 옮겨가는 간단한 도식으로 보이지만, 이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왜냐면 데리다의 초점은 “해체는 실천이다”라는 단언이 아니라, “해체가 실천적이 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산출하기 때문이다. 이는 어쩌면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해석해 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라는 맑스의 문제제기를 뒤틀어 표현한 것일 텐데, 해체의 실천이란 다름 아닌 실천의 조건에 대한 연구에서 비롯되는 탓이다.

유령론, 또는 해체의 실천 철학

가령 후기 데리다의 중심 논제를 구성하는 정의나 환대의 논리가 그렇다. 플라톤이 이상 국가를 설계한 이래 ‘정의’는 사회 구성의 중심 이념으로 사상사를 지배해왔으며, ‘환대’는 이상적 공동체의 구성 원리로 군림해 왔다. 문제는 민족과 문화, 이해관계 등에 의해 지배되는 특수한 정의나 제한적인 환대만이 역사적으로 실현되었다는 점이다. 항상 타자가 아닌 ‘우리의’라는 소유격에 지배되는 정의와 환대만이 구체적이었고, 그렇게 정의와 환대가 구체화되면서 나와 너, 남성과 여성, 서양과 동양, 인간과 동물 등의 이분법적 논리가 ‘불가피하게’ 가동된다. 달리 말해, 조건없는 보편성을 내장하는 정의와 환대의 이념은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적이 없다. 정의와 환대란 전혀 불가능한 것인가? 인간의 조건이란 정녕 그런 것인가?
아마도 그럴지 모른다. 그러나 해체적 실천의 가능성은 그 ‘아마도’가 안고 있는 절반의 물음으로부터 솟아난다. 왜 ‘아마도’인가? 만약 현실에 충실한 미래가, 보편적 정의나 환대가 부재하는 시간만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면 우리는 ‘아마도’를 말할 수 없다. 현재의 불의(특수한 정의와 환대)가 그 힘을 보존하여 10년 후, 100년 후, 영구한 세월을 지배할 수 있다는 전망을 지금-여기의 현실에 비추어 왜 부정할 수 없겠는가? 그러나 아마도, 우리가 보편적 정의와 환대를 말할 수 있는 것은 현재로부터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의 논리적 형식이 결코 영구불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이는 막연한 희망이나 맹목이 아니다. 사실, 초기 데리다의 비정치성에 대한 세간의 속단과 달리, 처음부터 그는 시간의 형식이란 시대별로 구부러지거나 끊어져서 존속하는 부단한 단절과 교차의 운동, 즉 ‘차연’의 효과에 불과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시간 속에서 우리는 항상-이미 예기치 못한 낯선 것들로부터 습격을 받아왔고, 타격을 입었으며, 그만큼 변형되어 왔다. 시간의 벽을 타고 야만인[타자]들이 왔으며, 어쩌면 시간 속에서 지속하는 우리 자신이 바로 그 야만인들일지 모른다!
그래서 ‘아마도’는 가능성과 불가능성이 함께 뒤섞여 존속하는 탈구된 존재론을 제기한다. 오랫동안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던 자아와 현전의 존재론을 데리다는 타자와 비-현전의 존재론, 즉 ‘유령론’으로 뒤바꿔 던져놓는 것이다. 유령, 그것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유령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으나, 그것이 남긴 흔적에 대해 말할 수 있고 (믿든 말든) 그 효과를 통과하며 살아간다. 심지어 맑스조차 ‘사용가치’라는 유령적 흔적에 사로잡히지 않았던가? 문제는 있느냐, 없느냐(to be, or not to be)가 아니다. 관건은 그 질문의 효과다! 유령의 효과! 진리도 그 효과로부터 생산된다!
일관되게 눈에 보이는 것만을 존재한다 말하고 맹신하는 이 세계를 떠받치는 것은 비가시적인 유령-효과다. 유령이 없다면, 유령-아닌-것도 없다. 세계의 변화를 자신하고 실행하던 정치 철학이 가시적인 현전만을 이 세계의 유일한 형식으로 삼아왔다면, 이제 데리다는 우리로 하여금 그 현전의 유령적 속성을 인식하고 유령과-함께 실천해야 함을 권유한다. 정의란, 환대란, 보편적 의미에서 바로 유령적인 것의 흔적이며, 유령과-함께일 때만 비로소 불러낼 수 있는 효과-힘이기 때문이다. 허깨비도 아니고 실체도 아닌, 그런 유령과 함께 실천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해체의 정치적 위력을 깨워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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