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의 뒷골목

죽음의 기지가 된 섬나라들 그리고 제주—미국 해군기지의 역사 (1)

- Beilang(동아시아사상사연구자, 뉴욕이타카)

국가의 힘을 얘기할 때 흔히 ‘소프트 파워’와 ‘하드 파워’로 나눠 얘기한다. 우리 표현으로 文과 武에 해당하는 이런 구분에서 군사력은 후자를 대변한다. 군사력은 흔히 땅과 연결된 육군의 이미지로 연상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도 해양을 지배한 세력이 제국주의 국가가 되어 세계를 지배해온 것을 봐도 바다를 지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리고 해군은 직접적인 군사적 지배의 중추적 역할은 물론 자국의 상선보호 그리고 군사적 위협의 수단으로 이용되며 경제적 지배도 뒷받침 하였다. 실제 군사작전 시에는 군대 이동, 물자 보급, 공중 지원, 해상 공격 등 전투의 모든 측면을 망라하는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은 해군이다. 심각한 군사적 긴장이 조성될 때마다 미국이 제7함대 등을 긴장지역에 파견하여 얼쩡대는 것도 유사시 우리는 육해공을 총동원할 수 있다는 무력시위인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주요 해군기지 팽창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은 미국의 패권주의, 제국주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1.

우리가 흔히 ‘서구 제국주의’를 얘기할 때 미국을 잘 떠올리지 않는다. 제국주의 선발국가들의 찬란한(?) 위업에 가린 탓인지 그들을 제압하며 등장한 최강의 후발국가이면서도 이차대전 이후 선한 ‘세계의 경찰’이라는 이미지와 겹쳐 ‘미제(국주의)’는 북한이나 쓰는 선동적 표현으로 이해되곤 한다. 그러나 미국은 시초부터 제국주의라 불러 마땅한 팽창주의에 국가의 기원을 두고 있다. 애초에 영국, 프랑스, 스페인이 차지하고 있던 북미대륙의 동부 13개 영국 식민주에서 시작해 현재의 북미 대륙 전체를 차지하는 과정은 팽창과 침략을 되풀이해온 역사였다. 그들이 독립전쟁이란 부르는 영국과의 싸움(1775-1783)을 필두로 한편으로는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이 무력으로 차지한 땅을 협상을 통해 사들이거나(1803년 프랑스령 루지애나(미국의 중부와 남부일부) 구매), 구매 형식을 취한 할양(cession)(스페인령 플로리다), 정복하고(1845년 멕시코 영토였다 독립국가가 된 텍사스를 점령), 그리고 이어서 벌어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멕시코와의 전쟁(1846-1848)과 같은 직접적인 영토전쟁으로 중부와 서부 그리고 남부의 땅을 차지한다.

1783년부터 1867년까지 미국의 영토 확장을 보여주는 지도. 좀 더 상세한 정보는 “미국 역사 시기별 영토지도” 참조.

1783년부터 1867년까지 미국의 영토 확장을 보여주는 지도. 좀 더 상세한 정보는 “미국 역사 시기별 영토지도” 참조.

1776년의 독립선언을 미국의 탄생과 동일시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이 시기 북미 대륙의 정체는 통합되어있지 않았다. 연방주의와 반연방주의가 대립하고 있었고 노예제를 둘러싼 경제적 이익, 정치적 대표성 등의 문제 등으로 대립하다 이 내부의 갈등이 남북전쟁(1861-1865)이라는 폭력적인 충돌로 매듭지어진 후 러시아가 점령한 알래스카를 1867년에 사들이면서 지금 우리가 아는 북미대륙의 영토와 거의 유사한 형태가 19세기 후반에 완성된다. 물론 애초부터 지속되어온 원주민에 대한 학살과 억압정책 그리고 노예제 그리고 그 후의 인종분리에 기반을 둔 인종차별적 정책은 미국 전 역사를 관통하고 있다. 한편으론 다른 식민지 경쟁자들을 몰아내고 이웃나라와 전쟁을 벌이면서 다른 한편으론 내부의 원주민과 흑인 등 “유색인”들을 억압하고 수탈하며 북미 대륙을 정복한 것이 바로 19세기까지의 미국역사의 큰 그림이다.

대륙을 차지하고 내부를 정비한 19세기 말부터 미국은 기존 제국주의 국가들과 유사한 외부지배에 나선다. 전통 왕국에서 근대적 국가로 변화의 진통을 겪던 하와이는 1893년에 미국 정부가 아니라 백인 장사치들이 미군의 힘을 빌어 왕조를 무너뜨리고 차지한다. 본격적인 침략전쟁의 시작은 스페인 지배하의 쿠바의 독립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지는 해 스페인과의 전쟁이었다(1898). 쿠바에 파견된 미 군함 메인 호(USS Maine)호에 폭발이 일어나 침몰했는데 스페인에 의한 공격 때문이라는 추정에 의해 촉발되었다. (지금도 원인에 대한 연구와 추측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판 천안함!) 이 와중에 푸에르토리코를 점령하고, 손쉬운 승리는 거둔 미국은 스페인령의 쿠바와 괌, 필리핀을 차지한다. 곧이어 필리핀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50만을 학살하고 무자비하게 진압한다(1899-1902). (앞선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이 학살진압의 고위 지휘자 가운데 일인이 맥아더 장군이다. 우리가 아는 맥아더의 애비.) 이 무렵 사모아 군도의 일부도 미국령 사모아로 미국에 편입된다.

1898년에 등장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팽창의지를 보여주는 정치 카툰. 새로 정복한 푸에르토리코와 하와이, 필리핀, 사모아 군도 위로 미국의 국조 흰머리독수리가 날개를 활짝 펴고 있다. “끝에서 끝까지 만 마일”이라는 구호와 함께. 만마일은 얼추 지구의 반. 오른쪽 하단은 100년 전의 초라한(?) 미국의 모습. 일본의 욱일승천기와의 유사성은 시사적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1898년에 등장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팽창의지를 보여주는 정치 카툰. 새로 정복한 푸에르토리코와 하와이, 필리핀, 사모아 군도 위로 미국의 국조 흰머리독수리가 날개를 활짝 펴고 있다. “끝에서 끝까지 만 마일”이라는 구호와 함께. 만마일은 얼추 지구의 반. 오른쪽 하단은 100년 전의 초라한(?) 미국의 모습. 일본의 욱일승천기와의 유사성은 시사적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20세기 들어서서 미국의 해외 군사 개입, 특히 20세기 초 남미에 대한 공격은 집요했다. 1914년 멕시코 침공에서 시작해서 하이티, 도미니카 공화국, 새로 독립한 쿠바, 파나마로 이어지는 군사적 침공을 지속했으며 이를 위해 아예 니카라과에 군대를 주둔시켜 놓고 식민지처럼 내정을 좌지우지하며 남미를 지배하려 했다. 이 시기 미국 대통령은 우드로우 윌슨(1913-1921 재임). 이승만 프린스턴 대학원 재학시 그의 선생이자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해 항일 독립운동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3.1운동의 배경이 되었다고 배워온 바로 그 놈이다. 그가 볼쉐빅 혁명이 일어나자 러시아를 해상봉쇄하고 블라디보스톡까지 군대를 보내 반혁명 세력을 지지한 사실은 미국에도 미국 밖에도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일차대전 참전은 논외로 하더라도 재임기간 내내 열 차례에 걸친 멕시코 공격을 포함해 남미를 공격하기에 바빴고 러시아에까지 군대를 파견했던 매파 대통령을 민족자결주의의 주창자로만 알고 있는 이 뒤틀린 기억!

1901년 <PUCK>라는 잡지 표지에 실린 미국 이미지 삽화. 머리 위에는  "World Power"라는 글이 새겨진 군함을 머리 장식물처럼 이고 있는데 "Expansion"이라는 말이 군함굴뚝 연기에 새겨져 있다. 미국의 남성적 패권주의를 여성적 이미지 속에 슬며시 집어넣은 교묘한 이미지.

1901년 <PUCK>라는 잡지 표지에 실린 미국 이미지 삽화. 머리 위에는 "World Power"라는 글이 새겨진 군함을 머리 장식물처럼 이고 있는데 "Expansion"이라는 말이 군함굴뚝 연기에 새겨져 있다. 미국의 남성적 패권주의를 여성적 이미지 속에 슬며시 집어넣은 교묘한 이미지.

1905년 등장한 미국 해군의 이미지. 출처 오하이오 주립대 카툰 연구 도서관 (http://hti.osu.edu/node/87)

1905년 등장한 미국 해군의 이미지. 출처 오하이오 주립대 카툰 연구 도서관 (http://hti.osu.edu/node/87)

2.

푸에르토리코, 쿠바, 하와이, 괌, 필리핀으로 이어지는 미국 식민지들에 대해 눈치 빠른 독자는 미국의 주요 군사기지, 특히 해군기지를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쿠바는 독립했지만 “테러리스트” 수용소로 악명 높은 미국 지배하의 쿠바령 관타나모 해군기지가 있고, 우리처럼 미군정으로 시작해 지금은 자치령이라는 애매한 위치로 남아있는 푸에르토리코는 군 훈련소, 공군기지에다 해상실전연습과 폭격연습지로 인해 오랜 고통을 겪으며 지속적으로 반대운동을 펴왔다. 1981년 기지 반대 운동가들이 미 공군 전투기 6대를 폭파하는 소동을 겪고 나서야 공군기지 하나가 폐쇄되었고 폭격 훈련도 결국 중단되었다. 비슷한 입장의 자치령이지만 훨씬 작은 괌은 해군기지, 공군기지 등 온갖 군사시설로 섬이 채워져 있다. (섬의 1/3을 군이 차지하고 있다.)

주요 친미국가인 필리핀조차 엄청난 오염과 범죄 등 온갖 문제로 인해 1991년에 수빅만 미 해군기지를 폐쇄했다. (이 터에 김진숙의 ‘고공투쟁’으로 유명(?)해진 한진 중공업이 조선소를 운영하고 있다. 안에서 새는 쪽박 밖에서도 샌다고 거기서도 노동자 탄압과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하와이의 경우 꾸준히 군사기지 반대운동이 있어왔고 최근 들어서는 하와이의 주민들이 진주만의 해군기지와 공군기지 등의 군사시설로 하와이가 어떻게 오염되었는지 그리고 그들의 공동체와 삶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에 대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이차대전 후 미국이 차지해 1972년까지 미군의 점령 하에 육해공 기지에 해병대 기지까지 온 섬을 채우고 있는 오키나와를 더하면 미국 군사적 지배의 근거가 되는 해군기지의 역사적 그림이 그려진다.

2008년 전 세계 미국 군대 배치도. 빨간색은 미군기지 내지 시설이 있는 곳. 노란 색은 기지나 시설이 들어설 예정인 곳. 화살표는 섬에 위치한 미군기지들. 세계 150여 개국에 세워진 1000개가 넘는 미군기지들과 13대의 항공모함과 근 77대의 공격형 잠수함. 미국은 전 지구의 땅과 바다를 호령하고 있다. “끝에서 끝까지 만 마일” 제국의 꿈은 실현된 지 오래다. 실점선은 미국의 위성 감시 시스템이 통상 추적하는 지역. 출처: 미 국방성 군 기지 보고서 (Base Structure Report 2008)

2008년 전 세계 미국 군대 배치도. 빨간색은 미군기지 내지 시설이 있는 곳. 노란 색은 기지나 시설이 들어설 예정인 곳. 화살표는 섬에 위치한 미군기지들. 세계 150여 개국에 세워진 1000개가 넘는 미군기지들과 13대의 항공모함과 근 77대의 공격형 잠수함. 미국은 전 지구의 땅과 바다를 호령하고 있다. “끝에서 끝까지 만 마일” 제국의 꿈은 실현된 지 오래다. 실점선은 미국의 위성 감시 시스템이 통상 추적하는 지역. 출처: 미 국방성 군 기지 보고서 (Base Structure Report 2008)

미국은 자신의 식민지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이라는 미국의 ‘본토’를 공격하는 바람에 미국이 이차대전에 참전했다는 역사서의 얘기나 9-11이 진주만 공격 이후 최초로 ‘본토’가 공격받은 경우라는 얘기를 모든 미국 언론이 스스럼없이 해댄다. 당시 하와이는 미국의 공식영토도 아니었다. 알래스카 그리고 하와이가 미국의 49번째와 50번째 주가 된 것은 이차대전이 끝나고도 한참이 지난 1959년이다. 그런데도 애초부터 자신들의 땅이었던 듯이 얘기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제국주의에 대한 기억, 자신들의 식민지 지배의 기억과 함께 각 지역의 고유한 역사도 지워버린 것이다. (물론 다문화주의라는 이름아래 필요한 만큼은 장식품처럼 써먹는다. 자신들이 얼마나 다양성을 포용하는 너그러운 국가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하와이는 미국의 외부 식민지였고 지금은 내부 식민지다. 오키나와 괌, 푸에르토리코, 오키나와처럼. 내부가 되었건 외부가 되었건 식민지가 어떤 취급을 받는지는 하와이와 오키나와의 과거와 현재를 보면 된다. 이차대전 당시 일본의 지배하에 있던 괌을 미국이 재탈환했는데 이때 무차별 폭격으로 적국 일본이 죽인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이고 괌을 “해방”시켰다. 식민지는 해방도 이렇게 무자비하게 이루어진다. (아직도 미국을 해방의 은인으로만 생각하는 대다수 괌사람 들의 뒤틀린 기억도 지적해두자. 말을 탄 일본인 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인천으로 상륙한 “해방군” 미국에 대한 우리의 오도된 기억도 더불어.)

(계속)

응답 4개

  1. 고추장말하길

    선생님 글을 읽다보니, 지난 세기 이후 세계사가 통째로 ‘미국의 뒷골목’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Beilang 선생님, 글 정말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잘 지내시죠? 으, 그리워욧 ㅎㅎ 한국에 혹시나 오실 계획은 있는지… 참, 하루투니언 선생이 이번주 한국에 온다고 가볍게 한잔 하자네요. 선생님 함께 하면 더 좋을 자리인데, 빈자리가 더욱.. ^^

    • Beilang말하길

      애고, 뒷골목 얘기가 왜 이리 흥미진진하지 못하냐하며 자책 중입니다. 여기 삶이야 좀 뻔한 것 잘 아실테고.. 같이 할렘과 맨하탄을 누빌 때가 좋았죠. 왠만하면 한 번 가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일이 마무리가 좀 되야할텐데… 하루투니언 선생이 오시는군요? 가볍게만 하세요. 아마 많이는 못하실 겁니다. 한때는 위스키광으로 이름을 좀 날리던 분인데… 안부 전해주세요. 언제 또 뵐 기회가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더운 날씨 건강 찰 챙기시고요..

  2. Beilang말하길

    기지가 없어도 군사적 협력 관계를 가진 나라를 포함하면 러시아, 중국, 아프리카를 제외하면 전세계가 미국의 지배 아래 있는 셈이지요.

    미국의 ‘영웅서사’적 역사관은 상당히 뿌리 깊고 쉽게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점거운동이 보여주듯이 근본적 변화는 바닥에서부터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영웅이 가짜 영웅이라는 것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느끼기 시작한 것이지요.

    정신 좀 차리도록 우리도 도와주어야지요. 강정 해군기지 건설같은 것은 확실히 막아주고 (후편에 나옵니다.)

  3. 카모마일말하길

    미국이 세계 이곳저곳 있는 줄 알았지만…
    새삼… 빨간색이… 참 많네요.

    미국역사는 거의 ‘영웅 서사시’ 수준인게 참 안타깝습니다.

    역사가 너무 단순화 되서
    (또는 미국인은 자신이 너무 잘났다는 생각에)

    성숙되지 않은 멘탈을 가지고 정신적 성숙함에 비례하지 않은 힘을 무차별 적으로 휘두루고 다니는게, 마치 아이가 머신건으로 두두두두 거리는 것 같아 두렵습니다.

    언제쯤 정신을 차리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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