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지가 쓰는 편지

청중 앞에서 초연하기

- 윤석원(전 전교조교사)

대개 누구나 여러 사람 앞에 서면 그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두렵고 떨린다고 해. 이 문제에 대처하는 하버지의 방식은 달라이라마의 방식과 달랐는데 그의 방식이 훨씬 더 근본적이고 효과적이라서 하버지도 많이 배웠단다.

먼저 하버지의 방식을 소개하면, 하버지는 수많은 청중을 여럿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각각 한 사람이라고 본단다. 아무리 많아도 결국은 개인적인 만남으로 환원되므로 많다고 부담 가질 것은 아니라고 나를 달랬지. 그리고 만남은 서로를 알리고 아는 일이니 솔직하게 내 모습을 보여주면 그만이라는 생각했단다. 그래서 만나서 얘기 나눌 정해진 화제에 대하여는 하버지의 경우는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아간다는 하나의 예시를 드는 것으로 그치려 했어. 물론 젊은 시절엔 격렬하게 논쟁을 했지만 논쟁은 별로 설득의 효과가 없었어.

그러나 달라이라마는 청중을 올바른 동기와 정직함으로 대한다면 두려움이나 불안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단다. “나는 청중들에게 나서기 전에, 자신을 뽐내어 칭찬 듣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를 바라는 자신의 진정한 동기를 먼저 확인합니다. 만약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잘 몰라서 미안합니다.’라고 하면 그만입니다. 나는 여러 분야를 다 잘 알 수 없으며 그렇게 기대해서도 안 됩니다. 나에게는 결코 청중에게 바보로 보일까봐 걱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자비심을 가지고 조금이라도 그들의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 할 뿐입니다. 나는 이러한 나의 동기에 자부심을 가질 일이지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해야 할 일은 아니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내가 두려운 것은 청중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까봐서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나를 만나러 왔다면 나의 한계도 인정해야 합니다.”

둘 다 같은 점은 솔직하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이다. 다른 점은 하버지는 다수의 청중을 하나의 개인으로 환원시켜서 봄으로써 불안과 두려움을 물리치려 했지. 그러나 달라이라마는 청중에게 잘 보이기보다 다만 자비심으로 더 많이 도움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즉 동기의 진실성과 유효성을 확인함으로써 불안이나 두려움을 물리치려 했고 물리쳤어.

그런데 하버지가 불특정한 다수의 청중과의 만남조차 하나의 개인적인 관계로 가정해버리고 다수의 다양한 상황과 문제에 대하여 무관심했었음을 알게 됐어. 그래서 하버지가 생각을 바꾸었단다. 각각 다른 형편과 처지에서 다른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면 그들이 나를 만날 이유가 무엇인가. 이를테면 바둑을 두는데 하버지는 일대일로 대국하는 일면기(一面碁)만 떠올렸던 거야. 그러나 고수가 한꺼번에 여러 사람과 대국하는 것을 다면기(多面碁)라 하는데 달라이라마 같은 고수는 다면기하면서도 상대에게 가르침을 줄 수가 있을 거야. 누구니 지혜가 넘쳐서 개인의 문제를 듣는 순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나누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청중을 마주대할 때 불안해지거나 두려워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청중에게 잘 보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야. 실제 이상으로 잘 보이고 싶지만 실제보다 못 보일까봐 불안하고 두려운 거지. 그런데 그는 청중에게 어떻게 보일 건지 아예 관심이 없었어. 결코 영광 받기를 바라지 않아. 그 대신 청중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주려고 최선을 다하자는 그의 마음가짐은 내가 청중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하는 걱정을 아예 접게 만들었어.

청중 앞에서 불안해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청중들끼리의 공감으로 연출자의 이미지를 만들어 간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야. 환호든 야유든 한 번 터지면 공감을 따라서 불길이 번지거나 물결이 덮어버리듯이 맹렬하게 전염되는 청중들의 속성을 아는 연출자는 청중이라는 불길이나 물결 앞에서 태연해지기가 어려워. 그러나 청중의 속성이야 어떻든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실제보다 더 잘 보이고 싶기 때문에 청중의 불길이나 물결에 휩쓸리게 돼. 결국 부풀려진 것은 꺼져 환멸로 끝날 것은 안다면 더 잘 보이려고 애쓸 이유가 없어. 그래서 만약에 내가 잘 보이려는 마음을 완전히 버렸다면 청중이 결코 불안하거나 두려울 이유도 없어. 그러면 청중 앞에서 실수할 일도 없어.

하버지는 달라이라마가 청중을 만나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청중을 위해서라는 그의 말을 믿는다. 그와 우리에게 영원히 남는 것은 그가 청중에게 남긴 이미지가 아니야. 많은 사람들의 괴로움을 덜어주고 행복을 찾는데 도움을 준 그의 지혜만 영원히 우리에게 남아 있을 거야. 홍아야, 우리도 누굴 만나든지 우리의 지혜가 그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만을 간절히 바란다면 아무리 많은 사람을 만나도 두렵기는커녕 행복할 거야. 그렇지? 우리도 그렇게 되려고 내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면서 지혜를 쌓아가자. 지혜로운 이들도 다 그렇게 했을 테니까.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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