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꼼

법정르뽀, 박정근사건 3차공판 두번째 이야기 – 대학인터넷커뮤니티의 ‘간첩드립질’은 보는즉시 113에 신과는 센스, 우후훗!

- 황진미

# 아주대 학생 커뮤니티 ‘아좋사’ 개설자 증인 안00씨

두 번째 증인 29세 안00은 아주대 졸업생으로 공공기관 연구원이다. 2003년에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아주대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아좋사)”이라는 카페를 개설하였고, 현재까지 운영자로 있다고 한다. ‘아좋사’는 아주대 학생들의 최대 커뮤니티로 현재 약 3만 명의 회원이 있다고 한다. 검사는 안00가 경기지방경찰청에 우편으로 보내온 참고인 조서를 보여주면서, 본인 자필로 작성된 것이 맞는지 확인하였다.

검사 : 증인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간첩 및 좌익사범 박정근입니다. 수다 떨러 왔어요. 환영해주세요” “저는 이 학교를 무너뜨리려 내려온 남파간첩 박정근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 다 주체사상에 심취하셔가지고 단결력이 끝내주네요. 그게 다 수령님과 김정일 장군님 덕택입니다” 라는 게시글을 보았습니까?

안00 : 아니요. 직접보진 못했습니다. 어느 날 경찰이 저한테 전화를 걸어 성명과 소속을 밝히면서 조사를 할 필요가 있으니 나와 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바빠서 안 되겠다고 하니까, 우편조서로 하자고 해서 주소를 불러주었더니, 질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 질문지에 그런 게시물이 있다는 사실이 나와 있어서 알게 되었습니다. 카페에서 찾아보려니까 이미 삭제되고 없었습니다.

변호인 : 증인이 113에 신고를 했다고 되어 있는데

안00 : 아니요. 전혀 그런 일이 없습니다.

검사는 경찰 조서의 문장을 다시 보여주면서, 113에 신고를 한 사람은 안00이 아니라, 신00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

변호인 : 글이 삭제되었었다고 했는데, 카페 글을 삭제할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게 있나요?

안00 : 회원 중에는 저와 제 동기 신00 두 사람만 삭제권한이 있습니다. 저는 삭제하지 않았고, 누가 삭제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아좋사’의 운영자 중 한명인 신00가 박정근이 쓴 글을 보고 113에 신고를 했는데, 우편조서는 글을 본적도 없는 안00가 작성하였고, 지금 증인석에까지 나와 있다는 말씀. 차라리 신00를 증인으로 불렀더라면 왜 113에 신고했는지라도 들어볼 수 있으련만)

스크린에는 안00가 우편조서의 문답이 비춰진다. 안00가 자필로 쓴 답변에는 “게시글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차후에는 이런 일이 있어선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는 등의 문장들이 적혀있다.

변호인 : 이런 답은 뭘 근거로 한 것인가요? 경찰이 FAX로 보내온 그림들과 우편조서에 있는 “저는 이 학교를 무너뜨리기 위해 온…적화통일…” 등의 내용만을 근거로 대답한 것인가요?

안00 : 네. 그런 게시물은 우리 카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발언의 위험성에 대한 판단은 아니었습니다.

박정근이 변호인을 통해 증인에게 질문을 하였다.

“카페에 올린 글의 내용을 문제삼아, 카페회원이 국정원에 신고를 한 일이 있지 않았나요?”

안00 “모르겠습니다.”

# 박정근은 왜 ‘아좋사’에 가서 ’간첩드립질’을 한걸까?

대체 이게 뭔 말일까? 박정근과 ‘아주대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란 말랑말랑한 이름의 카페는 뭔 상관이 있을까. 박정근이 카페에 들어가 올렸다는 ”간첩 및 좌익사범 박정근 입니다” 따위의 말들은 위험한 건 둘째 치고, 증인의 말처럼 카페의 성격과 도통 어울리지 않는다. 박정근은 왜 남의 대학 친목 사이트에 가서 저따위 간첩 드립질을 쳤단 말인가? 우리의 박정근은 국가보안법 위반보다 개매너가 더 문제인 사람이었나?

여기엔 맥락이 있다. 작년 11월 <대학내일>의 <학생운동이 재밌어진다>란 기사에는 ‘진보적 지방잡대동맹(일명 지잡동)’이 소개되었다. 한번 읽어보시라. http://www.naeilshot.co.kr/Articles/RecentView.aspx?p=xzcfuWy~plus~u6eeD1u5rFC7OCLuujRQBMROEG~plus~9otNHOopJRBGZBAetYQ%3D%3D 재미있고 발랄한 이 기사에는 지잡동의 부맹주로 소개된 학생의 소속이 아주대라고 적시되어 있는데, 이게 사단이었다. 이게 뭐가 문제냐고? 아주대 커뮤니티 ‘아좋사’ 회원이 기사를 퍼서 게시판에 올렸고, 기사에는 학생에 대한 비난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어째서 아주대가 지잡대란 이름으로 불려야 하느냐, 왜 학교와 동문의 이름에 먹칠을 하느냐, 입시생들이 저 기사를 보고 아주대를 지잡대로 알고 지원을 안 해 커트라인이 낮아져 진짜로 지잡대가 되면 어쩔거냐 등등. 물론 게시판에는 그 학생을 옹호하고 ‘지잡동’의 취지가 학벌체계를 부수는데 있다며 변론을 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과열된 게시판에서 그런 ‘쉴드’는 더 격한 ‘안티’를 부르기 마련이다. 비난여론은 더욱 거세어져 심지어 그 학생을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해야 된다느니, 학교에서 징계를 주어야 한다느니 하는 말들까지 오갔다고 한다. 감정이 격해진 ‘아좋사’의 회원들 중에는 지잡동이 행하는 ‘북한관련 드립질’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국정원에 신고해야 한다는 이들도 있었으며, 실제로 국정원에 신고한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국정원에 ‘북한관련’ 신고를 하면 국정원시계-일명 절대시계-를 기념품으로 받는데, 이를 노린 신고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아무튼 이런 분위기 하에서 당시 국보법으로 압수수색을 당하고 수차례 경찰 수사를 받던 박정근이 ‘아좋사’에 납신 것이다. “내가 진짜 간첩이다, 니네 왜 엉뚱한 사람들을 국정원에 신고하냐? 니네들 단결력 쩐다, 꼭 북한처럼” 뭐 이런 식의 취지로 게시판에 장난을 친 게, 앞의 그 괴상한 멘트들 되시겠다. 그런데 박정근의 이 드립질에 카페 운영자중 한명인 신00는 진짜로 113에 신고를 했고(아, 이승복 어린이 돋긔), 정작 게시물은 보지도 못한 카페 개설자는 경찰의 연락을 받고, 우편조서에 인용되어 있는 박정근의 얄궂은 멘트와 FAX로 전송되어 온 (저해상도 흑백사진이지만 뭔가 북한스러운 느낌이 팍팍 나는) 뜨악한 사진들만 보고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는 등의 답변을 성실히 작성하여 보냈으며, 오늘도 박정근의 위험성(?)을 입증하려는 검찰 측의 요청에 따라 법원에까지 출두하여 영양가 없는 증언을 보태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참 놀랍다. ‘지잡동’ 활동가가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켜 자신들의 불이익을 초래한다는 빛나는 스펙정신도 놀랍고, 인터넷 상의 북한 드립질을 국정원과 113에 신고하는 투철한 신고정신도 놀랍다. 20세기의 반공주의와 21세기의 신자유주의가 공존하는 대학문화의 풍경이라니!

# 볼 ‘가능성’이 있으므로 기소?

증인은 나갔고, 변호인은 재판에 대해 몇 가지 이의를 더 제기하였다. 수사보고서를 작성한 이들이 검찰 측 증인으로 신청되어 있는 것에 부동의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례상으로도 수사보고서 작성자는 증인으로 부를 필요가 없는 것으로 되어 있고, 국가보안법 사건은 피의자의 내심의사(어떤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했는가)가 중요한데, 가장 악의적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는 수사관의 증언을 듣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또한 검사의 최초의 공소장에 증거의 일부가 인용되어 있었다가 변호인 측의 문제제기로 공소장이 변경되었는데 그렇게 정정해도 하자가 남는다고 주장하였다. 검사가 작성한 범죄 일람표에는 박정근이 리트윗한 북한계정의 트윗의 원문을 타이핑해 넣었는데, 당시 클릭으로 그 원문을 열어볼 수 없었기 때문에, 이것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공소사실에 이 내용이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사는 공소장 변경은 큰 문제는 없었지만 쟁점을 줄이기 위해 한 것이었을 뿐, 하자는 없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우회 프로그램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공소장에 들어 있는 것이라고 맞섰다. (박정근은 그런 프로그램을 몰랐고, 압수해간 박정근의 컴퓨터에는 그런 프로그램이 깔려있지 않았는데도, 검사는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봤다는 것을 전제로 작성된 공소장에 하자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유죄추정의 원칙상 박정근이 그것을 보았거나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을 검사가 입증해야 되는 것 아닌가?)

판사는 검사에게 트윗이 표현물이 맞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판례에 나온 것을 정리해서 서면으로 제출하라고 했다.

다음 공판은 6월 20일 3시로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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