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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주제곡으로 만나는 일본의 대표 뮤지션들

- AA

드라마 종영 후에 다시 그 드라마를 떠올리는 때가 있다.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장소나 계절과 맞닥뜨릴 때, 명대사가 문득 생각날 때 등등, 하지만 역시 가장 큰 힘은 역시 주제곡이다. 드라마의 종영과 함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일회성 곡도 많지만 좋은 곡이라면 언제 들어도 다시금 그 드라마를 떠올리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100%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좋은 드라마에는 그에 어울릴 만큼 좋은 주제곡이 함께 한다. 오늘 추천할 세 편의 드라마와 그 주제곡들은 좋은 드라마, 좋은 음악일 뿐만 아니라 일본의 대표적 뮤지션 세 팀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1. < 사랑의 힘 >× 오다 카즈마사

후지TV에서 2002년에 방영되었던 <사랑의 힘>은 이 세상에 태어난 지 30년 하고도 6개월 19일이 지나 이제 다시 사랑 같은 건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 여주인공이 사랑에 서툰 남주인공과 티격태격하다가 사랑에 빠지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물이다.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물을 결말 때문에 보겠는가. 이 작품은 잘 만든 로맨틱 코미디물의 필수 조건이라 할, 뻔한 결말로 가는 뻔하지 않은 과정을 아기자기하고 유쾌하게 그려냈다. 특히 일본의 대표 여배우 후카츠 에리가 연기하는 여주인공 모토미야 토우코는 드라마 전체를 사랑스럽고 귀엽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청춘은 가고, 회사의 부속품 같은 존재로 살아가는 모토미야에게 유일한 위안은 매일 밤 혼자 마시는 와인, 그리고 세계 각지의 불행한 여인들의 삶을 보여주는 티비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일에 열정과 재능을 가진 광고 디렉터 누쿠이 코우타로를 만나면서 모토미야의 하루는 조금씩 바뀐다. 남의 불행을 보며 안심하는 인생을 살던 그녀가 다시 열정을 가지게 되고,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모든 과정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대사들과 함께 어우러져 종영 10년이 된 지금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드라마의 반짝반짝하고 귀여운 분위기를 한껏 살린 주제곡 「키라키라(キラキラ/반짝반짝)」를 부른 뮤지션은 일본의 엘튼 존으로 흔히 비유되는 오다 카즈마사다.

오다 카즈마사(小田和正)는 1970년, 오프코스라는 밴드의 보컬로 음악 활동을 시작해 89년 밴드 해산 후 솔로로 데뷔하였는데 그가 확실한 솔로 아티스트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은 바로 91년 후지TV 게츠구 <도쿄 러브스토리>의 주제가 「러브스토리는 돌연히(ラブストーリーは突然に)」다. 이 곡이 담긴 싱글 앨범은 오리콘 차트 1위를 차지하며 300만장에 가까운 대히트를 기록하였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의 남녀노소 누구나 아는 곡으로 사랑받고 있다. 「러브스토리는 돌연히」이후 오다 카즈마사는 오늘 소개한 <사랑의 힘>의 주제곡인 「키라키라」외에도 이 코너 초반에 소개한 드라마 <그래도 살아간다>의 주제곡인 「도쿄의 하늘(東京の空)」등 꾸준히 드라마 사운드트랙에 참여해왔다. 그는 1947년생, 우리 나이로 66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작년에 발표한 베스트 앨범은 3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였고 작년에 시작한 그의 전국 투어는 1년 동안 진행되어 바로 얼마 전인 5월 말, 앙코르 공연까지 무사히 끝났다.
소개한 드라마를 보신다고 전제하면 주제곡은 당연히 들으실 수 있으니 추가로 다른 곡을 추천하고자 한다. 역시나 드라마 주제곡으로 사랑받은 「안녕은 말하지 않아(さよならはいわない)」라는 곡이다. (2009년 후지TV드라마 <트라이앵글>의 주제곡이었다.)

-오다 카즈마사 2009년/ TBS 음악프로그램 <크리스마스의 약속>에서
(영상 인코딩 및 자막 출처 : http://kmii.blog.me/10107684611 )

2. <프로포즈 대작전>× 사잔 올스타즈 (쿠와타 케이스케)

<프로포즈 대작전>은 후지TV에서 2007년 방영되었고 우리나라에서 얼마 전 종편 채널인 TV조선이 유승호를 주연으로 내세워 리메이크하기도 한 드라마다. 유승호와 정확한 등치점에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아이돌 중 한 명인 야마시타 토모히사가 남자주인공 이와세 켄 역할을 맡았다. 14년 지기 소꿉친구 레이의 결혼식, 그녀를 좋아했지만 한 번도 제대로 고백한 적 없는 이와세는 내내 복잡한 기분을 숨기지 못한다. 그런데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던 그의 앞에 갑자기 이상한 남자가 나타난다. 자신이 요정이라면서 과거로 돌아가게 해주겠다고 한다. 요정이 그에게 타임슬립을 제안한 본질적 이유는 확인해보고자 함이다. 인간이라는 생물을. 요정은 이런 내레이션을 한다.

“인간은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이유를 찾는 생물이다. 상황이나 타이밍, 날씨나 운세 등 이런저런 변명을 대며 자신을 위로한다. 이럴 리가 없다, 다시 한 번 할 수 있다면.. 하고.
다시 한 번 한다면 정말로 일이 잘 풀릴 것인가. 처음에 하지 못했던 일을 두 번째에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일견 판타지를 가미한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물로 보이지만 깨알같은 잔재미와 함께 의외로 풋풋한 감동도 있고, 후반부에는 이와세의 결정에 한 수 배웠다는 느낌마저 드는, 의외로 괜찮은 드라마다. 주제곡 「내일은 맑을까나(明日は晴れるかな)」는 5인조 밴드 사잔 올스타즈의 리더이자 보컬인 쿠와타 케이스케(桑田佳祐)가 불렀다. 마치 극의 전체 스토리를 함축해놓은 듯한 가사와 쿠와타 특유의 걸쭉하고 거친 보컬이 어우러진 이 곡은 이 드라마가 단순하고 가벼운 청춘물이 아님을 보증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작품의 플러스 요소다.

일명 ‘사잔’이라 불리는 사잔 올스타즈(Southern all starsサザンオールスターズ)는 1978년 데뷔한 후 무기한 활동중지를 시작한 2009년까지, 30년 동안 일본의 대표적 국민 밴드로 활동해왔다. (오죽하면 무기한 활동중지 발표를 일본의 주요 일간지에 전면광고로 냈다.) 30년 동안 락, 발라드, 테크노, 전통 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며 발표한 이들의 앨범은 싱글과 정규를 합해 총 4천 7백만 장 이상이 팔렸다. 이들의 대표적 히트곡인 「 츠나미(TSUNAMI)」 와 「사랑스러운 에리(いとしいエリー)」등은 우리나라에서도 리메이크되었다. 흥얼거리기 쉬운 멜로디와 결코 철들지 않는 장난스러움, 구수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보컬이 결합하여 탄생한 노래와 이미지는 30년 동안 사잔을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이른바 일본의 ‘국민밴드’의 자리에 있게 했다. 밴드의 프론트맨인 쿠와타 케이스케는 우리 나이로 올해 57세인 아저씨인데 음악적 재능과 사뭇 다르게 에로틱한 악동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일반 대중은 물론 각양각색의 문화계 인사들이 그를 우상으로 꼽고 있다. 재작년 초기 식도암의 발병을 본인이 직접 말해 열도가 그에 대한 걱정으로 들끓기도 했지만 다행히 쾌차했다고 알려졌다. 쿠와타는 앨범 속에「love korea」 라는 노래를 만들어 넣을 정도로 우리나라(남북한 양쪽 모두)에 관심이 많기에 재일교포 3세라는 설도 있다. 보편적 국민 밴드이자 다양한 음악을 서슴없이 시도하는 사잔 올스타즈의 수많은 히트곡은 다수가 드라마나 영화의 주제곡으로 쓰였는데 <고르지 않은 사과들>의「사랑스러운 에리」와, <계속 당신이 좋아>의 「눈물의 키스(涙のキス─)」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에 대한 국민적 사랑이 얼마나 뜨거운지 2008년 니혼TV에서는 개국 55주년과 사잔의 3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사잔의 33곡을 매회의 주제곡으로 한 33회짜리 드라마 <더 파도타기 레스토랑>을 방송하기도 했다.
추가로 소개할 곡은 1998년 TBS 드라마 <Sweet season>의 드라마 주제곡으로 쓰였던
「love affair ~한여름의 데이트~(真夏のデート)」다.

-사잔 올스타즈 2009년/ 30주년 대감사제 공연 중

3. <14세의 어머니>× Mr.Children

2006년 니혼TV에서 방송한 <14세의 어머니>는 제목 그대로 일본 나이로는 14세, 우리나라 중학교 2학년인 여자 아이가 엄마가 되는 내용이다. 잔혹하게도 10대 청소년들의 임신과 출산이 이제 깜짝 놀랄 일 아닌 세상이 된 것은 우리나 일본이나 마찬가지다. 파격으로 가고 싶었다면 주인공인 여자 아이의 연령을 더 낮췄을 테지만 이 드라마는 정공법을 택한다. 주인공 이치노세 미키는 흔히 말하는 날라리도 아니고 강간 등으로 의도치 않은 임신을 한 것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 좋은 중학교에 진학한 보통의 여자아이였는데 한 살 위인 중 3짜리 키리노 사토시와 풋풋한 첫 사랑으로 한 번 성관계를 가졌다가 임신을 하게 된다. 사토시 역시 특별히 불량하거나 발랑 까졌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유약하고 소심한 성격의 평범한 남학생이다. 임신 사실은 양쪽 가족과 학교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다. 남의 일이라고 하면 흔한 일이라고 쉽게 말해도 그런 일이 절대 내 딸, 내 아들, 내 친구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보통 사람들에게 이게 어디 보통 일인가. 미키의 부모가 어른답게 쇼크를 추스르려고 할 때 미키는 아이를 낳겠다고 선언해 다시 한 번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든다. 아이의 아버지인 사토시는 평생 엄마의 말대로 살아왔기에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지만 미키는 하루하루 놀랄 만큼 소녀에서 엄마가 되어간다. 자신의 아이를 지킬 수 있는 엄마가 되기 위해 앞으로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울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자신을 걱정하는 엄마를 향해 활짝 웃는 미키의 환한 얼굴은 그 밝음만큼 보는 사람에게 묵직하게 다가온다. 가족, 생명, 10대 소녀의 출산이라는 흔하고도 무거운 주제를 꾸밈없이 담아낸 드라마에 지지 않는 무게감을 가진 밴드, 미스터 칠드런이 부른 「상징(しるし)」이 주제곡이다.

바로 지난달인 5월 초, 데뷔 20주년을 맞아 2장의 베스트 앨범을 낸 미스터 칠드런(Mr.Children)은 일본의 성공한, 대표적 록밴드다. 일본식 영어발음을 줄여 흔히 ‘미스치루’라고 불리는 이들의 1992년 첫 앨범은 별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1993년, 그들의 음악과 딱 맞는 편곡자 코바야시 타케시와 결합하고 드라마 <동창회>의 주제곡으로 앨범 수록곡이 사용되며 서서히 두각을 드러냈다. 그리고 1994년에 낸 싱글 「Innocent world」가 히트를 거두고 바로 이어 낸 싱글 「Tomorrow never knows」가 드라마 <젊은이의 모든 것>의 주제곡으로 사용되며 단숨에 276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 그 후로도 96년에 낸 열 번째 싱글 「이름 없는 노래(名もなき詩)」는 발매 첫 주 만에 120만장이 팔려 오리콘 차트 역대 싱글 첫 주 판매량 1위를 기록했고 그 기록은 여전히 건재하다. ‘미스치루 현상’이라는 말까지 언급될 정도로 파급력을 가지며 20년 동안 총 5천 4백만장의 앨범 판매를 기록하고 있는 미스터칠드런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가사다. 리더이자 보컬인 사쿠라이 카즈토시(桜井 和寿)가 대부분의 곡을 작사, 작곡하는데 J-POP계의 음유시인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가사가 훌륭하다. 밴드 멤버들이 20대였던 90년대에는 흔들리고 부딪히는 젊은이들을 위로하고, 30대로 넘어오며 일상에 길들여져 소중한 것을 잃고 사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온기를 불어넣는 가사가 주를 이룬다. 그들의 노래는 용기, 위로, 휴머니즘을 이야기하는 수많은 드라마나 영화의 주제곡 뿐 아니라 올림픽 방송 등의 테마송 등으로도 쓰이고 있다. 미스터칠드런이라는 밴드에게는 화려한 연주 실력이나 트렌드를 앞서가는 기발함은 없다. 다만 그 빈자리에는 사람에 대한 사랑과 삶에 대한 반성, 성찰이 수식이나 기교 없이 묵직하게 들어앉아있다. 백문이 불여일견, 영화 <행복이 깃든 식탁>의 주제곡인 「くるみ」와 그 가사를 소개한다.

-Mr.Children 2011년/ 투어 SENSE 공연 중

「くるみ」
(호두나무)

있잖아 호두나무야 이 거리의 풍경은 너의 눈에 어떻게 비치니? 지금의 난 어떻게 보이지?
있잖아 호두나무야 누군가의 상냥함도 비아냥거림으로 들리곤 해. 그럴 땐 어떻게 하면 좋을까.
좋았던 일만 떠올리면서 자포자기한 채 늙어버린 기분이 들어.
그래도 삶 속에서 지금 움직이려 하고 있어. 톱니바퀴의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되겠지.
희망의 수만큼 실망은 늘어나겠지. 그래도 ‘내일’에 가슴은 떨려와
무슨 일이 일어날까? 상상해 보는 거야.

있잖아 호두나무야 시간이 뭐든지 씻어 내준다면 삶이란 실로 간단하겠지.
그 이후로 한 번도 눈물은 흘리지 않았어. 하지만 진심으로 웃은 적도 별로 없어.
어디부턴가 잘못 잠그기 시작해 깨닫고 보니 하나가 남은 단추.
마찬가지로 누구나 처치 곤란한 단춧구멍을 만나는 데 의미가 있으면 좋겠어.
만남의 수만큼 이별은 늘어가겠지 그래도 희망에 가슴은 떨릴 거야.
우연히 십자로를 만날 때마다 방황도 하겠지만.
언제나 지금보다 더 나은 걸 원하는 주제에 변치 않는 사랑을 찾아 노래하지.
그렇게 해서 톱니바퀴는 돌아갈 거야. 필요 이상의 부담에 삐걱삐걱 둔한 소리를 내면서.
희망의 수만큼 실망은 늘어나겠지 그래도 내일에 가슴은 떨릴 거야.
무슨 일이 일어날까, 상상해 보자.

만남의 수만큼 이별은 늘어가겠지 그래도 희망에 가슴은 떨릴 거야.
돌아보면 안 되겠지. 나아가자, 네가 없는 길 위로

(가사 번역 출처 : 지음아이커뮤니티)

세 편의 드라마와 세 팀의 아티스트 모두 사실은 각각 한 회씩 설명해도 모자랄 정도지만 드라마 주제곡 소개를 기회로 일본과 국내의 대중음악계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하고자 드라마와 아티스트들을 간략하게(!) 정리했다. 우리나라도 드라마 주제곡의 힘은 크다. 어떤 드라마가 화제가 된다 싶으면 그 주제곡이 음원 사이트의 차트 상위를 차지하고 여기저기서 질리도록 들려온다. 그러나 드라마가 끝나면 대부분 망각의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일회용품처럼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드라마의 수만큼이나 많았던 주제곡들 중 당신이 여전히 아끼는 곡은 몇 곡이나 있으며, 드라마 주제곡을 통해 알게 된 후 지금까지 꾸준히 그의 음악을 찾아 듣는 뮤지션은 몇이나 있는가? 아니, 그 중 몇이나 아직까지 뮤지션 혹은 아티스트라는 호칭으로 불리며 음악을 하고 있는가?

위에서 언급했던 오다 카즈마사의 최근 전국 투어 공연은 일본 전국 31군데에서 59회에 걸쳐 진행되었고 총 관객 수는 74만 명에 달해 오다 카즈마사는 이 투어로 돔 투어 공연 최고령자의 기록은 물론 일본 국내 솔로 아티스트 역대 최다 관객인원(이전 기록 54만 명)까지 가볍게 갱신했다. 그리고 위에 가장 처음 링크한 동영상은 오다 카즈마사를 중심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수십 명의 뮤지션들이 나와 일본인이 사랑하는 노래를 20분이 넘는 메들리로 편곡하여 함께 연주하고 노래하는 TBS 특별 음악 프로그램 <크리스마스의 약속> 중 일부다. 이 프로그램은 2001년부터 10년째 매년 크리스마스 밤에 방송되고 있다. 올해 초, MBC에서 MBC MUSIC이라는 새로운 케이블채널을 개국을 기념하여 (작년 데뷔 20주년이 된) 아티스트 윤상을 중심으로 <음악의 시대>라는 특별 프로그램을 제작했는데 그 모티브가 바로 <크리스마스의 약속>이라 밝힌 바 있다. 과연 내년에도, 그리고 10년 후에도 <음악의 시대>는 <크리스마스의 약속>처럼 계속될까. 후지TV 음악전문프로그램 <우리들의 음악>의 컨셉을 모티브로 했던 MBC의 <음악여행 라라라>는 2년 만에 시청률 부진을 이유로 폐지되었다. (물론 사장이 다른 사람이었으면 더 오래 했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인들에게 여름은 축제, 불꽃놀이, 바다 그리고 사잔의 계절이라 할 정도로 누구나 여름이면 떠오르는 사잔의 노래가 한 곡 정도는 있다. 청춘을 이미 떠나보낸 이들은 사잔의 노래로 청춘의 여름날을 기억하고, 현재의 청춘들은 다가올 여름의 두근거림을 사잔의 노래와 함께 기다린다. 10대에 사잔을 들었던 아버지와 지금 10대인 아들이 각자의 추억을 같은 노래로 공유한다. 어머니의 손에 끌려 사잔의 콘서트에 왔던 꼬맹이가 숙녀가 되어도 사잔은 쉰내 나는 늙은이들이 아닌 현역의 슈퍼스타다. 위에 첨부한 동영상은 사잔이 30주년이 되던 2008년 무기한 활동 중단을 발표하고 마지막으로 했던 30주년 기념 콘서트 《한 여름의 대감사제(大感謝祭)》 의 일부다.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 커다란 돔구장 3층까지 빼곡하게 차 있는 관객들은 성별도, 연령도 특정 지을 수 없이 다양하다. 우리나라의 중학생이 “난 조용필(혹은 신중현)이 좋아”라고 한다면 주변 친구들이 뭐라고 할지, 아니 조용필이나 신중현을 아는 10대가 과연 있을까.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나라에서 보편적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어머니와 딸이 각자의 추억을 떠올리며 함께 부를 수 있는, 세대를 이어주는 애창곡이 「애국가」와 「오 필승 코리아」 외에 더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미스터 칠드런의 가사에는 “널 너무 사랑해 정신이 혼미하다” 라거나 “당신과 헤어지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등의, 우리나라 유행가에 차고 넘치는 남녀연애의 내용이 적다. 위에 소개한 노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노래에 일상의 소소함과 그 안에서 오는 인생의 고됨, 생명의 중요함을 떠올리는 내용의 가사가 담겨있다. 가사에 생명, 살아가다, 마음, 사람, 꿈, 빛, 희망, 꽃, 하늘 등이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앨범은 발매하면 늘 차트 1위고, 영상에서도 볼 수 있듯 콘서트는 언제나 만원이다. 오늘도 그들의 노래를 들은 일본의 10대, 20대들은 제2의 미스터 칠드런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자기들끼리 밴드를 만든다. 그리고 미스터 칠드런이 중심이 되어 일본 아티스트들이 환경 문제를 음악으로 조금씩 개선하고자 매년 여름마다 개최하는 AP(artist power) Bank festival에는 매년 7만 명을 웃도는 관객이 시즈오카에서 콘서트를 즐기면서 동시에 환경 보호에 대한 작은 실천들을 배운다. (단 작년에는 지진 피해로 인한 성금을 모금하는 것으로 일시적인 테마 변경을 했다.)

왼쪽부터 2011년 오다 카즈마사의 돔 공연 / 2010년 NHK 홍백가합전에 출전한 쿠와타 케이스케/ 2011년 ap bank 페스티벌의 홍보용 이미지 일부분

왼쪽부터 2011년 오다 카즈마사의 돔 공연 / 2010년 NHK 홍백가합전에 출전한 쿠와타 케이스케/ 2011년 ap bank 페스티벌의 홍보용 이미지 일부분

오다 카즈마사가 가진 모든 기록의 숫자들이, 세대를 아우르는 사잔 올스타즈의 여름이, 미스터 칠드런과 아이돌 그룹이 공존하는 차트가 일본에는 있는데 우리나라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류가 그토록 잘 나간다는데 정작 우리나라에는 데뷔 20년이 넘은 아티스트들 중 상암 월드컵 경기장을 유료공연으로 꽉 채울 수 있는 이가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인들보다 음악을 좋아하지 않아서? 20년 넘게 음악 하는 사람이 없어서? 인구수가 반 밖에 되지 않으니까? 앗! 설마, 돔 구장이 없어서인가!
한 때 우리나라 대중음악계에서도 앨범 판매량 300만장이 절대 꿈이 아니었던 때가 있었다. 공중파 음악프로그램에 트로트와 락이 순위권에 함께 있던 시절이 존재했다. 본인이 코흘리개 시절 멋도 모르고 따라 부르던 노래 중에는 “내 젊음의 빈 노트에 무엇을 채워야 하나” 같은 가사의 곡도 있었다. 90년대 초반, 국내 대중음악이 황금기를 누리고 있을 때 뮤지션들이 모여 환경 콘서트를 개최하고 각각 곡들을 써서 앨범을 냈다.

왼쪽부터 1995년 330만장의 앨범판매고를 기록한 김건모의 3집 앨범 자켓/ 1992년 환경콘서트 <내일은 늦으리>의 포스터/1991년의 유행곡 탑 11)

왼쪽부터 1995년 330만장의 앨범판매고를 기록한 김건모의 3집 앨범 자켓/ 1992년 환경콘서트 <내일은 늦으리>의 포스터/1991년의 유행곡 탑 11)

절대로, 정말 절대로 우리나라 뮤지션들이 저들보다 못해서 그 시절이 거품처럼 사라진 건 아니다. 굳이 뮤직비디오 버전을 두고 콘서트 라이브 버전의 동영상을 고른 것은 그 이유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앨범판매량과 음반의 질을 동일시하는 건 아니지만 굳이 앨범 판매량을 계속해서 언급한 이유 역시 같다. 우리와 똑같이 각박한 삶이지만 아티스트의 앨범을 공짜로 다운받는 대신 음반을 ‘돈’으로 사고, 우리와 다를 바 없이 먹고 살기 힘들지만 시간을 들이고 ‘돈’을 지불해 공연장을 찾아간 사람들이 일본에는 저토록 많이 존재한다. 2010년 조사에 따르면 구매력기준 1인당 국민소득은 양국의 차이가 거의 없다. 인구수가 우리의 2배니까 어쩔 수 없다는 논리는 억지다. 우리나라 음반 시장엔 아이돌뿐이라 그렇다는 것도 핑계다. (2011년 각국의 앨범판매량 1위는 각각 슈퍼주니어와 AKB48로 남녀아이돌이다. 그러나 같은 1위라도 우리나라는 25만장이었고, 일본은 (정규 앨범 아닌 싱글로) 158만장이었다. 소녀시대가 우리나라에서 낸 앨범은 17만장이 팔렸고, 같은 노래를 번안한 것뿐인데 일본에서는 50만장이 팔렸다.)

각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재능과 노력을 담아 내놓은 작품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우리나라의 많은 대중들은 그것에 소홀하다 못해 오히려 지불 자체를 억울해했다. 그래서 앨범을 사는 대신 불법 다운로드 사이트를 찾아다니고 돈을 내고 가야하는 공연장에는 어지간한 팬이 아니면 좀처럼 가지 않았다. 대중음악계의 투자는 그렇게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이제 우리나라의 뮤지션들 중 생활고를 겪지 않으며 마음껏 만들고 싶은 음반을 제작하고,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날짜에 공연할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자본과 시스템은 많은 사람들의 많은 돈을 절대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와 비교되게 일본의 유명 뮤지션들은 마음껏 음악을 만들어 앨범을 내고 온갖 투자를 하여 훌륭한 무대를 세운 돔 구장에서 본전 회수를 걱정 않고 콘서트를 할 수 있으며 방송국들은 그들을 아티스트라 격상하여 호칭하고, 그들을 모시려 프라임타임을 비운다.
한 해 최고 앨범 판매량이 300만장이었던 시절이 마치 월드컵에서 4강에 올라갔던 날처럼 아련하게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보편적 대중들이 취향을 찾는 수고를 하지 않고, 작품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아티스트를 지키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가수>를 보며 임재범을 재발견했다면 한 곡당 그에게 가는 이익이 몇십 원인 mp3를 스트리밍받는 것보다 앨범을 사야, 그의 콘서트 소식에 초대권 구할 방법을 강구하지 말고 직접 돈을 내고 티켓을 사야 임재범이 다음 앨범을 제작할 수 있고, 다시 콘서트를 열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당신의 투자가 감동으로 당신에게 다시 돌아올 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한 달 내내 3000원만 내면 무제한으로 모든 노래를 들을 수 있다니. 아무리 고흐가 살아서는 돈 한 푼 만져보지 못했다 해도, 21세기의 아티스트들에게 헝그리 정신을 강요하는 것에도 정도가 있다. 재능과 노동을 갈취하지 말자.

음원 정액제 폐지를 위한 서명운동 사이트 http://stopbargainmusic.com/

덧붙여 사심으로 딱 두 곡만 더 추가로 소개하고 싶어서 그만…..
(드라마나 영화 주제곡이 아니라 본 내용에 넣을 수가 없었다.)
좋은 건 나누고 싶은 마음이라고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길.
Mr.Children의 2007년 ~in the field~ 투어 영상이다.

「Innocent world」

「口笛」

제목이 ‘휘파람’이라는 뜻인 이 노래의 가사 중 “꿈을 꺾고 돌아오는 논길 위에 멈춰선 채로, 그래도 어떤 때라도 너와 함께라면 웃을 수 있길” 이라는 구절이 있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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